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난·낙후인프라·공급망붕괴 3중고에 멀어지는 ‘美 조선업 부활’, 韓 등 동맹국 조선소 활용이 유일한 해법
인력난·낙후인프라·공급망붕괴 3중고에 멀어지는 ‘美 조선업 부활’, 韓 등 동맹국 조선소 활용이 유일한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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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조선 경쟁력 상실, 비용 6배·시간 7배 격차 미 현지 조선소 숙련공 태부족, 고임금도 문제 보조금·외국 기술력만으론 산업 생태계 복원 불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2기 핵심 슬로건으로 내건 '조선업 부활(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이 냉혹한 현실의 벽에 부딪힐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제기됐다.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가격과 납기 경쟁력을 모두 상실한 상황에서 붕괴한 산업 생태계를 단기간에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미 해군의 전력 공백을 메우고 해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국 등 동맹국 조선소의 역량을 활용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美 조선 시장 점유율 0.04%, 처참한 몰락
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조선업계와 워싱턴 정가에 따르면, 미국 3대 싱크탱크 케이토연구소(Cato Institute)의 콜린 그래보우(Colin Grabow) 부국장은 지난달 28일 국제해양안보센터(CIMSEC)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조선업 부활론을 "잘못된 집착(Misplaced Obsession)"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미국의 '메이드 인 USA' 집착이 오히려 안보 효율성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하며, 붕괴한 공급망을 보조금으로 복원하려는 시도는 현실 가능성이 낮다고 일축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조선업 부활 구상은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뒤처진 미국 조선 산업의 현실을 반영한다. 기고문에 따르면 미국 상선 조선업은 이미 완전한 붕괴(Near total collapse) 상태다. 2023년 중국이 1,800척의 선박을 건조하는 동안, 미국은 단지 5척을 완성했다. 전체 상선 규모에서도 미국은 178척에 불과해, 7,000척 이상을 보유한 중국과는 비교조차 어렵다. 2024년 기준 미국 조선소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고작 0.04%에 불과하며, 지난 10년간 대형 원양 상선 건조 실적도 연평균 3척 미만에 그친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로 거론되는 것은 가격 경쟁력 상실이다. 현재 미국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알로하(Aloha)급 컨테이너선의 척당 건조 비용은 3억3,450만 달러(약 4,850억원)에 달한다. 이는 중국보다 무려 6배 이상 비싼 것으로, 중국에서는 동급 선박을 5,500만 달러(약 797억원)면 만들 수 있다. 유조선 역시 해외에서 4,700만 달러(약 680억원)면 될 것을 미국에서는 최소 2억2,000만 달러(약 3,190억원)를 줘야 한다.
속도전에서도 크게 밀린다. 예컨대 한국과 미국 조선소의 건조 속도는 7배가량 차이가 난다. 미국 조선소가 마지막으로 인도한 컨테이너선은 건조 시작부터 인도까지 40개월 이상이 걸렸으나, 같은 시기 한국 조선소는 비슷한 크기의 선박을 6개월도 채 안 돼 인도했다. 이에 대해 그래보우 부국장은 "가격과 납기 면에서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한 산업을 세금으로 연명하는 건 안보 전략이 아닌 예산 낭비"라고 지적했다.
미 조선업 쇠락 불러온 ‘존스법’, 부활에 발목
일각에서는 트럼프 진영이 초당적으로 추진 중인 '선박지원법(SHIPS Act, 미국의 번영 및 안보를 위한 조선업과 항만시설법)'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평가가 나온다. 선박지원법은 250억 달러(약 36조원)의 연방 예산을 투입해 낙후된 조선소 인프라를 재건하고, 290여척 수준인 미 해군 함정을 355척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에릭 랩스 미 의회예산국(CBO) 해운선임분석관은 최근 보고서에서 "숙련공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예산을 늘려도 함정 건조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실제 미국 내 인력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화오션이 지난해 인수한 필라델피아 조선소(Philly Shipyard, 필리조선소)의 경우만 해도 연간 이직률이 100%에 육박하며, 근로자들의 약물 사용 문제까지 겹쳐 있다. 숙련공은커녕 기본적인 노동력조차 구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뿐 아니라 인프라 또한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머물러 있어 현대화된 한국 조선소보다 기술적으로 수십 년 뒤처져 있다. 설상가상으로 높은 철강 관세와 부품 공급망의 부재는 선박 건조 비용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 내 건조를 고집하는 '존스법(Jones Act)'도 조선업 부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존스법은 전 세계에서 가장 보호무역주의적인 법률로 꼽힌다. 1920년 제정된 존스법은 미국 내 항구를 오가는 선박은 △미국에서 건조돼야 하고 △미국인이 소유해야 하고 △선원의 75% 이상이 미국인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골자로 한다. 당시 미국 조선업은 세계 최강이었기 때문에 자국 조선업의 보호를 위해서 존스법이 필요했다. 또한 전쟁 상황에서 필요한 배와 선원을 즉각 동원하려면 미국산 상선과 미국인 선원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건조되는 선박이 다른 국가에 비해 제작 비용이 크게 높아지면서 수요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는 비용 경쟁력을 내세워 세계 조선업의 파이를 잡아먹는 동안 미국은 계속해서 존스법에 묶여 있다. 이와 동시에 미국 조선업의 제조 역량은 계속 후퇴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해외 시장 진출은 포기한 채, 안정적이고 마진이 높은 국내 시장에만 안주했기 때문이다. 극단적 보호 조치가 미국 조선업의 실질적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조선 강국이었던 미국은 이제 시설 노후화, 인력 유출, 투자 부진 등으로 민간·해군 조선소 모두 산업 기반이 붕괴됐다.

韓 조선사 납기 경쟁력, 수주 물량 70% 조기 인도
결국 미국 조선업 부활을 위한 유일한 해법은 '동맹국 조선소 활용'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일본과 같은 동맹국의 고도로 숙련된 조선소를 이용해 모듈이나 완성 선박을 조달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비용 효율적인 안보 전략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특히 한국 조선사들은 정확한 납기 준수와 압도적인 선박 건조 능력을 인정받으며 중국 업체들과의 수주 경쟁에서도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사의 신속한 선박 인도 능력은 수주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로 꼽힌다. 게다가 국내 조선사들의 빠른 건조 능력은 최근 해상 운임이 하락하는 가운데서 더욱 부각되는 분위기다. 운임이 낮을수록 선주들은 선박 인수 시점을 앞당기고, 더 많은 선대를 조기에 투입해 운항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유인이 커지기 때문이다. 즉 빠른 건조와 인도는 선주의 수익 구조와 직결되는 전략적 요소로 기능하는 셈이다.
한국 조선사들이 해외 조선사들보다 더 빠르게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도크(dock·선박 건조 시설) 운용 경험을 쌓은 덕분이다. HD현대중공업의 경우 총 9개의 도크에서 선박을 건조한다. 각 도크에서 만드는 선박 블록의 공정 진행률을 계산해 선표(도크 현황표)를 작성하고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최소화하고 있다. 또한 꽉 찬 도크의 선박 블록 사이에 생기는 30~40m 정도의 공간을 활용해 추가 블록 작업을 병행하는 '텐덤 공법(Tandem Method, 동시 건조 기법)'도 사용한다.
서울대 해양시스템공학연구소의 권효재 연구원은 "슬롯 사이에 새로운 선박 스케줄을 끼워 넣는 것은 급하게 도면을 그리고 자재 발주까지 해야 하는 동시다발적인 고난도 작업"이라며 "이는 고도의 기술력과 숙련된 작업 경험을 갖춘 한국 조선소만 수행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 업계 관계자도 "한국 조선소들은 오랜 기간 경험을 쌓은 숙련 인력들이 많아 수작업의 수준이 높고, 다양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배를 만드는 능력도 탁월하다"며 "중국 업체들이 고도의 자동화 설비를 갖춰도 아직 따라오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