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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79곳 3,000억대 적자, 추정치보다 대폭 축소
금감원 "부실채권 비싸게 팔아 저축은행 실적 포장" 지적
부실채권 '공동매각'에도 대출 규모 여전, 효과에 물음표
국내 79개 저축은행이 올해 상반기 3,000억원대 적자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부실채권 매각 과정에서 대규모 충당금이 환입된 결과다. 다만 금융당국은 일부 저축은행이 실적을 위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 펀드에 부실채권을 비싸게 넘긴 것으로 보고 진상 조사에 나섰다.
금융당국, 저축은행 '부실채권 매각' 진상 조사
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내 79개 저축은행은 올 상반기 3,500억원 안팎의 적자를 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 저축은행 순손실 규모(962억원)와 비교하면 올해 적자폭은 3배 이상 증가했다. 적자 규모는 크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예상보다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시장에선 올 2분기부터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 기준 개선 방안’이 적용돼 저축은행의 충당금이 크게 늘고 적자 규모도 5,000억원 규모로 불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적자폭이 줄어든 데는 저축은행이 부실채권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충당금이 환입된 영향이 컸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업계가 부실채권 ‘꼼수’ 매각을 통해 충당금을 대거 환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저축은행은 부실 PF 대출에 대해 20~30% 충당금을 쌓고 있는데, 업계가 자체적으로 만든 PF 정상화 펀드 등에 10~20% 할인된 가격에 부실채권을 팔았다는 것이다. PF 사업장을 경·공매에 넘기면 헐값에 처분해야 하지만 펀드에 매각하면 상대적으로 가격을 높게 책정받을 수 있어서다. 추후 부동산시장이 회복되면 펀드가 담고 있는 부실채권을 매각해 수익도 낼 수 있다.
앞서 저축은행중앙회는 PF 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해 5,100억원 규모의 2차 PF 정상화 펀드를 조성했는데 일부 저축은행은 이와 별개로 추가 펀드를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부실채권을 펀드에 매각해 환입한 충당금 규모가 최소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부실채권 공동매각 '실효성 의문'
저축은행업권이 공동매각을 추진하는 이유는 채권 규모 때문이다. 개인사업자 대출은 일반 기업 대출 대비 규모가 작지만 공동 매각을 추진하면 참여 저축은행의 부실채권을 모아 팔기 때문에 비교적 규모가 커진다. 매각 대상이 되는 부실채권의 규모가 커지면 매수자 입장에서는 수익성 등의 측면에서 매력으로 작용한다. 저축은행업권 내에서도 대형사와 중소형사의 차가 큰 만큼 어려움을 해소하는 장점도 있다. 대형사 입장에서는 부실채권 매각 시 품이 덜 든다는 장점이 있고, 중소형사는 규모 등 매각이 어려운 상황을 비교적 수월하게 풀 수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저축은행업권은 지난해 11월 1차 개인무담보 및 개인사업자 부실채권의 자산유동화 방식 공동매각을 통해 1,200억원의 부실채권을 우리F&I에 단독입찰해 매각했다. 1차 공동매각을 진행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건전성이 악화되자 업권은 지난달에도 2차 공동매각을 통해 1,36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팔았다. 3분기 내로 실시될 것으로 보이는 3차 공동매각의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다. SBI저축은행을 비롯한 대형저축은행과 중소형저축은행 18개사가 참여한 지난 2차 공동매각도 1차와 비슷한 가격으로 진행됐다. 시장가 대비 120~130% 수준이다.
그러나 저축은행 부실채권은 사실상 시장에서 외면을 받았다. 개인 무담보 부실채권에 이어 개인사업자대출 부실채권에 대한 매각 통로가 확대됐지만 입찰 때마다 1,000억원대 부실채권을 쏟아내는 은행권에 비교하면 규모가 현저히 작았기 때문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은행들은 입찰 시마다 많게는 2,0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내놓는 반면, 저축은행은 많아도 100억~200억원 규모"라며 "매입이나 관리 절차 등을 고려하면 볼륨이 크면 클수록 낙찰이나 '딜'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저축은행 부실채권이 외면을 받은 데는 '손이 많이 가는' 채권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규모가 작아 수익을 내기도 쉽지 않은데 담보부 부실채권이 대부분인 은행권과 달리 무담보 부실채권이 대부분이라 가격을 책정하기가 어렵고, 리스크 관리도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축은행업계의 건전성 제고 노력에도 부실채권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업권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저축은행들도 금리 인상 이후 건전성과 수익성 악화를 피할 수 없었다. 개인사업자대출을 중심으로 대손비용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5대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1분기 △SBI저축은행 6.97% △OK저축은행 9.48% △웰컴저축은행 9.64% △한국투자저축은행 7.55% △애큐온저축은행 6.93%다. 전년 동기 대비 모두 악화 추이를 보였으며, 연체율도 악화일로다.
고금리가 장기화하고 있는 만큼 전망도 밝지 않다. 특히 규모를 점차 줄이곤 있으나, 개인무담보 대출과 개인사업자 채권 규모가 커 건전성 악화의 여지가 남아 있어서다. 저축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은 대부분 주택담보대출로, 통상 주담대는 토지담보대출이나 상업용부동산 담보대출에 비해 연체율이 낮다. 이러한 특성에 저축은행들은 코로나19발 경기침체로 자영업자 대출 수요가 증가하자 아파트 후순위 담보대출 등을 중심으로 개인사업자 여신 규모를 확대했다. 그러나 차주 신용도가 악화하면서 대부분의 저축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규모는 여전히 상당한 수준이다. 대형 저축은행뿐만 아니라 중소형 저축은행 18개사가 2차 공동매각에 참여했음에도 1,360억원에 그친 것 역시 개인사업자 대출이 담보대출이란 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금감원, 3차 펀드에 제동
이에 금감원은 저축은행의 3차 PF 정상화펀드 조성에 제동을 걸어둔 상태다. 저축은행들이 자사가 출자한 펀드에 자사가 보유한 채권을 매각하면서 사실상 파킹 수단으로 쓰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처다. 금감원은 오는 19일부터 미비점이 발견된 금융사를 대상으로 현장점검과 경영진 면담을 할 계획이다. 저축은행, 상호금융, 캐피털업계 등에 적용되는 공식 경·공매 규정도 9월 말까지 개정하기로 했다. 개정 작업이 완료되면 경·공매에 나서지 않는 금융사는 연체율이 높지 않더라도 당국이 제재할 수 있게 된다.
금융당국이 연일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은 사업성 회복을 기대하는 사업자가 최근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저축은행업계 내에서도 대주주에 따른 온도차가 나타난다.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은 비교적 부실채권을 적극적으로 매각하고 있지만, 개인이 소유한 소규모 저축은행에서는 버티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저축은행은 헐값 매각을 우려하고 있다. 부실 물량이 한 번에 풀리면 가격이 급락할 게 뻔해서다. 금융당국은 경·공매가 필요한 사업장 규모를 전체의 2~3%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 PF 사업장 규모가 약 230조원임을 고려하면 최대 7조원 규모의 사업장이 경·공매에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결과적으로 PF 부실채권을 단기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PF 정상화 펀드까지 막히면서 저축은행마다 건전성 관리의 의지와 실행력이 엇갈리게 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과거에 견줘 외형적으로 커진 만큼 건전성이나 내부 통제 등 질적으로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한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금융지주 산하나 대형사와 달리 개인이 대주주인 곳은 저축은행 업계에 대한 평판이나 우려 등도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며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면서 PF 부실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안이한 인식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