"AI 개발 속도 늦추자" 美 빅테크 공감대에 반발한 中, 기술 격차 축소·美 투자 부담 속 양국 셈법 엇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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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美 빅테크發 'AI 속도 조절론' 두고 정면 반발 급격히 좁혀진 美-中 AI 기술 격차, 개발 속도 늦출 시 中 추격 제동 美선 '안전망' 필요성 부각, 인프라 투자 부담 완화 목적도 거론

중국이 인공지능(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미국 빅테크 업계의 주장에 반기를 들었다. 미국 기업들이 잇단 AI 모델 오용·보안 사고를 근거로 안전성 검증 필요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중국은 이를 미국이 기술 우위를 지키기 위해 내놓은 일종의 전략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실제 시장에서는 중국 AI 업계의 추격 속도가 늦춰질 경우, 미국 선두 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경쟁·비용 지출 부담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中, 美 테크업계에 비판 쏟아내
21일 AI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는 미국 산업계 일각에서 제기된 AI 개발 속도 조절론에 잇달아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각)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AI 발전은 전 인류의 공동 복지와 관련된 문제”라며 “각국은 AI가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각종 위협 서사를 퍼뜨리고 대립과 악성 경쟁을 벌이는 것은 건전한 글로벌 AI 거버넌스의 진전을 방해할 뿐이며 어느 쪽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영문 매체 글로벌타임스도 같은 날 관련 보도와 논평을 통해 "미국 AI 업계의 주장이 순수한 안전 문제보다는 상업적 이해관계와 기술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중국 전문가들의 견해를 전했다. 특히 AI 안전 문제를 미중 간 지정학적 경쟁과 결부할 경우 글로벌 공동 과제를 ‘제로섬 게임’으로 변질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글로벌타임스는 별도 논평에서 중국을 겨냥한 기술·규제 장벽이 미국의 첨단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중국을 글로벌 AI 거버넌스에서 배제하려는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를 ‘AI 분야의 냉전식 접근’이라고 묘사했다.
美 빅테크, '안전' 관련 공감대 형성
이러한 중국의 반발을 야기한 속도 조절론의 시발점은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이었다. 아모데이 CEO는 지난 12일 자신의 웹사이트에 ‘우리는 최첨단 AI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We Must Pace the Frontier)’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AI 모델의 역량을 향상하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델 학습이나 기술 발전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모델을 ‘정렬’(alignment)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데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자는 것”이라며 “모델의 임계점에 도달하기까지 1~2년의 추가 시간을 확보하고, 그 시간을 정렬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정렬은 AI가 안전 가드레일을 벗어나지 않고 인간이 의도한 목표와 지시를 따르도록 만드는 것을 뜻하는 용어다.
여타 AI 업계 주요 인사들도 아모데이 CEO의 의견에 잇따라 동조했다. 아모데이 CEO와 대표적 앙숙 관계로 꼽히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아모데이 CEO의 글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엑스(X, 구 트위터)에 재게시하고, “아모데이의 의견에 동의한다"며 "특히 직원과 동일한 접근 권한을 가진 독립적 평가자를 두자는 제안은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적었다.
평소 아모데이 CEO의 발언들이 불필요한 공포심을 유발한다며 비판하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자신의 X에 “다리오의 말이 맞다”고 언급했으며, 구글 딥마인드를 이끄는 데미스 허사비스도 “세부 사항은 추가 논의가 필요하지만, 지금과 같은 중대한 시기에 다리오의 글은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도 엑스에 “우리가 만드는 AI가 인류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인간의 통제 아래 있지 않다면 초지능을 추구할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
中 AI 산업의 현위치
중국이 이 같은 주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에는 최근 빠르게 좁혀진 양국 간 AI 기술 격차가 있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의 최고 성능 AI 모델 간 격차는 2023년 이후 빠르게 축소돼 왔으며, 최근에는 일부 벤치마크에서 양국 모델이 선두를 주고받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실제 시장에서도 중국산 모델의 존재감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오픈라우터 등 AI 모델 중개 플랫폼에서는 중국계 모델들이 상위권을 대거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산 모델의 토큰 처리량이 미국산 모델을 넘어서는 사례도 종종 확인된다.
다만 중국은 여전히 최첨단 AI 반도체 및 연산 인프라 확보에 제약을 받고 있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로 엔비디아의 최상위 AI 가속기 구매가 제한돼 있는 데다,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및 관련 기술에 대한 접근도 쉽지 않은 탓이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미국발 AI 속도 조절론을 경계하는 것은 엄격한 시장 규범이 이미 최첨단 반도체와 대규모 연산 인프라를 확보한 미국 선두 기업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후발주자인 중국의 추격이 본격화한 현시점에서 경쟁 속도를 낮추자는 제안 자체가 기존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AI發 위협 가시화
문제는 미국 빅테크 업계의 행보를 시장 경쟁의 셈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최근 관련 시장에서 AI 모델을 둘러싼 잡음이 빠르게 누적되고 있는 탓이다. 일례로 지난 10일 앤트로픽은 ‘AI 오용 탐지 및 보고서’를 내고,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자사 AI 모델 클로드가 미사일, 자폭 드론과 같은 재래식 무기 개발에 쓰인 사례가 총 6건 발견됐다고 밝혔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중국 3건, 러시아 2건, 예멘 1건이다. 여기에 같은 기간 대규모 살상 목적의 생물학 무기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 연구 사례도 5건 확인됐으며, 사이버 공격 분야에서도 클로드가 적극 활용됐다.
지난 18일에는 사이버 보안 전문 연구업체 해크트론이 앤트로픽의 최신 AI 모델 '클로드 오퍼스 5'를 활용해 오픈AI 내부 시스템의 보안망을 뚫고 침투 흔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크트론 측은 연구진이 오픈AI의 도움말 게시판(포럼)의 보안 허점을 이용해 서버 내부로 침투한 뒤, 이곳에 노출된 오픈AI 임직원들의 챗GPT 및 코딩 도구 코덱스 계정 권한을 확보해 '모노레포' 시스템까지 진입했다고 설명했다. 모노레포는 오픈AI의 핵심 프레임워크와 알고리즘 기밀 데이터가 집약된 시스템으로 알려져 있다.
표1. 미국·중국 AI 기업의 경쟁 환경 비교
| 구분 | 미국 | 중국 |
|---|---|---|
| 조달 구조 | 회사채·프로젝트파이낸싱·사모신용·자산유동화 등 민간 금융 중심 | 국가산업기금과 지방정부 보조금 중심 |
| 비용 부담 | 데이터센터·반도체·전력 등 인프라 비용 및 금융 비용을 기업이 직접 부담 | 연산 능력 임차비, 모델·데이터 이용 비용 등을 정부가 일부 지원 |
| 사업 전략 | 대규모 투자와 차입을 이어가며 기술 우위·수익성 확보 |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저가·오픈웨이트 모델 확산 |
| 경쟁 압력 | 중국의 추격으로 가격 인하 및 연구개발·인프라 투자 부담 가중 | 가격 경쟁력, 낮은 진입장벽을 앞세워 글로벌 영향력 확대 |
美 AI 시장 재정 리스크 확대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의 속도 조절론에서 시장 논리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미국 AI 기업들은 막대한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를 경쟁적으로 단행하며 재무 부담에 짓눌리고 있다. 풍부한 현금을 쌓아 놓던 빅테크 기업들조차 회사채를 찍어내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모대출, 자산유동화 등의 금융 기법을 동원할 정도다. 실제 글로벌 신용평가사 S&P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미국 하이테크 기업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약 160% 증가했으며, 전체 미국 비금융기업 회사채 발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년 전 24.4%에서 37.8%로 뛰었다. 사모신용 시장에서도 기술 기업의 자금 수요 확대가 뚜렷하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미국 소재 차입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기술 기업에 대한 사모신용 대출 잔액은 2010년 약 220억 달러(약 30조3,410억원)에서 2025년 1조 달러(약 1,379조1,400억원) 이상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사모신용에서 기술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2%에서 44%로 두 배가 됐다.
이처럼 민간 시장 중심으로 자금을 조달하며 고군분투하는 미국 기업들과 달리, 중국 AI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상당한 자금과 인프라를 지원받고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와 재정부는 지난해 600억 위안(약 12조3,550억원) 규모의 국가 AI 산업투자기금을 출범했다. 해당 기금은 AI, 집적회로, 양자기술 등 전략 산업을 주요 투자 대상으로 삼으며, 향후 600개 이상의 하위 펀드를 조성할 예정이다. 일부 중국 지방정부는 AI 기업의 핵심 비용인 연산비를 경감해 주기도 한다. 상하이시 정부가 지난해 6억 위안(약 1,240억원) 규모의 ‘컴퓨팅 파워 바우처’를 편성해 AI 기업의 연산 능력 임차비를 최대 30% 지원하고, 별도로 3억 위안(약 620억원)의 모델 이용 바우처와 1억 위안(약 206억원)의 데이터 바우처를 지급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은 저렴한 이용료와 오픈웨이트 모델을 앞세워 글로벌 영향력을 키워 가고 있다. 이 같은 저가 공세로 AI 모델 자체가 범용재에 가까워질 경우, 미국 AI 기업들은 제품 가격을 낮추면서도 기술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대규모 연구개발(R&D)·인프라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 이중 부담에 직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