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외환보유액, 숫자보다 중요한 건 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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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외환보유액도 출처에 따라 다른 경제적 의미 차입 확대보다 경상수지·투자 유입이 시장 평가 좌우 외환 정책도 총량 중심에서 건전성 중심으로 전환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외환보유액은 국가의 대외 지급 능력과 금융 안정성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다. 일반적으로 외환보유액이 많을수록 외부 충격에 대응할 여력이 크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같은 규모의 외환보유액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축적됐는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가계를 예로 들면 차이는 분명하다. 급여를 모아 저축한 사람과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같은 금액을 예금한 사람은 계좌 잔액만 놓고 보면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전자는 순자산이 늘어났지만, 후자는 부채도 함께 증가했다. 외환보유액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규모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축적 과정에 따라 경제의 안정성은 달라진다.
실제로 44개 신흥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민간 부문을 통해 축적된 외환보유액 증가는 국가채권 가산금리를 약 1.35% 낮추는 효과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공공부문 차입으로 늘어난 외환보유액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개선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외환보유액의 양보다 축적 방식과 부채 부담을 함께 고려한 '외환보유액의 질'이 국가 경제의 회복력과 신뢰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임을 보여준다.
외환보유액 평가 기준의 전환
그동안 외환보유액은 수입 대금 결제 능력이나 단기외채 상환 여력, 급격한 자본 유출에 대한 대응 능력 등을 중심으로 평가돼 왔다. 이러한 지표는 국가의 기본적인 대외 지급 능력을 점검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외환보유액이 어떤 방식으로 축적됐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해외 차입을 통해 외화를 확보할 경우 외환보유액은 늘어나지만 동시에 같은 규모의 외화부채도 발생한다. 보유 외화가 증가했다고 해서 국가의 대외 건전성이 그만큼 개선됐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특히 국채 발행이나 대외 차입, 통화스와프 등을 통해 확보한 외환은 시장 불안을 완화하고 단기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환율 변동 위험이나 만기 도래에 따른 상환 부담, 차환 위험까지 해소하는 것은 아니다. 외환보유액 규모만으로 경제의 안정성을 판단할 경우, 실제 위험보다 상황을 낙관적으로 오판할 우려가 크다. 반면 경상수지 흑자나 안정적인 민간 자본 유입을 통해 축적된 외환보유액은 의미가 다르다. 추가적인 공공부채 증가 없이 대외 지급 능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과 순대외자산이 함께 늘어난다는 점에서도 차입을 통한 외환 확충과 구별된다.

시장이 주목한 외환보유액의 출처
외환보유액의 축적 방식이 중요하다는 점은 지난해 발표된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연구진은 2000~2024년 44개 신흥국의 월별 자료 약 7,000건을 분석한 결과, 민간 부문을 통해 외환보유액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증가할 경우 국가채권 가산금리가 평균 4.4bp 하락했다고 밝혔다. 자금 유입 경로에 따른 차이도 뚜렷했다.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축적된 외환보유액은 약 6.4bp, 금융계정을 통한 외환 유입은 약 3.6bp의 가산금리 하락과 연관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공공부문 차입으로 늘어난 외환보유액은 효과가 제한적이었고 통계적 유의성도 낮았다. 위기 가능성 분석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민간 부문을 통해 조성된 외환보유액이 GDP 대비 1% 증가할 경우 국가채권 가산금리가 1,000bp를 웃도는 위기 국면에 진입할 확률은 약 1.1%포인트 낮아졌다. 반면 공공 자금 유입은 위기 가능성을 낮추는 효과가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이 같은 결과는 외환보유액 규모만으로 환율 안정이나 시장 신뢰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방증한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17년 케냐는 외환보유액을 꾸준히 늘렸음에도 명목환율과 실질환율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기간 케냐 실링화 가치는 약 30.47% 하락했다. 이는 환율이 무역수지와 자본 흐름, 물가 전망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시장 변동성을 완화하거나 통화 가치 하락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그러나 외환시장 개입만으로 대외 불균형을 해소하거나 지속적인 외화 수입 기반을 구축하기는 어렵다.

외환보유액 정책의 새로운 기준
외환보유액 규모가 반드시 시장 신뢰나 환율 안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국가의 대외 건전성 평가 역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우선 외환보유액의 조달 경로를 명확히 공개하는 방안이 요구된다. 외환보유액 증가분 가운데 경상수지 흑자나 민간 자본 유입에 따른 부분과 국채 발행, 대외 차입, 통화스와프 등을 통해 확보한 부분을 구분해 공시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단기 외화부채와 예정된 외채 상환 규모, 순대외자산 현황 등을 함께 제시한다면 외환보유액의 실질적인 건전성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평가 체계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 국가신용등급 평가와 부채 지속가능성 분석, 재정 관련 보고서에서도 외환보유액 규모뿐 아니라 조달 구조와 만기 위험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외환보유액이 늘어났더라도 그 과정에서 단기 외화부채가 빠르게 증가했다면 실제 안정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외환보유액 정책은 경제 구조와도 연결돼야 한다. 수출 경쟁력 강화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 구축, 생산적인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 등은 장기적인 외화 창출 능력을 높이는 기반이 된다. 중요한 것은 외부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안정적으로 외화를 확보할 수 있는 경제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다.
차입을 통해 조달한 외환보유액은 위기 국면에서 단기적인 시장 안정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를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나 대외 건전성 개선과 동일시하기는 어렵다. 국가 경제의 회복력을 결정하는 것은 외환보유액 외환이 어떤 방식으로 축적됐는지, 그리고 그 기반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에 달려 있다. 앞으로의 외환보유액 정책은 양적 확대보다 질적 건전성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Foreign Exchange Reserve Quality: Why the Source Matter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