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전쟁 이후의 경제, 사라진 사람과 자본이 남긴 공백
[딥파이낸셜] 전쟁 이후의 경제, 사라진 사람과 자본이 남긴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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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 인력의 이탈이 남긴 성장의 공백 신뢰 회복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자본과 멈춘 투자 사람과 설비를 함께 세워야 가능한 지속적 생산 복원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쟁의 경제적 대가는 전장이 멈추기 전부터 심화된다. 국가는 잃어버린 노동(L)과 자본(K)의 공백을 감당해야 한다. 생산(Y)은 사람과 설비의 결합으로 이루어지지만, 전쟁은 그 두 축을 동시에 무너뜨린다.
우크라이나의 재건비는 그 현실을 보여준다. 향후 10년간 필요한 복구·재건 비용은 5,240억 달러(약 730조 원)로, 2024년 국내총생산(GDP)의 약 2.8배다. 이 금액은 경기부양을 위한 투자가 아니다. 파괴된 주택, 공장, 전력망, 도로, 학교를 복구하기 위한 최소 비용이다. 그러나 전쟁의 영향은 재정 부담에 그치지 않는다. 인구는 흩어지고 산업의 흐름은 멈춘다. 교육이 중단되고 기술의 전승이 끊긴다. 이 과정에서 사회는 인적 자본의 연속성을 잃고, 생산 기반은 한층 더 약해진다.
설비가 무너지고 인력이 빠져나가면 일시적 침체로 끝나지 않는다. 경제의 구조 자체가 낮아진다. 전쟁은 경기의 일탈이 아니라 성장 경로를 다시 설정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사람과 자본이 동시에 이탈한 경제는 과거의 정상 경로로 돌아가지 않는다. Y = L × K라는 단순한 수식은 전쟁의 현실 앞에서 가장 냉정한 진단이 된다.
금융위기와 전쟁, 충격의 깊이가 다른 이유
금융위기는 신용과 심리를 흔들지만 생산 기반은 남는다. 자산 가격이 급락해도 공장은 그대로 존재하고, 근로자 대부분은 일터를 유지한다. 유동성이 돌아오고 신용이 회복되면 투자는 다시 움직인다. 일정 기간의 조정을 거치면 경제는 정상 궤도로 복귀한다.
전쟁은 구조가 다르다. 폭격은 설비를 파괴하고, 숙련 인력을 전장과 국경 밖으로 내몬다. 남은 인력은 분산되고, 기업은 생산을 중단한다. 물리적 자본이 무너진 경제는 단순한 경기 부양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통화 완화나 재정 확대도 생산요소가 사라진 상황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노스웨스턴대(Northwestern University)와 EIEF 연구소(Einaudi Institute for Economics and Finance)가 수행한 115개 분쟁의 장기 통계 분석에 따르면, 전쟁을 겪은 국가는 10년이 지나도 국내총생산(GDP), 투자, 교역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소비는 위축되고 설비투자는 장기간 정체됐다. 무역 네트워크도 재편되지 못했다. 이런 흐름은 일시적 경기 하강이 아니라 구조적 생산 손실의 전형이다. 결국 전쟁은 금융위기보다 훨씬 깊고 오래가는 공급 충격이다. 금융위기는 신용이 돌아오면 회복의 통로가 열리지만, 전쟁은 생산의 전제가 사라진다. 노동과 자본이 함께 줄어든 경제는 단순한 경기순환의 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차이가 ‘위기’와 ‘붕괴’를 가르는 경계다.

주: 분쟁 발생 후 통화 공급과 CPI는 재정 압박과 공급망 훼손의 영향으로 장기간 상승세를 보인다.
노동의 이탈, 인구 구조의 깊은 흉터
경제의 절반은 사람이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질수록 노동(L)은 줄고, 돌아오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의 해외 난민은 690만 명, 국내 실향민은 37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상당수는 유럽연합(EU)의 임시 보호 제도 아래에 있다. 보호 기간이 2027년까지 연장되면 귀환 시점은 더 늦어진다.
노동의 이탈은 단순한 인구 이동이 아니다. 장기간의 공백은 기술 숙련의 손실로 이어지고, 가정의 교육·노동 결정 구조를 바꾼다. 부모가 귀환을 미루면 자녀의 학제와 언어 환경도 달라진다. 결국 지역 경제의 ‘사람 연결망’이 끊기고, 생산 현장은 숙련이 사라진 채로 남는다. 경제 지표는 그 공백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크라이나의 실질 GDP는 2022년 30% 급락했고, 2023년 5.3% 성장했지만 수준 격차는 여전히 크다. 이는 IMF가 제시한 ‘전쟁 후 평균 회복률(7.2%)’보다 낮은 수준이다. 성장률이 양(+)으로 돌아서도 노동 투입의 총량이 줄어든 이상 총생산은 회복되지 않는다.
전쟁은 노동시장을 단순히 축소하지 않는다. 출산율, 교육, 고용의 축이 동시에 흔들리며 세대 간 인적 자본의 전승을 끊는다. 청년층의 해외 이주가 길어질수록 복귀율은 낮아지고, 고령화 속도는 빨라진다. 이 손실은 단기 경기 부양이나 외부 지원으로 복원되지 않는다. 사람의 부재가 곧 성장의 한계로 이어진다.
자본의 파괴, 보이지 않는 투자 공백
전쟁은 공장만이 아니라 ‘투자 의지’까지 파괴한다. 2024년 말 기준 우크라이나의 인프라 직접 피해는 1,700억 달러(약 240조 원)에 달한다. 전체 주택의 13%가 파손됐고, 주요 산업 시설의 가동률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전력망과 항만, 도로의 상당 부분이 마비돼 물류가 끊기고 생산 비용은 급등했다.
지뢰로 폐쇄된 농지 역시 치명적이다.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10%가 이 지역에서 잠식된다는 추정이 나온다. 농업과 식품 산업이 중심인 경제 구조에서 토지는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생산의 출발점이다. 경작지 일부가 사라질 때마다 지역 소득이 줄고 복구 기간은 수년씩 길어진다. 이 손상은 단순한 물리적 파괴가 아니다. 담보가치의 하락은 금융을 위축시키고, 불확실성은 자본비용을 높인다. 설비를 새로 세워도 관리와 유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산 가치는 곧바로 떨어진다. 금융기관은 채권 상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고, 기업은 장기 투자를 미룬다.
결국 투자 회복은 자본 양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전력망의 복구, 사법제도의 신뢰, 지뢰 제거와 재산권 회복이 연결돼야 자본(K)이 다시 움직인다. 이 네트워크가 복원돼야 민간투자도 돌아온다. 신뢰가 없는 재건은 건물이 서 있어도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경제를 남긴다.

주: 분쟁 발생 후 1~2년 내 GDP가 급감하며, 노동력과 자본 손실로 인해 10년 이상 낮은 수준이 지속된다.
복구의 순서, 사람과 설비를 함께 세우는 일
전쟁 이후의 복원은 순서의 문제다. 안전한 주거와 학교, 의료 기반이 돌아와야 사람들이 돌아온다. 사람의 귀환이 자본 회복의 전제 조건이 된다. 반대로 인프라만 세워도 일할 인력이 없으면 공장은 멈춘다.
정책의 방향도 여기에 맞춰야 한다. 노동(L)과 자본(K)은 함께 복원돼야 한다. 전력·철도·항만 같은 핵심 인프라를 먼저 안정시키고, 직업훈련·원격근무·연금 이동성으로 노동의 회귀를 유도해야 한다. 이 과제는 단순 복지가 아니라 성장 전략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투명한 예산과 신뢰할 수 있는 통화정책이 민간의 위험 인식을 낮춘다.
복구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자본의 규모가 아니라 제도의 신뢰다. 인프라를 세우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일이다. 귀환이 늘어나고 현장이 복원될 때 투자는 생산으로 이어진다. 회복은 결국 사람의 귀환에서 시작된다. 한 교사가 교단으로 돌아오고, 불 꺼졌던 교실에 전기가 다시 들어올 때, 노동과 자본이 함께 움직이며 생산(Y)은 다시 살아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Economic Cost of War: Why Lost Labor and Capital Crush Recovery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