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우주 패권 경쟁의 숨은 변수, 투자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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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부 수요·민간 자본 결합 우주산업 성장 견인 中 정부 주도 투자 확대 자본시장 한계 보완 국가별 자본시장 맞춤 전략 우주 경쟁력 좌우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년 세계 우주 경제 규모는 약 6,130억 달러(약 931조원)에 이르렀다. 전체 시장의 약 80%를 민간 부문이 차지하면서 우주는 발사체와 위성통신, 지구 관측, 우주 데이터, 우주 물류 등이 결합된 거대한 산업 생태계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업화가 정부 역할의 축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여전히 초기 수요를 창출하고 산업의 방향을 제시하는 핵심 주체다. 여기에 충분한 투자 자금이 결합될 때 산업 성장이 가속화된다. 반대로 투자 생태계가 취약한 국가에서는 정부가 시장 조성과 함께 재정 지원까지 담당해야 한다.
우주산업 성장 좌우하는 투자 생태계
우주산업 경쟁력은 기술력뿐 아니라 안정적인 수요와 투자 자금 확보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정부가 맡는 첫 번째 역할은 초기 시장을 여는 일이다. 정부는 인허가 기준과 조달 체계를 마련하고 첫 수요처가 돼 기업의 사업화를 지원한다. 특히 우주산업은 일반 소비자보다 국방과 과학 연구, 기상 관측 등 공공 부문이 초기 수요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개발 기간이 길고 실패 위험도 큰 만큼 정부가 안정적인 수요를 보장하지 않으면 기업이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
하지만 시장이 형성됐다고 산업이 저절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장기간 투자가 가능한 자금 기반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우주 혁신 자금은 시장 조성과 함께 산업 육성의 또 다른 축으로 꼽힌다. 정부 계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간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 기업은 상용화 이전 단계에서 자금이 바닥나는, 이른바 '데스밸리(Death Valley·창업 후 3~5년 차에 겪는 자금난)'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이 구간을 넘지 못한 채 시장 진입에 실패한다.

정부 수요와 민간 자본의 결합
미국이 1960년대 아폴로 프로그램과 같은 대규모 국가 주도 방식을 반복하지 않고도 우주산업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와 민간 자본의 역할 분담이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국방부는 초기 수요를 창출하는 발주처 역할에 집중하고, 기업 성장에 필요한 자금은 발달한 민간 투자시장이 공급하는 구조다. 대표적인 사례가 NASA의 상업 화물 수송(COTS)과 유인 우주비행 프로그램이다. 정부는 개발비 지원보다 성과 달성 이후 서비스 구매로 이어지는 조달 체계 마련에 무게를 뒀다.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는 COTS 프로그램을 통해 3억9,600만 달러(약 6,017억원)의 지원을 받은 뒤 16억 달러(약 2조4,312억원) 규모의 화물 보급 계약과 26억 달러(약 3조9,507억원) 규모의 승무원 수송 계약을 확보했다. 글로벌 항공기 제조사 보잉 역시 같은 프로그램에서 42억 달러(약 6조3,819억원) 규모의 계약을 따냈다.
주목할 부분은 계약 규모보다 정부가 시장에 보낸 신호다. 정부가 일정 기준을 충족한 기업의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구매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하면서 민간 투자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4년 미국 벤처캐피털 업계의 미집행 투자금은 3,078억 달러(약 467조7,021억원)에 달했고 신규 벤처 투자 규모도 약 2,150억 달러(약 326조6,925억원)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우주 스타트업들은 상장을 서두르지 않고도 비상장 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며 사업을 확대할 수 있었다.

정부가 메운 자본시장의 빈자리
미국과 달리 중국은 정부가 시장 조성과 자금 공급을 함께 담당하는 방식을 택했다. 비상장 투자시장이 상대적으로 작고 투자금 회수 시장도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만큼 국가가 직접 산업 육성에 나서는 구조다. 중국 우주산업의 성장 배경에도 이 같은 지원 체계가 자리한다. 중국 정부는 전략 산업 육성을 위해 보조금과 세제 혜택, 토지 지원, 정부유도기금 등을 활용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의 산업 정책 지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4.4% 수준으로 추산됐다. 2024년 기준 정부유도기금 운용 규모는 약 4조5,200억 위안(약 1,016조원)에 달했으며, 중국 정부는 2025년 1조 위안(약 225조원) 규모의 국가 벤처투자 유도기금 조성 계획도 발표했다. 이 같은 지원은 민간 투자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정부가 상당 부분 분담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실제로 중국 우주 인프라 분야 민간 투자는 2024년 약 20억 달러(약 3조원) 규모로 확대됐으며, 민간 발사기업들도 재사용 로켓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정부 자금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투자 판단이 시장 경쟁력보다 정책 목표에 좌우될 경우 자금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기술 경쟁력 강화보다 지원 확보에 집중하는 '보조금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과잉 투자와 중복 투자 위험 역시 중국식 산업 육성 모델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투자 생태계에 맞는 정책 설계 필요
많은 중견국과 선진국이 미국식 우주산업 육성 전략을 벤치마킹하고 있지만, 민간 투자 기반이 다른 국가에서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 우주산업의 경쟁력은 정부 정책과 함께 대규모 민간 자본이 뒷받침한 결과다. 따라서 같은 투자 기반이 없는 국가가 조달 정책만 모방할 경우 기대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수 있다. 이 경우 공공 자금은 정책과 산업을 연결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 지원이 장기적인 의존 구조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공공 자금은 민간 투자가 유입될 때까지 초기 위험을 분담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성과 중심의 지원 체계가 중요하다. 정부는 기술 개발과 사업화 성과를 기준으로 지원 여부를 결정하고, 단계별 지원과 민간 공동 투자를 연계해 시장의 검증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기업 간 경쟁을 유지하는 장치도 중요하다. 기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성과를 입증한 기업은 민간 투자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정부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이를 통해 유망 기업이 성장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사라지는 문제와 경쟁력이 낮은 기업이 지원에 의존해 생존하는 문제를 함께 줄일 수 있다.
산업 성장 뒷받침할 인재와 제도
자금 지원만으로 우주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는 없다. 기술 개발과 사업화, 투자와 정책을 이해하는 인재를 함께 키우는 것이 장기적인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대학 교육도 변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시스템 설계와 장비 조달, 자금 조달, 사업 전략 수립 등 산업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이 요구된다. 연구기관과 투자기관, 창업 지원 조직, 공공 시험시설을 연계해 기술 사업화 과정을 체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 정책 분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정책 아이디어를 제도화하기 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산업 현장과 자본시장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정책을 설계할 경우 현실과 괴리된 지원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산업 경쟁의 성패는 기술 개발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정부가 초기 시장을 만들고 민간 자본이 성장 자금을 공급하는 구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축하느냐가 핵심이다. 민간 투자 기반이 충분한 국가는 시장 조성에 집중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는 산업이 자립할 때까지 정부의 역할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우주 경제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과 시장, 자본을 연결하는 역량에서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Space Innovation Funding Is the Missing Half of Market-Making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