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제기된 TSMC 상대 특허권 침해 소송, 정치권 압박에도 ‘타협’에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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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리스 산하 NPE, 미 ITC에 제소 공화당 의원들까지 압박 가세했지만 반도체 공급망 비중 비춰볼 때 타협 가능성↑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가 미국 특허 분쟁에 휘말렸다. 미국 정치권에서까지 제재를 요구하고 있지만 TSMC가 미국 반도체 공급망과 인공지능(AI)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 만큼 실제 강경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글로벌파운드리와의 특허전, 삼성전자의 장기 특허 분쟁 사례가 모두 합의로 귀결됐던 만큼 이번 소송 역시 법정 공방보다 협상 테이블에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아일랜드 특허권 기업, 소송 제기
14일(이하 현지시간) 악시오스 등 미 언론에 따르면 현재 TSMC는 특허 침해 혐의로 피소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심리를 받고 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아일랜드 특허자산관리업체(NPE)인 롱지튜드 라이선싱(Longitude Licensing)과 말린 세미컨덕터(Marlin Semiconductor) 두 곳으로, 이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대형 사모펀드(PEF)인 벡터 캐피털(Vector Capital) 소유 IP밸류 매니지먼트의 자회사다.
원고 측은 TSMC의 최첨단 공정에서 생산된 반도체가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말린 세미컨덕터는 2021년 TSMC 경쟁사인 UMC로부터 관련 특허 일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소송에는 애플과 브로드컴 등 주요 기술기업들도 언급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사실상 TSMC가 핵심 대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TSMC가 글로벌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미 의회에서도 TSMC를 엄벌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악시오스가 단독 입수한 서한에 따르면 공화당 라이언 징키 하원의원 등은 에이미 카펠 ITC 위원장에게 미국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된 해외 제조 칩의 수입을 차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강력한 특허권 집행이 미국의 경쟁력을 보호하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기업이라고 해서 특혜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 인터뷰에서 “인텔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 됐어야 했다”며 원인으로 대만 TSMC의 시장 지배력을 지목한 바 있다.
반면 TSMC의 공장이 들어서는 애리조나주를 지역구로 둔 민주당 상하원 의원들은 TSMC를 적극 옹호했다. TSMC는 애리조나에 약 1,650억 달러(약 249조6,000억원)의 투자를 약속한 바 있다. 이들은 공화당에 앞서 ITC에 서한을 보내 TSMC에 영향을 끼치는 법적 조치는 반도체 생산과 AI 발전, 국방은 물론 애리조나주 경제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TSMC-글로벌파운드리, 2개월 소송 공방 끝 '화해'
다만 미국 입장에서도 TSMC가 쉽게 제재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회사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TSMC 매출의 75%가 북미에서 발생했으며 주가는 AI 붐과 반도체 공급 부족 속에 연초 대비 96% 상승했다. 상호관세를 지렛대로 TSMC의 대대적인 투자를 이끌어낸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TSMC는 중요한 상대다.
TSMC의 애리조나 공장 추진 계획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당시 이뤄졌지만 지난해 3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1,000억 달러(약 150조원) 추가 투자를 발표하면서 판이 커졌다. TSMC는 애리조나를 비롯해 미국에서 반도체 생산시설 10곳을 짓기 위해 2,650억 달러(약 400조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에 중국과의 갈등까지 겹치며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이 위태로워졌다는 점도 TSMC를 쉽게 제재할 수 없는 이유다. 더구나 대만 정부는 대만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20%에서 15%로 낮추는 대가로 대만 기업들이 2,500억 달러(약 378조원)를 미국에 직접 투자하기로 약속하며 상대적으로 비싼 대가를 치렀다. 대만의 국민 기업인 TSMC가 타격을 입을 경우 대만 정부 차원에서도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에 업계에서도 양측이 원만한 합의에 이를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반도체 관련 특허 분쟁에서 합의에 이르는 경우는 꽤 보편적이다. 지난 2019년 TSMC가 직면했던 특허 분쟁도 합의로 마무리된 바 있다. 양사 다툼은 2019년 8월 말 글로벌파운드리의 소송 제기로 시작됐다. 당시 글로벌파운드리는 TSMC가 자사 특허 16개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글로벌파운드리는 “TSMC가 특허 침해 기술로 만든 반도체를 미국과 독일로 수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파운드리는 TSMC가 제작한 반도체를 공급 받는 고객사 10여 곳에 대해서도 동일한 내용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유명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뿐 아니라 하이센스, 미디어텍 등 중화권 기업도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TSMC는 같은 해 10월 글로벌파운드리가 25개 특허를 침해했다며 맞대응했다. 당시 TSMC 측은 외신을 통해 “TSMC는 수백억 달러를 공정 개발에 투자했다”며 “이번 소송으로 500여 곳에 달하는 고객사를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화권과 미국 파운드리 업체가 맞붙은 이 소송 분쟁은 미·중 무역분쟁 대리전 양상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지만, 양사는 2개월 간 팽팽히 맞섰던 소송을 취하하고 합의했다.

삼성도 합의로 마침표
삼성전자 역시 장기간 이어진 특허 분쟁을 최종적으로 합의로 마무리한 전례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플래시메모리 업체 스팬션(Spansion)과의 분쟁이다. 스팬션은 2008년 삼성전자가 플래시 메모리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소송을 제기했고, 삼성전자도 맞소송으로 대응하며 양측은 수년에 걸친 법적 공방을 이어갔다. 당시 분쟁은 낸드플래시를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 핵심 기술을 둘러싼 대형 특허전으로 평가됐다.
4년간 이어진 양사의 분쟁은 2011년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 체결을 통해 종결됐다. 합의안에 따르면 두 회사는 7년간 각사가 보유한 특허권을 교차 사용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스팬션에 특허 사용료 명목으로 2011년부터 5년간 총 1억5,000만 달러(약 2,270억원)를 분할 지급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소송 장기화에 따른 비용 부담과 공급망 불확실성을 줄이는 동시에 사업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카이스트(KAIST)와 삼성전자 간 반도체 핀펫(FinFET) 기술 분쟁도 합의로 종결됐다. 카이스트의 지식재산 관리 자회사인 카이스트IP(KIP)는 2016년 11월 삼성전자가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고 핀펫 관련 특허를 무단 사용했다며 미국 텍사스동부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핀펫은 3차원 입체 구조를 통해 반도체 성능과 전력 효율을 높이는 초미세 공정 기술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첨단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의 핵심 기반으로 평가된다.
쟁점은 삼성전자가 해당 기술을 자사 첨단 반도체 공정과 제품에 적용했는지 여부였다. KIP는 삼성전자가 갤럭시 S8·S8플러스·S8액티브·S9·S9플러스·노트8·노트9 등에 탑재된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소송 대상에는 삼성전자와 함께 퀄컴, 글로벌파운드리도 포함됐지만 손해배상 책임은 삼성전자에 집중됐다.
2018년 6월 미국 텍사스 배심원단은 삼성전자가 KIP의 핀펫 특허를 침해했다며 4억 달러(약 6,000억원)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평결했다. 이듬해인 2019년 2월에도 카이스트 IP는 삼성에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배심원단 평결에도 삼성전자가 특허침해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 설계, 개발, 상업화를 하고 있다고 카이스트 측은 지적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배상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이후 법원 판단은 일부 조정됐다. 2020년 2월 1심 법원은 삼성전자가 카이스트 측에 2억 달러(약 3,00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배심원단의 4억 달러 평결이 그대로 확정된 구조는 아니었지만, 삼성전자가 거액의 특허 침해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는 법적 리스크는 분명했다. 그러다 2020년 9월 양사는 소송을 취하하고 분쟁을 합의 종결했다. 구체적인 합의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양측은 특허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