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AI는 버블, 중국 AI는 저평가”, 미중 패권 경쟁 속 중국 기업에 뭉칫돈
“미국 AI는 버블, 중국 AI는 저평가”, 미중 패권 경쟁 속 중국 기업에 뭉칫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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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등 통해 중국 AI 기업 자금 유입 지속 중국 AI 생태계의 혁신 잠재력에 주목 전력 인프라서도 우위, 美 기술주 거품론 영향도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도 미국 투자자들이 중국 인공지능(AI) 관련 주식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기업가치가 오를 대로 오른 미국 AI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딥시크 쇼크’를 시작으로 중국 AI 기업들이 반도체 기술 자립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자 성장성을 높게 본 것이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려는 정치권의 시도와 성장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시장의 기대가 충돌하는 모양새다.
알리바바 80% 급등·ETF로도 자금 러시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미국 투자자들은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통해 중국 기술 기업들의 주가를 적극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중국에 본사를 둔 벤처캐피털(VC) 회사들도 현지 AI 투자를 위해 미국 달러 표시 펀드를 조달하고 있다. 여기에 몇 년 동안 중국을 외면했던 미국 기금도 중국 기업 투자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한 월가 투자자는 “중국은 AI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미국 경쟁 업체 대비 저평가돼 있다”며 추가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뉴욕과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는 올 들어 10일까지 80% 이상 급등하며 4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간 텐센트와 바이두도 약 50% 오르고, 캠브리콘도 120% 가까이 상승했다. 앞서 중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최근 내수 부진과 미중 갈등, 당국의 부동산 규제 등으로 2021년 이후 지난해까지 내리막을 걸은 바 있다. 그러다 올 들어 10월까지는 중국 본토 증시에만 외국인 자금이 총 506억 달러(약 74조원)나 유입됐다. 이는 2021년 이후 4년 만의 최대 규모다.
글로벌 금융 정보 업체 ETF닷컴에 따르면 최근 6개월 동안 중국 기술기업에 투자하는 대표 ETF 2곳에만 5조원이 넘는 자금이 몰렸다. ‘크레인셰어즈 CSI 차이나 인터넷’에 20억 달러(약 2조9,000억원)가, ‘인베스코 차이나 테크놀로지’에 18억 달러(약 2조6,000억원)가 각각 순유입됐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지난 7월 중국 기술주 ETF이 미국 상품보다 많은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뱅가드그룹, 블랙록, 피델리티의 대형 펀드들도 올해 알리바바의 홍콩 상장 주식량을 늘렸다. 심지어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 러퍼는 중국 기술 대기업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이 구글 등 미국 기업보다 낮다며 상승 가능성이 더 크다고 평가했다. 러퍼의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알리바바가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달한다. 헤지펀드 업체 아팔루사의 수장이자 억만장자 투자자인 데이비드 테퍼도 중국 기업을 두고 공개적으로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아팔루사에 따르면 알리바바는 이 회사의 전체 주식 투자분 70억 달러(약 10조3,000억원) 가운데 가장 많은 16%의 비중을 차지한다.
미·중 기술 경쟁 속 규제·시장 온도차 확대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 정가의 기류와는 상반된다. 미 의회는 중국으로 흘러가는 미국 자본이 장기적으로 중국의 군사·기술 역량을 키워 미국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규제 강화에 나서고 있다. 연례 국방수권법(NDAA)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 AI와 양자컴퓨팅, 극초음속 무기 등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를 추가로 제한하고, 미국 투자자가 중국 기술 기업을 어떻게 지원하는지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이 담겼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공산 중국의 공격적 행태를 뒷받침하는 투자는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미국 시장의 중국 AI와 기술주에 대한 관심은 그칠 줄 모른다. 중국 AI 분야로 뭉칫돈이 몰리는 배경에는 딥시크를 필두로 화웨이·알리바바·캠브리콘 등의 업체들이 AI 반도체 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뤄냈다는 평가가 자리하고 있다. 2023년까지만 해도 중국의 대규모언어모델(LLM) 기술 수준은 미국에 비해 뒤처져 있었다. 그러나 딥시크, 지푸AI, 바이촨, 문샷AI, 미니맥스 같은 신생 스타트업들은 대학 연구소와 정부 연계 펀딩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또 이들 스타트업이 BAT와 같은 기존 빅테크 기업들과 LLM 개발 경쟁을 주도하며 중국 내에서 치열한 시장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이런 경쟁적 환경은 반복적인 개선과 신속한 배포를 촉진했고, 결과적으로 미국과의 기술 성능 격차를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좁혀 나가는 결과를 낳았다.
2021년 말부터 강력한 빅테크 규제에 나섰던 중국 당국이 최근 들어 우호적인 태도로 돌아선 것도 AI 발전에 영향을 줬다. 단적으로 중국 공산당은 올 10월 열린 제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과학기술’만 46번을 언급할 정도로 첨단산업 육성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정부의 광범위하고 분산된 투자 전략은 민간 VC들이 간과할 수 있는 혁신의 씨앗들을 키워냈다. 특히 LLM 개발에 필수적인 컴퓨팅 인프라 구축에 장기적인 자본을 지속적으로 투입했다. 이러한 특징은 딥시크와 같은 혁신적인 모델이 일회성 행운이 아닌, 중국 AI 생태계가 지속적인 혁신을 배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평가다.

"미국보다 싸다" 밸류에이션에 쏠리는 뭉칫돈
중국이 AI 패권 전쟁의 핵심 변수인 전력 인프라 분야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점도 매력 요소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이 AI 산업 확장에 필수적인 데이터센터와 다른 산업의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만큼 충분한 예비 전력 용량을 갖출 것이며, 이로써 미국과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미국이 AI 기술에서는 앞서 나가고 있지만, 앞으로 기술 발전을 방해하는 요소는 반도체, 희토류, 인재보다도 ‘전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데이터센터는 내부의 대규모 컴퓨팅 장비를 가동하고 냉각하는 데 막대한 전력을 소모한다.
중국 정부는 일찌감치 AI 데이터센터를 전략 인프라로 지정해 국가 차원의 자금·전력·세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동부 지역 데이터를 전력자원이 풍부한 서부로 옮겨와 처리하는 디지털 인프라 전략인 ‘동수서산(東數西算) 프로젝트’를 통해 전국 8개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집중 배치하고자 매년 70조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국가 자금이 투입된 신규 데이터센터에 자국산 칩만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는 지침까지 내렸다.
미국 기술주에 대한 거품론도 중국 AI 투자 열풍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JP모건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아마존과 구글 등 AI 빅테크들의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을 충족하기 위해 최소 5조3,000억 달러(약 7,800조원)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향후 부담해야 하는 천문학적인 투자금액 대비 수익이 불확실하다는 점은 AI 거품론을 야기한 원인이 됐다. 특히 시장에서는 AI 투자 대비 수익(ROI)을 창출하는 데 있어 수익화 가능성이 낮을뿐더러, 실현 시점이 지속적으로 미뤄지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AI 수요가 분명하다고 해도 전력과 컴퓨팅 자원 등 제약 때문에 투자들이 제때 집행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더해졌다.
게다가 미국 증시는 밸류에이션 우려가 커진 상태다. 관세 충격으로 인해 하락하기는 했지만 AI 종목으로 불리는 기업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여전히 높다. 엔비디아의 현행 PER은 44배가 넘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현행 PER도 34.97배다. 팔란티어의 현행 PER은 무려 500배 이상이다. 반면 중국 기업들 중에선 저평가된 곳이 상당수다. 골드만삭스는 "미국과 비교했을 때 애플리케이션에 주력하는 중국 기업들은 여전히 훨씬 더 합리적인 가치평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며 "중국의 AI 주식 붐은 가치평가 관점에서 보면 거품과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