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비중 늘어난다" 각국 중앙은행 탈달러 흐름, 中은 위안화 앞세워 '대체 질서' 구축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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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중앙은행, 달러화 비중 축소·금 비중 확대 흐름 中, 글로벌 금융 시장 혼란 틈타 위안화 국제화에 박차 입지 흔들리는 유로화, 브레턴우즈 2.0 질서에도 '균열'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액 등 총 준비자산에서 미국 달러화 비중을 줄이고 있다. 장기화한 중동 분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대폭 가중되자, 미국 국채 등을 처분하고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 보유량을 눈에 띄게 늘려 나가는 양상이다. 중국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위안화 패권을 강화하고, 달러 중심이었던 기존 금융 시장 질서를 재편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달러화 자산 선호도 하락
지난 16일(현지시각) 닛케이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세계금위원회(WGC)는 최근 전 세계 76개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연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84%는 향후 5년 이내에 중앙은행의 총준비금 중 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전년 동일 조사 집계치(76%)보다 8%P 상승한 수준이다. 향후 5년간 미국 달러화 보유 비중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 응답자 역시 74%에 달했다. 해당 조사가 주로 지난 2월 말 이란 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정학적 위기감이 각국 중앙은행의 포트폴리오 전략에 미친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이러한 탈달러 흐름은 단순 전망을 넘어 이미 지표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달 초 발표한 국제 준비자산 리포트를 살펴보면,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중앙은행의 총 준비자산 중 금괴가 차지하는 비중은 27%로 전년(20%)보다 7%P 상승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고에 통제 중인 금 보유량은 3만6,000톤(t)을 돌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과거 미국 달러의 가치를 금괴에 강제 연동시켰던 달러-금 본위제 시대 전성기와 유사한 규모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국채가 전 세계 중앙은행의 총 준비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에서 22%로 내려앉았다. 달러화 자산의 기반도 곳곳에서 약화 조짐을 드러냈다. 외화 표시 채권·대출 발행에서 달러 비중은 약 60%로 하락했고, 녹색·지속가능 국제 채권 시장 내 달러화 점유율은 약 32%로 10%P 내렸다.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해 ECB는 "환율 효과와 채권 평가 효과가 모두 달러 자산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했으며, 준비자산 운용자들의 달러 자산 순매입 기여도 역시 미미했다"고 분석했다.
中의 위안화 영향력 확대 노력
중국은 이러한 '빈틈'을 파고들며 위안화 국제화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 중국 글로벌 금융기관들을 하나로 묶는 국경 간 디지털 위안화 통합 결제 플랫폼 '국경 간 전자-중안 송금 서비스'(CBETS)를 가동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CBETS는 지난해 9월 중국 인민은행이 설립한 디지털 위안 국제운영센터가 기존에 흩어져 있던 개별 서비스 모듈을 통합해 만든 플랫폼이자, 서방 진영의 '글로벌 은행 간 금융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 차단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자체 인프라다.
앞으로 중국은 전통적인 은행 간 대규모 자금 결제에 특화된 기존 '국경 간 은행 간 결제 시스템'(CIPS)과 더불어, 고도화된 디지털 화폐 인프라로 신속하게 소액 및 무역 결제를 지원하는 CBETS를 양대 축으로 삼아 위안화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이 같은 구조에 속한 은행들은 중간 중개 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국경 간 디지털 위안화 네트워크에 접속 가능하며, 전통적인 서방 결제 채널에 대한 의존도와 수수료 비용을 획기적으로 경감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인민은행은 최근 위안화 국제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환매(레포) 수단을 만들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각국 중앙은행, 금융당국, 국제 금융기구, 국부펀드 등이 중국 국채를 비롯한 자산을 담보로 더욱 쉽게 위안화 유동성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인민은행은 상하이 자유무역구에서 역외 위안화 외환 거래를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공상은행 등 6개 금융기관에 거래 권한을 부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는 역외 위안화와 역내 위안화 시장의 융합을 촉진하고, 상하이를 위안화 자산의 글로벌 운용 및 위험 관리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브레턴우즈 2.0 시대 저물까
현시점 이 같은 중국의 행보 탓에 위협에 노출된 것은 달러화보다도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유로화다. 중국 분석 기관들은 위안화가 단기간 내에 유로화의 입지를 넘어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위프트 데이터상 위안화 결제 비중은 아직까지 미미하지만, 해당 지표가 시장에서의 실질적인 영향력을 증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중심으로 움직이는 스위프트 시스템의 본질적 한계 때문이다. 스위프트 통계에는 CIPS 거래, 양자 통화 스와프, 중국과 러시아·이란 간의 1대 1 직접 결제 규모 등이 잡히지 않는다. 앞서 러시아 당국은 현재 중·러 간 양자 무역의 거의 100%가 현지 통화로 정산되며, 그중 위안화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고 시인한 바 있다. 이는 서방의 금융 제재를 피하고자 하는 국가들이 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벗어나 위안화 정산을 고수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흐름 속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미국과 중국이 상품과 국채를 맞교환하던 ‘브레턴우즈 2.0’ 질서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2.0 체제의 핵심은 중국이 저가 상품을 미국에 수출해 대규모 무역 흑자를 쌓고, 그 달러를 다시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구조였다. 중국은 약한 내수를 수출로 보완했고, 미국은 중국산 저가 상품과 낮은 차입 비용을 동시에 누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 내 제조업 공동화 문제가 가시화하고,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장벽 및 공급망 분리 정책이 본격화하며 이 같은 기존 질서는 힘을 잃기 시작했다. 이제 중국의 과잉 생산 물량은 미국이 아닌 유럽과 신흥국 시장으로 향하는 중이며, 미국도 낮은 금리를 대가로 중국산 상품을 받아들이는 체제에 경계심을 품고 있다.
향후 새롭게 열릴 ‘브레턴우즈 3.0’ 시대의 핵심적인 변화로는 중국 자본의 재순환 방식이 꼽힌다. 중국은 대미 흑자로 벌어들인 자금을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대신 전략 광물 개발, 항만·물류망 개발, 동남아·중남미 생산 거점 마련 등에 투입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투자처 다변화를 넘어 '중국식 경제권'을 넓히기 위한 전략적 전환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전문가는 "아직 달러화는 굳건한 기축 통화의 지위를 유지 중이며, 브레턴우즈 3.0 역시 달러 패권이 즉시 붕괴하는 시대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달러 중심 질서 안에서 위안화와 중국 자본의 영향력이 구조적으로 확대되는 새 국면이 열릴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