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정관변경, 출석 의결권 3분의 2 찬성 필요 의결권 자문기관은 형제 측 손 들어줘 플래그십 스토어 두고 비난전 계속
국민연금이 오는 28일 열리는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주총회에서 중립 입장을 지키기로 했다. 그간 경영권 확보를 놓고 우군 확보에 열을 올리던 창업주 일가의 갈등은 이제 서로를 향한 비난으로 얼룩지는 양상이다.
여타 주주 찬반 비율 맞춰 의결권 행사
27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전날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총에서 ‘중립’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이 보유한 의결권은 나머지 주주들의 찬반 비율에 맞춰 나눠 행사된다. 예컨대 여타 주주들이 주총 안건에 대해 찬성 60%, 반대 40%로 나뉘면 국민연금도 의결권 중 60%를 찬성에, 40%를 반대에 투표하는 식이다.
앞서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임주현 한미그룹 부회장,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등 ‘3자 연합’은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정원을 기존 10명에서 11명으로 확대하는 정관 변경안을 제안한 바 있다. 현재 3자 연합 측 4인과 형제(임종윤 사내이사·임종훈 대표) 측 5인으로 구성된 이사회 구성을 6대 5로 재편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반적 이사 선임안의 경우 주총 출석 의결권의 과반 찬성으로 의결되지만, 정관변경 안은 주총 특별결의 대상으로 출석 의결권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한미사이언스 지분 5.89%를 보유해 ‘캐스팅 보트’로 꼽혀 온 국민연금이 중립을 선언함에 따라 개인 최대 주주 신 회장을 비롯한 3자 연합과 형제 측 셈법도 복잡해질 전망이다. 지난달 22일 주주명부 폐쇄 기준으로는 3자 연합이 우호 지분 33.78%로 이사회 개편에 반대하는 형제 측(25.62%)을 앞서고 있다. 여기에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3자 연합의 손을 들어준 가현문화재단(5.02%)과 임성기재단(3.07%)이 노선을 바꾸지 않는다면 3자 연합의 우호 지분은 41.87%에 이른다.
“특정 주주 위한 이사회 규모 변경은 반대 사유”
전문가들은 이사회 의석을 늘리자는 3자 연합의 제안이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기업의 중장기적 성장 또는 주주들의 이익과는 관련이 없다는 지적이다. 국내 의결권 자문기관 서스틴베스트(서스틴)는 이달 25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당사 지침에 따르면 전체 주주가 아닌 특정 주주를 위한 이사회 규모 변경은 반대 사유에 해당한다”며 “한미사이언스의 정관변경 안건은 전체 주주 관점에서 주주가치 증대를 위한 것이 아닌, 특정 주주를 위한 것으로 판단되므로 반대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서스틴 외에도 ISS, 글래스루이스 등 지금까지 보고서를 공개한 모든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이 이번 정관변경 안에 반대를 권고했다. 이와 관련해 한미사이언스 관계자는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이사회 정원도 10명이다”고 짚으며 “신 회장 등의 정관변경 의도는 이사회를 통한 경영권 장악이 분명한데, 이같은 시도가 모든 주주를 위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해 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고소·고발 난무, ‘역대급’ 집안싸움
이런 가운데 한미그룹 창업주 일가의 갈등은 한층 심화하는 모습이다. 이번엔 유통 계열사 온라인팜과 가로수길 예화랑 건물 임대차 계약이 문제가 됐다. 해당 계약은 지난해 수립된 한미그룹의 중장기 계획에 담긴 컨슈머헬스(건강기능식품·화장품 판매 등) 관련 플래그십 스토어 운영에 대한 계약으로, 임대차 보증금은 48억원, 월세는 4억원에 달한다. 임대차 기간은 20년이며, 보증금 48억원을 선입금한다는 내용도 계약서에 포함됐다.
한미사이언스는 임 부회장과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 박명희 한미약품 사내이사, 우기석 온라인팜 대표, 김남규 라데팡스파트너스 대표 등 5인이 법률 자문을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의 권고 사항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태평양이 임대차 보증금의 약 10%(4억8,000만원)를 먼저 지급하고 나머지 잔금은 입주 공사 개시 직전 지급할 것과 중도해지 및 임대료·관리비 인상률 조정을 권고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에 한미사이언스는 지난 18일 이들 5인을 배임·횡령 및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형제 측은 해당 사업 추진과 관련해 제대로 된 보고가 없었다는 점 또한 지적했다. 임종윤 이사 측근은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어떤 제품을 판매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미약품 측은 올해 5월 플래그십 스토어 운영 계획을 구체적으로 보고했다는 입장이다. 해당 보고 안에는 형제 측이 의혹을 제기한 예화랑 관련 임대차 계약 내용을 비롯해 한미약품 홍보관 및 제품별 스토어 디자인 등 구체적인 내용이 모두 포함됐다는 설명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예화랑 임대와 관련한 내용을 비롯해 플래그십 스토어 활용 방안 등이 구체화된 보고서를 지난 5월 제출했다”며 “사업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한미약품은 지난 26일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소하고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