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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시장 양분한 SK하이닉스-삼성전자, 차세대 제품 두고 경쟁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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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2분기 내 HBM3E 12단 제품 양산 예정
SK하이닉스 "HBM3E 12단, 3분기 양산 준비 중"
차세대 HBM 시장 내 양사 '선점 경쟁'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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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차세대 맞춤형 HBM으로 '초격차'를 달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속도감 있게 첨단 제품을 개발, HBM 시장 내 영향력을 제고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와 HBM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SK하이닉스도 같은 날 동일 제품 양산 계획을 밝히며 경쟁 구도를 본격화하고 나섰다.

"차세대 HBM 선점하겠다" 삼성전자의 포부

2일 김경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품기획실 상무는 뉴스룸 기고문을 통해 "삼성전자는 2016년 업계 최초로 고성능 컴퓨팅(HPC)용 HBM 사업화를 시작하며 AI(인공지능)용 메모리 시장을 개척했다"며 "2016년부터 올해까지 예상되는 총 HBM 매출은 1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HBM 사업을 통해 발생한 매출을 직접적으로 공개하며 경쟁력을 과시하고 나선 것이다.

다만 현재 삼성전자는 HBM3(4세대 HBM)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에 시장 주도권을 넘긴 상태다. 이에 삼성전자는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초격차 기술력을 적극 활용해 HBM3E(5세대 HBM) 등 차세대 HBM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김 상무는 "HBM3E 8단 제품에 대해 지난달부터 양산에 들어갔으며, 업계 내 고용량 제품에 대한 고객 니즈(요구) 증가세에 발맞춰 업계 최초로 개발한 12단 제품도 2분기 내 양산할 예정"이라며 "램프업(생산량 확대) 또한 가속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추후 '맞춤형 HBM' 제품으로 주요 고객사들의 수요를 충족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상무는 "HBM 제품은 D램 셀을 사용해 만든 코어 다이와 시스텝온칩(SoC)과의 인터페이스를 위한 버퍼 다이로 구성되는데, 고객들은 버퍼 다이 영역에 대해 맞춤형 IP 설계를 요청할 수 있다"며 "이는 HBM 개발·공급을 위한 비즈니스 계획에서부터 D램 셀 개발, 로직 설계, 패키징·품질 검증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차별화·최적화가 주요 경쟁 요인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시장 선두 주자 SK하이닉스도 '맞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삼성전자의 대표 경쟁사인 SK하이닉스 역시 같은 날 차세대 HBM 제품 개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2일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HBM은 올해도 솔드아웃(완판), 내년도 대부분 솔드아웃”이라며 “HBM3E 12단 제품을 5월 (고객사에) 샘플로 제공하고, 3분기 양산이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초격차 전략'의 중심축으로 내세운 12단 제품 양산 계획을 밝히며 본격적인 시장 경쟁을 시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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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HBM3E 제품/사진=SK하이닉스

패키징과 테스트를 총괄하는 최우진 SK하이닉스 P&T 담당 부사장은 “일각에서는 우리 적층 기술이 높이 쌓을 때 한계를 보일 수 있다고 하지만 이미 우리는 HBM3(4세대) 12단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며 자체 적층 기술의 경쟁력을 강조했다. 현재 SK하이닉스가 HBM 제작 과정에서 사용하는 ‘MR-MUF’ 기술은 여러 층의 D램을 한 번에 포장하는 기술로, 방열 효과가 뛰어난 보호재를 주입한 뒤 칩과 그 주변을 감싸 열과 압력을 가해 굳히는 방식이다.

최 부사장은 “최근 도입한 어드밴스드 MR-MUF 방식은 신규 보호재를 이용해 방열 특성을 10% 개선했다”며 “더 적은 열과 압력을 이용해 굳힐 수 있어 12단, 16단을 쌓더라도 문제없다”고 자신했다. SK하이닉스는 6세대 HBM4 제품에도 MR-MUF 기술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자체 기술력을 무기로 삼아 시장 선두를 지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는 평이 흘러나온다.

시설 투자 경쟁에도 불붙었다

양사는 앞으로도 치열한 선점 경쟁을 펼쳐나갈 전망이다. 현재 글로벌 HBM 시장은 사실상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2강 구도'로 움직이고 있다. 선제적으로 차세대 HBM을 개발해 양산에 성공하는 기업이 시장 주도권을 얻게 된다는 의미다. 이에 양사는 적극적인 시설 투자를 단행하며 경쟁 구도를 본격화하는 추세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시설투자에 11조3,000억원을 집행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6,000억원 증가한 수준이다. 이 중 HBM 관련 투자액이 포함된 DS부문 시설투자 금액만 9조7,000억원에 달한다. 첨단 제품 수요 대응을 위한 설비 및 후공정 투자를 늘린 결과다. 같은 기간 투입된 연구개발(R&D) 비용은 분기 최대인 7조8,200억원 수준이었다. 삼성전자는 추후 HBM 공급량을 3배 이상 늘리는 등 고부가가치 비중 확대 전략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5일 진행된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급변하는 시장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메모리 시황에 대한 생산 투자 계획을 정기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올해 투자 규모는 연초 계획보다는 증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같은 달에는 충북 청주에 건설할 신규 팹(실리콘웨이퍼 제조 공장) M15X를 HBM 등 차세대 D램 생산 기지로 삼고, 약 5조3,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해당 팹은 2025년 11월 준공 후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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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DS] 해외 정부는 어떻게 유권자의 마음을 '해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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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유권자 마음 '해킹' 성행하고 있어
사이버 영향력 작전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관찰-지향-결정-행동 구조를 이해해야
2024년 전 세계 인구의 49%가 선거에 참여하는 만큼 사이버 영향력 작전과 선거 간섭에 철저히 대응해야

[해외DS]는 해외 유수의 데이터 사이언스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votes getty images
사진=Scientific American

2024년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참여하는 연도다. 선거는 국제법상 국가 '내부'의 문제로 다른 나라의 간섭을 받으면 안 된다. 그러나 최근 온라인 조작을 통한 국가 간의 '선거 간섭'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사이버 영향력 작전(Cyber-Enabled Influence Operations)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허위 정보와 가짜 뉴스를 내포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보를 이용한 국가 간의 간섭 심화되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의 선거 개입이 드러난 이후 인플루언서 작전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사이버 작전에 대한 관심도 계속 커지고 있다. 따라서 연구자, 정책 입안자, 소셜 미디어 기업은 사이버 영향력 작전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사이버 영향력 작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사이버 영향력 작전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정보는 나라를 통치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는 2000여 년 전에 "최고의 병법이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며 정보를 이용한 병법을 강조했다. 실제로 1980년대 소련은 미국에서 에이즈가 발생했다는 거짓 정보를 퍼뜨리기 위해 인펙션/덴버 작전(Infektion/Operation Denver)을 수행했다. 사이버 세계가 등장한 이후 정보를 이용한 작전은 범위, 규모, 속도 모든 측면에서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사이버 작전의 대상도 점차 변해가는 추세다. 기존에는 '기계'를 대상으로 했으나, 최근에는 키보드 뒤의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 사이버 작전은 대중의 사고와 인식을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행동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행동 변화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적대적인 국가에서 정치 집회를 조직하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 사이버 영향력 작전은 무력 충돌 없이 벌어지는 국제 경쟁의 연속이다. 예를 들어 사이버 영향력 작전은 양극화를 조장하는 정보를 대중에게 내포해 여론을 조작한다. 기존에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해킹하거나 통신을 방해하는 공격적인 사이버 작전을 펼쳤으나, 최근 사이버 작전은 사람 마음을 '해킹'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사람 마음을 해킹하는 작전은 외국 세력이 다른 나라의 정치에 개입하고자 할 때 유용하기 때문이다.

사이버 영향력 작전 핵심 원리, 관찰-지향-결정-행동 구조

그럼 사이버 영향력 작전은 어떤 원리로 작동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개념인 관찰-지향-결정-행동(Observation-Orientation-Decision-Action) 구조를 알아야 한다. 이 모델은 한 사회의 개인이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얻고 그 정보로 전략적 선택을 내리는 과정을 말한다. 공중전에서 전략적 선택은 조종사의 생존과 군사적 승리로 이어지고, 일상 생활에서 전략적 선택은 우리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찰-지향-결정-행동 구조의 '관찰'에 정보를 추가하면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사이버 영향력 작전은 관찰 단계에서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여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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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지향-결정-행동 구조/사진=Scientific American

사이버 영향력 작전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이버 영향력 행사는 식별-모방-증폭 프레임워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식별' 단계에서는 소셜 미디어 마이크로 타깃팅(Microtargeting)을 통해 타깃층과 분열을 조장하는 이슈를 파악한다. 두 번째는 '외부인'이라는 허위 신분을 만들고 타깃층의 구성원인 것처럼 위장하여 신뢰도를 높인다. 마지막으로 사이버 영향력은 맞춤형 메시지를 통해 콘텐츠와 대상 그룹 수를 늘리고, 다양한 플랫폼에 게시글을 올려 영향력을 증폭시킨다.

실제로 2016년 러시아에서 미국 대중을 표적으로 삼기 위해 악명 높은 '트롤 공장'이 운영하는 광고를 구매했다. 이 광고에서 트롤은 허위 신원을 설정하고 대상 집단일 것 같은 언어를 사용해 위장했다. 그런 다음 타깃층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를 보내며 그룹 내 소속감을 만들어 영향력을 행사했다. 설계된 메시지는 허위 정보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실에 근거한 정보도 사용했다. 따라서 허위 정보, 가짜 뉴스 대신 '사이버 영향력 작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실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최근 입대한 군인이 9/11 테러를 TV로 본 생생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 사건을 계기로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있다. 이 게시물은 미국 전역 퇴역 군인 페이스북 페이지가 공유했으나,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에서는 '가짜' 게시글이 '진짜' 게시글과 마찬가지로 정서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가짜' 게시물은 애국심을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이외의 목적으로도 활용될 여지가 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마이크로 타깃팅을 통한 마음 '해킹', 사이버 영향력 작전과 선거 간섭에 잘 대응해야

러시아 인터넷 연구소는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특수 메시지를 제작하여 페이스북에서 사이버 영향력 작전을 진행했다. 페이스북의 마이크로 타깃팅 기능을 사용하여 그룹에 따라 각기 다른 메시지를 만들었다. 러시아가 구매한 대부분의 페이스북 광고는 허위 정보 없이 인종, 정의, 경찰 등 주제에 초점을 맞춘 메시지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 1억 2600만 명의 미국인은 자신의 견해와 투표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러시아는 미국 외에도 독일과 영국을 표적으로 삼은 것이 드러났다.

올바른 전략적 결정을 내리려면 개인이 주변 환경을 '정확하게' 관찰해야 한다. 관찰된 현실을 분열이라는 조작된 렌즈를 통해 보면 관리 '가능한' 사회적 의견 불일치가 관리 '불가능한' 분열로 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양극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정치적으로 양극화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가짜 뉴스' 없이도 기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식별-모방-증폭 프레임워크에서 강조하듯이 누가 합법적으로 토론에 참여하고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에 대한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관찰되고 있는 '현실'이 무엇인지도 중요한 질문이다. 기술을 통해 외부인(외국의 허위 신분)이 특정 사회의 구성원인 것처럼 위장할 수 있게 되면 사이버 영향력 작전은 더욱 유효하게 되어 조작의 위험에 빠지기 마련이다.

2024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약 49%가 선거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사이버 영향력 작전과 선거 간섭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식별-모방-증폭 프레임워크를 이해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외국의 사이버 영향력 행사는 진실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여론을 움직일 것이며 이것이 국내 정치에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깊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또한 사이버 공간의 특징인 접근성과 익명성은 사이버 영향력 작전을 용이하게 만든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는 익명성을 보장하면서 합법적인 사용자에게만 접근 가능하게 해야 한다. 이는 물론 어려운 과제이면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편집진: 영어 원문의 출처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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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200조 부채’에 희망퇴직 시행, 최대 1.1억 위로금 추가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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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금 별도 지급, 최대 1억1,000만원
재정난 극복 위한 구조조정 일환
전사적 인력구조 개편, 효율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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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본사 전경/사진=한국전력

한때 신의 직장으로 불렸던 한국전력공사가 전사적 희망퇴직을 실시한다. 이번 희망퇴직은 한전 창사 이래 두 번째로 200조원대 부채 등 재무 여건 악화에 따른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한전, 6월 희망퇴직 실시

지난달 30일 한국전력은 오는 6월 15일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특단의 자구대책 이행'의 일환이다. 희망퇴직 신청 기간은 이날부터 다음 달 8일까지며, 희망퇴직 대상자에게는 퇴직금 외에 위로금을 추가로 지급할 예정이다. 희망퇴직 위로금 재원은 약 122억원으로 직원이 자발적으로 반납한 2022년도 경영평가성과급으로 마련했다. 위로금은 최대 1억1,000만원이며 근속기간 등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

명예퇴직이 가능한 근속 20년 이상의 직원은 명예퇴직금의 50%를 받고, 근속 20년 미만의 직원은 근속기간에 따라 조기퇴직금(연봉월액의 6개월분)의 50∼300%를 받는다. 신청 인원이 희망퇴직 가능 재원 규모를 초과할 경우, 근속연수 20년 이상 직원 중심(80%)으로 시행하되, 급여 반납에 동참한 직원에 대한 공평한 기회 제공 차원에서 전체 희망퇴직 인원의 20%를 근속연수 3년 이상 20년 미만 직원 중에서 선정할 예정이다.

한전은 “앞으로도 재무 여건 악화에 따른 경영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희망퇴직 이외에 경영 체계 전반에 걸친 과감한 혁신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효율적 조직으로 혁신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대한민국 대표 에너지 공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부채 202조원, '재무위기 극복' 자구책

이번 희망퇴직은 총부채가 200조원 돌파하는 등 재무 구조가 날로 악화되자 꺼내든 고육책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전의 누적부채는 202조4,000억원으로, 전년보다 약 6% 불어났다. 한전의 부채가 200조원대를 넘어선 건 사상 처음이다. 같은 기간 이자 비용만 4조4,517억원에 달했다. 매일 이자 상환에만 무려 122억원을 쏟아부은 셈이다.

전기요금은 지난해 말부터 5개월 동안 줄곧 동결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주로 대기업이 사용하는 산업용 전기만 kWh당 평균 10.6원 올리고, 주택용 등 나머지 전기료는 모두 동결했다. 이후 전기료는 지금까지 아무런 변동이 없다. 지난달 정부가 올해 2분기(4월~6월)까지 전기요금에 대해 현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 밝힌 만큼 올 상반기까지 전기료는 동결될 예정이다.

이렇다 보니 미국 상무부는 “한국의 값싼 전기요금이 사실상 철강업계에 보조금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지난해 현대제철 등에 1.1%의 '상계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저렴한 전기료를 정부 보조금으로 공식 판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계관세는 수출국이 직·간접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해 수출한 품목이 수입국 산업에 실질적인 피해를 초래할 경우, 수입 당국이 해당 품목에 관세를 부과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조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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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본사 전경/사진=한국전력

전기요금 추가인상 가능성 낮아

낮은 전기요금이 미국과의 통상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음에도 최근 물가가 치솟고 있는 탓에 추가 인상 가능성은 여전히 요원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비자물가지수는 113.94로 전년 동기 대비 3.1% 올랐다. 올해 1월 2.8%에서 2월 3.1%로 상승한 뒤 3%대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고물가 지속이 여당의 이번 총선 패배 주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 만큼 당분간 정부는 물가잡기 정책에 총력을 다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이란과 이스라엘 무력 충돌 등 중동전쟁 확산 가능성도 변수도 떠오르고 있다. 중동 지역 불안감 고조로 국제유가가 오르면, 에너지 원가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전 실적을 좌우하는 계통한계가격(SMP) 흐름에도 변동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악재 속에 한전이 또다시 적자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국제유가가 2026년에 150달러까지 치솟을 거란 예측이 계속해서 나오는 가운데, 한전의 재무 개선도 제자리걸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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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근거 마련" 반복하는 산업부, 전기차 충전 방해 단속 '지지부진'

"법적 근거 마련" 반복하는 산업부, 전기차 충전 방해 단속 '지지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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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모빌리티 규제혁신방안' 4개월째 지지부진, 왜?
단속 법적 근거 마련도 '아직', 전기차주 불편 언제까지 이어지나
스마트 단속 시스템 임의 도입한 서울 중구, "긍정적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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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올해 1월 전기차 충전소 내에서 충전 없이 주차만 하는 전기차 등을 단속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친환경 모빌리티 규제혁신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막상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까지 해당 내용이 담긴 단속 가능 시기를 정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기차 충전 방해 논란에 직접 '단속' 시사한 정부

현행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제11조의2'에 따르면 전기차가 급속충전소에 1시간 이상 머물게 되거나 완속충전소에 14시간 이상 머물면 당사자가 기초지자체에 과태료 10만원을 내야 한다. 그러나 명확한 기준이 없어 전기차 충전 없이 충전소에 1시간 이내 머무는 전기차에 대해 다수 기초지자체들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같은 행위가 전기차 소유주들의 충전 권리를 방해한다는 지적이 쏟아짐에도 정책상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정부가 내놓은 게 친환경 모빌리티 규제혁신방안이다. 해당 안에는 "충전행위 없이 충전 구역 점유 시 방해행위로 단속"이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는데, 이는 전기차라도 충전소 내 충전을 진행하지 않으면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산업부는 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차량의 충전 가능 시간을 완속 기준 최대 14시간에서 7시간으로 줄이고, 포괄적인 전기차 충전방해 행위 기준도 추가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전기차를 둘러싼 각종 정책적 논란을 해소해 효용성을 제고하겠단 취지다.

법적 근거만 찾는 산업부, 우려 목소리↑

문제는 산업부가 규제혁신안에 따른 단속 가능 시기를 여전히 정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다. 산업부 관계자도 "가능한 한 빨리 단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목표"라며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선 함구했다. 이렇다 보니 전기차주 커뮤니티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쏟아진다. 사실상 전기차가 처음 도입된 시기부터 꾸준히 논란으로 불거져 온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아직 단속에 대한 법적 근거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는 데 실망감을 내비친 것이다.

일각에선 지난 2022년 정부가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이하 친환경차법)을 개정 시행한 때와 같은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충전시설과 친환경차 주차 공간 확보를 의무화했다. 신축의 경우 총 주차대수의 5% 이상, 기존 건물의 경우 2% 이상 확보를 기준으로 뒀으며, 전기차 충전방해 행위를 제재하는 조항도 명시했다. 전기차 충전 자리에 내연기관 차량을 주차하거나 물건을 쌓아두면 과태료 10만원, 고의로 충전시설을 훼손하거나 충전 구역 표지선 및 문자를 훼손하면 과태료 20만원 등이다. 법은 충전방해 행위 단속을 시장·군수·구청장이 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넓혀 효과적인 단속이 이뤄지도록 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군·구에 재량권을 주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과태료를 곧바로 부과하는 곳과 유예하는 곳이 특별한 기준도 없이 난립한 것이다. 당해 기준 서울시에 속한 총 25개구 중 충전방해행위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곳은 모두 8개구였으며, 나머지 17개구를 단속 유예 중인 데다 유예기간 종료 시점도 일정하지 않았다. 전기차주 입장에선 멀쩡한 법이 유명무실해진 셈이고, 내연기관차주 입장에선 법이 시행 중인 줄도 모르고 과태료만 부과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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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가 전기차 충전소에 도입한 방해행위 단속 시스템/사진=서울 중구청

임의 단속 나선 중구, "단속 난립 문제 재연될 수도"

이런 가운데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는 전기차 충전소에 불법 주차한 내연기관차를 단속하기 위해 임의로 충전소 두 곳에 스마트 단속 시스템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 단속 시스템은 차량 진입이 감지되면 서버로 충전소 주변의 영상을 전송하며, 충전은 하지 않은 채 주차만 하는 경우엔 경광등과 방송으로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중구는 앞으로 단속 시스템이 설치된 충전소에서 충전을 방해하는 행위로 적발된 차량에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할 방침이다.

커뮤니티에선 각종 민원에 직접 단속 시스템 마련에 나선 중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가 많지만, 일각에선 상술한 재량권 난립 문제가 다시 전기차주를 옥죌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타지역에서 큰 문제 없이 주차하던 내연기관차주 입장에선 중구만의 시스템이 주차 공간 탈취로 여겨져 전기차추와 내연기관차주 간 갈등이 가중할 수 있단 의견이다. 이를 차치하더라도 지역 차원의 일부 단속 정도로는 큰 의미가 없다는 반응도 있다. 정책적 결함이 전기차 수요 확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단 평가가 나오는 만큼 정부 차원의 보다 신속한 대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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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IDC 청사진 내놓은 LG유플러스, LG디스플레이 자금 수혈·IDC 투자 '두 마리 토끼' 잡나

파주 IDC 청사진 내놓은 LG유플러스, LG디스플레이 자금 수혈·IDC 투자 '두 마리 토끼' 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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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디스플레이 소유 파주 토지 매입한 LG유플러스, "최대 규모 IDC 지을 것"
부채 비율 279% LG디스플레이, "파주 토지 매입으로 유동성 확보 도운 셈"
경쟁력 높은 IDC 사업, 매출 성장률도 LG유플러스 18.2%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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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LCD 산업단지 내 위치한 LG디스플레이 공장/사진=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가 경기도 파주시에 초대형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짓는다. 평촌메가센터를 뛰어넘는 국내 통신사 최대 규모로, 생성형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떠오른 IDC 산업에 공격적 투자를 통해 새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단 취지다. 일각에선 파주 IDC 건립이 적자를 이어가는 LG디스플레이에 자금 수혈을 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IDC 분야의 높은 성장성이 이미 경영 실적으로 증명된 만큼 시장에선 LG유플러스 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LG유플러스, 파주메가센터 설립한다

지난달 30일 LG유플러스는 이사회를 열고 LG디스플레이가 소유한 경기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일대 토지·건물을 1,053억원에 매입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매매 일자는 오는 5월 14일이다. 해당 부지엔 초대형 IDC 파주메가센터(가칭)를 설립할 예정이다. 부지 면적은 7만3,712㎡(2만2,298평)로, 건설이 완료되면 평촌메가센터를 뛰어넘는 회사 최대 규모 데이터센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매입 결정에 대해 LG유플러스는 "최근 늘고 있는 IDC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라며 "서버 안정성 및 보안 강화를 위해 데이터를 중복해서 저장하는 ‘서버 이중화’ 방식을 선호하는 고객이 늘어난 점도 신규 센터 설립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파주 IDC는 LG유플러스의 전국 14번째 IDC이자 수도권 내 8번째 IDC"라며 "파주 IDC가 건립되면 하이퍼스케일 상업용 IDC를 국내 최초로 3개 보유한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기 남부에 이어 경기 북부에도 하이퍼스케일 IDC를 확보함으로써 기업 디지털 전환 수요에 적극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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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적자'인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가 자금 공급원?

그러나 업계에선 "파주 IDC는 LG디스플레이에 자금을 대주기 위한 방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LG디스플레이에 효용이 없는 부동산을 사들여 유동성 제고를 꾀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실제 최근 LG디스플레이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의 올해 1분기 매출은 5조2,530억원, 영업손실은 4,694억원이다. 전기 대비 매출은 29%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엔 불확실성이 확산하자 3조원 규모의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 시설 투자 기한을 2028년 3월까지 연장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환경에 취약한 상황이란 방증이다.

재무 상태도 좋지 않다. 순차입금은 13조7,900억원으로 지난해부터 13조원대를 유지하고 있고, 부채 비율은 279%로 작년 연말(308%) 대비 낮아졌지만 전년 동기(248%)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상태다. 그나마 지난 3월엔 유상증자 흥행에 성공하면서 1조3,000억원가량을 확보했으나 시장에선 여전히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결국 실질적인 재무 대책을 세우기 위해선 경쟁력 강화 및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미 8세대 라인 투자에 돌입한 삼성디스플레이 등에 비해 LG디스플레이는 6세대 라인으로 생산에 집중하고 있어 다소 뒤처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체질 개선을 본격화하는 국면에 재무 개선은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숙제다. LG유플러스의 IDC 확대 행보에 업계가 LG디스플레이를 거듭 겹쳐 보는 이유다.

IDC 사업 경쟁력↑, "매출 성장세 가장 높아"

다만 일각에선 "IDC의 사업 경쟁력이 최근 들어 높아지는 추세인 만큼 LG유플러스가 언급한 'IDC 수요 대응' 목적에도 개연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지난해 공개한 경영 실적에서 가장 높은 매출 성장세를 보인 분야는 IDC였다. 자료에 따르면 SK텔레콤은 3분기 IDC 매출이 53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5% 성장했고, KT는 1,938억원으로 전년 대비 34.54%, LG유플러스는 827억원으로 전년 대비 18.2% 매출이 늘었다. 같은 기간 이동통신 매출 성장률이 SK텔레콤 1.1%, KT 1.6%, LG유플러스 2.7%로 연간 1~2%대에 머물러 있음을 고려하면 폭발적인 수치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 LG유플러스는 파주 IDC를 기점으로 IDC 경쟁력을 본격 제고할 방침이다. IDC를 기업 인프라 핵심 사업으로 키우겠다고도 밝혔다. 이에 한 통신 업계 관계자는 "챗GPT 등장 이후 세계적으로 AI 서비스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AI 학습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보관할 IDC를 찾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며 "2000년대 초반 IDC 사업을 시작해 이미 기술력과 노하우를 갖춘 통신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충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LG유플러스의 파주 토지 매입은 IDC 신규 부지가 필요했던 LG유플러스와 자금이 필요했던 LG디스플레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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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살고 보자" 티빙-웨이브 합병 급물살, 추후 변수는?

"일단 살고 보자" 티빙-웨이브 합병 급물살, 추후 변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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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웨이브, 상반기 중 합병 본계약 체결 전망
"더 이상은 못 버텨" 합병으로 '규모의 경제' 달성할까
공정위 기업결합 심사·중복 가입자 이탈 등은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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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OTT 서비스인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계획이 급물살을 탔다. 지난해 12월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지지부진하던 논의가 눈에 띄게 진전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양 사가 합병을 통해 본격적인 '규모의 경제'를 달성, 적자 탈출에 본격적으로 힘을 쏟을 것이라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티빙-웨이브의 합병 논의 진전

2일 업계에 따르면 티빙과 웨이브의 모회사인 CJ ENM과 SK스퀘어는 최근 티빙-웨이브 합병을 위한 텀싯(termsheet) 내용을 합의했다. 텀싯은 최종 투자 계약을 체결하기 전 양측의 합의점 도출을 위해 작성하는 서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티빙과 웨이브는 이미 합병 후 지분율 등 주요 사안에 대한 조율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합병 본계약은 이르면 올해 상반기 내에 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당초 CJ ENM과 SK스퀘어는 지난해 12월 티빙-웨이브 합병 논의를 위한 MOU를 체결한 바 있다. 당시 양 사는 올해 초 본계약을 맺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이후 관련 논의는 크게 진전되지 못했다. 이에 IB(투자은행)업계에서는 복잡한 주주 구성, 가치 산정(밸류에이션) 등의 문제로 내부 잡음이 발생하며 합병 논의가 방향성을 잃었다는 추측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실제 양 사의 주주 관계는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최대 주주인 CJ ENM(48.85%)을 제외한 티빙의 주요 주주는 KT스튜디오지니(13.54%), SLL중앙(12.75%), 네이버(10.66%) 등이다. 2,500억원 규모 투자에 나선 재무적 투자자(FI) 젠파트너스(구 JCGI)는 13.54% 지분을 보유 중이다. 웨이브의 경우 최대 주주인 SK스퀘어(40.5%) 외 전략적 투자자(SI)로 KBS, MBC, SBS를, FI로는 미래에셋벤처투자와 SKS 프리이빗에쿼티(PE) 등을 두고 있다. 합병은 주요 주주 모두의 동의가 필요한 사항인 만큼, 논의 과정에서 각 측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혔을 가능성이 크다.

합병은 누적 적자 속 활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양 사가 이 같은 잡음을 감수하면서까지 합병 전략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들 업체가 합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득실보다 '생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 사 합병은 출혈 경쟁의 굴레를 끊어내고,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이라는 시각이다. 실제 지난해 티빙과 웨이브 영업손실 규모는 각각 1,420억원, 803억원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이들 업체가 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 달성에 힘을 쏟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양 사가 힘을 합쳐 국내 OTT 시장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넷플릭스를 추월, 본격적으로 시장 영향력을 제고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데이터 분석 솔루션 업체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3월 마지막 주 기준 티빙과 웨이브의 주간 총이용 시간 합계치는 약 2,400만 시간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넷플릭스의 주간 총이용 시간(1,900만 시간)을 훌쩍 웃도는 수준이다.

점유율 면에서도 확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분석업체 아이지에이웍스 마케팅클라우드의 자료를 보면 지난달 기준 OTT 앱 사용자 점유율 순위는 △넷플릭스(35%) △쿠팡플레이(23%) △티빙(21%) △웨이브(13%) 등 순이었다. 전년 동기 넷플릭스의 시장 점유율이 47%, 티빙과 웨이브의 합산 점유율이 31%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확실한 '승산'이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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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과정에 '걸림돌' 산적

다만 양 사가 원활히 합병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 등 각종 변수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시점 티빙과 웨이브의 합산 점유율은 30% 이상으로, 공정위가 치밀한 심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추후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가 지연될 경우, 본계약 체결과는 무관하게 합병 법인 출범 시기가 미뤄질 위험이 있다.

지상파와 웨이브의 콘텐츠 제공 계약이 올여름에 끝난다는 점 역시 변수다. 양 사의 통합 과정에서 지상파 방송국 주주들이 제외되면 웨이브와 티빙의 실익 계산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웨이브의 투자금 상환이 복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흘러나온다. 웨이브는 지난 2019년 11월 무기명식 사모 전환사채(CB) 발행으로 2,000억원을 투자받은 바 있다. 만기일은 오는 11월 말이며, 만기 연장 여부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합병 이후 양 사의 '시너지'가 시장 기대를 밑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웨이브와 티빙을 중복해서 이용하는 가입자가 많은 만큼, 합병 후 실질적인 점유율이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양 사가 기대하는 넷플릭스-웨이브·티빙의 '2강 구도'는 사실상 성립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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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 살아난 AI 수요에 클라우드 매출 두 자릿수 증가

아마존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 살아난 AI 수요에 클라우드 매출 두 자릿수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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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매출 12.5% 증가, 영업이익 비용 절감 등 영향
광고· 클라우드 부문 아마존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 잡아
구글·MS도 예상 넘는 호실적, 인공지능 덕분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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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 뉴욕증시를 주도하는 빅테크 그룹, 이른바 ‘매그니피센트7’의 1분기 실적 발표가 이어지는 가운데, 아마존을 비롯한 클라우드 사업 기업들이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성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빅테크들이 클라우드 사업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하면서 수요가 되살아난 영향이다.

광고·클라우드가 다했다, 아마존 1분기 호실적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아마존은 올해 1분기 1,433억 달러의 매출과 주당 0.98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5% 늘었고 순이익은 104억 달러로 전년 대비 3배 이상 불어났다. 시장 예상치도 크게 웃돌았다. 매출은 시장조사기관 LSEG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 1,425억 달러를 웃돌았으며 , 주당순이익(EPS) 역시 전망치(0.83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효자는 클라우드 사업이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의 1분기 매출은 250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7% 늘었고 영업이익은 94억2,000만 달러로 아마존 전체 영업이익(153억 달러)의 62%를 차지했다. 영업이익률은 37.6%로 역대 최고치다. 클라우드 서비스에 생성 AI가 접목되면서 성장에 탄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아마존 측은 올해 AWS 연간 매출을 1,000억 달러로 예상하고 있다.

아마존의 압도적인 영업이익률은 앞서 언급한 클라우드 수요 증가와 함께 최근 단행한 대규모 정리해고 영향이 컸다. 아마존은 2022년 말부터 현재까지 2만7,000여 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특히 AWS에서 대규모 정리해고를 하면서 비용절감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된다. 아마존은 올해 들어서도 프라임 비디오, MGM 스튜디오, 트위치 등의 부문을 축소하는 등 인력을 감축하고 있다. 이와 함께 광고 부문 수익도 증가했다. 스트리밍 서비스인 프라임 비디오의 광고 효과가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118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24% 급증했다.

아마존, 지난해 4분기 실적도 예상치 상회

아마존은 앞서 지난해 4분기 실적도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바 있다. 지난 2월 초 아마존은 작년 4분기 매출이 1,700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4% 늘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월가의 예상치 1,662억 달러를 웃돈 규모였다. 특히 순이익은 106억 달러로 1년 전 2억7,800만 달러 대비 급증했다. 이에 따라 주당순이익도 0.03달러에서 1달러로 크게 올랐다.

AWS 매출은 242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했다. 이는 시장 전망치에 부합한 것은 물론, 전분기 성장세(12%)도 웃돈 것이다. 다만 지난해 1분기 20%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둔화했다. 광고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한 147억 달러를 기록, 시장 예상치 142억 달러를 소폭 웃돌았다. 결과적으로 작년 4분기 아마존이 견조한 실적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블랙프라이데이 등 연말 쇼핑 시즌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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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토이미지

구글·MS도 1분기 실적 순항

한편 올 1분기 호실적을 기록한 기업은 아마존만이 아니다. 구글(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MS)도 시장 예상을 넘는 실적을 발표하면서 클라우드와 AI의 시대의 도래를 다시금 입증했다. 먼저 MS의 1분기 매출은 619억 달러로, 이는 시장 예상치인 608억 달러를 상회한다. 주당순이익도 2.94달러로, 시장 예측치인 2.82달러를 웃돌았다.

특히 MS는 1분기 순이익 219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는데, 큰 폭의 자본지출 증가에도 순이익 증가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분기 MS의 자본지출은 140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79% 증가했다. 자본지출 급증에도 순이익 증가세를 유지한 것이다.

MS에 따르면 자본지출의 대부분은 AI 수요 충족을 위한 인프라 투자로 인해 발생했다. 클라우드 AI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AI 모델 배포를 위한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 비용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큰 폭의 자본지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AI 데이터센터 투자는 지속될 전망이다.

알파벳 역시 1분기 매출 805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5%의 성장세를 기록, 시장 예측(786억 달러)을 뛰어넘는 호실적을 보였다. 주당순이익도 1.89달러로 애널리스트들이 예상했던 1.15달러를 상회했다. 실적 호조를 이끈 것은 아마존과 마찬가지로 클라우드다. 알파벳의 클라우드 매출은 96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7% 급등해 실적 상승을 견인했다.

여기에 더해 캐시카우인 유튜브 광고 매출도 81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실적을 뒷받침했다. 이와 더불어 구글이 새롭게 발표한 AI ‘제미나이’의 시너지도 클라우드 비즈니스 성장에 힘을 더한 것으로 분석된다. MS, 아마존과 마찬가지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클라우드 AI 수요의 수혜를 받아 클라우드 비즈니스 성장을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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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언어다, 다만 조금 특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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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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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 of GIAI Korea
Professor of AI/Data Science @ SIAI
데이터 사이언스에서의 수학은 엄밀한 수학이 아니라 긴 문장을 짧게 표현한 것에 불과해
데이터 사이언스는 수식이 의미하는 바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자세 필요해
경제학에서 수학 기반 연구가 주류로 자리 잡은 이유는 수학이 효율적인 의사소통 수단이기 때문

고등학교 때 수학이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자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다. 당연히 대학교에 진학해도 수학을 좋아할 줄 알았지만, 대학 시절부터 수학은 싫어하는 과목으로 바뀌었다. 수학 성적이 박사 입학에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수학 수업을 들었지만, 수년간 대학원에서 공부한 후에도 여전히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다(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지만). 단지 수수께끼를 풀 때 사용하는 수학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등학교 교과서와 시험에 나오는 문제는 대부분 주어진 상황에서 답을 찾는 문제다. 하지만 대학에서 처음 만난 수학은 0+0=0같은 정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아니 잠깐만, 0+0=0? 뻔한 거 아닌가? 예를 들어 나도 사과를 먹지 않았고, 동생도 사과를 먹지 않았다. 그러면 아무도 사과를 먹지 않은 거잖아. 이렇게 간단한 개념에 수학적 증명이 왜 필요한 거지?

데이터 사이언스를 가르치면서 교과서에 나오는 수식은 긴 문장을 짧은 형태로 축소한 것이라고 항상 주장한다. 학생들에게 "수학에 쫄지 마라. 수학은 그저 언어일 뿐이다"라고 강조하지만, 학생들은 공감이 안 되는 듯 의아해한다. 0+0=0같은 대학 1학년 기초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증명을 보여주면, 비로소 학생들은 여기서 배우는 수학은 언어임을 이해하게 된다. 추가로 짧은 예시를 들어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수학은 문장을 짧게 표현하는 수단에 불과해

수학이 언어라는 주장을 시작하기 전에, 수학은 언어의 학문적 정의에서처럼 실제로는 언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겠다. 예를 들어 수학의 정리와 따름정리의 구조는 문단과 그 문단을 뒷받침하는 예시로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둘 다 논리적 사고를 구축하는 데 사용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지만, 수학과 언어를 일대일로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수학이 언어라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은 특정 맥락에서만 유효하다.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내 전공 분야는 수학으로 노트와 논문을 작성한다. 수학자들이 보기에 데이터 사이언스가 수학을 사용한다는 주장에 당황할 수도 있지만, 거의 모든 STEM 전공자들은 대부분 수식으로 가득 찬 교과서로 수업을 받는다. 수학 전공자와 비수학 전공자의 차이점은 비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식의 의미가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y=f(a,b,c)를 보고, 수학과 데이터 사이언스에서 읽는 방식이 다르다. 데이터 사이언스에서는 “y의 설명 변수로 a, b, c가 있고 비선형 회귀 형태인 f 모양을 하고 있다”라고 읽지만, 수학에서는 "y는 a, b, c의 함수이다"라고 읽는다.

내가 만든 데이터 사이언스 강의 노트는 보통 3시간짜리 수업의 경우 10~15페이지 정도다. 너무 짧아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15페이지 분량의 노트를 다루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왜? 각 페이지마다 많은 핵심 개념을 몇 가지 수식으로 압축해서 만들었거든. "y의 설명 변수로 a, b, c가 있고 비선형 회귀 형태인 f 모양을 하고 있다"라는 문장처럼 방정식을 '간단한 말'로 설명한다. 그 외에도 학생들이 방정식의 실제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방정식의 실생활 예시를 많이 들고, 추가로 방정식에 작은 변형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지 설명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려, 이를 다 설명하려면 3시간도 부족하다.

그럼 y=f(a,b,c)를 표현하는 예시를 보자. 영수, 옥순, 광수가 함께 조별 과제를 하는데, 이들이 과제를 균등하게 분담했는지 모른다. 만약 과제가 어떻게 분담됐는지 안다고 해보자. 그럼 어떻게 하면 긴 문장을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y=f(a,b,c)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과제를 어떻게 분담했는지에 따라 함수 f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y의 범위가 시험 점수처럼 0~100이 아니라, 합격과 불합격처럼 0/1인 경우 함수 f를 다르게 정의해야 한다. 0/1을 나타내기 위해 머신 러닝이나 유사한 계산 통계에서는 로지스틱 또는 프로빗 회귀를 주로 사용한다.

내가 과제 문제를 해설할 때, 보통 수식은 건너뛰고 영수, 옥순, 광수에 대해 길게 얘기한다. 예를 들어 영수는 오후에 여자친구와 데이트가 있어서, 밤에 옥순과 광수의 자료를 정리하겠다고 했다. 밤 11시에 영수는 옥순과 광수의 자료를 합치면서, 광수가 거의 한 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영수는 한숨을 쉬며 새벽 3시까지 혼자서 작업했고, 새벽 6시에 모든 것을 다시 만들어 과제를 끝냈다. 상황을 보면 영수가 광수보다 훨씬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과학자들이 하듯이 긴 문장을 수식으로 바꿔보자. 도움 안 되는 광수에 비해, 영수와 옥순에게 얼마나 많은 가중치를 줘야 할까? 만약 영수의 여자 친구인 순자가 밤에 과제를 도와준다면 함수 형태를 어떻게 바꿀까? 순자가 선생님은 다르지만 같은 수업을 듣고 있고, 같은 반 친구들과 이미 같은 과제를 했다면 이건 어떻게 반영할래?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면, y=f(a,b,c)는 위의 문단을 간단하게 표현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변형도 가능하다. 이것이 내가 수학을 언어라고 부르는 이유고, 나는 말을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한 것 뿐이다. 그래서 4개 단락 대신 y=f(a,b,c)로 표현한 것이다.

중세 유럽의 공용 언어는 라틴어, 학문에서 공용 언어는?

데이터 사이언스를 가르치는 것은 고등학교 수학과 비슷해서 재밌다. 데이터 사이언스는 뻔해 보이는 정리를 지루하게 증명하는 대신, 데이터의 숨겨진 구조를 파악하고 주어진 문제에 따라 모델을 만든다. 엄밀한 수학이랑 다른 점은 수학을 수학으로 보는 게 아니라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수학자들은 내가 사용하는 수학을 모욕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내가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는 수학을 전공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있다"라는 점이다.

중세 시대에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가 피진어와 크리올어의 과정을 거쳐 처음 형성되었다. 두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피진어는 부모와 자녀가 공통된 언어 없이 사용하는 언어를 말한다. 크리올어는 그 자녀들이 공유하는 공통 언어를 가리킨다. 부모가 공통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자녀는 종종 두 언어 중 일부만 배우게 되고 가족끼리 의사소통하기 위해 일종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다. 이를 “피진 과정”이라고 한다. 반면 한 마을이나 여러 마을이 공유하여 고유한 문법을 가진 또 다른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을 “크리올 과정”이라고 한다.

데이터 과학자에게 수학은 라틴어가 아니라 기껏해야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에 불과하다. 형식은 라틴 알파벳과 같은 수학이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수학은 수학자들의 수학과는 상당히 다르다. 유럽의 주요 언어는 어떤 부분에서 거의 동일하다. 마찬가지로 데이터 사이언스, 컴퓨터 과학, 자연 과학, 심지어 경제학에서도 일부 수학 형태는 완전히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프랑스어가 독일어와 크게 다른 것처럼, 과학자들은 그들의 분야에 맞게 수학을 사용하기 때문에 분야 별로 수학이 조금씩 다르다.

중세 유럽의 교육을 잘 받은 지식인이라면 라틴어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고, 서유럽을 여행하는 데 큰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더라도 최소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했을 것이다. 라틴어는 중세 유럽에서 보편적인 언어였기 때문에, 많은 과학 분야에서 수학처럼 사용되었다. 마찬가지로 대학원 교육을 잘 받은 STEM 학생이라면 수학 전문 용어를 이해할 수 있어야, 다른 분야의 연구를 이해하는 조금이라도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데이터 사이언스에서 사용되는 수학이 수학자들의 수학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했기 바란다. 그들의 수학은 마치 고대 로마에서 사용하던 라틴어인 반면, 내가 사용하는 수학은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를 쓰기 위한 라틴 알파벳으로 내 상황에 맞게 알파벳 체계를 차용한 것 뿐이다.

데이터 사이언스도 경제학처럼 자신만의 언어가 필요하다

수학이 많이 나오는 발표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 발표자에게 "말로 풀어서 설명해 줄 수 있나요?"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데이터 사이언스에서 수학 개념을 간단한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y=f(a,b,c)를 온전히 표현하기에 4개의 단락은 부족할 수 있다. 4개 이상의 단락을 더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그 방법은 크리올어처럼 자신만의 언어를 만드는 방법이고, 다른 많은 STEM 전공자들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예를 들어 경제학에서 사회학 기반 연구 방법과 수학 기반 연구 방법 사이에 수십 년에 걸친 싸움이 있었다. 1980년대에 사회학 기반 연구 방법은 과학적 논리를 구축하기에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아 결국 이 싸움에서 졌다. 즉, 경제학에서 수학은 4단락보다 더 뛰어난 의사 소통 수단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제 사회학 계열의 경제학은 몇몇 영국 대학에서만 찾아볼 수 있고, 다른 학교에서는 역사학이나 사회학 전공에서 볼 수 있다. 심지어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들을 경제학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도 비슷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때 사람들은 데이터 사이언스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데이터 과학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웹사이트, 데이터베이스, 하드웨어 모니터링 시스템을 위한 프로그래밍 기술을 갖춘 엔지니어다. 반면 데이터 과학자는 프로그래밍을 하긴 하지만, 웹사이트나 데이터베이스에 관한 것이 아니다. 데이터에서 숨겨진 패턴을 찾고, 그 패턴을 설명하는 변수로 모델을 만들고, 모델 기반 패턴 분석을 통해 사용자 행동을 예측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y=f(a,b,c)를 두고 다른 데이터 과학자와 이야기할 때, "y는 a, b, c의 함수야"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길 바란다. 왜냐하면 간단하게 한 마디 할 것을 4단락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데이터 과학자가 상대방이 간결한 표현으로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통용되는 의견이다. 수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벽을 쌓는 것 아니냐는 속물 같은 생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데이터 과학자가 수학을 일종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라고 생각한다. 일본인 관광객이 일본어 가이드를 찾는 것처럼 우리끼리 같은 언어를 사용하길 바랄 뿐이지, 영어를 사용하는 가이드는 전혀 가치가 없다.

수학 자체에 매몰되지 말고, 수학을 언어로 표현하는 직관적 이해가 중요해

나는 몇 년 전에 학부 고학년 과정인 BSc Data Science와 비슷하지만, 어려운 수학/통계 지식이 필요 없는 MBA AI/BigData 과정을 만들었다. 데이터 사이언스는 수학 개념을 빌려 실제 사례에 제대로 적용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MBA 과정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아무리 어려운 방정식도 4단락으로 변환할 수 있고, 그 4단락을 어떻게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평상시에 수학으로 대화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수학 개념을 실생활에서 사용하려면 수식을 간단한 말로 번역해서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수업에서 내생성의 3가지인 측정 오차(Measurement error), 누락 변수 편향(Omitted variable bias), 동시성(Simultaneity)을 가르쳤다. BSc 학생들에게는 수학적으로 편향을 도출하게 했지만, MBA 학생들에게는 각 사례에 대해 어떤 편향이 예상되는지, 비즈니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실생활 사례는 무엇인지 논리를 따라가게 했다.

논리만 따라가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예시로 한 MBA 학생이 회사 제조 라인에서 측정 오차로 인해 자동화 공정 속도가 느려지는 오류를 설명하고자 했다. 계량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오차로 인해 변수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축소 편향(Attenuation bias)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안다. 제품 라인 관리자가 측정 오차와 축소 편향 사이의 연관성을 알고 있었다면, 그 오류로 인한 자동화 손실에 더 큰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심지어 일부 MBA 학생들은 수학적 비중이 높은 MSc 과정 학생들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인다. 보통 수학을 많이 사용하는 과정이 우수하다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학생들이 데이터 사이언스 개념과 수학 개념을 일치시키지 못한다. 이는 수학에 대한 사전 교육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영수, 옥순, 광수의 작업 할당 모델인 f(a,b,c)를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관과 논리보다는 수학에 너무 심취해있어서 발생한 결과다.

입학할 때 MSc 과정 아니면 의미 없다는 주장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MBA는 자존심 상해서 절대 안 된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MBA를 일종의 '모욕'으로 여겼지만 학교에 입학하고 몇 주만 공부해보면, 어려운 수학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계가 아니라 산업에서 일자리를 찾으므로, 수학보다는 데이터 사이언스적 직관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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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과대광고의 허상과 데이터 과학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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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AI 열풍에 휩쓸린 사람들은 대부분 심각한 오해에 빠져 있어
현재 AI/데이터 과학은 여전히 통계적 방법론에 국한돼
과장된 선전은 무지와 오해를 키울 뿐

AI/데이터 과학 교수로 일하다 보면, 이따금 AI 과대광고에 휩쓸린 사람들로부터 이메일을 받곤 한다. 그들이 '최신 AI'라고 부르는 것으로 내가 평소 비관적으로 생각해 온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들이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최신 AI' 프로그램이 스스로 학습하여 인간의 지능 수준을 완전히 뛰어넘은 '인공 일반 지능'(AGI)에 근접했다고 여기는 열렬한 AI 신봉자들이다.

사업 초기에는 이런 분들에게도 양질의 답변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곧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비판적인 의견에는 귀를 닫거나 공격적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현재는 상황이 나아져서, 나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도 여러 매체를 통해 인공지능의 한계에 대한 정보가 전해지고 있다. 특히 지난주에는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서 인공지능으로 가장했던 자동화의 역사가 실은 사람의 개입이 필수적이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접하기도 했다. (Is There a Human Hiding behind That Robot or AI? A Brief History of Automatons That Were Actually People | Scientific American)

LinkedIn Meme UnEmployed
출처=X (Twitter)

인공지능 신봉자들의 근거 없는 AGI에 대한 꿈

물론 현재의 AI 도구들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사에 소개된 과거의 '기계'보다 훨씬 발전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AI 도구는 여전히 패턴을 찾고, 공통된 부분을 추출하여 추상화하는 데에 머물고 있다. 이 과정에는 인간이 발견한 것이든 인간이 프로그래밍한 코드가 발견한 것이든 간에 논리를 구현해야 하는데, 우리가 의존하는 기계 코드는 아쉽게도 여전히 통계적 접근에 국한되어 있다. 다시 말해 모든 문제를 마법처럼 해결해 주는 AGI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AI 열풍의 추종자들은 최신 AI 도구들이 인간의 개입만큼은 극복했다고 반박하는데,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아마존의 "인간 계산원이 필요 없는" AI 계산대조차도 앞서 언급된 기사에 따르면, 수많은 원격 인간 검사자들에 의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영수증을 조회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너무 오래 걸려, 최근 아마존은 공식적으로 저스트워크아웃 기술을 축소·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아마존의 결정은 인공지능 기술의 한계와 실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혀 많은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자본과 인재를 확보한 글로벌 기술 기업이 간단해 보이는 자동 계산 기술조차 구현하지 못했는데, 혁신적인 AI 모델을 연구·개발하는 것은 그만큼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실제로 AI 학술지에 실린 연구 논문 중 대다수는 기존의 선도적인 연구에 약간의 변형을 더한 것에 불과하다. 2류(또는 그 이하) AI 학술지에 실린 연구 논문 10편 중 9편, 아니 100편 중 99편이 재생산에 가까운 논문들이다. AI 분야의 선도적인 논문들은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데이터 세트와 목적에 맞게 계산 방법론 변경한다. 아울러 그 기법 자체도 독창적이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많은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2류 이하의 논문들은 단순한 복제에 그치기 때문에, 최정상급 연구자들은 대개 이런 논문들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물론 최상위 저널조차도 획기적인 논문만 공개하는 것은 아니다. 혁신적인 논문이 그렇게 많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학계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논문을 생산하는 과정 자체도 이미 굉장히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원 시절, 정보 흐름이 빨라지면서 금융 투자자들이 성공한 모델을 서로 따라 하는 행동이 가속화되어 금융 시장이 빠른 속도로 오버슈팅(과열/폭락)하는 현상을 모델링하려고 노력했었다. 이러한 정보 공유가 차선의 시장 균형을 만드는 과정을 '허쉬라이퍼 효과'(Hirshleifer effect)라고 부르는데, 이를 다양한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방정식으로 모델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연구자마다 다루는 문제와 배경이 달라 의견이 갈릴 수 있어, 하나의 공통된 형태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희박했다. 사실 이것이 바로 과학 분야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현실에서는 고려해야 할 특성이 수도 없이 많고, 분석 결과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모델의 강건성도 치밀하게 검증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 과정을 아는 입장에서 보면, AI의 과대광고를 따르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인공지능의 혁신 속도에 대해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무지를 부추기는 과대광고

연구와 동떨어진 사람들, AI 열풍을 조장하는 마케팅 담당자들, 그리고 연구 결과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마케터들의 캐치프레이즈는 곧잘 따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좌절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했듯이, "AI는 과대광고에 불과하며 현실은 그 캐치프레이즈와는 거리가 멀다"고 이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이제는 그만둔 지 오래다.

가끔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은 주변 친구들도 AI 모델을 실제로 검증해 보기만 하면 가짜 AI를 구별할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예를 들어 한 AI 엔지니어가 자신의 인공지능 모델이 월스트리트의 최고 수준의 펀드 매니저들을 2~3배의 수익률 차이로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친구들은 벤처 캐피털리스트(VC) 관점에서 필요한 것은 일정 기간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라며 단순하게 접근한다.

친구들의 말처럼 그 엔지니어는 실패한 결과를 보여줄 만큼 똑똑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련의 펀딩 실패를 경험한 그는 점점 더 영리해져, 어느 시점부터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 성공한 테스트 사례들만 뽑아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면 VC 친구들은 속아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이길 수 있는 알고리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모델이 정말 있었다면, 그 AI 엔지니어는 VC 펀딩을 받지 않았을 거다. 헤지펀드를 직접 차리거나, 그냥 본인 돈으로 트레이딩을 하지, 100% 확률로 리스크 없이 시장을 이길 수 있는데, 다른 사람과 수익을 공유해야 하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과대광고는 몇 번의 테스트 실패가 아니라 마케팅 예산이 없어져야 사라진다

무지한 VC들이 속아 넘어가는 한, AI의 허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일단 자금이 확보되면 AI 스타트업들은 더 많은 마케팅 수단을 동원해 잠재적 투자자들을 현혹해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할 것이다.

검증에 여러 차례 실패하거나 펀드 구매자의 돈으로 이루어진 실제 알고리즘 투자 역시 실패할 수 있다. 투자를 맡긴 고객들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하겠지만, 그때는 VC 투자금이 마르지 않아 과대광고는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VC들도 투자한 스타트업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그들도 거짓말 서슴지 않을 것이다. VC들이 검증에 실패한 사실·이유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지만, 화가 난 고객들의 불만을 듣지 않았을 리는 없다. 따라서 VC의 거짓말은,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과장된 기대를 부추기게 된다.

AI의 허상이 완전히 사라지는 시점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멈출 때이다. 제품 자체의 혁신성이나 실제 활용 사례가 없다면, 결국 사람들은 점차 제품이 갖는 가치에 의문을 갖고, 이것이 단지 마케팅의 과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입소문이 줄어들고 고객이 이탈하면, 마케팅만으로는 더 이상 환상을 유지할 수 없다. 사라져가는 허상을 되살리기 위해 회사는 마케팅에 더 많은 예산을 쓸 수 있지만, 현금이 바닥나면 이를 지속할 수 없다. 결국 마케팅 예산이 소진되면, 사람들은 다른 기술이나 제품에 관심을 돌리고 AI 열풍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AI 추종자들이 보내는 지겨운 비판 메일도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다.

AI의 과장된 열기에 편승하기보다, AI/데이터 과학을 공부한 사람들

반대로 깃허브에서 코드 몇 줄 베끼는 정도로는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걸 금방 깨닫는 사람들도 있다. 기술 블로그나 교과서를 뒤적이는 방법도 있지만, 똑똑한 사람일수록 학부 시절에는 배우지 못한 데이터 과학에 필요한 수학, 통계, 그리고 과학적 배경지식이 얼마나 방대한지 훨씬 빨리 눈치챈다. 결국 자연스럽게 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 나서게 된다.

지난 7~8년 사이 많은 대학이 AI/데이터 과학 전공을 신설했다. 초창기에는 많은 교육 프로그램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었지만, 인증기관의 등장과 코딩 부트캠프와의 경쟁 등으로 인해 현재는 미국 최고 연구 대학들(또는 세계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대학들)에서 제공하는 AI/데이터 과학 프로그램은 수학을 상당히 강조한다.

그 결과 찾아온 많은 학생이 실패했다. 제대로 된 데이터 과학자로 성장하려면 깃허브에서 코드 몇 줄 베끼는 것 이상의 수학·통계학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 교육기관에서는 학사 수준의 AI MBAAI/데이터 과학 석사(MSc)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은 AI MBA보다 MSc 과정에 도전해 보고 싶어 하지만, 살아남는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심지어 학부 수준에 해당하는 AI MBA 과정조차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 최상위 대학의 STEM 전공 탈락률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좌절하고 포기한 학생들도 그저 AI 열풍만 쫓는 사람들보다는 나은 편이다. 아마도 무지한 VC 친구들처럼 알고리즘 투자 스타트업에 속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STEM 분야 학위를 따기엔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학위 없이 학교를 떠나는 그들을 보면 안타깝지만, 학교는 학위 제조 공장이 아니기 때문에 무거운 마음을 삼킬 수밖에 없다. 그만큼 현장에서 인사이트를 뽑아내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데이터 과학자로 성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인공지능/데이터 과학 고용 시장의 불편한 두 얼굴

반짝이는 성적표와 함께 훌륭한 논문을 쓴 졸업생들이 괜찮은 데이터 과학 일자리를 찾는 것을 보면 기분이 정말 좋아진다. 하지만 취업 후 그들이 마주하는 고객·고용주들은 대부분 AI 열풍에 휩쓸린 사람들이다. 동문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학생들이 업무 환경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곤 한다.

나에게는 이게 양면성을 가진 문제로 보인다. 한편으로 회사 관계자들이 데이터 과학자를 채용하는 것은 그들이 AI 과대광고를 믿었기 때문이다. AI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모르지만, 경쟁사와 같거나 더 나은 AI 제품을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에 돈을 가진 AI 신봉자들이 데이터 과학자의 고용 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고용주들이 온갖 종류의 AI 과대광고를 듣고 그것을 모두 믿어버리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의 머리에서 나온 전략과 업무 지시 내용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허무맹랑한 과제들의 연속일 것이다.

고용주가 나와 같은 수준의 데이터 과학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실현할 수 없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데이터 과학팀 전체를 고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금융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이길 수 있는 AI 알고리즘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금융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들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아이러니하게도 데이터 과학의 고용 시장은 오히려 축소됐을 수도 있다.

물론 많은 유능한 전문가들이 과장된 마케팅에 뛰어들지 않아 시장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해 조용히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들의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과 견줄만하거나 더 뛰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최고의 팀들과 협력한다 해도 인공지능과 데이터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분명히 존재한다.

AI의 과장된 광고는 무지와 오해를 낳을 뿐이다. 데이터 과학의 본질과 그 역할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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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하이브 방시혁과 어도어 민희진의 차이

[기자수첩] 하이브 방시혁과 어도어 민희진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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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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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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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다면적입니다. 내공이 쌓인다는 것은 다면성을 두루 볼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내공을 쌓고 있습니다. 쌓아놓은 내공을 여러분과 공유하겠습니다.

수정

하이브 방시혁 의장, 걸그룹 성공 위해 추가 고용한 인재라는 관점
어도어 민희진 대표, 자본가의 압박에 시달리는 창작자라는 주장
벤처업계 관계자들, 이미 성장한 스타트업에 발탁된 고급 인재에 불과하단 해석
방 의장이 이미 많이 양보했다, 민 대표가 무리한 요구 하고 있다는 평가 지배적

어도어 민희진 대표와 하이브의 갈등이 법정공방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법정공방의 핵심 쟁점은 하이브가 민 대표에게 '업무상 배임죄' 등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 여부에 있다. 특히 유죄냐 무죄냐에 따라 하이브가 취득할 민 대표 지분 금액이 크게 달라진다. 원래대로라면 민 대표는 최대 1,000억원 수준의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지만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주주간계약 위반에 따라 액면가인 30억원에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지난달 30일 법조계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지방법원은 하이브가 민희진 어도어 대표를 해임하기 위해 요청한 임시 주주총회 소집 허가 신청에 대한 심문을 개시했다. 앞서 하이브는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민 대표 등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면서 임시 주총 허가 신청을 냈다.

법조계 관계자들에 의하면 하이브가 어도어의 지분 80%를 갖고 있는 만큼 민 대표가 자신의 해임을 막을 방법은 없다. 현재 하이브는 민 대표가 외부 투자자를 모집해 어도어를 독립시키고 소속 아티스트인 뉴진스를 빼갈 계획을 세웠다며 업무상 배임을 주장하고 있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법정 공방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하이브 입장에서는 사실상 30억원에 이번 논란을 마무리 짓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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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방시혁 의장과 어도어 민희진 대표/사진=하이브

창작자와 자본가의 갈등?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이번 논란을 '창작자'인 민 대표와 '자본가'인 방시혁 의장 간의 갈등으로 보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어도어에 방 의장이 80%의 지분을 보유한 자본가로 보이겠지만, 현장 관계자 입장에서는 스톡옵션을 많이 주고 데려온 동업자가 계약보다 더 많은 요구를 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라는 설명이다.

민 대표와 같은 사례는 스타트업계에서 종종 포착된다. 서초동의 A모 IT 스타트업의 경우, 창업 초창기에 경영진(C-level)으로 영입한 인재 K씨가 회사 규모가 커지자 자신의 기여도 비중 확대를 이유로 추가 지분을 요구했다가 회사에서 퇴출된 바 있다. 퇴출된 이후 K씨는 인근 지역에서 동종 기술 스타트업을 설립했고, 핵심 기술력을 갖춘 인재가 빠져나가 버린 A 스타트업은 사업 방향을 해외 상품의 국내 영업으로 돌린 상황이다. 더욱이 K씨는 보유한 지분을 매각해 달라는 A 스타트업 주요 경영진 및 투자자들의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으며, A 스타트업은 당시 계약상에 K씨를 포함한 모든 주주의 동의 없이 추가 투자금을 받을 수 없다는 조건이 명시돼 있어 추가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K씨 역시 단독으로 기업을 키우는 데 난항을 겪는 모습이다. 이에 주변 관계자들에 사이에서는 A 스타트업에서 지분을 좀 더 양보해야 했다는 의견을 비롯해, 그간 K씨에게 지나치게 의존했던 만큼 창업진이 대표직을 K씨에게 넘겨주는 대승적 결정을 했어야 A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게임 검은사막으로 유명한 펄어비스도 창업자인 김대일 대표가 당시 팀장이었던 정경인 대표에게 대표직을 넘기고 개발자로 돌아간 바 있다. 이후 정경인 대표는 지난 2022년 5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허진영 당시 COO(운영 이사)에게 대표직을 넘기고 회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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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사진=어도어

민희진 대표는 혼자서 다 할 수 있었을까?

직접 기업을 창업해 0을 1로 만들어 낸 기업가들은 회사 성장 후에 영입한 인재들이 1에서 10을 만드는 능력에 대한 믿음이 지나쳐 0에서 1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는 불평도 내놓는다.

방시혁 의장은 실제로 0에서 1을 만든 것은 물론, 1에서 10도 창조한 만능 창업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직접 곡을 쓰고, 직접 아이돌 그룹을 키운 데다, 직접 투자금을 유치하기도 했다. 그간 수많은 실패를 겪으면서 BTS를 글로벌 아이돌 그룹으로 키워냈다. 여전히 회사 운영이 BTS에 의존적이라는 비판은 있지만, 국내에서 혼자 힘으로 시가총액 10조원대의 상장 기업으로 일궈 낸 인재는 많지 않다.

반면 민 대표는 이미 명성, 자금력, 인프라가 탄탄하게 갖춰진 회사에서 걸그룹 성공이라는 특명을 받고 영입된 외부 인재에 불과하다는 것이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평가다. 게다가 본인이 키워냈다는 걸그룹 뉴진스의 구성원 중 4명은 쏘스뮤직 연습생 출신이다. 현장 관계자들은 1에서 10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희귀한 역량의 엔터테인먼트 기획자라는 평가에는 공감할 수 있어도 어도어를 본인 회사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벤처투자사(VC) 관계자들은 '투자금이 들어간 순간 지분에 관계없이 이미 투자자들이 가진 회사'가 된다고 평가한다. 자본이 들어가야 클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을 때 자본금이 투입되고, 투자금이 쓰이는 목적, 범위, 성장 목표 등이 이미 결정된 만큼, 투자금을 받으면 더 이상 본인이 주인이 아닌 회사라는 것이다. 한 VC관계자는 농담을 섞어 "(회사의) 주인이라고 믿게 해 놓고 사실은 노예로 쓰는 계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번 논란도 어도어의 주인이 방 의장이라는 사실을 민 대표가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반란'이라는 해석이다.

계약서가 중요한 이유

법조계 관계자들은 민 대표의 기자회견이나 회사 내 발언, 외부 투자자 접촉 의혹 등을 고려할 때 배임죄로 결론 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다. 실질적으로 회사에 피해를 끼쳤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배임 의혹 등을 놓고 양측이 합의하는 결정이 나는 것이 일반적인 스타트업계 통례인 만큼, 유사한 결론이 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일각에서는 민 대표가 하이브에 취직한다는 관점이 담긴 현재의 지분율 대신, 본인이 직접 창업한다는 관점의 지분을 보유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하이브는 어도어의 지분 80%를 보유하고 있다. 일반적인 스타트업은 사업 초기에 지분 10%에서 20%를 외부 투자자에게 넘기면서 받은 투자금으로 가난한 기업을 경영한다. 민 대표가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좀 더 '헝그리'하게 어도어를 운영할 의지가 있었다면 처음 계약서를 쓸 때부터 더 많은 지분을 요구하는 대신 초기 투자금을 적게 받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이 이번 사태를 창작자와 자본가의 갈등이 아니라, 이미 갖춰진 대형 스타트업에 뒤늦게 특수 임무를 띠고 고용된 인력과 스타트업 창업가의 갈등으로 해석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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