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빅3는 하청업체 격” AI 시대의 새로운 군비 경쟁, 방산 판도 뒤집은 실리콘밸리
“방산 빅3는 하청업체 격” AI 시대의 새로운 군비 경쟁, 방산 판도 뒤집은 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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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싸고 빠른’ AI 전쟁 시대 개막 방산 산업서 스페이스X·안두릴 존재감 확대 美 국방 조달 지형 재편, 전통 빅3 장악력 약화

미국 군수·방위산업 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 무인기에 비해 고가 무기를 사용하는 방식의 한계를 절감한 미 정부가 테크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어서다. 이는 전통적 '방산 빅3'의 아성이 무너지고 실리콘밸리로 방위 산업의 중심이 이동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스페이스X·안두릴, 방산 거물 꺾고 ‘골든돔 핵심 요격기’ 개발사로 낙점
2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포춘에 따르면, 최근 미 우주군은 우주 기반 요격 미사일 프로토타입 개발을 위해 스페이스X(SpaceX)와 안두릴(Anduril)을 비롯한 12개 주요 기업을 개발사로 선정하고, 총 32억 달러(약 4조7,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은 '기타 거래 권한(Other Transactional Authority·OTA)'이라 불리는 신속 체결 절차를 통해 진행됐다. 이는 일반적인 조달 행정 절차를 생략하고 경쟁을 확대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이번 계약에 따라 스페이스X는 골든돔의 하드웨어 핵심인 ‘요격 위성 군집(Constellation)’ 구축을 주도하며 물리적 방어망의 토대를 설계할 예정이다. 스페이스X는 저궤도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을 추적·타격할 수 있는 차세대 플랫폼을 개발하는데, 독보적인 재사용 발사체 기술을 바탕으로 우주 상시 감시 및 즉각적인 요격 자산을 배치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기존의 고비용·저효율 인공위성과 달리, 스페이스X는 대규모 저궤도 위성망을 통해 끊김 없는 감시와 탄력적인 방어 태세를 확보함으로써 요격 성공률을 극대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안두릴은 방대한 우주·지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관통하는 '지능형 지휘 통제 체계'를 구축해 골든돔의 두뇌 역할을 수행할 방침이다. 특히 AI 자율 소프트웨어를 통해 전역에서 수집되는 센서 데이터를 통합하고, 미사일의 궤적을 예측해 최적의 요격 지점을 실시간으로 산출하는 개방형 네트워크 아키텍처를 구현한다. 안두릴의 기술은 파편화된 군사 네트워크를 하나로 연결하는 '멀티 도메인 가교' 역할을 하며, 복잡한 전장 상황에서도 기계적·지능적 판단을 통해 적의 미사일 위협을 무력화할 핵심 동력으로 작동할 전망이다.
골든돔은 미국 본토를 포함한 광범위한 영토를 탄도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순항미사일 등 다양한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기존 체계가 주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을 겨냥했다면, 골든돔은 중국·러시아 같은 전략 경쟁국의 장거리 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 차세대 드론까지 포괄하는 훨씬 넓은 위협을 목표로 한다.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작전 환경과 기술 난이도는 전혀 다르다. 아이언돔이 하마스나 이란 등에서 대기권 안으로 날아오는 단·중거리 로켓을 요격하는 비교적 단순한 체계라면, 골든돔은 대기권 밖 고고도에서 훨씬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핵탄두 장착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잡아야 한다. 방어해야 할 공간도 미국의 뉴저지주(약 22,591km²) 규모에 불과한 이스라엘(약 22,072km²)과 달리, 미국 영토는 이스라엘의 450배에 이른다. 기술적 난이도와 개발·배치 비용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

전통 방산 ‘플레이북’ 흔들
이번 계약은 기존의 경직된 방산 조달 체계에서 벗어나, 초고속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기민한 방어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미 우주군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골든돔 프로젝트의 핵심은 '지휘통제 소프트웨어'다. 이는 미군 전역에 흩어져 있는 레이더와 센서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해 위협을 포착하고, 요격 미사일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마이클 구틀라인(Michael Guetlein) 우주군 대장은 최근 한 콘퍼런스에서 "이 소프트웨어는 다양한 군 서비스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며 "지휘통제 기능이야말로 골든돔의 비기(secret sauce)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욱 주목되는 점은 이번 프로젝트의 사업 구조다. 전통적인 방산 강자인 록히드마틴, 노스롭그루먼, RTX(옛 레이시온) 등 '방산 빅3'는 사업 주도권이 아닌 소프트웨어 운영체제 개발을 돕는 사실상 '하청업체' 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는 무기 체계의 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함에 따라 테크 기업이 방산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올라서는 이례적인 역전 현상을 보여준다.
조짐은 올해 초부터 나타났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 1월 스페이스X 텍사스 기지에서 새 AI 전략을 발표하며 “일론 머스크식 속도로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지난달 팔란티어의 AI 지휘 통제 시스템 ‘메이븐(Maven)’이 공식 프로그램으로 채택됐고, 미 육군은 안두릴과 최대 200억 달러(약 29조원) 규모의 10년 계약을 체결했다. 물론 기존 방산 빅3 역시 여전히 절대 강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3사의 매출 합계는 실리콘밸리 신흥 3사의 8배에 달하며, 록히드마틴이 주도하는 F-35 스텔스기 사업 한 건만 해도 2조 달러(약 2,900조원)가 넘는다.
하지만 자본 시장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실리콘밸리 3사 합산 기업가치는 이미 방산 빅3의 3배를 웃돌고 있다. 스페이스X는 사상 최대 규모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이고, 매출 20억 달러에 적자 상태인 안두릴은 600억 달러(약 88조원) 가치로 자금을 조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의 태세 전환과 맞물려 해상 드론업체 사로닉, 자율 전투기 조종 AI를 만드는 쉴드AI 등 2군 스타트업에도 벤처 자금이 몰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 예산을 현행 대비 40% 이상 늘려 1조5,000억 달러(약 2,200조원)로 확대하려는 계획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예산 증액에는 드론, 대드론, AI 분야 투자가 포함돼 있다.
전쟁 방정식 바꾼 ‘AI 지휘관’
이 같은 역전의 배경에는 현대전의 급진적인 변화가 깔려 있다. 과거의 전쟁이 육중한 탱크와 전투기의 격돌이었다면, 현대의 전쟁은 초소형 드론의 군집 비행과 AI 기반의 정밀 타격으로 정의된다. 실제 우크라이나와 이란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대전이 고가의 정밀 병기 중심 전략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저렴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AI 기반 무인 시스템이 새로운 전장의 주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초 세상을 흔든 베네수엘라 참수작전과 이란 최고지도자 암살작전의 공통점도 AI였다. 두 작전 모두 앤스로픽의 AI 모델 클로드(Claude)가 AI 방산 기업 팔란티어의 시스템을 통해 활용됐다. 클로드는 방대한 첩보 데이터 처리, 위성 영상 분석, 적 지휘부의 이동 패턴 추적 등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AI가 전장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지휘통제실’ 역할을 맡은 것이다.
당초 AI는 비영리적 목적과 인류 문명 발전을 위해 연구된다는 명분 아래 개발됐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주요 테크 기업들이 미군과의 협력을 꺼려온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018년 구글은 임직원들의 집단 반발로 인해 펜타곤(미 국방부 본청)의 AI 표적 식별 프로젝트인 메이븐에서 철수한 바 있다. 수천 명의 직원은 “전쟁용 구글 어스(Google Earth for War)”를 만드는 것에 AI를 쓰면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기술관료)’라 불리는 개발자 그룹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들은 실리콘밸리 기업과 경영진, 개발진이 국가를 위해 일하지 않는 것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들의 선두 주자가 바로 팔란티어다. 현재까지 회사 경영을 주도하는 알렉스 카프(Alex Karp) 최고경영자(CEO)는 줄곧 서방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AI 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 같은 주장은 초창기 실리콘밸리 내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았지만 팔란티어는 미군과 협업을 멈추지 않았고, 2020년대 들어 팔란티어와 같은 생각을 하는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이 늘어나면서 협력에도 속도가 붙었다.
AI의 가능성을 확인한 미국 정부도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군은 2024년 팔란티어와 파트너십을 맺은 클로드를 미군 기밀 분류 네트워크에 탑재했고, 미 국방부는 지난해 7월 앤스로픽과 2억 달러(약 2,9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클로드는 핵 관련 국가 실험실, 정보 분석 업무, 국방부 전반의 작전에 광범위하게 배치돼 있으며, 팔란티어의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aven Smart System)’에 통합돼 실시간 표적 정보를 공급하는 핵심 엔진으로 작동 중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AI의 전장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 보고 있다. 현대전의 패러다임 자체가 유인 항공기·전차 중심에서 드론과 미사일, 무인체계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어서다. 미국에 공습을 당한 이란이 대표적 사례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하자 이란은 전통적인 지상전 대신 샤헤드-136 자폭 드론과 탄도미사일을 동원해 중동 내 미군 기지와 에너지 시설 등을 집중 겨냥했다. 상대적으로 값싼 드론을 대량 투입해 방어 측의 고가 요격 자산을 소모시키는 전략이었다.
실제로 미국과 걸프 국가들은 패트리어트(PAC-3) 요격 미사일을 대거 발사하며 대응한 탓에 단기간 내 큰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요격 성공률은 90%를 넘지만, 한 발당 400만 달러(약 58억8,000만원)에 달하는 미사일을 2만 달러(약 2,900만원) 수준의 드론에 사용하는 구조는 부담이 불가피하다. 이는 특정 요인을 공격하기 위해 수천명의 정보원과 전투기, 지상병력을 동원해야 했던 과거와 확연한 차이점이다. 데이터를 수집한 AI가 좌표를 찍기만 하면 무인 미사일과 드론이 날아가 국가 수장을 암살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수천 장의 위성 영상과 방대한 신호 정보를 순식간에 분석하고 최적 타격 시점을 계산하는 AI의 능력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