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가 곧 기회" 전력난 끝에 원전 시장 개방 택한 인도, 韓·美 '파트너십' 구축 가능성 거론
"규제 완화가 곧 기회" 전력난 끝에 원전 시장 개방 택한 인도, 韓·美 '파트너십' 구축 가능성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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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인도 샹티법 제정 발맞춰 원전 협력 논의 착수 韓 자체 원전 밸류체인, 美 공급망 공백 메울 유력 대안 전력난 속 원전 수요 확대된 인도, 글로벌 원전업계 '격전지' 될까

미국이 인도 원전 시장 진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인도가 고질적 전력난 해소를 위한 원전 확대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대규모 규제 완화에 발맞춰 인도 정부와 협력 논의에 착수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미국의 원전 공급망이 사실상 힘을 잃은 상태인 만큼, 기자재 생산 역량·시공 경험·인력 등을 갖춘 한국이 인도 공략의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美의 인도 원전 시장 진출 구상
19일(현지시각) 인도 현지 매체 비즈니스 스탠더드는 인도를 방문 중인 미국 원자력협회(NEI) 최고경영자(CEO) 대표단이 인도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민간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연쇄 회담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인도 '샹티(SHANTI)법'의 세부 시행령 제정을 앞두고 양국의 원전 협력 논의가 본격화한 것이다. 샹티법은 사고 발생 시 기자재 공급사에까지 사실상 무한책임을 묻는 원자력손해배상법 체계, 엄격한 민간·외국 지분 한도 기준(49%) 등 인도 특유의 강력한 원전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이다.
이 같은 규제 체계는 1984년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 보팔에서 발생한 가스 누출 사고의 사후 대처를 위해 마련됐다고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제너럴일렉트릭(GE), 웨스팅하우스 코퍼레이션 등 미국 기업들의 인도 원전 시장 진출에는 줄줄이 제동이 걸렸고, 프랑스 전력공사(EDF) 등도 현지에서 철수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 인도 측이 완화적 성격의 법안 마련에 나서며 상황이 뒤집혔다. 샹티법의 세부 시행령에는 원전 공급사의 법적 책임 범위를 국제 표준에 맞춰 제한하고, 민간·외국 지분 한도를 70% 안팎까지 늘리는 내용이 담겼다고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마리아 코스닉 NEI 회장은 현지 인터뷰에서 "미국 기업들은 샹티법의 후속 입법 과정을 정밀하게 주시하고 있으며, 원자로 기술, 연료, 물류 전반에서 양국 민간 기업 간 협력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규제 완화를 기회 삼아 원자로 설계, 연료 기술, 물류망 등 현지 생태계 전반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번 회담에서 양측은 인도 원자력 부문에 대한 민간 투자, 산업 협력, 청정에너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알려졌다.
공급망 파트너로 韓 거론
관련 업계에서는 미국의 인도 시장 공략에 나설 시 한국 원전 공급망 기업들에 '반사이익'이 돌아올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의 자체 원전 공급망이 심각한 병목 현상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원전 업계는 원자로 설계 및 원전 운영 기술에서는 강점을 보이지만, 수십 년간 신규 원전 건설이 사실상 중단돼 핵심 기자재 생산을 위한 중공업 기반이 크게 약화한 상태다. 원전급 단조 부품과 특수 밸브·배관 공급이 가능한 업체는 특히 제한적이며, 숙련 용접공·비파괴검사 인력·원전 프로젝트 관리자 등 인력까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미국의 공급망 공백을 메우는 핵심 산업 파트너 역할을 수행할 만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APR1400 기반 표준화 모델 △두산에너빌리티의 원전 핵심 기기 제작 능력 △현대건설·삼성물산 등의 시공 경험 △한국수력원자력의 운영 노하우 등 통합된 원전 밸류체인을 보유 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측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이 기술 라이선스·핵연료·외교 지원을 담당하고, 한국이 기자재 및 장비 조달과 시공(EPC)을 지원하는 '분업 구조'가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최근 자국에서 원전 공급망 복원을 위해 한국 기업들과 협력 중이라는 점은 이 같은 기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례로 두산에너빌리티는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원전에 원자로 용기, 증기 발생기, 펌프 케이싱 등 핵심 기기를 공급해 왔으며, 미국 내 신규 원전 및 폴란드·동유럽 프로젝트에서도 협력 가능성이 거론된다. HD현대중공업은 미국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 테라파워의 나트륨 원자로 주기기(RES) 설비를 제작·공급하는 우선협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수 미국 싱크탱크와 업계 보고서에서도 미국이 원전 르네상스를 추진하려면 한국·일본의 중공업 기반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추세다.

인도, 왜 원전 증설 나섰나
양국 협력이 본격화할 시 국내 원전업계는 급성장하는 인도 원전 시장에서 상당히 유리한 입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 인도는 장기간 전력난을 겪어 온 국가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해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인도의 전력 수요는 향후 2028년까지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제조업 육성 정책 △데이터센터 확대 △전기차 보급 △에어컨 보급률 상승 등으로 인해 전력 소비량이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는 진단이다. 반면 전력망 및 발전 설비 확충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추세다. 인도는 여전히 발전량의 약 70%를 석탄화력에 의존 중이며, 송배전 손실과 노후 인프라 문제도 심각하다.
인도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확충해 왔다. 국제사회의 탄소 감축 압박이 나날이 커지는 가운데, 석탄 의존도를 줄이며 발전 규모를 늘리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의 실제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평가된다.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공장·데이터센터·산업단지 등이 24시간 전력을 필요로 하는 데다, 여름철에는 가정용 냉방 수요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급증하기 때문이다. 이는 야간 발전이 불가능한 태양광이나 계절·기후의 영향을 크게 받는 풍력 발전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공백이다. 결국 전력망 전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날씨와 시간대에 관계없이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기저 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다. 현시점 원전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인도 정부 역시 원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원전 확대 목표를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해 왔다. 2023년 인도 정부는 당시 약 7기가와트(GW) 수준이었던 원전 설비 용량을 2031~2032년까지 22.4GW로 늘리겠다고 공식 발표했으며, 이를 위해 신규 원자로 18기 건설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2024년에는 인도 정부와 국영 원전기업 NPCIL이 2047년까지 100GW 규모의 원전 설비를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의 샹티법 제정 논의는 이 같은 인도의 원전 확대 기조를 한층 공고히 하는 행보인 셈이다. 시장에서는 향후 미국·한국 외에도 다수의 원전 국가가 인도의 대규모 원전 증설 계획에 주목해 현지 진출을 노릴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