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상상 그 이상” 해외 상업용 부동산 폭락에 리츠·공모펀드 손실 ‘눈덩이’

“상상 그 이상” 해외 상업용 부동산 폭락에 리츠·공모펀드 손실 ‘눈덩이’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민정
Position
기자
Bio
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수정

공모가 30% 수준 맴도는 상장 리츠들
환헤지 정산 리스크도 꾸준히 확대
오피스 양극화, 추가 손실 가능성↑
마스턴프리미어리츠 포트폴리오 중 남프랑스 아마존 물류센터/사진=마스턴프리미어리츠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금융상품들의 손실 규모가 연일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투자자들의 시름을 깊게 만들고 있다.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부동산 및 부동산 관련 증권 등에 투자·운영하는 간접투자기구 리츠(REITs)들은 공모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으며, 공모펀드 가운데는 전액 손실 위기에 직면한 사례도 속속 포착된다.

공모가 근처는 언감생심, 강제 처분 통보도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아마존 프랑스 물류센터 등에 집중 투자하는 마스턴프리미어리츠는 전날 1,49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직전 거래일 하락 폭(6원·0.4%)를 만회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공모가 5,000원과 비교하면 70% 넘게 하락한 수준이다. 불황을 겪는 해외 부동산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담보대출 조기 상환을 위해 유상증자를 추진했던 게 부담을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마스턴프리미어리츠 외에도 제이알글로벌리츠(-50.4%), 미래에셋글로벌리츠(-48.4%), 신한글로벌액티브리츠(-38%), KB스타리츠(-35.9%) 등 다수의 해외 부동산 상장리츠들이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담보인정비율(LTV)이 상승하며 주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 모습이다. 또 일부 리츠는 편입 자산들에 대한 담보대출 리파이낸싱(자금재조달)에는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배당이 줄어들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다.

해외 부동산 투자 공모펀드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벨기에 브뤼셀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한 한국투자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 2호 펀드는 지난달 선순위 대주단으로부터 만기 채무불이행에 따른 강제 처분 결과를 통보받았다. 해당 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한 한국투자증권은 일부 배상이 필요한 건에 대해 투자자들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업무용 빌딩에 투자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제229호 펀드도 채무불이행(EOD) 사유가 발생하면서 현지 SPC 지분증권 평가액이 3,239만 유로(약 488억원)에서 44만 유로(약 6억6,000만원)로 대폭 깎였다. 펀드의 기준가격 또한 현재 0.01원으로 투자자들은 사실상 빈손이 됐다.

원화 가치 하락에 투자자 부담 가중

이런 가운데 원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환헤지(換+hedge) 정산 리스크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환헤지 계약은 통상 계약 시점 환율 대비 만기 시점 변동분에 따라 계약을 체결한 은행에 추가로 돈을 지불하거나 반환받는 식으로 작동한다. 펀드가 정상적으로 수익을 내고 있을 때는 환헤지 비용이 펀드 내 자금으로 처리되지만, 자산 가치가 급락하고 유동성이 고갈돼 잔여 자금이 없는 경우에는 투자자들이 추가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의 해외부동산 펀드 중 룩셈부르크오피스펀드는 자산 가치가 폭락해 환헤지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미 지난해 12월 SC제일은행과의 환헤지 계약이 끝났지만, 수익자 총회 의결안에 따라 환노출 전략으로 변경하게 됐다. 하지만 환율 변동으로 인한 정산금 107억원을 지급할 여력이 없어 22억원을 지급한 후 85억원의 잔액을 연체하는 중이다. 연체금에 대해서는 상환 시까지 7%의 이자가 적용된다.

일각에선 환헤지 비용 부담을 둘러싼 소송 사례도 포착된다. 일례로 영국 사무용 빌딩에 투자했던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은 환헤지 계약을 맺은 NH투자증권과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해당 펀드는 자금이 바닥나 환헤지 비용을 갹출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규정 해석을 두고 양사가 뜻을 모으지 못하며 법정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한 기관투자가(LP) 관계자는 “이미 손실을 볼만큼 본 상황에서 환율이 급등하면서 막대한 추가 정산액이 발생한 펀드가 꽤 있다”며 “해외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아 유동성 회복이 어려운 곳들은 당분간 계속 청구서를 받아 들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환율·공실 이중고에 가치 폭락

후순위로 들어간 몇몇 펀드들은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당장 6일 7,100만 유로(약 1,068억원) 규모의 대출 만기가 예정된 키움히어로즈유럽오피스 제1~4호 펀드가 대표적 예다. 이들 펀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서부 지구 내 핵심 오피스 권역에 위치한 ‘퀸즈타워(Queens Towers)’에 투자한 상품이다. 키움운용은 2019년 약 685억원을 모집하고, 1,053억원을 대출받아 퀸즈타워 3개 동을 매입하고 해당 펀드를 설정했다.

이후 환율차로 인한 원화가치가 급락하고, 물건의 가치 또한 떨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2023년에는 주요 임차인이었던 네덜란드 고용노동기구(UMV)가 일부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면서 대규모 공실 위기까지 겹쳤다. 최근 감정평가 결과 퀸즈타워의 자산가치는 8,520만 유로(약 1,270억원)로 2019년 펀드 설정 당시 매입가 1억2,973만 유로(1,934억원)보다 34%가량 하락했다.

매입 당시 구매 금액의 60%를 대출로 충당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펀드 기준가는 건물 가치 하락 폭보다 더 크게 떨어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키움운용은 애초 지난해 8월이었던 대출 만기를 이달까지 연장해 둔 상황이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21개월 추가 연장을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암울한 시장 상황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는 ‘2025년 유럽 상업용 부동산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유럽은 우수한 근무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 기업 수요가 많은 데 비해 가용 가능한 오피스가 많지 않아 올해 최상급 건물과 품질이 낮은 건물 간의 공실률 차이가 확대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민정
Position
기자
Bio
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딥파이낸셜] ‘환율 인하’는 ‘물가 하락’과 얼마나 관련 있을까?

[딥파이낸셜] ‘환율 인하’는 ‘물가 하락’과 얼마나 관련 있을까?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영욱
Position
연구원
Bio
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수정

스위스, 최소 환율제 폐지로 ‘통화가치 급등’ 경험
수입 가격 급락에도 소비자 가격 영향은 제한적
저소득 가구 및 국경 지역 주민이 ‘최대 수혜자’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2015년 1월 스위스 국립은행은 2011년 이후 유지해 온 ‘최소 환율제’(minimum exchange rate policy)를 갑작스럽게 폐지한다. 1유로 대비 스위스 프랑(CHF) 가치를 1.2 이하로 묶는 최소 환율의 폐지로 스위스 프랑은 단기간 15%가량 절상하며 금융 시장을 흔들고 수출업체와 소매기업들에 가격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연구자들에게는 환율 변동이 가격과 소비는 물론 소득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까지 관찰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했다.

사진=CEPR

스위스 프랑, ‘최소 환율제’ 폐지로 ‘단기간 15% 절상’

이 관찰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환율 변동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실제로는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통화 가치 절상이 수입 가격을 내리고 국내 물가를 낮춘다고 돼 있지만 스위스 사례는 현실이 그보다는 더 복잡하다고 얘기한다.

스위스 프랑의 유로 대비 환율 변동에 따른 스위스 물가지수 변화 추이
주: 기간(월, 2014년 12월=0, X축), 변동률(Y축), 유로 대비 스위스 프랑 명목 환율(적색, 환율 인하는 통화 가치 절상을 의미), 핵심 수입 물가지수(녹색, 변동성이 큰 식품 및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수입 물가지수), 국내 소비자물가지수(청색), 수입 소비자물가지수(적색 점선)/출처=CEPR

통화 절상에 따른 수입 가격 하락에도 소매 가격 변동은 ‘제한적’

수입 가격이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수입 대금 지불 통화에 따라서도 갈렸다. 유로로 지불한 수입품의 평균 가격이 통화 절상 효과로 12%나 하락한 반면, 스위스 프랑으로 산 물품들은 가격이 5%만 내렸다. 하지만 급격한 수입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이들 수입품의 소매 가격은 평가 절상 후 6개월 동안 3% 내리는 데 그친다. 이에 대해서는 ‘명목 가격 경직성’(nominal price rigidity, 가격이 통화 정책 및 환율 변동을 따라 움직이지 않음)이나 유통 비용 변화, 소매업자들의 수익성 유지를 위한 마진율 조정 등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어찌 됐든 통화 가치 절상이 자동적, 비례적으로 소비자 가격 하락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름이 분명하다. 수입 대금 지불 통화, 공급망 현황, 도소매 기업들의 경쟁 가격 전략 등에 따라 가격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와 속도가 달라진다.

하지만 소폭의 소매 가격 인하에도 스위스 소비자들은 수입품 소비를 늘리고 국산품 소비를 줄이는 명확한 소비 패턴 변화를 보여준다. 이러한 경향은 수입품 가격 하락 효과가 더 큰 유로화 결재 상품군에서 두드러져 지불 통화가 수입품 가격만이 아니라 소비 행위에도 영향을 미침을 알 수 있다.

스위스 가구 소비 중 수입품 비중(%) 변화
주: 기간(월)(X축), 수입품 비중(%)(Y축)/출처=CEPR

한편 스위스 수출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었다. 통화가치 절상은 해외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려 수출 상품에 대한 수요 감소를 낳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스위스의 총수출액은 큰 변동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핵심 이유는 스위스 기업들의 ‘품질 제고 전략’ 덕분으로 분석된다. 가격 경쟁에 뛰어들기보다는 품질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저품질 제품 생산은 중단하는 전략을 사용해 통화 절상으로 인한 악영향을 최소화하면서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해외 시장 점유율을 유지한 것이다.

저소득 가구 및 국경 지역 거주자, 통화 가치 상승 혜택 “더 커”

스위스 프랑 환율 변동은 소득 계층과 거주지에 따라 각기 다른 영향을 미쳤다. 가격에 민감하고, 저렴해진 수입품 가격이 더 큰 혜택으로 돌아오는 저소득 가구의 실질 생활비 절감 효과가 고소득 가구보다 컸다. ‘불균등 지출 효과’(unequal expenditure switching)라고 알려진 해당 현상은 계층 간 소득 불평등을 일시적으로나마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수입 가격 하락에 따른 수입품 소비 추이(스위스)
주: 연도(X축), 가구 소비 중 수입품 비중(%)(Y축), 저소득 가구(청색), 고소득 가구(적색), 전체 가구(녹색)/출처=CEPR

통화 가치 절상의 영향은 거주지에 따라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국경 지역에 사는 가구들이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이웃 국가들의 훨씬 싼 상품 가격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스위스 국내 가격보다 평균 30%나 더 싸게 살 수 있었으니 생활비 절감 효과를 이중으로 누린 셈이다. 실제 2015년 스위스 국경 지역 주민들의 생활비 절감률은 2.8%로 다른 지역의 1.7%보다 크게 높았다.

스위스 지역별 외국 생산품 소비율
주: *짙은 색일수록 소비율이 높음/출처=CEPR

이렇게 스위스 프랑 환율 변동 사례는 10년이 지난 후에도 정책 입안자와 중앙은행에 유용한 시사점을 준다. 특히 수입 대금 지불 통화가 소비자 가격에 미치는 영향, 환율 변동에 따른 소비자 가격 영향 제한 요소, 통화가치 변동에 대한 기업과 가구의 대응 방식 등은 깊이 참고할 만하다.

한편 통화가치 변동에 따른 소득 재분배 효과는 거시경제지표로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통화 절상이 수입품 가격을 낮추는 것은 맞지만 혜택은 동일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소득 가구들이 저렴한 가격을 통해 더 높은 복지 효과를 누리는 한편, 국경 지역 주민들은 외국 상품 직접 구매를 통해 생활비 절감 효과를 이중으로 실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미시경제적 효과 역시 환율 및 통화 정책 수립 시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원문의 저자는 라파엘 아우어(Raphael Auer)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이코노미스트 외 2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Ten years after the Swiss franc shock: Lessons on prices, expenditure switching, and inequality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영욱
Position
연구원
Bio
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우리은행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실’, 우리금융 동양·ABL생명 인수에도 적신호

우리은행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실’, 우리금융 동양·ABL생명 인수에도 적신호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안현정
Position
연구원
Bio
정보 범람의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갈 동반자로서 꼭 필요한 정보, 거짓 없는 정보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수정

금감원, 우리은행 정기검사 결과 발표
현 경영진 체제 부실도 속속 드러나
평가등급 강등 유력, 생보사 인수 불투명

우리금융지주의 숙원 사업인 생명보험사 인수가 난항에 부딪혔다. 금융당국의 정기검사 결과 우리은행 부당 대출을 비롯한 부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경영실태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한 탓이다. 여기에 인수합병(M&A) 의사결정 과정에서 절차의 흠결까지 확인되며 동양·ABL생명 인수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350억원→730억원

4일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에 대한 정기검사 결과 총 101건의 부당대출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금액으로는 2,334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관련 친인척 불법대출은 기존에 알려진 350억원 외에도 추가로 380억원이 적발되면서 총 730억원 규모로 파악됐다. 금감원은 이 가운데 61.8%에 해당하는 451억원이 임종룡 회장 등 현 경영진 취임 이후 취급됐다는 점을 명시했다.

손 전 회장 친인척 불법대출 관련 건에 대한 부실화 정도도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730억원 중 46.3%인 338억원에서 부실이 발생한 것이다. 2023년 3월 이후 발생한 부당대출 451억원 중에서는 27.3%인 123억원이 부실로 분류됐다. 금감원은 연체 악화 가능성도 제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시점에서는 정상 분류된 328억원에서도 일부 연체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현직 고위 임직원 27명이 단기 성과 달성을 목적으로 부당대출 1,604억원을 취급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중 61.5%(987억원) 현 경영진 체제에서 취급됐다. 아울러 우리은행은 홍콩 H지수 급락으로 손실이 확대되자, 의도적으로 평가데이터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손실액을 숨긴 점도 발각돼 지적을 받았다. 금감원은 “새로 확인된 부실 위험을 모두 반영하면 우리금융의 보통주 자본비율은 0.1%p~0.2%p 하락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우리금융의 보통주 자본비율은 11.96%로 금감원의 권고 수준(12%)에 미치지 못한다.

이번 검사 결과는 우리금융이 동양·ABL생명 인수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눈길을 끈다. 국내 4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 중 유일하게 보험 계열사를 보유하지 못한 우리금융은 이번 인수를 포트폴리오 확장의 승부수로 삼고 있다. 지난해 8월 이사회에서 동양생명과 ABL생명 지분 각각 75.34%, 100%를 총 1조5,494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우리금융은 지난달 15일 금융위원회에 인수 승인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관건은 우리금융에 대한 금융당국의 경영실태평가 결과다. 금융지주회사감독규정에 따르면 금융지주가 자회사를 편입하기 위해서는 경영실태평가에서 2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우리금융은 지난 2022년 진행된 종합검사에서 2등급을 받았지만, 이번 검사에서 부실이 대거 드러나면서 3등급으로 떨어질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경영실태평가 도출 서두르는 당국, 우리금융 ‘초긴장’

금감원은 이번 정기검사 결과를 토대로 최대한 이른 시일 내 경영실태평가를 도출할 방침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되도록 이달 내 금융위에 정기검사 결과를 송부하고, 3월 정도에는 금융위가 (인수 승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경영평가 등급 도출 일정은 매우 이례적인 단축으로, 통상 금융기관 검사 이후 최종 등급 도출까지 1년 6개월가량이 소요된다. 우리은행 역시 2022년 11월 진행된 검사 결과를 지난해 6월에야 받은 바 있다.

업계에서는 빠듯한 일정 속에서 우리금융의 반론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등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2020년 이후 실시한 20회의 은행 검사에서 경영평가 등급을 미리 통보한 사례가 7회 있으며, 특히 이번 우리금융의 경우 이미 종합검사가 진행된 만큼 이를 인수 심사에 반영하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금감원은 우리금융이 동양·ABL생명 인수와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절차 준수에 미흡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임 회장이 자회사 M&A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리스크관리위원회가 개최되기도 전에 해당 안건을 이사회에 부의하기로 미리 결정했다는 것이다. 내규에 의하면 M&A를 비롯한 중요 경영사항 추진 시에는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하고, 해당 심의 결과를 이사회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금융은 지난해 8월 주식매매계약 당일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를 불과 20분 간격으로 개최했고, 심의 내용 또한 이사회 안건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특히 금융당국의 인허가를 받지 못해 계약이 파기되는 경우, 계약금을 몰취하는 조항이 주식매매계약에 포함됐음에도 이를 이사회 석상에서 논의하지 않았다는 게 금감원의 주장이다.

이 같은 지적에 우리금융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에 소속한 이사진들이 같다”며 “일정을 맞추기가 힘들어 같은 날 소집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별 안건에 대해서는 미리 이사진에게 설명을 충분히 하고, 리스크관리위원회에서 부결된 안건은 이사회에 올라가지도 못한다”면서도 “금감원이 지적한 내용을 정리해 바로잡을 부분이 있다면 즉시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임종룡 회장 거취에도 촉각

지난해 우리금융은 다자보험과 동양·ABL생명 패키지 인수 계약을 체결하며 인수 가격의 약 10%에 해당하는 1,550억원의 계약금을 지불했다. 그러면서 12개월 안에 인수를 완료한다는 단서 조항 또한 포함했다. 원칙상으로는 9개월 안에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부득이한 경우 최대 3개월을 연장한다는 내용이다. 만약 이행 불능 상태가 되면 앞서 언급했듯 계약금은 몰취된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인수전의 성패에 따라 임 회장의 입지 또한 변화가 있을 것이란 평이 우세하다. 임 회장은 2023년 3월 취임과 동시에 우리금융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선언한 데 이어 동양·ABL생명 인수전의 선봉에 서는 등 비은행 부문 강화 전략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금감원이 우리은행의 잇따른 금융사고가 현 경영진과도 무관치 않다고 적시한 만큼 이번 인수가 무산될 경우 임 회장으로서는 책임론을 회피할 방도가 없는 실정이다.

임 회장의 책임론은 비단 보험사 인수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7월 말 투자매매업 예비인가를 받은 우리투자증권 또한 아직 본인가 승인을 받지 못한 탓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부당대출 건으로 모회사인 우리금융의 대주주 적격성을 문제 삼은 것이란 시각이 주를 이룬다. 투자증권사는 예비인가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본인가 신청서를 금융위에 제출해야 하며, 만약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예비인가마저 효력을 상실한다. 결국 우리투자증권은 1월 말께 본인가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승인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임 회장의 ‘비은행 강화’ 청사진이 은행의 부당대출로 빛을 잃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안현정
Position
연구원
Bio
정보 범람의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갈 동반자로서 꼭 필요한 정보, 거짓 없는 정보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자본성증권 인수 이어 채무보증까지, 한국금융지주 ‘캐피탈’ 구하기 총력

자본성증권 인수 이어 채무보증까지, 한국금융지주 ‘캐피탈’ 구하기 총력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연구원
Bio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수정

한국금융, 캐피탈 자회사 채무보증 결정
1,5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 인수도
재무구조 개선, 운용 자금 조달 목적

한국금융지주가 자회사 한국투자캐피탈 유동성 지원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통상적인 채무 지급보증부터 자본성증권 인수까지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재무적으로 뒷받침하는 모습이다. 최근 공격적으로 비중을 늘려온 부동산금융 익스포저로 인해 재정건전성이 훼손될 처지에 놓여서다.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 속에 부동산 시장 침체, 업권 간 경쟁 심화 등으로 캐피탈업계의 위기감이 커지면서 캐피탈사들은 선제적인 유동성 확보와 적극적인 건전성 지표 관리가 발등의 불이 된 상황이다.

한투캐피탈 채무 보증 한도 2.2조 설정, 한도 대비 70%

5일 여신금융업계에 따르면 한국금융지주는 올해 한투캐피탈에 대한 채무보증 금액으로 2조2,000억원을 설정했다. 연간 지급보증 총한도로, 전년도는 2조4,000억원이었다. 지급보증은 한투캐피탈이 발행하는 회사채 원리금에 대한 것이다. 채권의 원금 상환부터 연체이자를 포함한 이자 지급 등 원리금 일체에 대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한국금융지주가 대신 해결해 주겠다는 내용이다.

한투캐피탈이 발행한 회사채에 대해 한국금융지주가 지급보증한 채권 잔액은 1조5,250억원이며, 사용 가능한 잔여 한도는 6,750억원이다. 한도 대비 70.0%를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총차입부채(3조8,777억원)에서 지급보증 조달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9월 기준 39.6%다.

그간 한투캐피탈은 지급보증 조달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특히 저금리 시절인 2020년~2022년에는 한도를 100% 수준까지 채우는 모습을 보였다. 금리가 가파르게 올랐던 2023년에는 지급보증 한도가 2조6,000억원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지난해는 차입부채 규모를 줄이는 디레버리징 양상이 지속됐는데, 이 과정에서 지급보증 조달 잔액도 감소했다. 기발행 채권 상환이 그만큼 늘었기 때문이다. 차후 업황 개선으로 영업자산 회복에 나설 때 지급보증 조달 역시 다시 늘려나갈 것으로 보인다.

지급보증 지원을 받으면 자금을 보다 낮은 금리에서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게 된다. 신용평가 업계에 따르면 한투캐피탈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은 ‘A(안정적)’ 급이며 기업어음(CP) 등급은 ‘A2’다. 신용등급이 더 높은 한국금융지주가 보증하면 한투캐피탈의 회사채와 CP 등급은 각각 ‘AA-(안정적)’와 ‘A1’으로 올라간다.

부동산 PF 대출 중심 외형 키우다 성장세 멈춰

한국금융지주는 채무보증 외에 자본 확충도 지원했다. 지난해 말 한투캐피탈은 자본성증권인 1,5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공모형이 아닌 사모형으로 발행됐기 때문에 한국금융지주가 전액 가져간 것이다. 신종자본증권은 채권에 설정되는 만기일이 30년으로 영구채 성격인 만큼 발행금액 그대로 자본으로 인정된다. 금리 조건은 6.96%로, 사실상 예상 밴드의 최상단으로 확정됐다. 이는 한투캐피탈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자기자본인 1조5억원 대비 15.0%에 달하는 수준이다. 채권 금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채권 가격은 저렴해진다는 점에서 한투캐피탈 신종자본증권의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금융지주가 한투캐피탈의 구원투수로 나선 배경도 같은 맥락이다. 이밖에도 한국금융지주는 지난해 6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해 한투캐피탈에 자금을 투입했다. 유상증자는 보통주 신주를 늘리는 방식이다. 자본성증권 발행과 달리 이자비용이 들지 않는 만큼 자본의 질적 개선도가 더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금융지주는 2023년에도 두 차례에 걸친 유상증자에 참여해 총 5,200억원 규모 자금을 투입했다. 모두 한투캐피탈의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한투캐피탈은 높은 조달금리와 부동산 금융 문제 등으로 재무 지표 전반이 부진한 상태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한투캐피탈의 총영업자산 4조7,976억원 중 38%가 부동산 금융자산이다. 여기에 가계대출에 포함된 중도금대출까지 포함하면 전체 부동산금융 관련 자산이 영업자산의 약 64%를 차지한다. 실적과 자산건전성지표 모두 부동산 경기 민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부실채권으로 분류되는 고정이하여신비율을 보면 지난해 1분기 말 3.6%에서 3분기 말 10.6%로 급증했다. 고정이하여신 4,497억원 중 95%인 4,252억원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로 구성돼 있는 상태다. 부동산 PF 대출은 수익성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3분기 한국신용평가의 당기순이익은 25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75.7% 감소했다. 총자산수익률(ROA)도 같은 기간 2%p 떨어져 0.7%에 그쳤다. 부동산 경기 침체 등 업황 악화의 직격탄을 맞으며 대손비용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PF발 업황 저하, 캐피탈 위주 유동성 공급 증가

업황 악화로 돈줄이 말라가는 다른 캐피탈사들도 모회사에 손을 벌리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비은행금융그룹들이 주요 계열사에 실시한 유증 횟수는 2011년 말부터, 합산 금액은 2023년부터 상승세를 나타냈다. 2019년 말 유증 횟수는 연간 6회, 금액은 8,000억원이었던 것이 2012년 말에는 각각 11회, 1조원으로 늘었다. 2023년에는 유증이 12회 실시됐고 금액은 2조4,000억원으로 예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2018~2024년 유증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받은 횟수는 캐피탈사가 16회로 가장 많았다.

대표적으로 메리츠금융그룹은 메리츠캐피탈에 대한 유상증자를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2019년 500억원, 2021년과 2024년 각각 1,999억원 규모다. 이와 별개로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6월 메리츠캐피탈과 대출참가계약을 체결해 3,278억원 규모의 부동산 PF 대출 자산을 이전받았다. PF 대출 자산에는 본PF 14건, 담보대출을 포함한 브릿지론 4건이 포함됐다.

키움캐피탈도 최근 키움증권으로부터 2,000억원 규모의 운용 자금을 빌렸다. 키움캐피탈은 지난달 24일 키움증권이 당사 발행 기업어음에 대해 한도거래 약정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차입금액은 2,000억원으로, 차입기간은 이달 9일부터 내년 1월 8일까지다. 키움캐피탈은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 30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371억원) 대비 18.60%가량 줄어든 규모다. 당기순이익은 217억원으로 1년 전(289억원)보다 24.91% 감소했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연구원
Bio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시진핑과 대화한다”던 미국, 돌연 중국발 소포 배송 중단 선언

“시진핑과 대화한다”던 미국, 돌연 중국발 소포 배송 중단 선언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민정
Position
기자
Bio
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수정

‘최소허용’ 무역 허점 없애려는 목적
미국 현지 물류센터 구축 가속 전망
중국 ‘보복 관세’ 강경 대응에 맞불

미국 우정국(USPS)이 중국과 홍콩에서 미국으로 배송되는 모든 소포의 배송을 잠정 중단했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를 비롯한 중국 전자상거래(이커머스)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800달러 미만 패키지도 통관 절차 거쳐야

4일(이하 현지시각) USPS는 공식 홈페이지 통해 “추가 공지가 있을 때까지 중국과 홍콩 우체국에서 오는 모든 소포의 배송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며 “다만 편지와 대형 봉투 등 ‘플랫’ 요금을 적용받는 우편물은 이번 배송 중단 조치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해당 조치는 발표와 동시에 즉각 발효됐다.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 중국과 멕시코, 캐나다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직후 발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서는 25%의 관세 부과를 30일 동안 유예했지만,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10% 관세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번 행정명령의 핵심이 최소허용(de minimis)으로 규정된 무역 허점을 없애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최소허용은 수출업체가 800달러(약 115만원) 미만의 패키지를 미국에 배송할 경우 세금을 면제하는 규정이다. 알리와 테무, 쉬인 등은 의류부터 가구, 가정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목을 초저가로 판매하며 해당 규정을 적극 활용했다.

미국 세관 및 국경 보호 기관 데이터에 의하면 미국은 지난해 13억 건 이상의 최소허용 물품을 처리했다. 미국 하원 중국 공산당 특별위원회는 2023년 보고서에서 “테무와 쉬인은 중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최소허용 물품에 거의 절반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무역 관리들 또한 최소허용 패키지를 ‘문서화 및 검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테무와 쉬인은 그간 자사의 사업 모델이 최소허용 규정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지만, 이번 조치로 인해 미국 시장 성장 전략에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현재 이들 회사는 미국에 유통 센터를 구축해 현지 창고에서 바로 발송하는 등의 방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웬 비아오 첸허로지스틱스 총괄 매니저는 “주요 플랫폼들이 미국의 무역 제한에 대비하기 위해 현지 창고를 마련하는 추세는 작년부터 있어 왔다”며 “이번 조치로 더 ‘폭발적인’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펜타닐에 물든 미국, 책임은 어디에?

미국 정부와 USPS는 최근 국제적 문제로 떠오른 펜타닐(마약성 진통제) 등 신종 마약이 자국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이유 또한 내세웠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취임 당시부터 펜타닐이나 그 원료 물질이 세관 절차가 허술한 소액 면세 제도의 구멍을 이용한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 역시 “펜타닐 원료 물질은 인터넷에서 200달러 안팎이면 살 수 있다”며 소액 면세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뜻대로 펜타닐 문제를 관세와 연동해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 정부는 중국에서 보낸다는 원료물질의 양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으며,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얼마나 많은 펜타닐이 들어오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 또한 전무하기 때문이다. 특히 펜타닐을 구성하는 원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탓에 그 출처가 반드시 중국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게 국제사회의 중론이다.

중국 또한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중국 공안부 대변인은 “미국 펜타닐 위기의 근본 원인은 미국 그 자체에 있다”면서 “국내 마약 수요를 줄이고 법 집행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세계에서 마약 퇴치 정책이 가장 엄격하고 실행이 가장 철저한 국가”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관세엔 ‘보복 관세’로, 보복 관세엔 ‘기업 옥죄기’로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관세에는 30일의 유예 기간을 두면서도 중국에는 USPS까지 동원해 제재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캐나다·멕시코 정상의 경우 관세 유예를 위해 미국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중국의 경우 기다렸다는 듯 즉각 전방위 보복 조치를 발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더 강력한 제재 수단이 필요했던 셈이다.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4일 미국산 석탄 및 LNG에는 15%, 원유, 농기계, 배기량이 큰 자동차와 픽업트럭 등 총 72개 품목에 대해서는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미국 정부의 일방적인 관세 부과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정상적인 경제 및 무역 협력을 해한다”고 날을 세웠다.

또 중국 국가시장감독총국은 미국 빅테크 구글이 자국의 반(反)독점법을 위반한 혐의가 드러나 조사 중이라고 밝혔으며, 상무부는 캘빈클라인 등 유명 패션 브랜드를 다수 보유한 PVH그룹, 유전체 분석 기업 일루미나 등 미국 기업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에 올렸다. 해당 명단에 오르면 중국으로의 수출이 금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멕시코 관세 유예 소식을 전하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24시간 내 대화할 예정”이라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지만, 이후 실제 대화가 오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민정
Position
기자
Bio
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美 관세 전쟁에 흔들리는 韓 제조업, 생산거점 이전 등 부담 가중

美 관세 전쟁에 흔들리는 韓 제조업, 생산거점 이전 등 부담 가중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남윤정
Position
기자
Bio
금융 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기사를 쓰겠습니다. 경제 활력에 작은 보탬이 되기 바랍니다.

수정

국내 대기업의 캐나다·멕시코 법인 총 201곳
미·중 무역 갈등 속에 대미 수출기지로 활용
美 현지 생산·생산지 다변화 등 대응 본격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생산기지 다변화 등 대응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주요 수출기업의 생산 거점이 포진한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 위협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미국 이전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두고 국내 산업계에서는 미국 정부의 극단적인 온쇼어링(해외 공장 자국 내 유치) 기조가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한국 제조업 생태계를 와해시킬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韓 기업들, 캐나다·멕시코로 생산기지 옮겨 수혜

5일 산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예고함에 따라 멕시코와 캐나다에 주요 생산라인을 둔 국내 대기업들은 미국 현지 생산 또는 생산지 다변화 방안을 찾고 있다. 시행 전날인 지난 3일 멕시코와 캐나다산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한 달 유예하기로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해 온 ‘관세 장벽 쌓기’는 현실화하고 있어서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한국 기업의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물류비가 적게 드는 데다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덕에 미국 수출 시 무관세 혜택을 볼 수 있다. 특히 멕시코의 경우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이에 한국의 반도체·가전·배터리 기업들은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했던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부터 멕시코와 캐나다로 생산기지를 옮겨 니어쇼어링(인접국으로 생산기지 이전)의 혜택을 누려 왔다.

삼성물산의 캐나다 온타리오주 태양광 발전단지/사진=삼성물산

삼성·LG·현대차 등 일부 물량 美 이전 등 검토 중

하지만 미국의 관세 부과 방침으로 멕시코와 캐나다 지역에 둥지를 튼 한국 기업들은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됐다.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가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88개 대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캐나다와 멕시코 현지에서 운영하는 해외법인 현황을 조사한 결과, 25개 대기업집단의 캐나다·멕시코 법인은 총 201곳으로 나타났다. 나라별로는 캐나다가 110곳, 멕시코가 91곳으로 집계됐다.

그룹별로는 삼성이 68곳으로 가장 많았다. 삼성은 캐나다에 50곳, 멕시코에 18곳의 회사를 둔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은 캐나다에만 40곳이 넘는 법인을 세워 태양광·풍력·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멕시코 법인은 가전제품을 생산한다. 현대차그룹은 멕시코에 16곳, 캐나다에 12곳, 총 28곳의 법인을 뒀다. 특히 멕시코에서는 계열사인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가 각각 별도 법인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한화는 14개의 법인을 멕시코(12곳)와 캐나다(2곳)에서 운영 중인데, 상당수는 태양광 관련 사업을 위한 회사인 것으로 조사됐다. LG는 멕시코에 LG전자 전자제품 생산 법인 등 8곳, 캐나다에 LG에너지솔루션이 스텔란티스와 합작한 넥스트스타에너지 배터리 공장 등 3곳을 운영 중이다. 포스코 역시 멕시코에 철강 사업 법인 등 6곳, 캐나다에 포스코퓨처엠이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한 양극재 공장 등 5곳을 운영한다.

캐나다와 멕시코를 대미 수출기지로 활용해 온 해당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본격적인 대응 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하던 건조기 물량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 공장으로 옮기는 방안을 고려 중이며 LG전자는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냉장고 물량을 미국 테네시주 공장으로 옮기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기아는 멕시코 누에보레온 공장에서 생산하는 K4의 일부 물량을 캐나다로 전환해 북미 시장에서의 포지셔닝을 재조정하고 있다.

신규 투자비, 고임금 부담에 당장 이전은 힘들 듯

미국으로의 생산 거점 이전이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국내에서는 한국 제조업 생태계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요 기업의 미국 현지 투자가 늘면서 수출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간 분업 구조가 약화할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현지에 직접 투자하는 온쇼어링을 압박하고 있는 만큼, 결국 미국에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소재·부품까지 현지에서 조달하게 될 경우 한국의 중견·중소 제조기업은 러스트 벨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이 트럼프의 관세 부과에 대응해 멕시코와 캐나다의 생산시설을 곧바로 미국 혹은 제3의 지역으로 옮기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비용과 효율성 면에서 제약이 크기 때문이다. 캐나다나 멕시코에 있던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할 경우 막대한 신규 투자비가 드는 데다, 미국의 높은 임금도 감당해야 한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제조업 임금 평균은 시간당 28.34달러로 멕시코(3.7달러)의 8배에 이른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이 얼마나 지속될지도 불확실하다. 관세 인상의 배경에 캐나다와 멕시코 정부를 대상으로 무역수지 불균형, 불법 이민, 마약 억제 등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깔린 만큼 국가별 협상 결과에 관세 압력이 조기에 완화될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미국 내에서도 고율 관세가 상품 가격에 전가돼 미국 소비자들의 부담만 가중할 것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남윤정
Position
기자
Bio
금융 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기사를 쓰겠습니다. 경제 활력에 작은 보탬이 되기 바랍니다.

"이번엔 돼야 한다" IPO 장수생 SK엔무브, 하반기 상장에 박차

"이번엔 돼야 한다" IPO 장수생 SK엔무브, 하반기 상장에 박차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서지
Position
기자
Bio
매일같이 달라지는 세상과 발을 맞춰 걸어가고 있습니다.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에, 관성보다는 호기심에 마음을 쏟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수정

SK엔무브, 하반기 중 4번째 상장 도전
투자자 엑시트, SK이노베이션 자금 수혈 이번 상장에 달렸다
시가총액·공모 구조 유사한 LG CNS, 흥행 선례 남겨

SK엔무브가 하반기 상장을 목표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다. 2013년부터 총 3차례 IPO에 실패한 이후 재차 증시 입성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IPO에 핵심 투자자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SK이노베이션의 현금 창출 등 이해관계가 촘촘히 얽혀 있는 만큼 SK엔무브가 '성과'를 보여야 할 때라는 평이 나온다.

SK엔무브, IPO 채비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그룹 윤활유 사업 자회사 SK엔무브(옛 SK루브리컨츠)는 오는 6~7월 상장을 목표로 IPO 채비에 나섰다. 희망 기업가치는 최소 5~6조원 수준으로, 준수한 현금 창출력을 근거로 높은 몸값을 책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23년 SK엔무브는 약 1조1,400억원에 달하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도 8,000억~9,000억원 수준의 EBITDA를 거뒀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SK엔무브의 상장 도전은 이번이 네 번째다. SK엔무브는 지난 2013년과 2015년, 2018년에 걸쳐 총 3차례 증시 입성을 노렸지만, 번번이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을 이기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다. 가장 최근인 2018년의 전례를 살펴보면, 당시 SK엔무브는 멀티플을 10.1배 적용해 목표 시가총액을 4조3,000억~5조2,000억원대로 잡았다. 당시 매출액은 3조4,719억원, EBITDA는 5,182억원 수준이었다. 이에 기관투자자들은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며 SK엔무브를 외면했고, 수요예측에서 저조한 성적표를 받은 SK엔무브는 상장 의사를 철회했다.

SK엔무브 상장을 둘러싼 이해관계

업계에서는 SK엔무브가 이번 IPO를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SK엔무브의 상장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IPO는 SK엔무브의 주요 투자자인 사모펀드 IMM크레딧솔루션(ICS)의 엑시트기회가 될 수 있다. 앞서 ICS는 지난 2021년 1조1,195억원을 투자해 SK엔무브 지분 40%를 확보하며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지난해 하반기 지분을 SK에 일부분 매각해 현재 지분율은 30% 수준이다.

2021년 투자 당시 ICS는 내부수익률(IRR) 5.7%를 보장받기로 했다.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려면 SK엔무브의 기업가치가 최소 3조5,000억원 수준이어야 한다. 현재 SK엔무브의 희망 기업가치가 5~6조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ICS에 있어 이번 IPO는 적절한 엑시트 기회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 시점 대비 두 배 이상의 기업가치가 예상되는 만큼 FI(재무적 투자자)가 지분 매각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면서도 "다만 SK엔무브의 호실적을 고려하면 안정적인 배당주로서 가치도 있어 장기 투자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의 구주매출 참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K엔무브는 SK온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합병 대상으로 거론될 만큼 우량한 자회사다. SK이노베이션은 보유하고 있는 SK엔무브 지분 중 일부만 매각해도 상당한 이익을 거둘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SK엔무브가 상장되고 나면 주주 구성이 복잡해지며 SK온과 SK엔무브의 합병 가능성은 굉장히 낮아진다고 봐야 한다"며 "SK이노베이션이 이번 상장에서 구주를 매각해 재원 마련에 나설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LG CNS의 데이터센터/사진=LG CNS

LG CNS의 흥행

한편 현시점 SK엔무브 IPO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이 모두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시가총액이나 공모 구조 등이 비슷한 LG CNS가 수요예측과 일반청약에서 압도적인 흥행을 기록하면서 SK엔무브의 IPO 성공 가능성이 일부분 입증됐기 때문이다.

LG CNS는 지난달 9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 결과 공모가를 희망범위(5만3,700~6만1,900원) 최상단인 6만1,900원에 확정했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 2,059곳 중 약 99%가 희망밴드 상단 이상의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률은 114대 1 수준이었으며, 수요예측에 모인 자금은 76조원에 달했다. 이후 실시한 일반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 경쟁률 역시 122.9대 1로 높았으며, 모인 청약 증거금은 21조1,441억원에 육박했다.

다만 LG CNS의 이 같은 흥행 흐름이 상장 첫날부터 끊겼다는 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상장 첫날인 5일 오후 2시 6분 기준 LG CNS 주가는 공모가(6만1,900원) 대비 약 11% 내린 55,100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낮은 의무보유 확약 비중이 주가 하락세를 견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LG CNS 수요예측에 참여한 2,059곳의 기관 중 의무보유 미확약 기업은 1,741곳으로, 이들이 보유한 물량만 10억9,021만2,255주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의무보유확약이 설정되지 않은 주식은 상장 직후 곧바로 시장에 나올 수 있어 주가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일반 투자자가 배정받은 290만6,579주(전체 공모주식의 15%) 매물 역시 주가에 하방 압력을 더했을 가능성이 높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서지
Position
기자
Bio
매일같이 달라지는 세상과 발을 맞춰 걸어가고 있습니다.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에, 관성보다는 호기심에 마음을 쏟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美 관세 폭탄에 삼성전자 희비 “스마트폰 맑음, TV 흐림, 반도체는?”

美 관세 폭탄에 삼성전자 희비 “스마트폰 맑음, TV 흐림, 반도체는?”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안현정
Position
연구원
Bio
정보 범람의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갈 동반자로서 꼭 필요한 정보, 거짓 없는 정보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수정

아이폰 가격 인상 목전, 반사이익 기대
멕시코 관세 부과로 TV 가격 변동 예상
“대만 TSMC 칩에 최대 100% 관세”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적용하고 나서면서 우리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전망이다. 특히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경우 경쟁사 애플의 주력 상품 아이폰 대부분이 중국에서 생산되는 만큼 집중 수혜가 예상된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기 행정부 시절 중국산 애플 제품에 대한 관세를 유예한 바 있어 이번에도 이 같은 조치가 이뤄질지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갤럭시 新모델 가격 동결로 경쟁력 확보 가능성↑

4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부터 캐나다와 멕시코산 제품에 각각 25%의 관세를, 중국산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2일 서명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 중국(그리고 거의 모든 나라)과의 교역에서 막대한 적자를 보고 있다”며 “우리는 더 이상 ‘멍청한 나라(Stupid Country)’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처가 삼성전자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삼성전자와 시장 점유율을 놓고 경쟁하는 애플은 아이폰 물량의 약 85%가 중국에서 제조되는 탓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달 7일 미국에 출시하는 새로운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25의 가격을 직전 모델 가격과 동일한 수준으로 책정했다. 아이폰 가격 인상과 맞물려 갤럭시S25의 가격 경쟁력 강화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다만 이 같은 상황은 단기간에 그칠 공산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국가에 10% 이상의 보편 관세 부과를 공언해 온 만큼 우리 기업 또한 관세의 사정권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의 50%가량을 베트남에서 생산 중이며, 한국과 인도, 브라질 등에도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부품단가 상승 등으로 향후 관세 부과 시 제품 가격을 낮출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수익성 악화와 실적 저조 사이에서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TV 시장 또한 상황이 비슷하다. 국내 주요 가전 기업의 생산시설 상당수가 멕시코에 자리한 탓에 이번 관세 적용으로 가격 인상 압박이 거세진 것이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북서부에 위치한 티후아나 공장에서 TV를 생산 중이며, LG전자도 북동부 레이노사에 TV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의하면 북미 TV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의 점유율은 출하량 기준 27%, 매출 기준 48%에 달한다.

3일 미국 정부는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관세 유예를 결정했다고 밝혔으나, 한시적 조치인 만큼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제혁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생산하는 식으로 대응하더라도,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전쟁으로 인해 글로벌 TV 시장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고율 관세 정책이 협상 카드로 사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미국 정부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자국 기업 관세 유예 여부에 시장 촉각

일각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에서 생산된 아이폰이 미국으로 수입될 때 발생하는 관세를 면제해 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미국 투자전문회사 딥워터자산운용은 보고서를 통해 “애플과 테슬라 등 미국 기업들은 중국산 고율 관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애플이 삼성과의 경쟁에서 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에릭 우드링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 역시 “아이폰, 맥, 아이패드 등 애플 주요 제품들은 중국산 관세 부과를 피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들 전문가가 애플의 관세 면제를 예견한 배경에는 과거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애플 제품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 준 전례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산 제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했지만, 애플에 대해서는 이를 유예했다. 당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직접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자사의 경쟁력 약화를 호소했고, 아이폰과 애플워치 등 자사 제품에 대한 관세 유예를 끌어냈다.

관세 유예를 바탕으로 애플이 2022년부터 유지 중인 가격 동결 정책을 고수할 경우, 미국 시장 내 삼성 스마트폰의 입지는 더욱 위협받을 전망이다. 애플은 아이폰14부터 아이폰16까지 가격을 동결 중이며, 이는 삼성 제품의 가격 동결 및 인상 폭 제한 요소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애플은 물론 삼성의 운명 또한 달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세계 파운드리 1위 TSMC도 관세 폭탄 사정권

삼성전자의 또 다른 주력 사업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관세 적용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 “대만에서 생산한 TSMC 칩에 최대 10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발언을 TSMC를 비롯한 주요 반도체 기업의 생산시설을 자국으로 옮겨오기 위한 압박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이후 행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지난달 말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의 회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칩의 대부분을 TSMC에 의존하는 엔비디아는 황 CEO와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이 TSMC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에 변경을 가져 올 것이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회동 직후 새로운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우리는 칩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고, 석유와 가스에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관세 부과 시점은 오는 2월 18일경으로 보고 있다”고 공표했다.

TSMC 반도체에 대한 100%의 관세가 적용되면 소비자들이 지불해야 할 가격이 크게 인상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하며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혼란이 있을 수는 있지만, 종국에는 모든 사람이 이 같은 조처를 이해할 것”이라고 그간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시장에서는 미국 정부가 수입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면서도, 현실화할 경우 시장 재편을 불러올 것이라는 데 견해가 일치하는 분위기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TSMC로서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며 “이는 미국 정보기술(IT) 기업들에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TSMC와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하던 삼성전자로서는 또 하나의 호재를 만날 것이라는 관측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안현정
Position
연구원
Bio
정보 범람의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갈 동반자로서 꼭 필요한 정보, 거짓 없는 정보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美 관세 피해 韓 시장 파고드는 C커머스, 초저가 물량 공세에 국내 시장 잠식 우려

美 관세 피해 韓 시장 파고드는 C커머스, 초저가 물량 공세에 국내 시장 잠식 우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세화
Position
연구원
Bio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토대로 독자 여러분께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겠습니다.

수정

트럼프, 취임 직후 中 제품에 10% 추가 관세 부과
소액 물품까지 관세 부과하며 알리·테무 등 저격
미국 수출 대신 한국 등 다른 국가에 초저가 공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미·중 무역 갈등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한국 공세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수입품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서 대미 수출에 제동이 걸리자,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 거대 플랫폼들이 한국을 비롯한 대체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초저가 전략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자 쿠팡·네이버 등 기존 강자들도 대응 전략 마련에 나섰다.

지난해 해외 직구 거래액 8조원, 이 중 中 점유율 60%

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온라인쇼핑 거래액이 전년 대비 5.8% 증가한 242조897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해외 직접 구매(직구) 거래액은 전년보다 19.1% 늘어난 7조9,583억원으로 이 중 중국의 점유율이 60%에 달했다. 중국 직구 거래액도 알리·테무·쉬인 등 이른바 'C커머스'의 공세로 48% 증가한 4조7,772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 직구 제품의 유해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증가세는 다소 둔화했다. 중국 직구액의 분기별 추이를 보면, 지난해 1분기(65.4%)와 2분기(64.8%) 모두 전년 동기 대비 60%가 넘는 증가율을 기록했으나 3분기와 4분기는 각각 45%, 28.5%에 그쳤다.

실제로 C커머스들은 한국 시장 진출 이후 빠르게 입지를 확장해 왔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달 알리와 테무의 국내 이용자 수는 각각 912만 명, 823만 명으로 쿠팡(3,303만 명)에 이어 각각 2위와 3위에 올랐다. 2018년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알리는 2021년 이용자 수가 168만 명에 불과했으나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4년 만에 1,000만 명 고지를 눈앞에 뒀다. 알리보다 5년 늦은 2023년 한국에 진출한 테무도 알리와의 격차를 90만 명으로 줄이며 맹추격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한국 전용 홈페이지를 론칭한 쉬인은 홈페이지 개설 전에 이미 80만 명 이상의 한국 이용자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이커머스 중에서는 쿠팡이 2,791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며 압도적인 1위를 지키고 있다. 쿠팡과 함께 사실상 국내 시장을 양분하는 네이버 쇼핑도 선전 중이다. 마켓 플레이스로 분류돼 이커머스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네이버 쇼핑·페이·스마트스토어 등 커머스 관련 서비스 이용자가 2023년 기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반면 11번가(781만 명), G마켓(543만 명), GS샵(346만 명) 등 다른 토종 업체들은 C커머스와의 격차를 쉽사리 좁히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업계 5위권인 신세계그룹의 G마켓이 알리와 합작법인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알리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알리·테무, 주 7일 배송제 도입하며 쿠팡과 격차 줄여

문제는 미국의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면 C커머스가 국내 시장에서 장악력을 더욱 확대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개인이 수입하는 800달러(약 115만원) 이하 소액 물품에도 빠짐없이 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인 만큼 저가 상품을 주력으로 하는 알리·테무·쉬인이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정부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10% 추가 관세를 시행한 지난 4일 "추가 관세 부과로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국내 이커머스 업계는 자국 내 수요 부진으로 쌓인 막대한 재고를 미국과 유럽에 판매해 이익을 거둔 중국 업체들이 이제 미국 수출 대신 한국 등 다른 시장에 '초저가 물량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감지되고 있다. 알리는 CJ제일제당,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애경, 삼양식품, 동서식품 등 국내 유통 대기업들의 본사 직영몰을 대거 입점시켜 가격 경쟁력을 끌어 올렸고, 테무는 새해 들어 '홀리데이 프로모션 90% 할인 쿠폰' 제공, 사은품 증정 행사 등을 통해 공격적인 마케팅에 돌입했다.

최근에는 국내 1위 택배업체 CJ대한통운과의 협력을 통해 배송 경쟁력도 강화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테무의 국내 물량 80%를 담당하고 있으며, 알리·G마켓 합작법인도 이 배송망을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CJ대한통운이 올해부터 주 7일 배송을 도입하면서 쿠팡 등 기존 사업자와의 격차도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일부 플랫폼에서만 가능했던 휴일 배송 서비스가 제공됨에 따라 주말에도 직구 상품을 받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C커머스들은 국내 셀러가 해외에 직접 물건을 파는 '역직구'에도 힘을 싣고 있다. 알리는 최근 한국 상품의 미국·일본·프랑스·스페인 판매를 지원하고, 향후 판매 국가를 확대하는 '글로벌 셀링'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국내 기업에는 5년간 수수료를 면제하고, 무료 번역 서비스도 제공한다. 2020년 이후 역성장을 이어온 국내 역직구 시장은 지난해 소폭(1.5%) 증가하며 성장세로 돌아섰다. 대중국 판매액(-7.4%)은 감소했지만, 미국(41.7%), 유럽연합·영국(18.8%) 등에서 크게 성장하는 등 전망이 밝다는 분석이다.

쿠팡, 인프라 확충·대만 진출 등으로 1위 굳히기 나서

C커머스의 공세 속에서 국내 유통 플랫폼 1위 쿠팡은 올해 한층 강화된 배송 역량을 앞세워 초격차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지난해 3월 쿠팡은 ‘2027년 전 국민 쿠세권(쿠팡+역세권), 100% 무료 배송'이라는 목표를 공식화하고 같은 해 하반기부터 이를 위한 투자를 본격화했다. 쿠팡은 오는 2026년까지 3조원 이상을 신규 풀필먼트센터(FC) 확장, 첨단 자동화 기술 도입, 배송 네트워크 고도화 등 물류 인프라 확충에 투입하기로 했는데 올해는 해당 계획추진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쿠팡 역시 국내를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공략한다. 2022년부터 대만에 진출해 ‘로켓배송·로켓직구’ 서비스 제공하고 있는데 지난해까지 풀필먼트센터 구축 등 대만 현지에 투자한 금액만 5,000억원에 달한다. 현지에 풀필먼트센터 두 곳이 운영 중이며 세 번째 풀필먼트센터도 가동이 예정돼 있다. 궁극적으로 국내 셀러에게 대만 수출 기회를 제공해 동반성장 하겠다는 전략이다. 쿠팡을 통해 대만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2만1,000곳에 달하며, 지난해 이들의 수출 거래액은 2년 새 2,600% 증가했다.

네이버는 2025년을 '네이버쇼핑 역사상 가장 크고 새로운 변화'의 해로 선언, 새로운 비전과 로드맵을 발표하며 맞서고 있다. 네이버는 쿠팡과 함께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주도하는 선도기업이지만 지난해 내내 거래액 성장률 시장 평균에 미치지 못하면서 쿠팡과의 격차가 벌어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네이버는 지난해 10월 30일 '네이버 멤버십 플러스 스토어'을 출시한 데 이어 올해부터 주문 후 1시간 내 배송(지금 배송)부터 고객이 원하는 일자와 시간에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 배송'을 오픈할 예정이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세화
Position
연구원
Bio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토대로 독자 여러분께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겠습니다.

트럼프 ‘국부펀드’ 설립 행정명령에 서명, 사우디·노르웨이 능가 세계 1위 노린다

트럼프 ‘국부펀드’ 설립 행정명령에 서명, 사우디·노르웨이 능가 세계 1위 노린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차수
Position
기자
Bio
정확성은 신속성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믿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신선한 시각으로 여러분께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수정

美 역사상 첫 국부펀드 설립 추진
재무부, 12개월 내 신설 계획
재정적자 심화, 재원 조달 의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도널드 트럼프 공식 홈페이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부펀드 설립을 지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의 첫 국부펀드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대로 추진되면 자산 2조 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현실적인 쟁점들을 둘러싼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통상 국부펀드가 대규모 외환보유액을 확보했거나 석유를 포함한 에너지 자원을 앞세워 부를 축적한 국가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상황을 감안할 때 눈덩이 재정적자와 부채를 깔고 앉은 미국은 첫 단추부터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첫 국부펀드 설립 행정명령

4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워싱턴DC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재무부와 상무부에 국부펀드를 만들라고 명령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서명식에서 “미국이 국부펀드가 생길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이 기금을 통해 많은 부를 창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부펀드는 국가가 미래 세대를 위한 부를 쌓기 위해 투자용으로 별도 조성한 정부 자금이나 이를 운용하는 기관을 일컫는다. 주식, 채권, 부동산, 사모펀드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고 외환시장 개입이나 통화가치 안정화 등을 위해 활용한다. 국부펀드연구소(SWF Institute)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 90여 개, 약 12조7,000억 달러 규모의 국부펀드가 운용되고 있다. 미국이 연방정부 차원의 국부펀드 설립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선거운동 기간 정부 투자기금을 설립해 고속도로, 공항과 같은 인프라 프로젝트와 제조업, 의료 연구 같은 분야에 투자를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미국 내에서도 민주당을 포함해 초당적으로 국부펀드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조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 안보 담당자들은 공급망과 에너지 인프라에 투자하는 데 초점을 맞춘 기금 조성 계획을 추진해 왔다. 민주당 소속 모건 맥가비 미 하원의원(켄터키주)도 지난해 미국 국부펀드 설립을 추진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글로벌 금융시장 '메기' 되나

AP통신은 국부펀드 설립으로 미국 국영 자원 수익금을 투자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신설하는 국부펀드가 규모 면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사우디 국부펀드를 따라잡고 싶다"며 "미국은 짧은 시간에 가장 규모가 큰 국부펀드 중 하나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부펀드를 통해 최첨단 제조 허브나 의료 연구, 방위 역량 증진 등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부국인 사우디가 국부펀드를 운영하면서 각종 프로젝트에 출자하는 것을 눈여겨본 셈이다. 국부펀드연구소(SWFI)에 따르면 사우디 국부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의 자산 규모는 9,250억 달러(약 1,350조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정부가 국부펀드를 활용해 틱톡을 인수할 수도 있다는 뜻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아마도 틱톡과 무엇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우리는 그것(틱톡)을 국부펀드에 넣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부유한 사람들과 협력할 수도 있다. 많은 선택지가 있다”고 했다. 그는 취임 첫날인 지난달 20일 의회가 지난해 통과시킨 ‘틱톡 금지법’ 시행을 75일간 유예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지분의 50%를 미국 측에 넘기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 주요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두고 국부펀드를 통해 틱톡 지분을 확보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의회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이 금융자산 확보보다 지정학적 자산에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파나마운하와 그린란드 매입 자금으로 국부펀드를 쓸 수 있다는 관측이다. 국부펀드 설립 과정에서 주요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공화당 소속의 테드 요호 전 플로리다주 연방 하원의원은 “(펀드를 이용한) 파나마운하나 그린란드 매입이 정신 나간 소리 같겠지만 트럼프가 둘 중 하나, 어쩌면 둘 다 해낸다면 이는 알래스카나 루이지애나 매입만큼이나 미국에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치인 쌈짓돈 된다" 경고

다만 국부펀드를 신설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미국 정부는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겪고 있어 국부펀드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태다. 의회 전문매체 더힐은 미국의 현재 재정 상태를 고려할 때 미래에 생길 것으로 기대하는 흑자에 의존한 국부펀드 설립 제안은 비현실적이라고 전했다. 실제 미 재무부는 36조 달러(약 5경2,100조원)에 달하는 부채에 디폴트를 내지 않으려고 비전통적인 수단까지 동원하는 실정이다.

의회 관문도 넘어야 한다. 의회는 스스로의 입지를 좁힐 수 있는 국부펀드를 승인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또한 글로벌개발센터(CGD)는 보고서를 내고 국부펀드의 실제 운영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펀드가 정치인들의 쌈짓돈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아울러 "관세 수입을 펀드로 따로 배정하되 다른 지출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국부펀드가 까다로운 예산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틱톡 인수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번지고 있다. 앞서 그는 미국인 1억7,000만 명가량이 사용하는 틱톡 지분을 조인트벤처를 통해 미국이 50%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CNN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계획대로 12개월 이내에 국부펀드가 출범한다 하더라도 틱톡이 새 주인을 찾아야 하는 시한을 이미 크게 넘기게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연장한 틱톡의 매각 시한은 불과 75일로, 모기업인 바이트댄스는 4월 말까지 인수자를 찾거나 미국 시장에서 발을 빼야 한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차수
Position
기자
Bio
정확성은 신속성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믿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신선한 시각으로 여러분께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