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주의와 게임산업] ‘정치적 올바름’과 ‘중국 성장’에 침몰하는 서구권 게임사, 대작 IP마저 줄줄이 참패
[PC주의와 게임산업] ‘정치적 올바름’과 ‘중국 성장’에 침몰하는 서구권 게임사, 대작 IP마저 줄줄이 참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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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소프트, 신작 취소·연기에 조직 개편까지 새로움 없는 게임, 신작들도 연이어 흥행 참패 매력적인 캐릭터 부재, PC 강요에 지친 게이머들

게임업계의 주류로 꼽히던 서구권 게임사의 침체기가 이어지고 있다. 외모 지상주의와 인종·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막자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 주의가 핵심 소비층인 남성 게이머들의 외면을 자초한 결과다. 여기에 기대작으로 꼽히던 대형 IP 신작들 마저 연달아 실패하며 아시아 게임계에 패권을 내주는 모양새다.
유비소프트 구조조정 착수, 주가 15년 만에 4유로 아래 추락
26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게임 전문 매체 쥐비디오(JeuxVideo)에 따르면, 유로넥스트 파리에 상장된 유비소프트의 주가는 22일 기준 3.99유로(약 6,870원)까지 추락했다. 전일 종가 6.63유로(약 1만1,500원) 대비 40%가량 급락한 것으로 유비소프트의 주가가 4유로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 2011년 9월 이후 15년 4개월 만의 일이다.
이번 주가 급락의 단기적 요인은 긴축 경영 선언이다. 유비소프트는 지난 21일 신규 운영 모델 구축과 포트폴리오 재조정, 조직 규모 조정 등 3가지 축을 중심으로 창의적 리더십과 민첩성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브 기예르모(Yves Guillemot) 유비소프트 대표는 "여러 스튜디오를 선별적으로 폐쇄하고 그룹 전반을 구조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유비소프트는 ‘아바타: 프론티어 오브 판도라’를 개발한 유비소프트 스톡홀름과 모바일 게임 ‘어쌔신 크리드: 리벨리온’을 담당한 핼리팩스 스튜디오를 폐쇄할 예정이다. 유비소프트 임원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에 걸쳐 콘텐츠 파이프라인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진행했다”며, “이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자원을 재배치하며, 향후 3년간의 로드맵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게이머 사이에서 많은 기대를 받았던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 리메이크'의 개발도 공식적으로 취소됐다. 아울러 3개의 신규 지식재산권(IP), 1개의 모바일 게임, 공개되지 않은 1개의 프로젝트도 백지화됐다. 이외에도 총 7개 타이틀의 출시 일정이 연기됐다. 일부 게임은 올해 1분기에서 내년으로 출시가 미뤄졌는데, 여기에는 유비소프트의 대표 IP인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비소프트가 급격히 무너진 요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게임의 완성도 부족이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2020년작 '임모탈 피닉스 라이징'이나 2024년 새롭게 선보인 '스컬 앤 본즈'와 '엑스디파이언트' 등 신규 IP 게임들은 하나같이 콘텐츠적 독창성, 기술적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고 흥행에도 실패했다. 당시 '스컬 앤 본즈'를 플레이한 유저들은 해적을 모티프로 삼은 게임임에도 부실한 선상 전투 연출, 미흡한 콘텐츠 구현 등을 이유로 혹평했다.
결국 최초 70달러(약 10만원)로 출시한 '스컬 앤 본즈'는 출시 후 단 3개월 만에 29.99달러(약 4만3,000원)로 할인하며 흥행 참패를 시인했다. 스타워즈 IP를 차용한 AAA급 오픈 월드 게임으로 개발된 '스타워즈 아웃로'도 실패했다. 저열한 인공지능(AI) 기술과 각종 버그, 부실한 디테일로 혹평이 이어지면서다. 유비소프트도 지난해 9월 재무 업데이트 보고서를 통해 '스타워즈 아웃로'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고 시인했다. 이어 같은 해 11월 21일 스팀 PC 버전을 출시했지만, 동시접속자 수 3,000명 안팎을 기록하며 대형 게임사의 AAA급 게임에 걸맞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나친 'PC 강요'가 부른 부진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PC) 강조도 문제가 됐다. 외모지상주의와 인종·젠더 차별을 막자는 PC적 관점을 게임 본연의 재미, 프로그래밍적 완성도보다 강조한 게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유비소프트는 PC주의를 지키고자 노력해 왔다. 대표적으로 '레인보우 식스 시즈'의 한국인 캐릭터 '비질(화철경)'은 탈북자 출신으로 탈북 과정에서 가족이 대부분 죽는 등 비극을 겪고 트라우마를 앓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처럼 유비소프트가 이따금 던지는 사회문제에 대한 화두는 준수한 게임 퀄리티와 함께 게임의 평가를 높이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서구권 게임사를 중심으로 PC주의적 메시지 활용을 넘어 유저에게 강요하는 형태의 게임 출시가 많아졌고, 유비소프트 역시 이에 동참하면서 반사적으로 게이머들을 중심으로 반(反)PC주의가 대두됐다. 가장 큰 이유는 외모지상주의 철폐, 성적 다양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다 보니 매력적인 캐릭터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점이다. 한국 시프트업이 개발한 하드코어 액션 게임 '스텔라 블레이드'의 흥행이 이를 방증한다. 게임 출시 직후 서구권 게이머들은 "이렇게 화려한 액션 게임을 근래 본 적이 있나", "매력적인 여주인공을 내세워 좋다", "비주얼만으로 중독적이다" 등의 평을 내놨다. 그만큼 현지 게임에선 이러한 캐릭터들을 찾아보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개발사들의 게임에선 2010년 중반부터 매력적이거나 섹시한 캐릭터를 선보이는 빈도수가 크게 줄었다. 그 자리를 유색인종, 현실적인 외모의 캐릭터, 성소수자들이 채우는 사례가 많아졌다. 유비소프트가 킬러 콘텐츠이자 부진 극복 카드로 준비했던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도 PC주의를 그대로 담아 논란이 됐다.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흑인 사무라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다. 주인공 '야스케'는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 휘하에서 활동한 실존 인물임에도, 동양 배경 스토리에 무리한 흑인 주인공을 등장시키며 그 과정에서 각종 사료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같은 논란은 일본 게임쇼 불참으로 이어졌다. 게임 시장에서의 일본 위상을 감안하면, 사실상 동아시아 흥행에 빨간 불이 켜진 셈이다.
중국 게임 산업의 글로벌 약진, 서양 게임사 빨간불
이런 상황에서 중국 게임사들의 약진까지 겹쳤다. 중국 게임 흥행의 시발점은 2020년 출시된 호요버스의 '원신'이다. 오픈월드 RPG(역할수행게임)의 지평을 한 단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 '원신'은 중국산이라는 전제를 깨며 국적 프레임을 무력화시켰다. 업계에서는 이를 중국 게임에 대한 신뢰 자본이 처음으로 형성된 사례로 평가한다. 이후 '명일방주', '명조: 위더링 웨이브', '검은 신화: 오공' 등 성공 사례가 이어지며 중국 게임의 개발 역량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개별 작품의 흥행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발 대작들은 기본적으로 잘 만들었을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일련의 논란과 출시작들의 연이은 흥행 참패 속에 유비소프트는 현재 최악의 자금난에 직면한 상황이다. 가장 최근 기준 유비소프트 국제회계기준 순부채는 14억 유로(약 2조4,000억원) 수준으로, 2023년 대비 8억8,000만 유로(약 1조5,000억원)가 증가했다. 한때 중국 텐센트가 유비소프트를 인수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리며 구원투수로 부상하는 듯했으나, 기예르모 가문과의 주주 의결권 존치·비상장화 여부를 두고 의견차가 발생하며 난항에 빠진 형국이다.
다른 서구권 게임사들 사정도 다르지 않다. 영국 게임사 락스테디의 '수어사이드 스쿼드: 킬 더 저스티스 리그', 독일 데달릭 엔터테인먼트의 '반지의 제왕: 골룸' 모두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았다. 미국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콜 오브 듀티' 시리즈 또한 매번 출시 시점마다 기술적 완성도에 대한 혹평에 직면했다. 연이은 신작의 실패는 개발사들의 경제적 위기와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게임 감원 뉴스를 종합하는 사이트 게임 산업 해고(Game Industry Layoffs)에 따르면 2024년에만 최소 1만4,500명, 월 평균 약 1,208명의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서양 게임의 악순환 고리가 이어진다", "유럽 AAA급 게임 자체의 종말이 다가왔다"는 비관론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