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봉쇄 피해 러시아와 연결" 북부 카스피해 주목하는 이란, 남부 항만 대체는 역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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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해상 봉쇄 조치로 이란 남부 해안 교역로 좁아져 북부 카스피해 통해 러시아산 곡물·군수 물자 조달 전쟁 당사국 견제 누적, 남부 대비 처리 능력도 부족

이란이 카스피해를 거쳐 러시아로 이어지는 북부 수송로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해상 봉쇄로 남부 항만을 통한 교역이 사실상 차단되자, 미 해군의 직접 통제가 어려운 카스피해로 러시아산 곡물과 군수 물자를 들여 오는 모습이다. 다만 북부 항만의 처리 능력, 선박 규모, 철도 연결망 등이 남부 항만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카스피해가 기존 교역망을 전면 대체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 운송망 제약 심화
28일(이하 현지시각) 해운 전문 매체 마리타임익제큐티브는 미 해군의 해상 통제가 이란 남부 주요 항구들에 100%에 가까운 차단 효과를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반다르아바스를 비롯한 페르시아만·오만만 연안의 이란 항구로 향하거나 출항하는 선박에 진로 변경을 요구 중이며, 불응 선박에 대해서는 승선 검색은 물론 항공·해상 전력을 동원한 강제 무력화 조치까지 단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쟁 발발 이전 이란 전체 교역의 80%를 처리하던 남부 해안 운송망에 막대한 차질이 생겼고, 이란의 외부 교역로 역시 급격히 좁아졌다.
최근 들어서는 해상 운송에 이어 항공 화물망까지 위축됐다. 지난 일주일 사이 이란을 오가는 국제선 항공편은 대부분 끊겼으며, 일부 군용기와 러시아·중국 등을 오가는 극소수 항공편만이 운항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미국이 지난 23일 이란 항공기에 급유·정비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외 사업자에 2차 제재를 적용할 수 있도록 압박을 강화한 결과로 풀이된다. 육상 국경 역시 급증한 물동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7일 카타르 매체 알자지라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란과 아르메니아를 잇는 노르두즈 국경검문소에서는 최대 1,800대의 화물차가 이란 진입을 위해 수일간 대기 중이다. 핵심 육상 통로인 튀르키예 방면도 사정은 비슷하다. AP통신은 양국 최대 육상 관문인 귀르불락-바제르간 국경의 화물차 대수가 평시 약 200대에서 최근 1,200대까지 늘었다고 전했다. 전쟁 전과 비교해 화물차 대기 시간은 4배 이상 길어졌다.
카스피해, 대체 운송망으로 부상
이런 가운데 북부 카스피해는 이란이 대량 화물을 운송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로 주목받고 있다. 카스피해는 세계 최대 내륙 수역으로, 연안국은 이란·러시아·아제르바이잔·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 등 5개국뿐이다. 이들 연안국이 2018년 체결한 ‘카스피해 법적 지위 협약’은 비연안국 군대의 카스피해 주둔을 금지하고, 카스피해 출입·운항이 가능한 선박도 원칙적으로 연안 5개국 국적선으로 한정하고 있다. 미 해군을 비롯한 서방 전력이 현지에서 직접 선박을 나포하거나 항로를 봉쇄하기는 어려운 셈이다.
외부에서 카스피해 내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해양 데이터 플랫폼 로이드리스트인텔리전스 분석에 따르면, 카스피해를 통해 러시아와 이란을 오가는 선박들은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 신호를 끄고 이른바 ‘다크 액티비티’를 반복적으로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AIS가 꺼진 구간에서는 상업 위성, 항만 기록 등 별도 자료를 확보하지 않는 한 선박의 실제 위치, 항로, 기항지 등을 연속적으로 추적하기 어렵다. 여기에 미국의 안보 관할 체계가 카스피해를 하나의 '전략 공간'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미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의 루크 코피 연구원은 미국의 주요 국가안보·군사 전략 문서에서 카스피해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이 지역을 미국 정책 결정 과정의 ‘지정학적 블랙홀’이라고 표현했다.
표1. 카스피해의 전략적 특징
| 구분 | 주요 특징 |
|---|---|
| 폐쇄적 지리 구조 | 이란·러시아·아제르바이잔·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만 접한 세계 최대 내륙 수역 |
| 서방 개입 제한 | 비연안국 군대 주둔 금지, 연안국 국적선으로 운항 선박 원칙적 제한 |
| 대량 화물 운송 | 미국의 남부 해상 봉쇄를 우회해 이란과 러시아를 연결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대규모 운송로 |
| 선박 추적 한계 | 러시아·이란 선박의 선박자동식별시스템 신호 차단으로 위치·항로·기항지 파악 곤란 |
| 감시·정책 공백 | 미국 안보 전략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제재 회피 활동 대응 난항 |
러-이란 교역 이어져
러시아와 이란은 이러한 지리적·구조적 특성을 활용해 전쟁 발발 이후에도 카스피해를 통한 교역을 이어 왔다. 이 같은 움직임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식량이다. 러시아 곡물 업체 프로제르노에 따르면, 2026~2027 농업연도가 시작된 지난 7월 1일부터 이달 8일까지 러시아가 이란에 공급한 곡물은 91만3,700톤(t)으로 집계됐다. 품목별로는 옥수수 49만8,100톤, 보리 29만2,500톤, 밀 12만3,100톤이었다. 특히 러시아의 전반적인 해상 곡물 수출이 위축된 지난달에도 이란을 주요 목적지로 하는 카스피해 경로의 수출량은 전년 동월 대비 13.4% 증가한 31만1,700톤을 기록했다.
카스피해는 단순한 민간 교역로를 넘어 양국 간 군수 지원망의 일부로도 기능하고 있다. NBC뉴스는 지난달 유럽 정부 문건과 서방 당국자를 인용, 러시아가 카스피해를 통해 이란에 무인기 부품, 탄약, TNT 폭약 등을 공급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문건은 지난 7월까지 러시아 선박 20여 척이 카스피해를 건너 이란 마잔다란주의 아미라바드항에 관련 물자를 운송했다고 명시하고, 이를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소진된 이란의 미사일·무인기 관련 재고를 보충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석했다.
이스라엘·우크라이나의 공격
전쟁 당사국들은 러시아와 이란의 군수 협력 차단을 위해 카스피해 일대에 직접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3월 이스라엘의 반다르안잘리항 공습이다. 이스라엘군은 당시 전투기를 동원해 이란 길란주 카스피해 연안의 반다르안잘리항과 이란 해군 제4해군지구를 공격했다. 이스라엘군 발표에 따르면 공습 대상에는 군함 수십 척이 정박한 해군 시설, 항만 지휘 센터, 함정 수리·정비 시설 등이 포함됐다. 이스라엘군은 이 가운데 미사일정 4척과 코르벳함 1척 등을 파괴했다고 밝혔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후 관계자들을 인용해 해당 공습이 러시아와 이란의 카스피해 보급로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지난 7월에는 우크라이나가 카스피해 내 러시아 군함과 화물선을 공격했다. 당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장거리 공격을 통해 러시아 군함과 이란 연계 군수물자 수송에 사용된 선박들을 타격했다고 전했고,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공격 대상 가운데 러시아 선적 일반화물선 ‘포트 올랴 2(Port Olya 2)’와 ‘베게이(Begey)’가 포함됐다고 발표했다. 포트 올랴 2는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제재 대상 선박으로,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은 이 선박이 이란에서 러시아로 군수품을 운반하는 데 관여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베게이 역시 영국과 캐나다의 제재 대상이며,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 선박이 AIS를 끈 채 탄약·포탄·방탄복·헬멧 등을 이란에서 러시아로 실어 날랐다고 주장해 왔다.
남부 운송로 완전 대체 어려워
카스피해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져 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카스피해가 이란 남부 항만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 본다. 가장 큰 문제는 절대적인 처리 능력이다. 이란 항만해양기구(PMO)에 따르면 이란 전체 항만의 명목 처리 능력은 연간 3억 톤 수준이지만, 안잘리·아미라바드·노우샤르 등 북부 항만의 처리 능력은 이 중 약 10%에 불과하다. 모하마드 샤키비-나사브 PMO 수장은 남부 항만에서 운항하는 대형 선박 한 척이 카스피해 선박 약 20척에 해당하는 화물을 실을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마저의 처리 능력도 수위 하락으로 인해 나날이 훼손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 자료를 살펴보면 카스피해 수위는 1990년대 이후 약 2m 낮아졌으며, 최근 2~3년간 연간 20cm 이상 얕아지는 중이다.
항만에서 내륙으로 화물을 옮기는 연결망도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 이란은 동부 카스피해 철도망을 통해 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중국과 연결돼 있지만, 서쪽의 남캅카스 방향 철도망에는 여전히 단절 구간이 존재한다. 특히 러시아와 이란이 공동 추진하는 국제남북운송회랑(INSTC)의 핵심 구간인 라슈트-아스타라 철도 약 160km는 아직 완공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따라 현재 러시아·아제르바이잔 방면 화물 상당량은 철도 대신 도로 운송에 의존해야 한다. 운송 가능한 품목에도 제약이 있다. 이란의 주요 외화 수입원인 원유·석유제품·철광석 등은 대량 벌크 운송이 필요한 품목인 만큼, 남부 대형 항만과 원유 터미널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현재 북부 항만을 통해 반입되는 주요 품목은 보리·옥수수·밀·유지 종자 등 식량과 필수품이며, 수출도 가공식품·포장재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제품 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