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세계 최대 자산관리 허브 된 홍콩, 中 자본 통제에 성장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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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본토 자금 해외 유출 사상 최대, 불법 자산 은닉 우려 확산 역외 신탁 소득세 20% 부과·무허가 증권사 제재로 투자 위축 합법적 투자 통로 확대·정책 예측 가능성 확보가 향후 관건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지난해 말 홍콩의 비거주자 수탁자산은 2조9,500억 달러(약 3,909조원)로 스위스의 2조9,400억 달러(약 3,896조원)를 근소하게 제치고 세계 최대 역외 자산관리 허브로 올라섰다. 그러나 홍콩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중국 본토 자금에는 합법적인 투자금뿐 아니라 부패로 축적된 자산도 포함될 수 있어 중국 정부로서는 이러한 성과를 마냥 반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본토 투자자에게 무허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 단속에 나선 데 이어 역외 신탁에 20%의 소득세를 부과했다. 금융시장 개방이 홍콩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불법 자금의 해외 은닉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무역 결제는 허용, 해외 자금 이동은 통제
수출 주도형 경제국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해외 자금 이동에 대한 규제를 점차 완화하는 경향이 있다. 1980년대 초 일본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대표적이다. 대외무역이 확대될수록 안정적인 대금 결제와 자유로운 송금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금융시장 개방 압력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러한 압력에 대응해 절충안을 택했다. 1996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 협정 제8조에 따른 의무를 수락하면서 수출입 대금 결제를 위한 위안화 환전은 허용한 반면 해외 투자 목적의 자금 이동에 대해서는 엄격한 통제를 유지해 왔다. 기업의 무역 거래에는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개인의 해외 자산 투자는 1인당 연간 5만 달러(약 6,625만원)의 외환 매입 한도로 묶어두는 방식이다. 이러한 통제 체제는 무역 상대국의 요구를 충족하면서도 자본 유출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약 30년간 유지됐다. 특히 중국 경제가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던 시기에는 투자자들 역시 자금을 해외로 옮길 이유가 적었다.
그러나 해외 투자 수요가 늘면서 자본 통제의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가계·기업·금융기관의 해외 자금 이전 규모는 사상 최대인 8,070억 달러(약 1,069조원)에 달했다. 해외 주식 투자에 따른 자금 유출은 전년 대비 67% 증가한 2,080억 달러(약 276조원), 해외 채권 투자에 따른 유출은 75% 늘어난 1,530억 달러(약 203조원)를 기록했다. 자금 일부는 합법적인 경로로 이동했지만 보험사와 신탁, 무허가 증권사 등 규제의 사각지대를 활용한 거래도 이어졌다. 이처럼 해외 투자 수요가 확대된 상황에서 자금 이동 규제를 전면 철폐하면 대규모 자본 유출로 위안화 가치와 외환보유액이 압박받을 수 있다. 실제로 2014년 중반부터 2017년 초까지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1조 달러(약 1,325조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 통제와 맞물린 시진핑의 반부패 정책
중국 정부가 해외 자금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데에는 경제적 이유뿐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 부유한 기업인과 부패 관료들은 수사나 정치적 변화로 자산을 압류당할 가능성에 대비해 재산을 해외 계좌로 옮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게 자유로운 자본 이동은 자산을 은닉하고 해외로 도피할 수 있는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중국 당국도 지난 10년간 적발된 주요 부패 사건에서 불법 자금이 해외 계좌와 부동산, 기업 등으로 흘러 들어간 사실을 확인해 왔다. 이에 시진핑 주석이 2012년 집권 이후 추진해 온 반부패 운동은 일회성 단속을 넘어 국가 운영의 상시적인 통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징계 인원은 98만3,000명으로 전년(88만9,000명)보다 증가했다. 성·부처급 고위 관료 조사 대상도 115명으로 전년보다 42명 늘었다. 같은 기간 국경 간 부패 사건 505건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으며, '스카이넷 2025(Sky Net 2025)' 작전과 별도의 자산 환수 활동을 통해 해외 도피자 963명이 송환됐다. 이러한 반부패 정책을 유지하려면 국경을 넘나드는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해외 자금 이동을 전면 자유화하면 부패 자산의 국외 은닉을 차단하기 어려워진다. 중국 지도부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금융시장 개방을 약속하면서도 자본 통제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홍콩 자산관리 시장의 성장과 불법 자금 유입
중국의 자본 통제와 반부패 정책이 맞물리는 대표적인 곳이 홍콩이다. 1997년 중국 반환 이후에도 영미법 체계인 보통법과 자유로운 외환 거래, 발달한 금융 시스템을 유지해 온 홍콩은 중국 본토 자금의 해외 투자 통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개방성은 불법 자산을 해외에 은닉하는 데도 악용될 수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억만장자 샤오젠화 투모로우홀딩스 회장 사건이다. 그는 2017년 1월 홍콩 포시즌스호텔에서 중국 본토로 연행된 뒤, 2022년 8월 징역 13년을 선고받았으며 투모로우홀딩스에는 550억3,000만 위안(약 10조9,323억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투자 유치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중국과 홍콩 당국은 해외 자금 이동에 대한 규제를 점차 완화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2024년 2월 개정된 '웨일스매니지먼트 커넥트(Wealth Management Connect)'를 통해 개인 투자 한도가 기존 100만 위안(약 1억9,866만원)에서 300만 위안(약 5억9,598만원)으로 세 배 확대됐으며 증권사의 참여도 가능해졌다. 이후 중국 본토 투자자들의 홍콩 주식 매입이 늘면서 지난해 7월 증권 투자 목적의 순자본 유출액은 583억 달러(약 77조2,475억원)로 2010년 이후 월간 최대치를 기록했다. 홍콩의 생명보험 판매액도 지난해 전년 대비 50% 증가한 420억 달러(약 55조6,500억원)로 사상 최고 수준을 보였다.
합법적인 투자 경로가 확대되는 동안 불법 자금 이동도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홍콩 세관은 허위 무역 거래를 통해 89억 홍콩달러(약 1조5,039억원)를 세탁한 혐의로 5인 조직을 적발했다. 푸투(Futu), 타이거브로커스(Tiger Brokers), 롱브리지(Longbridge) 등 증권사들도 중국 본토 거주자에게 필요한 허가 없이 투자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지목됐다. 문제는 정상적인 해외 투자와 부패 자금의 은닉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로서는 홍콩을 통한 자금 이동을 허용하면서도 불법 거래를 차단할 수 있는 규제 수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 단속 강화에도 싱가포르 반사이익은 제한적
이러한 우려가 커지자, 중국 정부는 금융 규제 강화에 나섰다. 지난 5월에는 본토 투자자에게 무허가 금융서비스를 제공한 해외 법인과 관련 중국 내 은행을 제재하고 불법 수익을 몰수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어 7월 말에는 역외 신탁 소득에 20%의 세금을 부과하는 한편 2023년 1월 이후 신탁으로 이전한 자산의 미납 세금에 대해서는 90일 이내 신고를 의무화하는 조치가 뒤따랐다. 홍콩 금융권도 영업 활동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일부 자산관리사는 임직원의 중국 본토 출장을 제한하고 현지 고객 대상 행사를 중단했으며, 중국의 한 대형 자산관리사는 홍콩 자회사에 고객을 소개한 직원에게 지급하던 수수료를 폐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의 금융·기업 전문 분석 매체인 브레이킹뷰스(Breakingviews)는 이번 규제 강화로 분석 대상 은행들의 이익 가운데 26억 달러(약 3조4,450억원)가 감소할 위험이 있다고 추산했다. 이는 해당 은행들이 지난해 홍콩과 중국 본토에서 거둔 이익의 10~20%에 해당한다.
중국 정부의 이와 같은 단속 강화로 홍콩 자산의 싱가포르 이전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규모 자금 이탈을 뒷받침할 근거는 부족하다. 중국의 새로운 역외 신탁 과세 규정은 신탁 설립 지역과 관계없이 중국 거주자의 소득에 적용되므로 싱가포르로 자산을 옮기더라도 세제상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 싱가포르 역시 불법 자금 유입을 막기 위해 금융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2023년 8월 불법 도박과 연계된 30억 싱가포르달러(약 3조1,090억원) 규모의 자금세탁 사건이 적발된 이후 자금 출처 심사가 까다로워지면서 패밀리오피스 설립 승인에 1년 이상 소요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싱가포르는 홍콩을 대체할 유력한 선택지로 남아 있다. 싱가포르 당국은 6주 이상 걸리던 계좌 개설 기간을 한 달 미만으로 단축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으며 일부 자산관리 자문사들은 중국 당국의 통제를 피하기 위해 현지 기업과의 합작법인 설립도 검토 중이다.
명확한 규제와 투명한 자금 관리 필요
싱가포르로의 자금 이탈을 막고 세계 최대 역외 자산관리 허브 지위를 유지하려면 홍콩은 불법 자금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동시에 합법적인 투자 경로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단순한 서류 심사를 넘어 무역 송장과 실제 화물 운송 내역을 대조하고 기존 자동 정보교환 체계를 활용해 중국 본토 세무당국과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등 자금 출처에 대한 실질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규제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거래를 제도권으로 유도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투자 한도 상향과 금융상품 확대, 적용 지역 확장 등을 포함한 웨일스매니지먼트 커넥트 3차 개정안을 발표했다. 홍콩 정부도 2028년까지 최소 220개의 패밀리오피스를 새로 유치하거나 기존 업체의 사업 확장을 지원할 계획이다. 합법적인 투자 수단이 다양해질수록 불투명한 경로를 통한 자금 이동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홍콩의 제도 개선만으로 투자자들의 불안을 해소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 정부가 국경 간 자금 이동을 어디까지 제한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 더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Natixis)의 경제학자들도 지난 6월 이러한 규제 불확실성을 홍콩 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로 지목했다. 따라서 중국 정부 역시 합법적인 해외 투자와 부패 자금의 유출을 명확히 구분하고 일관된 규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는 이미 운영 중인 '스톡커넥트(Stock Connect)'와 웨일스매니지먼트 커넥트가 꼽힌다. 두 제도는 자금 이동 범위와 투자 조건이 정해져 있어 당국이 거래를 감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웨일스매니지먼트 커넥트의 적용 범위를 기존 웨강아오 대만구(Greater Bay Area)에서 상하이와 베이징까지 확대할 경우 중국 정부는 자본 이동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면서 본토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 수요도 일정 부분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홍콩의 경쟁력은 불법 자금 유출을 차단하면서도 합법적인 투자에 대한 신뢰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중국 정부가 명확하고 안정적인 규제 체계를 마련한다면 홍콩은 국제금융 중심지로서의 입지를 유지할 수 있지만 단속과 규제 변경이 반복되면 투자자들이 싱가포르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정책의 효과는 역외 신탁에 대한 미납 세금 신고 기한이 만료되는 올가을 이후 구체화될 전망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Beijing’s Dilemma Over Hong Kong’s Wealth Hub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