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 월드컵 덮친 ‘美 출입국 리스크’, FIFA 개최국 검증기준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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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 손에 쥐고도 미국행 포기 선수단·심판까지 번진 입국규제 월드컵 흔든 국경정책 후폭풍

미국의 강경한 입국 정책이 '2026 북중미 월드컵'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 일부 국가 팬들은 티켓을 구매하고도 미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으며, 참가 선수단과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심판까지 비자와 입국 규제에 발목이 잡히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개최국의 국경 정책이 월드컵 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현실화되면서 대회 공정성과 흥행을 둘러싼 우려도 커지는 분위기다.
국적 따라 갈린 관람권
10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이 분석한 자사 월드서비스 여행데이터에 따르면 이번 월드컵 본선 진출국 가운데 4분의 1 이상은 미국 입국이 금지되거나 강화된 조치로 비자 발급에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이다. 아이티, 이란,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국민들은 자국팀이 본선에 진출했지만 미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 관람은 불가능하다. 미국이 이들 나라 국민에게 월드컵 관광에 필요한 비자 발급을 허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라크처럼 비자 발급이 가능하지만 실질적으로 미국 방문이 막힌 나라도 있다. 미국은 중동 전쟁 발발 후 안보 우려로 이라크 내 영사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이는 이라크인이 미국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라크인 압둘라 아드난은 지난 3월 말 이라크 축구 대표팀이 1986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획득하자 곧바로 경기 티켓을 구매했지만 결국 미국 여행을 포기했다. 그는 자국 내에서 비자를 받을 수 없어 요르단까지 넘어가 현지 미국 대사관에 비자 발급을 신청했으나, 요르단 국민이 아니면 발급이 어렵다는 답변만을 들었을 뿐이다.
보통 비자 대신 전자여행허가(ESTA)만 있으면 미국에 입국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 팬들 중 일부도 미국 방문에 차질을 겪고 있다. 일부 팬들은 항공편 탑승을 앞두고 ESTA 상태가 갑자기 ‘승인’에서 ‘여행 승인 불가’로 바뀌면서 올림픽 관람 일정 차질과 비용 손실이 발생했다. 미국 비자 발급이 가능한 나라의 팬들도 불만은 마찬가지다. 유럽 등 일부 선진국 국민들은 미국과 맺은 비자면제 프로그램에 따라 ESTA를 신청하고 수수료로 40달러(약 6만원)만 지불하면 된다. 하지만 ESTA 신청이 불가능한 국가 국민들은 비자 신청 수수료에 185달러(약 28만원)를 써야 한다. 대면 인터뷰도 거쳐야 한다는 수고스러움은 덤이다.
복잡한 신청 절차를 밟아 비자를 신청한다고 해서 모두 미국 땅을 밟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신청 후 알 수 없는 이유로 비자 발급이 거절되는 경우도 허다하고 미국에 도착한 후 입국을 거부당한 경우도 많다. 요르단 축구팬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아부 카스는 비자 발급을 위해 미국 대사관에 42개가 넘는 증빙 서류를 제출했지만 결국 비자를 받지 못했다. 카스 회장은 "이번 북중미 월드컵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팬협회 회장조차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는데 도대체 누가 받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이란 대표팀에는 당일 비자, '아프리카 넘버1' 심판은 입국 불허
월드컵에 참가하는 선수단은 물론 FIFA가 배정한 공식 심판도 비자 장벽에 맞닥뜨렸다. 이란 대표팀의 경우 비자 문제로 경기 당일 비행기로 출퇴근하며 월드컵을 치르게 생겼다.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미국에서 치르는 이란은 멕시코에 베이스캠프를 꾸렸는데 미국이 이란 선수단에게 경기 당일에만 체류가 가능한 비자를 발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볼파즐 파산디데 멕시코 주재 이란 대사는 "이렇게 장거리 왕복을 자주 하게 되면 선수들이 피곤할 수밖에 없다"며 "이동 문제와 시간 손실이 우리 대표팀의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FIFA가 월드컵 공식 심판으로 배정한 최고의 심판이 입국을 거부당해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소말리아 출신 1호 월드컵 심판' 오마르 아르탄은 미국 입국을 거부당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도 '이번 월드컵에서 심판을 맡을 예정이었던 한 소말리아 국적자가 이스탄불발 비행기를 타고 마이애미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입국이 거부됐다'고 확인했다. CBP의 성명서에는 당사자의 실명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번 월드컵 심판 중 소말리아 국적자는 아르탄이 유일하다.
2018년부터 FIFA 심판으로 활동한 아르탄은 지난해 '아프리카축구연맹(CAF) 올해의 심판'으로 선정된 아프리카 최고의 포청천이다. 그는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소말리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심판을 맡게 됐다. 미국 비자를 취득하고 나이로비 주재 소말리아 대사관에서 외교관 여권까지 발급받았지만 CBP는 아르탄이 마이애미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입국을 불허, 곧바로 이스탄불행 귀국편 비행기에 탑승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결정이 나온 배경에는 미국과 소말리아의 불편한 외교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소말리아는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목한 여행 금지 조치 대상국 중 하나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트럼프가 그동안 꾸준히 소말리아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 왔다”면서 “지난 1월에는 ‘세계 최악의 국가’라 지칭했고, 지난달에는 소말리아 출신 이민자들에 대해 ‘모두 사기꾼들’이라며 험담한 적도 있다”고 보도했다. CBP는 “해당 여행자(아르탄 심판)가 월드컵 심판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면서도 “입국 직후 실시한 추가 조사 과정에서 필요한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고만 밝혔다.
월드컵 흔든 美 비자 장벽
이번 사태는 FIFA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돌아가게 됐다. FIFA는 그동안 경기장과 교통망, 숙박시설 등 물리적 인프라를 중심으로 개최국을 평가해 왔지만, 북중미 월드컵은 여기에 새로운 변수를 추가했다. 개최국의 출입국 정책이 대회 흥행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이다. FIFA는 이미 2030년 월드컵을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에, 2034년 월드컵을 사우디아라비아에 맡긴 상태다. 특히 2030년 대회는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공동 개최 방식으로 치러진다. 개최국 가운데 어느 한 곳이라도 입국 심사를 강화할 경우 관람객과 관광 수요는 다른 개최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공동 개최 체제에서는 국가별 정책 차이가 곧 경쟁력 차이로 연결된다. 특정 개최국이 입국 심사를 강화하거나 일부 국적자에 대한 제한 조치를 확대할 경우 관중 유입과 관광 수요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개최국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 동일한 월드컵 개최국임에도 접근성 격차가 발생하는 셈이다. 이는 개최 도시별 흥행 성과와 경제 효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공동 개최의 장점으로 꼽히는 수요 분산 효과가 오히려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FIFA 입장에서도 이는 흥행과 직결되는 문제다. 월드컵은 특정 국가의 국내 이벤트가 아닌 전 세계 축구팬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상품'이다. 국적에 따라 관람 기회가 달라지고 이동 장벽이 높아지면 티켓 판매와 관광 수요, 스폰서 노출 효과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논란이 반복될 경우 FIFA의 개최지 선정 기준도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한 스포츠 정책 전문가는 "월드컵은 글로벌 이벤트인 만큼 개최국의 비자 정책도 대회 운영의 일부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며 "FIFA 역시 이를 중요한 리스크 요인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