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 압박에 오라클·텐센트 계약 취소, 동남아 데이터센터 투자 불확실성 확대
입력
수정
중국 AI 칩 조달 차단 나선 미국, 해외 거래 압박 확대 대규모 임대 계약 무산되며 중국 수요 유치 계획 차질 동남아 데이터센터, 신규 고객 확보 지연 땐 투자 회수 장기화

미국이 중국의 첨단 인공지능(AI) 칩 확보 경로를 강하게 조이고 있다. 미국 정부의 압박에 따라 오라클이 텐센트와 맺은 대규모 칩 임대 계약을 취소한 데 이어 엔비디아도 클라우드 고객사에 중국 기업과의 신규 거래 비중을 제한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3국을 거쳐 AI 서버를 중국에 불법 공급한 이들에 대한 사법 처리도 진행 중이다. 중국 빅테크의 임대 수요를 기대하고 시설을 늘려 온 동남아시아 사업자들은 대체 고객 확보와 투자금 회수 부담을 함께 안게 됐다.
70억 달러 AI 칩 임대 거래 무산
5일(이하 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와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클라우드 기업 오라클은 최근 중국 빅테크 기업 텐센트와 맺은 70억 달러(약 9조3,800억원) 규모의 AI 칩 임대 계약을 취소했다. 양사가 올해 체결한 이 계약은 텐센트의 해외 임대 계약 가운데 최대 규모로, 동남아의 오라클 데이터센터를 통해 대규모 AI 연산 자원을 확보하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 9월 말 계약 규모와 주요 조건이 처음 알려졌으며, 당시 텐센트는 AI 모델 개발과 서비스 확대에 필요한 컴퓨팅 자원에 투자를 늘리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계약 체결 사실이 공개된 지 약 한 달 만에 거래가 무산됐다는 소식이 나온 것이다.
당초 계약은 텐센트가 동남아 여러 데이터센터에 설치된 첨단 AI 칩을 최대 10만 개까지 5년간 이용하도록 설계됐다. 오라클이 운영하는 해외 시설의 칩에 접속해 연산 자원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텐센트는 이를 AI 모델과 에이전트 개발 등에 활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규모 칩 물량을 장기간 빌려 AI 개발에 활용하려던 이번 계약이 취소되면서 해당 연산 자원 확보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게다가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칩 이용 물량을 확보하는 거래인 만큼, 대금 지급 조건에도 상당한 선급금이 포함돼 있었다. 계약 당시 알려진 선급금 비중은 전체 금액의 약 30%로, 총액 70억 달러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21억 달러(약 2조8,140억원)에 이른다.
미국, 중국행 AI 연산 서비스까지 압박
이번 계약 취소에는 미국 정부의 압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계약 사정에 밝은 관계자 2명에 따르면 미국 당국자들은 오라클에 직접 접촉해 텐센트와의 거래에 우려를 전달했고, 이후 계약이 취소됐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의 첨단 AI 칩 수출통제로 자국 내 조달이 어려워지자 해외 데이터센터의 연산 자원을 빌려 쓰는 방식을 활용해 왔다. 칩이 중국으로 반입되지 않아도 해외 서버에 원격으로 접속하면 AI 학습에 필요한 성능을 이용하는 구조다. 해외 임대 거래는 현행 규정상 허용돼 왔지만, 미국 정부는 중국 기업에 첨단 연산 자원을 제공하는 클라우드 업체에도 거래 축소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고객의 해외 연산 자원 이용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은 엔비디아의 거래 조건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3일 AFP통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자사 칩을 사용하는 클라우드 고객사들에 전체 서비스의 최소 51%를 중국 이외 기업에 판매하도록 요구했다. 중국 고객에게 배정하는 서비스 비중을 절반 미만으로 제한하는 조건으로, 적용 대상은 향후 체결하는 신규 계약이다. 해당 요구는 서면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고 구두로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관련 질의에 미국산 칩으로 구축한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가 미국 AI 기업의 세계 시장 경쟁을 뒷받침하는 기반이라는 입장만 내놨다.
표1. 첨단 AI 서버 중국 우회 반출 사건의 사법 처리·은폐 수법
| 구분 | 주요 항목 | 내용 |
|---|---|---|
| 사법 처리 | 관련자 기소 | 지난 3월 슈퍼마이크로 전 계약업자 윌리 쑨·공동창업자·대만 사무소 영업 담당자 등 3명 기소 첨단 AI 서버 중국 불법 반출 관여 혐의 |
| 쑨 유죄 인정 | 지난달 8일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유죄 인정 수출통제 위반 공모·밀수 공모·사법 방해 등 4개 혐의 | |
| 거래 규모 | 동남아 업체 구매액 | 2024~2025년 서버 구매 25억 달러(약 3조3,500억원) 수사 대상 거래에 동원된 업체 기준 |
| 중국 반출액 | 지난해 4월 말~5월 중순 약 3주간 최소 5억1,000만 달러(약 6,830억원) 미국 검찰 파악 물량 기준 | |
| 반출·은폐 수법 | 최종 사용처 위장 | 동남아 업체의 직접 사용으로 구매 서류 위장 미국 조립 서버를 대만·동남아 경유 중국 고객에게 전달한 혐의 |
| 운송 내용물 은폐 | 물류업체를 통해 표시 없는 상자로 서버 재포장 | |
| 모형 서버로 점검 대응 | 실제 서버 반출 후 창고에 작동하지 않는 모형 서버 수천 대 배치 헤어드라이어로 라벨·일련번호 스티커를 떼어 모형 서버·상자에 옮겨 붙이는 모습 포착 제조사 재고 점검 대비·일부 모형은 미국 상무부 현장 검사에도 사용 |
동남아 경유 AI 서버 불법 반출 적발
미국 정부는 중국 기업의 해외 클라우드 이용을 압박하는 동시에, 제3국을 거쳐 AI 서버를 중국에 몰래 공급한 이들에 대한 사법 처리도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슈퍼마이크로컴퓨터의 전 계약업자 윌리 쑨은 지난달 8일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수출통제 위반 공모와 밀수 공모, 사법 방해 등 4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앞서 미국 검찰은 올해 3월 쑨과 슈퍼마이크로 공동창업자, 대만 사무소 영업 담당자 등 3명을 첨단 AI 서버의 중국 불법 반출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수사 대상 거래에 동원된 동남아 업체가 2024~2025년 구매한 서버는 25억 달러(약 3조3,500억원) 규모다. 검찰이 파악한 중국 반출 물량은 지난해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약 3주 동안에만 최소 5억1,000만 달러(약 6,830억원)에 달했다.
우회 반출에는 최종 사용처를 숨긴 서류와 현장 점검을 속이기 위한 가짜 서버까지 동원됐다.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공소장에 따르면 피고인들은 동남아 업체가 서버를 직접 사용할 것처럼 구매 서류를 꾸몄으며, 미국에서 조립된 서버를 대만과 동남아를 거쳐 중국 고객에게 넘긴 혐의를 받는다. 운송 과정에서는 물류업체를 통해 서버를 표시 없는 상자에 재포장해 내용물을 감췄다. 특히 실제 서버를 중국으로 보낸 뒤에는 창고에 작동하지 않는 모형 서버 수천 대를 배치해 제조사의 재고 점검에 대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쑨 등이 헤어드라이어로 라벨과 일련번호 스티커를 떼어 모형 서버와 상자에 옮겨 붙이는 모습도 감시카메라에 포착됐으며, 일부 모형은 미국 상무부의 현장 검사에도 사용됐다.
표2. 첨단 서버의 동남아 공급·중국 반출 정황
| 구분 | 거래 경로·주체 | 주요 내용 |
|---|---|---|
| 동남아 장비 공급 | 인스퍼 미국 자회사 아이브레스 미국 → 동남아 | 2024년 4월~올해 2월 장비 수출 최소 56억 달러(약 7조5,040억원) 블랙웰 칩 탑재 컴퓨터·관련 장비 30억 달러(약 4조200억원) 이상 |
| 동남아 데이터센터 알리바바·바이트댄스 등 고객사 | 중국 기업 대상 연산 서비스 제공 시설 포함 중국 기업의 해외 시설 접속·첨단 칩 이용 지원 | |
| 말레이시아 경유 반출 | 인스퍼 계열사 거래업체 등 말레이시아 → 중국 매그인프라 | 6개월간 서버 수입 7억 달러(약 9,380억원) 이상 1,500대 이상 납품 단가가 고성능 AI 서버 가격대에 해당 첨단 장비 우회 반출 의혹 제기 |
| 인도네시아 경유 반출 | 일본·인도네시아 → 중국 엔비디아·슈퍼마이크로 직원 등 | B300 칩 탑재 서버 74대 중국 반출 혐의 지난 8월 대만 검찰, 관련자 9명 기소 엔비디아 매니저 등 핵심 피고인 4명 징역 5년 구형 |
미국 자회사 통해 동남아 장비 공급
동남아를 통한 첨단 서버 조달 정황은 중국 인스퍼의 해외 거래망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9월 6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인스퍼는 미국의 수출규제 대상에 오른 뒤 규제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미국 자회사 아이브레스를 통해 첨단 장비를 공급해 왔다. 선적 기록상 아이브레스가 2024년 4월부터 올해 2월까지 미국에서 동남아로 수출한 장비는 최소 56억 달러(약 7조5,040억원) 규모로, 이 중 30억 달러(약 4조200억원) 이상이 엔비디아 블랙웰 칩 탑재 컴퓨터와 관련 장비였다. 장비를 공급받은 곳에는 알리바바와 바이트댄스 등 중국 기업에 연산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남아 데이터센터들이 포함됐다. 중국 기업들이 현지 시설에 접속해 첨단 칩을 이용하도록 해외 자회사가 장비 공급을 뒷받침한 구조다.
동남아시아에 공급된 서버가 중국으로 재반출된 정황도 포착됐다. NYT와 무역정보업체 임포트지니어스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업체 매그인프라는 인스퍼 계열사와 거래하는 업체 등을 통해 6개월간 말레이시아에서 7억 달러(약 9,380억원) 이상의 서버를 수입했다. 이 가운데 1,500대 이상은 납품 단가가 고성능 AI 서버 가격대에 해당해 첨단 장비의 우회 반출 의혹이 제기됐다. 인도네시아를 경유한 서버 거래에서는 관련자들이 기소되기도 했다. 지난 8월 대만 검찰은 엔비디아와 슈퍼마이크로 직원 등 9명을 B300 칩 탑재 서버 74대를 일본과 인도네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보낸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 매니저 등 핵심 피고인 4명에게는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중국 수요 제한에 동남아 데이터센터 투자 회수 부담
미국의 대중국 AI 칩 통제 강화는 동남아 데이터센터의 투자금 회수에도 부담을 줄 전망이다. 현지 시설 확충을 뒷받침해 온 중국 빅테크의 임대 수요가 제약을 받으면서다. 지난 8월 차이신이 인용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태국에서 승인된 1.5기가와트(GW) 규모의 데이터센터 사업 가운데 중국계 투자와 연관되거나 중국 기술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둔 사업은 60~70%에 달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브리지데이터센터가 조호르에 조성한 110메가와트(MW) 규모 단지의 핵심 임차인은 바이트댄스였다. 중국 기업들이 대규모 시설을 채울 고객 역할을 해온 만큼, 이들의 신규 계약이 막히면 예정된 증설 물량의 임대 수입에도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 기업을 대신할 고객 확보도 여의치 않다. 지난 3일 FT 취재에 응한 싱가포르의 한 클라우드 업체는 미국 밖에서 중국 이외 고객을 충분히 찾기 어렵다고 호소하며, 거래 제한이 엄격하게 적용되면 사업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건설 중인 데이터센터까지 가동을 시작하면 추가 임대 수요를 확보해야 하는 부담도 커진다. 글로벌 종합 부동산 서비스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아시아·태평양에서 건설 중인 데이터센터 용량 4.8GW의 약 절반이 동남아에 집중돼 있다. 이 가운데 말레이시아 조호르와 태국 방콕에서 공사 중인 물량만 각각 602MW와 859MW에 달했다. 시설이 완공된 뒤에도 이를 이용할 고객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경우 임대료 수입이 당초 예상에 못 미치고, 이미 투입한 건설비를 회수하는 데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