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부진에 고강도 조직 쇄신나선 케링, 세대 교체·중국 침체 속 명품 수요 위축 장기화
구찌 부진에 고강도 조직 쇄신나선 케링, 세대 교체·중국 침체 속 명품 수요 위축 장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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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링 구찌 부진에 따른 경영난, 자산 매각 및 조직 개편 단행 주요 명품 브랜드 실적 동반 하락, 글로벌 명품 산업 성장세 정체 MZ세대 이탈과 중국 부동산 침체로 인한 전례 없는 수요 급감

글로벌 명품 시장을 지탱해 온 수요의 축이 흔들리고 있다. 핵심 브랜드 구찌(Gucci)의 부진으로 재무 위기에 직면한 프랑스 명품 그룹 케링(Kering)이 자산 매각과 조직 쇄신에 나선 가운데, 업계 1위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와 에르메스 등 주요 기업들도 실적 하락과 주가 급락을 면치 못했다.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MZ세대(1980~2000년대생)의 가치관 변화와 중국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구매력 저하가 맞물리면서, 명품 산업은 과거와는 다른 구조적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
구찌 수익성 악화·부채 부담, 자산 매각으로 돌파구 찾는 케링
11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케링은 구찌의 10분기 연속 매출 감소에 따른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자산 매각을 결정했다. 지난해 상반기 구찌 매출이 전년 대비 26.0% 급감한 30억 유로(약 5조원)에 그치면서 그룹 전체 실적을 끌어내린 탓이다. 케링은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 영업이익의 약 65%를 구찌에 의존하고 있어, 핵심 브랜드의 부진이 곧장 그룹의 재무 위기로 전이되는 구조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리스크는 케링의 재무 지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4분기 그룹 매출은 전년 대비 3% 줄었으며 연간 매출은 10% 감소했다. 특히 상반기 순이익은 4억7,400만 유로(약 8,100억원)로 전년 대비 46% 급감하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수익성 악화와 함께 부채 부담도 가중되는 모습이다. 케링의 지난해 말 기준 순부채는 80억 유로(약 13조원)였으나, 금융권에서는 실제 규모가 100억 유로(약 1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아울러 연간 매출(약 28조원)이 일본 최대 의류 기업 패스트리테일링(약 32조원)에 추월당하면서 시장 지배력 약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불안감이 반영돼 케링 주가는 올해 들어 14% 하락했으며, 지난달 고점 대비 약 17% 밀려난 535유로(약 91만원) 선까지 하락했다.
이에 지난해 9월 취임한 루카 데 메오 케링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자동차 기업 르노(Renault)를 회생시킨 경영 방식을 패션 산업에 적용하며 재무 구조 개선에 나섰다. 먼저 데 메오 CEO는 케링의 뷰티 사업부를 프랑스 화장품 기업 로레알(L'Oréal)에 40억 유로(약 6조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을 통해 로레알은 향수 브랜드 크리드(CREED)를 인수하고 보테가베네타와 발렌시아가 브랜드의 뷰티 제품 개발에 대한 50년 독점 라이선스를 확보하게 됐다. 증권가에서는 구찌의 영업이익률이 40%대에서 20%대 중반으로 하락한 점을 들어, 이번 자산 매각 대금의 대부분이 단기 채무 상환과 신용등급 방어에 투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케링은 고정비 절감을 위해 전 세계 75개 비효율 매장과 중국 내 2·3선 도시 점포를 정리하는 한편, 알렉산더 맥퀸 등 주요 브랜드 인력을 감축하고 그룹 부사장인 프란체스카 벨레티니를 구찌 신임 CEO로 선임하는 등 고강도 조직 쇄신도 단행했다. 데 메오 CEO는 성명을 통해 "그룹의 전환기를 맞아 단순하고 명확한 조직을 구축해 핵심 브랜드인 구찌의 재도약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LVMH·에르메스도 실적 쇼크, 명품 산업 성장 꺾여
케링의 공격적인 자산 매각과 인력 감축은 명품 산업 전반에 불어닥친 위기감을 방증한다. 실제 세계 최대 명품 기업 LVMH의 지표는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LVMH는 지난해 2분기 패션·가죽 제품 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9% 감소하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실적 악화의 충격은 투자심리 위축으로 이어져, 2023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LVMH 주가는 지난해 7월 고점 대비 절반 수준인 482유로(약 82만원)까지 급락했다. 이 여파로 4,540억 유로(약 778조원)에 달하며 유럽 증시 1위를 수성했던 시가총액(시총)은 2,300억 유로(약 394조원) 규모로 축소됐으며, 글로벌 시총 순위 또한 10위권에서 37위까지 내려앉았다. 블룸버그는 이를 두고 "36년 경영 역사상 최악의 침체기를 겪고 있는 LVMH는 더 이상 유럽 3대 기업도, 프랑스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도 아니다"라고 혹평했다.
다른 브랜드도 사정은 비슷하다. 샤넬은 작년 연매출이 전년 대비 4% 줄어든 187억 달러(약 27조원), 영업이익은 30% 감소한 45억 달러(약 6조원)에 그쳤다. 비상장사인 롤렉스 역시 미국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미 자산운용사 럭스컨설트와 함께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롤렉스 매출은 105억 스위스프랑(약 19조원)으로 추정된다. 2023년 11%였던 전년 대비 매출 성장률도 2024년엔 5%로 하락했다.
'명품 중의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 역시 이러한 흐름을 비껴가지 못했다. 에르메스는 제품 가격을 평균 6~7% 인상하며 지난해 2월 주가가 2,800유로(약 480만원)를 돌파했으나, 이후 하락세로 전환해 두 달 만에 2,100유로(약 360만원)대까지 주저앉았다. 최근 2,400유로(약 411만원)대로 소폭 회복했지만, 시총은 고점 대비 20% 감소한 2,400억 유로(약 411조원)에 머물고 있다. 이에 대해 UBS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명품주의 회복을 기다려온 투자자들 사이에서 이제는 산업 자체의 성장 잠재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유보다 경험, 소비 주축 MZ세대의 가치 변화
업계에서는 주요 소비층인 MZ세대의 이탈과 소비 패턴 변화를 위기의 주요 배경 중 하나로 꼽는다. 현재 명품 시장의 약 10%를 점유하는 MZ세대는 지난해 명품 소비를 7%(약 8조원)가량 줄였는데, 이는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명품 산업의 비윤리적 인력 운용이나 불투명한 가격 책정 방식이 공론화되며 기존 소비 방식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해 이탈리아 법원 조사를 통해 2,600유로(약 445만원) 상당의 디올 핸드백 생산 원가가 53유로(약 9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브랜드가 설정한 가격과 실제 가치 사이의 괴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더욱 증폭됐다. 실제로 명품 브랜드에 대한 SNS 참여도는 하락세며, 레드카펫에 최신상 대신 빈티지 드레스가 등장하는 등 시장 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지출의 우선순위 또한 고가 상품 '소유'에서 여행, 미식, 웰니스 등 '경험'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구매력 저하와 취향 중심의 가치를 중시하는 잘파세대(1995~2024년생)의 성향이 맞물리며 이러한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에게 화려한 로고를 내세운 제품은 더 이상 절대적인 과시 수단이 아니며, 오히려 빈번한 가격 인상에 피로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로고를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럭셔리’를 선호하거나 고가 브랜드의 저렴한 대체재인 ‘듀프(Dupe)’ 제품을 찾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젊은 세대가 진정성을 기준으로 불필요한 구매를 지양하며 시장 흐름을 재편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컨설팅사 베인앤드컴퍼니는 "명품 산업이 가장 큰 좌절에 직면해 있다"며 "젊은 소비자들이 명품과의 관계를 재평가하는 상황에서 브랜드들은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경고했다. 글로벌 뷰티 전문지 보그 비즈니스(Vogue Business) 역시 젊은 세대 소비자들이 가격에 더욱 민감해지면서 명품을 정가로 구매할 가능성이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고 짚었다.
부동산 버블 붕괴에 지갑 닫은 중국, 명품 업계 차이나 쇼크
소비 기준이 바뀌는 세대적 변화 속에, 글로벌 명품 시장 수요의 핵심 축인 중국의 경기 둔화까지 겹치며 시장의 충격은 더욱 커졌다. 중국 명품 시장 규모는 2023년만 해도 1조420억 위안(약 217조원)에 달하며 전 세계 소비의 약 30~40%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에 따라 디올, 발렌시아가 등 주요 브랜드들은 중국 내 여론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저자세를 취해 왔다.
하지만 2024년부터 시장 흐름은 급격한 반전을 맞이했다. 베인앤드컴퍼니 보고서에 따르면 장기화한 경기 침체로 중산층의 소비가 위축되면서 2024년 중국 내 매출은 전년 대비 약 18~2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WSJ는 중국 소비자들이 자산 가치 하락에 따라 관망세로 돌아섰으며, 명품 브랜드가 책정한 가격의 적정성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수요 급감의 근본 원인으로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의 위축이 꼽힌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중국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이 압도적인 구조를 지적하며, 주택 가격이 5% 하락할 때마다 가계 자산 2조7,000억 달러(약 3,897조원)가 증발한다고 추산했다.
실제로 중국 부동산 시장은 2021년 헝다그룹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이후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중국 국가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70개 주요 도시의 신규 주택 가격이 2년 넘게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자산 가치 하락이 소비 감소로 이어지는 '역(逆) 부의 효과'가 본격화됐다. 이로 인해 중국 매출 의존도가 높았던 구찌는 직격탄을 맞았고, LVMH와 몽클레르 역시 실적 부진에 직면했다. 소비 위축은 리세일 시장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금 확보를 위해 명품을 처분하려는 매도 물량은 전년 대비 30% 이상 급증했으나, 이를 받아줄 실제 구매자 수는 정체되면서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는 모습이다.
중국 시장 내 수요 감소에 직면한 명품 브랜드들은 과거 철수했던 러시아 시장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루이비통, 샤넬, 롤렉스 등 주요 기업들은 최근 러시아 특허청에 상표 등록을 신청하거나 완료하며 현지 사업 재개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시행했던 러시아 판매 중단 조치보다 중국 내 실적 부진을 해결하는 것이 경영상 더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계 명품 시장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1년 기준 2~3% 수준에 불과하고 물류 제약 등 제반 여건도 까다로워, 거대한 중국의 매출 감소분을 상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베인앤드컴퍼니는 중국 시장의 수요 회복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글로벌 명품업계가 단기간에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