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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산업에 돈 푸는 유럽, 전략 부족에 美 기업 공세까지 ‘이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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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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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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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반도체·AI 자립 목표로 투자 확대
자금 부족에 지원 분산 겹쳐 성과 불확실
美 기업까지 시장 공략 가세, 역내 경쟁 부담 가중

유럽연합(EU)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의 자립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 확대에 나섰다. 반도체 설계 기업에 개발 자금과 도구를 지원하고 대규모 연산시설을 구축해 미국·중국에 뒤처진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역내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할 자금이 부족하고 지원 체계도 분산돼 있어 투자 성과를 둘러싼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엔비디아·앤트로픽·AMD 등 미국 기업들이 유럽의 AI 수요를 선점하려 나서면서 현지 기업들의 경쟁 부담도 커지는 실정이다.

칩 설계부터 상용화까지 EU 지원 확대

4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과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EU는 반도체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총 5억2,500만 유로(약 7,91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집행위와 회원국이 4억4,000만 유로(약 6,630억원)의 보조금을 마련해 스타트업의 상업용 칩 개발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나머지 8,500만 유로(약 1,280억원)는 이날 출범한 ‘유럽 칩 설계 플랫폼’에 배정됐다. 플랫폼은 설계 소프트웨어와 기술 지원 서비스, 반도체 설계에 활용하는 지식재산(IP) 블록을 제공하고 제조시설 이용도 연결한다. 특히 창업 초기 기업이 개별적으로 확보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크고 접근도 어려운 설계·제조 자원을 한곳에 모아 제품 개발을 뒷받침하도록 설계됐다.

이번 지원에는 유럽의 취약한 반도체 설계 기반을 키워 역내 생산시설의 수요까지 확보하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집행위에 따르면 세계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매출에서 유럽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이다. 집행위는 유럽에 새로 들어서는 반도체 생산시설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충분한 제조 수요가 필요하며, 유럽 설계 기업들이 그 수요의 상당 부분을 담당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헤나 비르쿠넨 집행위 기술주권·안보·민주주의 담당 수석부위원장도 플랫폼 출범식에서 설계 생태계 육성이 제조시설 수요 창출과 역내 공급망 강화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에 플랫폼은 기업 성장 단계에 맞춰 초기 스타트업에는 최대 10만 유로(약 1억5,000만원), 성장 궤도에 오른 스타트업에는 최대 1,600만 유로(약 240억원)의 지원을 제공하도록 구성됐다.

최대 7곳 AI 기가팩토리 조성 추진

반도체 설계 기업을 키우려는 EU의 움직임은 AI 개발에 필요한 연산 인프라 투자와 맞물려 있다. 집행위는 지난 7월 최대 7곳의 ‘AI 기가팩토리’를 조성하기 위한 사업자 공모에 착수했다. EU와 회원국이 최대 100억 유로(약 15조800억원)를 지원해 최소 200억 유로(약 30조1,600억원)의 민간 투자를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기가팩토리는 첨단 AI 프로세서와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스타트업과 연구기관 등에 대규모 AI 모델의 학습·추론에 필요한 연산 자원을 제공하는 시설이다. 특히 공공부문이 시설의 연산 자원 이용 물량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초기 수요를 확보해 민간 사업자의 투자 부담을 덜어주도록 했다. 집행위는 대규모 연산 수요를 바탕으로 유럽산 AI 프로세서의 설계와 향후 생산까지 촉진하겠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인프라 확충과 함께 공공부문 조달을 통해 유럽 기술 기업의 판로를 넓히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독일에서는 지난 3일 자국 클라우드 업체 아이오노스(IONOS)가 베를린·함부르크 등 6개 주의 학교를 대상으로 협업 플랫폼을 공급하는 4년짜리 기본계약을 확보했다. 계약 한도는 6,750만 유로(약 1,018억원)로, 참여 지역의 학교와 교육 당국이 필요에 따라 서비스를 도입하는 구조다. 플랫폼은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 넥스트클라우드의 오픈소스 기술을 기반으로 파일 저장과 문서 공동 편집, 의사소통 기능을 제공한다. 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사업인 만큼 서비스는 독일 내 데이터센터에서 운영되며, 아이오노스가 구축과 기존 데이터 이전, 운영을 맡는다. 이용 요금은 실제 사용자 수에 따라 5개 구간으로 나뉘고, 향후 다른 주도 계약에 참여하도록 길을 열어뒀다.

유럽 반도체 투자 확대 속 엔비디아 시장 공략

유럽산 반도체의 생산 기반을 보강하기 위한 재정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기업·메이드인이탈리아부에 따르면 지난달 국가투자진흥기관 인비탈리아는 싱가포르 반도체 기업 실리콘박스의 노바라 공장 건설 사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승인했다. 총 32억 유로(약 4조8,250억원)가 투입되는 사업으로, 공공 지원 규모는 13억 유로(약 1조9,600억원)다. 공장은 여러 개의 작은 반도체 조각인 ‘칩렛’을 하나의 패키지로 결합하고 성능을 검사하는 첨단 패키징·테스트 시설로 조성될 예정이다. 집행위는 이 시설이 AI와 데이터센터, 슈퍼컴퓨터 등에 쓰이는 반도체 개발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고, 앞서 유럽 반도체법에 따른 ‘개방형 EU 파운드리’ 지위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실리콘박스는 공장 건설 인허가와 행정 지원, EU 반도체 시험생산라인 우선 이용 등의 혜택을 받게 됐다.

유럽이 반도체와 AI 산업에 투자를 늘리자 엔비디아도 현지 스타트업 지원과 자사 칩 공급을 병행하며 시장 공략에 나섰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19일 베를린에서 열린 ‘인베스트 인 저머니 서밋’에서 로봇업체 애자일 로봇, 의료 소프트웨어 업체 아벨리오스 메디컬 등 독일 스타트업 4곳에 대한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유럽 기업과 대학·연구기관 등에 약 100억 달러(약 13조4,000억원)를 지원하는 내용이 골자다. 현지 기업의 AI 개발을 지원하면서 자사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고객층도 넓히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 투자 대상인 애자일 로봇은 엔비디아 칩을 기반으로 구축된 도이체텔레콤의 ‘산업용 AI 클라우드’를 이용하는 기업이다. 도이체텔레콤은 지난달 이 클라우드의 확장 계획을 밝혔으며, 엔비디아와 함께 로봇의 실시간 동작부터 대규모 AI 학습까지 자사 기술로 연결하는 시연도 진행했다.

표1. 유럽 반도체·AI 투자 확대의 제약 요인

구분주요 요인내용
반도체목표 달성 불확실성2030년 세계 시장 점유율 20% 목표 달성 난항 평가
설계·점검 체계 미흡영향평가 없이 반도체법 마련
기존 전략 실패 원인 분석 부족
사업별 목표·이행 점검 기준 불명확
재원 집행 분산2030년까지 관련 예상 투자 860억 유로
집행위 직접 담당 45억 유로, 약 5%
대부분 회원국·민간 기업 의존
사업·비용 부담대형 사업 취소·지연 시 전체 전략 영향 확대
높은 에너지 비용·원자재 확보 문제
AI자금·연산 자원 부족대규모 모델 개발에 필요한 연산 자원·자금력 보유 기업 부족
EU 금융시장의 대규모 자본 공급 한계
해외 투자 의존지난 10년간 EU 소재 AI 기업 유입 벤처투자
역내 자금 33%, 미국 자금 42%
미스트랄 자금 부담지난 9월 30억 유로 투자 유치
앞서 엔비디아 칩 구매에 8억3,000만 달러 차입
자료: 유럽회계감사원, 유럽투자은행(EIB), 마리오 드라기 유럽 경쟁력 보고서 등

유럽 기술 자립 가로막는 '전략' 부족

다만 유럽의 투자 확대가 역내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려면 지원 대상과 집행 체계를 정교하게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회계감사원은 반도체 전략 감사에서 EU가 2030년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감사원은 반도체법이 영향평가 없이 마련돼 앞선 산업 육성 전략의 실패 원인을 충분히 분석하지 않았으며, 사업별 목표와 이행 점검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고 짚었다. 재원 집행 역시 분산돼 있다. 2030년까지 예상되는 반도체법 관련 투자 860억 유로(약 129조6,880억원) 가운데 집행위가 직접 담당하는 몫은 약 5%인 45억 유로(약 6조7,860억원)로, 대부분을 회원국과 민간 기업에 의존하는 구조다. 감사원은 개별 대형 사업의 취소나 지연이 전체 전략에 미치는 영향이 큰 데다 높은 에너지 비용과 원자재 확보 문제도 투자 성과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AI 모델 개발에서도 연구 성과를 이어갈 장기 자금과 연산 자원 확보가 유럽 기업의 부담으로 남아 있다. 미스트랄 등 소수 기업이 유럽의 독자 기술 확보를 이끌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투자 기반은 취약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유럽투자은행(EIB)은 올해 투자보고서에서 대규모 AI 모델 개발에 필요한 연산 자원과 자금력을 갖춘 유럽 기업이 드물다고 진단했다. 지난 10년간 EU 소재 AI 기업에 유입된 벤처투자에서도 역내 자금은 33%에 그쳤고, 미국 자금이 42%를 차지했다. 미스트랄은 지난 9월 30억 유로(약 4조5,240억원)를 유치한 데 이어 지난달 신모델을 공개하며 기술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앞서 엔비디아 칩 구매에만 8억3,000만 달러(약 1조1,120억원)를 차입했을 만큼 개발 기반을 유지하는 데 드는 자금 부담이 크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유럽 경쟁력 보고서에서 미스트랄 같은 생성형 AI 기업에 필요한 대규모 자본을 EU 금융시장이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해외 투자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美 기업 공세까지 겹쳐

게다가 유럽 기업들이 자금과 연산 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미국 기술 기업들은 유럽 현지의 AI 도입 수요를 겨냥해 사업 기반을 넓히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달 말 앤트로픽은 영국 사모펀드 운용사 Hg와 유럽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AI 컨설팅 회사 설립에 합의했다. 연말 출범을 목표로 런던과 베를린에 거점을 마련하고, 고객사에 컨설턴트와 엔지니어를 파견해 AI 제품 개발과 업무 도입을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Hg가 투자한 기업들도 서비스 대상에 포함돼 현지 투자망을 통해 기업 고객을 확보할 통로가 마련된다. 앤트로픽으로서는 유럽 기업의 AI 전환 과정에 직접 참여해 자사 기술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막대한 데이터센터 투자 비용을 충당할 수익원도 확보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기업의 AI 활용을 뒷받침할 연산시설 구축에서도 미국산 반도체의 공급 기회가 늘고 있다. 프랑스 클라우드 업체 스케일웨이는 지난달 13일 스웨덴에 자사 첫 해외 AI 슈퍼컴퓨터를 구축하면서 미국 반도체 업체 AMD의 ‘인스팅트 MI355X’ 칩을 채택한다고 발표했다. 유럽 전역의 스타트업과 AI 기업에 연산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로, 스케일웨이는 유럽 최초의 AMD 기반 상업용 AI 슈퍼컴퓨터라고 설명했다. 조립과 유지보수는 프랑스 기업 불(Bull)이 맡으며, AMD는 자사 칩과 개발 소프트웨어 ‘ROCm’을 통해 현지 고객의 AI 개발을 지원한다. 이미 핀란드의 연구용 슈퍼컴퓨터 ‘루미’에 반도체를 공급해 온 AMD가 유럽의 상업용 AI 인프라로 고객 기반을 넓히는 셈이다. 스케일웨이는 저탄소 전력 공급 여건과 현지 AI 산업을 고려해 스웨덴을 택했으며, 지난 5월 통신사 텔레투와 체결한 협약을 바탕으로 클라우드·AI 서비스 판매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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