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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평가 늪에 빠진 아시아 통화, 이란 전쟁 종식돼도 정상화 ‘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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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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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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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發 유가 급등·달러 강세 
아시아 외환시장 전반 동시 압박 
금리 인상·세제 지원에도 통화 방어 미미

이란 전쟁이 촉발한 유가 급등과 달러 강세가 아시아 외환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금리 인상과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규제 강화까지 동원하며 루피아 방어에 나섰지만 외환보유고는 2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후퇴했다. 원화도 성장 둔화와 자본 유출 압력 속에 1,500원선을 위협받고 있다. 전쟁 종식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으나 누적된 인플레이션 압력과 제한적인 긴축 여력, 위안화 저평가의 후유증이 겹치면서 아시아 주요 통화의 저평가 국면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 분위기다.

외환보유고 바닥난 인도네시아, 2개월 연속 금리 인상 배수진

17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최근 비실물 거래인 NDF 시장의 규제 펜스를 강화하며 투기 자본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현재 인도네시아는 중앙은행(BI)의 지속적인 달러 매도 직접 개입에도 불구하고 루피아화 약세 펜스가 뚫리자 가치사슬 전반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이는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 영향이 크다. 이란 전쟁은 국제유가를 폭등시켰고 그 연쇄효과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달러로 이동하면서 루피아 가치가 급락했다.

통화 방어전의 압박은 외환보유고에서 먼저 드러났다. 인도네시아의 외환보유고 내 외화자산은 지난달 1,228억 달러(약 187조원)까지 감소하며 2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후퇴했다. 중앙은행이 달러 매도 개입을 지속한 결과 외환 완충력이 빠르게 약화됐고, 통화 방어 여력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도 함께 커졌다.

이에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5월 0.5%포인트 금리 인상에 이어 이달 9일에도 정책금리를 5.5%로 0.25%포인트 연쇄 인상하는 전술적 결단을 내렸다. 루피아가 예상 경로를 벗어나 사상 최저권까지 밀리자 정례 통화정책 일정을 앞당겨 긴급 처방을 꺼낸 것이다. 이와 함께 2026년과 2027년 인플레이션을 정부 목표 범위인 2.5±1% 안에 묶어두겠다는 선제적 긴축 신호도 함께 제시했다. 환율 불안이 수입 물가와 기대 인플레이션으로 전이되는 경로를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판단이다.

동시에 단기 증권(SRBI) 금리를 인상해 서방 자본을 무차별 흡수하는 한편 파생상품 시장 개입 믹스도 단행했다. 그 결과 루피아는 달러당 1만8,000루피아(약 1,540원) 선을 위협하던 급락세에서 벗어나 달러당 1만7,600루피아(약 1,510원) 선 안팎으로 일부 안정을 되찾았다. 다만 외환보유고 감소, 외국인 자금 이탈, 정책 신뢰 훼손이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이번 반등은 시간 확보 성격이 강하다. 인도네시아 외환시장은 이미 금리·파생상품·외환보유고를 총동원해야 하는 비상 국면에 진입한 상태다.

원화 흔드는 저성장 그림자, 약세 압력 확대

마찬가지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이란 전쟁 발발 이후 국제유가 상승과 달러 강세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원화는 주요 아시아 통화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큰 압박을 받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 안착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상승 폭을 키웠고, 원화의 실질 구매력을 보여주는 실질실효환율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권까지 밀려났다. 외환 시장이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 가능성을 선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 역시 환율 문제를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최근 한국 정부가 해외주식 투자 자금을 국내 증시로 유도하는 제도를 운용하는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부는 지난 3월 24일부터 해외주식을 매도해 '국내시장 복귀계좌(RIA)' 계좌에 이체한 국내 복귀 자금에 한해 양도소득세를 대폭 깎아주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이는 외환시장 안정과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카드다.

그러나 이 같은 유인책만으로는 외환시장 수급을 뒤집기 쉽지 않다.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보유 규모는 이미 사상 최대 수준까지 확대됐다. 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MS)·애플 등 미국 대형 기술주로 자금이 집중되면서 달러 수요도 함께 증가했다. 해외 자산 투자 확대가 일시적 유행을 지나 장기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원화 수요 기반도 이전보다 약해졌다.

경상수지 흑자 역시 환율 방어막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로 달러 유입은 늘어나고 있지만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의 해외 투자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 금융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 자산시장으로 재유출되는 현상도 반복되고 있다. 해외 직접 및 증권 투자가 포함된 우리나라의 금융계정 순자산은 올해 1분기 기준 654억2,000만 달러(약 100조원)에 달한다. 기업뿐 아니라 서학개미, 연기금까지 해외 투자를 늘린 결과다.

잠재성장률 하락도 원화 약세 압력을 키우고 있다. 올해 들어 한국 성장률이 높아진 것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결과일 뿐, 근본적인 경기 기초 체력은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10배 이상 큰 미국에 못 미친다. 실제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23년부터 미국에 뒤처지고 있다. 여기에 엔화 동조화라는 외부 변수까지 겹쳤다. 일본은 장기 침체 속에서 물가까지 오르기 시작하며 엔화 약세가 구조화되는 국면에 접어들었고 원화가 사실상 엔화의 대리 통화처럼 묶여 움직이면서 일본발 약세 압력이 원화로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는 형국이다.

아시아 통화 짓누르는 인플레이션

시장 일각에서는 아시아 통화가 회복하려면 전쟁이 끝나는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전쟁 종식이 통화 반등으로 직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중동발 충격은 이미 외환시장을 지나 물가 전반으로 확산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이란 전쟁으로 인해 아시아 지역의 성장률이 올해 4.2%, 내년 4.0%까지 낮아지고, 물가 상승률은 7.4%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국제유가 상승 이후 운송비와 전력비, 원자재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르면서 생산비 부담이 확대된 탓이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정상화된다고 해도 이미 보험료와 운임, 재고 보충 비용이 물가 하단을 떠받치고 있다. 게다가 에너지 가격 상승분이 제조업과 물류, 소비재 가격으로 순차적으로 전이되는 과정도 진행 중이다. 기업들은 이미 에너지 비용 증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고 소비자들도 향후 물가 상승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통화가치 회복의 전제인 물가 안정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아시아 통화 전반의 반등을 가로막는 또 다른 변수는 금리다. 전쟁 후폭풍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확산된 상황에서 통화가치를 되돌리려면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나 성장 둔화와 내수 부진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공격적인 긴축은 경기 하방 압력을 더 키울 수 있다. 환율 방어와 경기 방어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구도다.

위안화 변수도 통화 정상화를 늦추는 요인이다. 중국이 수년간 저평가된 위안화를 바탕으로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아시아 제조업 통화 전반이 강세로 돌아서기 어려운 환경에 묶였다. 최근 위안화가 일부 절상 흐름을 보이고 있으나, 이미 누적된 제조업 가격 경쟁 압박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 환율을 정상화하려면 물가와 자본유출을 막아야 하지만, 통화를 강하게 만들수록 중국산 저가 수출과의 경쟁 부담이 커진다. 이렇듯 아시아 통화 약세에는 전쟁 변수와 물가, 금리, 제조업 경쟁력이 동시에 맞물려 있다. 전쟁이 멈춰도 유가 충격의 잔존 효과와 기대인플레이션, 역외 파생상품 베팅은 한동안 아시아 외환시장을 계속 흔들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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