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장 부진 속 버팀목 ‘중동’마저 된서리, 글로벌 명품 업계 날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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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MH 1분기 매출 '제자리걸음' 중동 분쟁, 매출 성장률 1% 낮춰 케링·에르메스 등도 중동 매출↓ 반면 ‘초부유층 소비’는 유지

최근 글로벌 명품 업체들이 우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중국 시장 부진에 이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꼽히던 중동마저 분쟁에 휘말리며 명품 업계의 실적 악화 우려가 현실화했다. 다만 극심한 시장 불확실성 속에서도 초고가 명품군은 견고한 수요를 유지하는 등 업계 내 양극화 현상은 한층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유럽 명품 빅3, 1분기 매출 일제히 감소
26일(이하 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루이비통·디올·셀린느·티파니 등을 거느린 세계 최대 명품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연결 범위 및 환율 변동을 제외한 기준으로 191억 유로(약 33조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1% 증가한 수치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에 가까운 수준이다. LVMH 측은 연결 범위에는 변동이 없었으나 환율 변동이 매출을 약 7%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지역별로는 미국 시장이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보였고, 유럽과 일본은 관광객 소비 감소에도 불구하고 내수 수요가 이를 일부 상쇄했다.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역시 강한 성장세를 이어가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나타난 회복 흐름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지역 매출의 방어막 역할을 한 곳은 한국이다. 루이비통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1조8,543억원으로 전년 대비 6.1%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5,256억원으로 무려 35.1% 늘었다.
다만 중동 지역은 올해 3월 들어 분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LVMH는 중동 지역 상황이 1분기 전체 매출 성장률을 약 1%포인트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핵심 사업 부문인 패션·가죽 부문도 부진했다. 해당 부문 매출은 92억5,000만 유로(약 15조9,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 감소했는데, 중동 분쟁 영향이 크게 반영됐다. 이로써 패션·가죽 부문은 7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다른 명품 업체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에르메스인터내셔널은 지난 15일 올해 1분기 환율 변동을 제외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6% 증가한 40억7,000만 유로(약 7조원)를 기록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시장 컨센서스(7.1% 증가)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특히 중동 지역 매출이 6%가량 감소하며 부진을 보였다. 구찌와 생로랑을 보유한 케링그룹 역시 1분기 매출이 35억7,000만 유로(약 6조1,6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8% 감소했다. 케링그룹의 중동 지역 매출은 올해 첫 두 달 동안 성장세를 보였다가 3월 들어 11% 급감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동 시장 붕괴·중국 큰손 이탈, 수요 기반 흔들
명품 업계는 주요 시장인 중국 소비 둔화로 수년간 침체를 겪다가 지난해 3분기부터 회복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2월 28일 이란 전쟁이 발발하면서 반등 흐름에 제동이 걸렸다. 중동 시장이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5%에 불과하지만 현지 부유층과 관광객 소비 덕분에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에릭 뒤 알구에 에르메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두바이를 비롯한 걸프지역 명품 쇼핑몰 매장의 매출이 3월에 40%나 급감했다"며 "이탈리아와 스위스, 영국 매장도 중동 쇼핑객 감소로 타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패션 전문 매체 비즈니스 오브 패션에 따르면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이란과 미국·이스라엘의 군사적 충돌로 중동 매장을 전격 폐쇄하고 있다. 케링그룹은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등 중동 주요 국가의 모든 매장을 일시 폐쇄했다. 또한 해당 조치와 함께 중동 지역으로의 임직원 출장 및 여행을 전면 금지했다. 중동 최대 명품 유통 기업 샬후브 그룹도 바레인 내 매장을 모두 닫았다. 샬후브는 루이비통, 디올, 펜디, 셀린느, 지방시, 크리스찬 루부탱 등의 명품 브랜드 매장을 중동에서 운영하고 있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매장은 문을 열어두고 있으나 직원들의 출근을 자율에 맡기며 사실상 정상 운영을 멈췄다.
지정학적 위기에 더해 중국인의 수요 감소도 명품 업계의 부진을 야기하고 있다. 글로벌 명품 소비의 30%를 담당했던 ‘큰손’ 중국인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 명품 업계는 예전과 같은 두 자릿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전문가들은 중국인들의 소비 위축을 두고 거시경제 동인의 상호작용 결과라고 분석한다. 먼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형성된 '초과 저축'과 '보복 소비' 심리라는 연료가 소진됐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전 세계 명품 시장에서 중국 소비 비중은 팬데믹 시기 고점(약 33%) 대비 22% 수준으로 낮아졌다.
또한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자산 가격이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이른바 ‘역(逆) 자산효과’가 현실화했다는 것이다. 통상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치가 떨어지면 소비자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돼 지출을 줄이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명품 소비처럼 ‘부의 신호’를 기반으로 한 시장에서는 이 같은 심리 변화가 더욱 빠르게 나타난다. 여기에 '궈차오(国潮·자국 브랜드 선호 및 국가적 자부심)'라는 강력한 문화적 변화도 명품 업계 위축을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하이엔드 브랜드는 수요 견고, 명품 시장 양극화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이란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실적 피해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회장은 지난 23일 연례 주주총회에서 "현재 세계는 중동에서 상당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 상황이 매우 부정적인 경제적 영향을 동반한 세계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미국과 이란 간 휴전은 유지되고 있지만, 전쟁이 언제 종식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에 따라 올해 반등이 예상됐던 명품 시장 성장률 전망도 잇따라 하향 조정되고 있다. HSBC는 지난달 유럽과 중동 수요 부진을 주요 원인으로 꼽으며, 올해 명품 업계 매출 성장률 전망치를 1.1%포인트 낮춘 5.9%로 제시했다. FT는 "전 세계 소비 지출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는 중동 분쟁으로 인해, 지난 몇 년간 어려움을 겪은 뒤 기대되던 럭셔리 상품 수요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런 와중에도 자산 가치가 높은 특정 브랜드로의 수요 쏠림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자산가들은 전쟁 공포가 커질수록 유행에 민감한 패션 아이템보다는 가치가 보존되는 ‘안전 자산형 명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에르메스의 버킨백이나 켈리백 같은 초고가 가방이나, 파텍필립, 반클리프 아펠 등 시계·다이아몬드 중심의 하이엔드 주얼리가 대표적이다. 특히 에르메스는 중동 여파에도 주가 하락폭이 다른 브랜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는데, 이는 경기 침체나 전쟁 시기에도 가격 방어력이 뛰어나다는 신뢰가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에 반해 중간급 명품 브랜드들은 실적이 정체 내지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