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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 실적 부진 여파에 결국 '권고사직' 착수

엔씨소프트, 실적 부진 여파에 결국 '권고사직'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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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 효과 사라진 엔씨소프트 '인원감축'
비개발 및 지원조직 대상 인력 감축 중점
실적 악화에 공정위 조사까지 겹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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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M/사진=엔씨소프트

연이은 실적 부진과 주가 폭락 등으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 엔씨소프트가 비개발·지원 조직의 저성과자 등을 중심으로 한 인력 감축에 돌입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70%가량 급감하자 인건비 등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비개발·지원 부서 소속 중심 감원 통보

24일 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최근 비개발·지원 부서에 소속된 직원을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권고사직을 통보하고 있다. 정확한 구조조정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권고사직 대상 직원 수는 최소 수십 명 규모로, 이 중 개발 직군에 속하는 직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고사직을 통보받은 직원들은 이르면 다음 달부터 퇴직 절차를 밟는다. 엔씨소프트는 이들에게 퇴직금과 함께 3~6개월치 급여를 지급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앞서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인력 규모와 구성에 대한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전체 직원이 5,000여 명인데 이 중 경영 관리 직원이 1,500명이나 된다는 점이 게임사답지 않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엔씨소프트의 전체 직원 수는 지난해 12월 말일 기준 5,023명으로, 직군별로 살펴보면 게임 개발과 관련된 연구개발직( 3,591명)이 가장 많다. 이외에 사업·경영관리직 1,107명, IT·플랫폼 직군 325명 등으로 나타났다.

엔씨소프트는 인력감축에 앞서 지난해부터 수익성 개선을 위해 엔터테인먼트와 캐릭터 등 일부 사업들을 정리하기도 했다. 올해 2월 자회사 엔트리브소프트를 폐업했고 지난해 5월에는 엔터테인먼트 자회사 클렙(KLAP)의 보유 지분 약 67%를 주주에게 매각하며 사업을 정리했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 자체 캐릭터인 '도구리' 사업도 축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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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론앤리버티/사진=엔씨소프트

리니지 인기 '시들', 쓰론앤리버티도 '잠잠'

엔씨소프트가 권고사직을 단행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경영 실적 악화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엔씨소프트의 매출은 1조7,798억원으로 전년(2조5,718억원) 대비 30.7% 감소했다. 올해 전망도 좋지 않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엔씨소프트의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3.2%‧82.6%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5,590억원에서 1,373억원으로 75.4% 급감했다.

여기엔 대표작 '리니지' 시리즈가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낸 영향이 크다. 뿐만 아니라 개발 기간에만 7년을 들여 지난해 12월 론칭한 엔씨소프트의 신작 ‘쓰론앤리버티(TL)’ 역시 이용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쓰론앤리버티에선 게이머들의 비난을 받은 확률형 아이템을 삭제하는 승부수까지 던졌지만 ‘반등 포인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출시 당시 21개였던 쓰론앤리버티 서버는 이용자 부족으로 현재 10개까지 줄어들었다. PC방 게임전문 리서치 서비스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PC방 순위도 4월 18일 기준 27위에 머물러 있다.

리니지 '슈퍼계정' 활용 의혹도 악재

엔씨소프트가 대표 콘텐츠 리니지M 속에 슈퍼계정을 만들어 일반 유저들과 경쟁시켰다는 의혹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리니지 유저 1천여 명과 게임이용자협회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엔씨소프트의 슈퍼계정을 조사해 달라고 집단 민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게임사가 슈퍼계정을 활용해 이용자의 경쟁심을 자극하고 막대한 비용을 쓰도록 사행심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게임이용자협회장 이철우 변호사는 “슈퍼계정이 이용자와의 대결이나 연합 간 경쟁 등 게임 생태계에 개입한 것은 다른 이용자의 경쟁심이나 사행심을 자극하게 되므로 전자상거래법상 소비자를 기만적인 방법으로 유인하는 행위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지난 22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엔씨소프트 본사에 조사관을 보내 리니지M과 리니지2M 운영 관련 자료를 확보 중이다. 공정위는 엔씨소프트 쪽이 실제 슈퍼계정을 활용해 게임 내 경쟁 콘텐츠에 참여했는지 살펴볼 계획으로, 엔씨소프트 내부에 임시 본부를 설치하고, 약 7일간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경쟁 콘텐츠에 참여 여부와 함께 아이템 확률 조작 여부도 함께 들여다볼 방침이다. 앞서 공정위는 그라비티, 위메이드 등 게임사의 아이템 확률 조작 의혹과 관련해 현장 조사에 나선 바 있다. 지난 1월 온라인 게임 아이템 확률을 조작한 넥슨에는 과징금 116억원을 부과하기도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엔씨소프트 조사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면서도 “법 위반 사항이 있다면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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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쓱페이·스마일페이 매각 무산, 토스 'IPO 전 몸집 불리기' 실패하나

이마트 쓱페이·스마일페이 매각 무산, 토스 'IPO 전 몸집 불리기' 실패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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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구조 개선 노리던 이마트, 간편결제사업부 매각 결국 실패
순손실 거듭하는 토스에 이마트, '기업가치 9조원' 못 받아들였나
쓱페이·스마일페이 가입자 2,500만 명 못 끌어들였다, "토스도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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쓱페이 광고의 한 장면/사진=쓱닷컴

사업구조 효율화로 수익성을 회복하려던 이마트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신세계그룹과 핀테크 기업 토스(비바리퍼블리카)가 1년여간 진행해 온 SSG페이(쓱페이)·스마일페이 매각 협상이 결렬된 탓이다. 이마트는 올해 실적 개선이 어느 때보다 절박한 상황이나, 두 간편결제서비스가 계륵으로 전락하면서 묘책을 강구해 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쓱페이·스마일페이 매각 협상 최종 '결렬'

24일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쓱페이와 스마일페이 매각이 최종 무산됐다. 신세계그룹은 토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정하고 협상을 벌여왔지만 두 사업부의 시너지 방안에 대한 양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쓱페이와 스마일페이는 이마트 이커머스 자회사인 쓱닷컴과 지마켓이 각각 운영하는 간편결제 서비스다.

쓱페이는 지난 2020년 신세계I&C로부터 쓱닷컴이 양도받았고, 스마일페이는 2021년 이마트가 지마켓을 인수하면서 산하에 들어왔다. 이에 대해 한 이마트 관계자는 "사업 시너지 창출을 목적으로 매각을 추진했으나 이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양사 간 의견 차이가 있었다”며 “현재 매각은 고려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마트가 간편결제사업부를 매각하기로 결정한 건 회사에 가져다주는 수익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쓱페이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매출(거래액) 이익률이 0.5~0.6%에 불과했다. 쓱닷컴(12.4~16.6%)이나 더블유컨셉코리아(16.0~16.4%), 이마트에브리데이(27.7%~28.3%), 스타벅스를 운영하는 에스씨케이컴퍼니(49.6~52.6%) 등 타 계열사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표다.

신세계그룹에서 공존한 두 사업부의 시너지 효과도 미미했다. 예컨대 카카오페이는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네이버페이는 네이버쇼핑으로 다른 사업부에 시그니처 사업을 창출함으로써 매출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반면 쓱페이는 이마트라는 유통 공룡을 두고도 마땅한 부가사업을 창출하지 못하면서 존재 가치마저 희미해졌다.

기업가치 9조원 토스? 시장선 "글쎄"

이번 매각 협상 결렬은 이마트으로서 아쉬운 결과로 남게 됐다. 이마트에 있어선 하루빨리 사업부를 처분하는 게 더 이익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마트는 469억원(연결기준)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이후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도 강등이 잇따랐고, 상환·차환 등 자금조달 부담도 커졌다.

특히 올해 만기 도래하는 사채는 1조9,000억원(연결기준 1분기 포함) 규모로 지난해 말 기준 이마트가 보유한 현금성자산(1조7,712억원)을 웃돈다. 지난달 전사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곧바로 이마트에브리데이 흡수합병까지 결정한 이마트에 이번 협상은 단비와도 같았던 것이다. 업계 관계자도 "간편결제 사업이 비효율 사업부로 분류되는 만큼 이마트는 아쉬운 결과를 받았다"며 "(매각이 성사됐다면) 이마트가 유동성을 확보하고 재무건전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평했다.

다만 일각에선 이번 매각 결렬이 온전히 토스의 선택만은 아닐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이마트 입장에서도 토스가 제시한 조건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점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토스는 쓱페이와 스마일페이의 가치를 약 7,000억원으로 평가하고 이 중 약 10%는 현금, 나머지 90%는 토스 지분으로 지불할 예정이었다. 토스 주식의 가치는 지난해 토스가 2,300억원 투자를 유치했을 당시 기업가치(약 9조원)로 평가하기로 합의했다.

여기서 쟁점은 토스의 기업가치다. 토스는 이른바 토스 코어라고 불리는 자체 매출을 올릴 경우 10조원 이상 몸값은 충분히 산정 가능하다고 자평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간편결제 서비스를 출시해 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하고 있는 카카오페이의 시가총액이 7조원이었는데, 토스는 이외 인터넷은행, 증권까지 함께 보유하고 있기에 카카오페이보다 가치가 더 높을 것이란 추론에서다. 그러나 현재 카카오페이 시가총액은 4.5조원 수준까지 내려왔다. 이를 고려해 다시 계산하면, 토스가 자평할 수 있는 가치는 6~7조원에서 그치게 된다.

더군다나 토스는 거듭 순손실을 이어가며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실제 토스는 2020년 725억원, 2021년 1,796억원, 2022년 2,47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바 있으며, 지난해에도 분기당 평균 영업손실과 순손실이 각각 616억원, 489억원으로 집계됐다. 자회사들의 성적 부진도 눈에 띈다. 지난 2022년 말 기준 토스의 자회사들은 ▲토스페이먼츠 –687억원, ▲토스증권 –326억원 ▲블리츠패스트 –406억원 ▲토스플레이스 –90억원 등 각각 연간 적자를 기록해 왔다. 토스가 말하는 기업가치 9조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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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도 손해, "IPO 전 몸집 불리기 실패한 격"

매각 협상 결렬이 현실화하면서 시장에선 토스에도 손해가 발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IPO를 준비하는 토스 입장에서 쓱페이·스마일페이 인수는 저변 확장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쓱페이와 스마일페이를 합하면 가입자 수는 총 2,500만 명을 웃돈다. 쓱페이와 스마일페이를 인수해 단번에 토스페이의 사용량을 늘렸다면 IPO 전 급격한 몸집 불리기에 용이했으리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외 부가가치 창출 가능성에도 길이 막혔다. 대표적인 게 오프라인 간편결제다. 후발주자인 토스는 온라인은 물론 간편결제가 가능한 오프라인 매장의 수가 적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하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쓱페이와 스마일페이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면 토스는 오프라인 결제 가능 매장을 이마트, 스타벅스, 신세계백화점 등으로 넓힐 수 있었을 것"이라며 "간편결제 시장에서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삼성페이 등으로부터 밀리는 토스에 있어 오프라인 저변 확장 가능성을 잃은 건 뼈아픈 일"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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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DS] 가짜 자동화가 판치는 AI 시장,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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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노동 숨기고 '자동화' 과장하는 가짜 자동화 만연
아마존 저스트워크아웃의 경우, 수많은 인간 검토자가 일일이 거래를 확인해
소비자들은 제품이 실제로 자동화된 것인지 인간이 개입하는지 구분하기 어려워

[해외DS]는 해외 유수의 데이터 사이언스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저희 글로벌AI협회 연구소(GIAI R&D)에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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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cientific American

아마존이 최근 진행한 '저스트워크아웃(Just Walk Out)' 쇼핑 기술의 축소·폐지 결정은 인공지능 기술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저스트워크아웃 기술은 아마존 프레시 식료품점이나 타사 매장에서 구매한 상품 금액을 자동으로 청구해 결제 없이 퇴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마치 SF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이 기술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대 뒤에서 수많은 인간 노동력이 필요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마존 저스트워크아웃의 한계, 인간 검토자 없이는 안 된다?

정보기술 관련 매체인 더 인포메이션의 보도에 따르면, 아마존에는 저스트워크아웃 AI 모델을 훈련하고 그 판매의 일부를 수동으로 검토하는 1,000명 이상의 직원이 인도에 있었다고 한다. 익명의 정보원은 1,000건의 거래마다 최대 700건의 수동 검토가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아마존은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회사 관계자는 미국 과학전문지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아마존은 "숫자를 공개할 수 없다"라면서도 저스트워크아웃의 쇼핑 데이터에 주석을 다는 작업자 수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적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지난 4월 블로그 게시물에서 딜립 쿠마르 아마존 부사장은 "정확성에 높은 가치를 두는 다른 AI 시스템과 다를 바 없으며, 인간 리뷰어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고 주장하며 수습에 나섰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인공지능 기술이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공지능 기술은 많은 경우 정확성을 위해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대규모언어모델(LLM)의 대표주자인 챗GPT도 '인간 피드백' 기반 강화학습을 통해 정확성과 인가다움을 끌어 올렸었다.

'메카니컬 터크' 현상 재현, 인간 노동 숨기는 '가짜 자동화'

이 현상은 '가짜 자동화(fauxtomation)'라고 불린다. 미국 산타클라라대학교 마크쿨라 응용윤리센터의 인터넷 윤리 프로그램 책임자인 이리나 라이쿠(Irina Raicu)는 인간의 노동을 숨기고 '자동화된' 솔루션의 가치를 거짓으로 부풀리기 때문에 가짜 자동화라는 별명이 붙여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가짜 자동화라는 별명과 더불어 이러한 현상은 '메카니컬 터크(Mechanical Turk)' 현상이라고도 불린다. 발명가 볼프강 폰 켐펠렌(Wolfgang von Kempelen)이 1770년대 초반에 선보인 로브를 입은 로봇 메카니컬 터크는 체스 게임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계라고 알려지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켐펠렌은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가 체스의 전 과정을 직접 플레이할 수 있다고 말했고, 사람들에게 내부의 톱니바퀴 메커니즘을 보여주었다.

당연하게도 메카니컬 터크는 가짜였다. 동시대 많은 사람이 의심하기 시작한 것처럼 실제로는 체스판 아래의 방에 사람이 숨어 촛불로 체스판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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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cientific American

과도한 AI 투자 열풍이 '가짜 자동화'를 부추겨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생각은 오래된 인간의 꿈이다. 소설 '프랑켄슈타인'과 영화 '엑스 마키나'에서 보듯, 우리는 신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은 너무나 집요하고 때로는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속이고 기만하는 것 같다"고 미국 노던일리노이대학교의 미디어학 교수이자 '기계의 질문: 인공지능, 로봇, 윤리에 대한 비판적 관점'의 저자 데이비드 건켈은 말했다.

현재의 인공지능 붐 이전에도 챗GPT와 같은 제품들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X.ai는 자동 회의 일정 조율과 이메일 발송 기능을 가진 개인 비서 에이미를 선보였다. 별도의 설치 없이 에이미의 공식 이메일을 메일 참조목록에 추가하는 것만으로 사용할 수 있었으며, 사용자들은 에이미가 마치 실제 사람처럼 효율적으로 일정을 관리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2016년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에이미의 '살아있는' 듯한 모습은 사실이 아니었다. 모든 인바운드 이메일은 인간 노동자가 검토하고 있었고, 당시 다른 컨시어지 및 개인 비서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의존하는 방식이었다. 블룸버그는 벤처 캐피털의 과도한 AI 투자 열풍이 스타트업들을 평범한 작업 과정을 최첨단 기술로 포장하도록 유도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혼란 일으키는 온라인 세상의 허상, 윤리적 문제 제기

이러한 현상은 점점 더 온라인화되는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현관문 앞까지 샐러드를 가져다주는 음식 배달 로봇은 사실 멀리서 조종하는 사림일 수도 있다.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이 고양이 밈에서 음란물을 걸러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사무실 어딘가에 있는 인간 중재자가 가장 까다로운 결정을 내리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라이쿠 책임 연구원은 이것이 단순히 마케팅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꼬집었다. 그녀는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기 전에 시장에 출시하려는 현재 기이한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기업들은 자동화 솔루션이 개선되는 동안 '기계 속의 인간'을 중간 단계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미다.

그만큼 소비자로선 가짜 자동화는 구분이 어렵다는 얘기다. 올해 초 인터넷은 코미디언 조지 칼린의 유머 감각을 학습한 머신러닝 프로그램으로 고인의 유머를 시뮬레이션한 것으로 알려진 '조지 칼린 사후 스탠드업 스페셜'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으로 들끓었다. 그러나 나중에 칼린의 유산을 둘러싼 소송의 위협을 받고 동영상 제작자 중 한 명이 대변인을 통해 AI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농담이 실제로는 평범한 사람이 쓴 것이라고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을 미혹하는 가짜 AI 기술에 대해 구체적인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편집진: 영어 원문의 출처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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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제한·판관비 감축·보수 삭감, 대기업들 줄줄이 '긴축 경영 체제' 돌입

골프 제한·판관비 감축·보수 삭감, 대기업들 줄줄이 '긴축 경영 체제'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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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비용 줄여라, 허리띠 바짝 졸라매는 대기업들
법카 한도 줄이고 보수 깎고, '3고'에 비상경영체제 전환
고삐 조였던 디즈니, 순익 전망치 상회 성공 "긴축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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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금리, 고환율, 고유가로 대변되는 3고(高)의 파고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며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회삿돈을 사용한 골프 금지령부터 해외 전시회 불참, 임원 보수 한도 축소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영 불확실성의 대비 태세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골프는 개인 돈으로" 법인카드 골프 금지령

25일 산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최근 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사 비용으로 치는 골프를 사실상 금지했다. 업무상 꼭 필요하다는 명백한 사유를 증명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회삿돈이 아닌 개인 돈으로 골프를 치라는 것이다. 아울러 임원들의 법인카드 사용도 최소화하도록 했다.

지난해 469억원(연결기준)의 영업손실을 내며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한 이마트는 올해 들어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비용 축소 및 수익성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정비용을 낮추기 위해 창사 31년 만에 전사적인 희망퇴직까지 실시했지만, 상당수가 회사를 떠날 것이란 예측과는 다른 분위기다. 이마트 측은 당초 수백명 규모가 신청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실제 신청자수는 수십명 수준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다른 방식의 비용 절감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24년 만에 토요 사장단 회의를 부활시킨 SK도 골프를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다. 특히 SK텔레콤의 경우 올해 사업 환경이 악화할 것을 감안해 비용 절감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이마트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골프를 치는 것까지 막지는 않지만, 회사 비용으로 골프를 치는 일은 최소화하라는 방침이다. 한때 ‘No 멀리건(No mulligan), No 일파만파’라는 이른바 ‘SKT 골프룰’을 만들 정도로 골프에 진심이었던 SK텔레콤에선 이례적인 조치라는 평이다. 실제 재작년까지만 해도 SKT 임원들의 골프 수준은 다른 대기업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유명했다.

이어 SK 일부 계열사는 임원의 법인카드 한도를 대폭 축소하기도 했으며, 적자가 지속 중인 SK온의 경우 임원들도 출장 시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도록 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중이다. 사업이나 지분 매각 등 구조조정도 임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SK 주요 계열사들은 연초부터 SK이노베이션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재점검 작업에 착수한 상태로 오는 6월 확대경영회의를 통해 사업 재편 방향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 역시 계열사 임직원들의 골프와 해외 출장 등을 제한하고 나섰다. 롯데지주는 지난달 18일 계열사에 ‘근무 기본 가이드라인 준수’라는 내용의 통지문을 통해 “경영 목표 달성을 최우선으로 불요불급한 비용 집행을 지양해 달라”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는 ▲임원들의 주중 골프 금지 ▲주말 포함 해외 출장 삼가 ▲협력사와 관계 해치는 행동 자제 ▲협력 관계 유지 명목으로 과도 친목·사교활동 요구 금지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임원 보수 삭감에 해외 전시회 불참까지, '긴축 경영' 확산

일부 대기업의 경우 임직원 보수·성과급 삭감이나 해외전시회 불참 등의 경상비 축소를 통해 긴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먼저 LG그룹은 주요 계열사를 중심으로 이사 보수 한도를 줄이며 비용 절감에 나섰다. 지주사인 ㈜LG는 지난해 180억원에서 올해 170억원으로, LG전자는 90억원에서 80억원, LG화학은 80억원에서 70억원으로, LG생활건강은 80억원에서 60억원으로 각각 이사 보수총액 한도를 줄였다. 사측은 “전년 대비 연결 손익 감소 등에 따른 경영 성과와의 연계성, 국내외 경기 회복 둔화 등 경영 환경, 주주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HD현대도 권오갑 회장과 정기선 부회장을 포함한 이사 5명을 유지하면서 보수 총액 한도를 지난해 34억원에서 올해 27억원으로 축소했고 LS그룹의 지주사인 ㈜LS 역시 올해 초 긴축 경영을 선포한 바 있다. 명노현 LS 대표이사 부회장은 올 초 주재한 사장단 회의에서 “경제 전반적인 분위기를 고려해서 긴장감을 가지고 예산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화그룹은 최근 계열사 간의 스몰딜을 통해 사업별 개편에 착수한 가운데 지주사 격인 ㈜한화의 모멘텀 부분이 지난달 참가하려던 미국 배터리 전시회 ‘인터내셔널 배터리 세미나&이그지빗 2024’에 최종 불참하는 방식으로 비용 줄이기에 나섰다. 앞서 한화그룹은 지난 2월 내부적으로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 판매·관리비(판관비)도 기존 계획 대비 30% 삭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한화는 지난해 참가했던 미국 ‘더 배터리 쇼 USA’, ‘더 배터리쇼 유럽’ 참가도 보류를 결정해 사실상 불참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황 악화와 실적 부진을 이유로 성과급을 축소 지급하면서 회사와 직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사례도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대표적 예로, 지난해 직원 성과급으로 전년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평균 기본급의 362%를 공지한 게 발단이 됐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 직원 1,700여 명은 익명 모금을 통해 지난 2월부터 약 두 달간 트럭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최근 한 달 새 직원 7,000여 명이 노동조합에 대거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진 삼성전자의 ‘노조 리스크’ 역시 DS(반도체)부문의 지난해 초과이익성과급(OPI) 지급률이 연봉의 0%로 책정된 데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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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아이거 디즈니 CEO/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긴축 경영 효과 톡톡, 디즈니 '어닝 서프라이즈' 기록

한편 이같은 긴축 경영은 실제 수익성 개선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가 대표적이다. 앞서 디즈니는 직원 감축과 콘텐츠 축소 등 광범위한 구조조정에 착수한 바 있다. 그 일환으로 디즈니는 지난해 2월부터 세 차례의 정리해고 작업을 통해 7,000여 명의 직원을 감축했다. 이는 전 세계 디즈니 직원의 3.6%에 해당하는 규모다.

또한 비용 절감 차원에서 자사 OTT인 디즈니플러스와 훌루에서 30개 이상의 영화와 TV 시리즈 등을 삭제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디즈니가 삭제한 콘텐츠의 가치는 약 20억 달러(약 2조7,500억원) 분량으로 추산된다. 이를 통해 저작권료 지급 규모를 축소한 디즈니는 세금 절감 효과도 함께 거둔 것으로 파악된다.

디즈니가 콘텐츠를 삭제하면서까지 비용 절감에 나선 것은 지난 몇 년간 경영 악화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특히 디즈니플러스의 경우 구조조정 이전인 2022년 4분기 11억 달러(약 1조5,000억원)를, 지난해 5월에는 6억5,900만 달러(약 9,070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왔다.

턴어라운드를 위해 택한 디즈니의 구조조정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워치에 따르면 디즈니는 지난해 4분기(2024 회계연도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한 1.22달러의 조정 주당순이익을 거두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이는 월스트리트 전망치인 0.99달러를 웃돈 수치다.

매출은 235억5,000만 달러(약 32조4,000억원)로 전년 동기 235억1,000만 달러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놀이공원, 호텔, 캐릭터 상품 등을 포함하는 '경험' 사업 매출이 전년보다 7% 늘어난 91억3,000만 달러(약 12조5,600억원)로 집계됐고, 디즈니플러스와 훌루 등 스트리밍 서비스 매출도 15% 증가한 55억4,600만 달러(약 7조6,300억원)를 기록했다. 매출액에서 매출원가와 판매·관리비를 뺀 영업이익 역시 38억7,600만 달러(약 5조3,300억원)로 전년 대비 27%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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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 전략특허 1,000여개 중 580건 침해에 칼 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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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 특허 1,000여개 중 절반 이상 글로벌 기업들에 침해
각종 특허 침해 소송 대응에도 비용 절감 노리는 고객사들 설득 쉽지 않아
전문가들, 과거 SK온 영업비밀 유출 사태 눈여겨 볼 만하다는 지적
중국 기업과 매출액 3% 수준의 기술 로열티로 합의한 사례도 있어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 업계에 만연한 '특허 무임승차'에 강력 대응한다. 불법적으로 특허를 사용하는 기업에는 소송과 경고 등 강경 대응하는 한편 글로벌 배터리 특허 라이선스 시장을 조성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24일 LG에너지솔루션에 따르면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이 보유한 특허 중 경쟁사가 침해하거나 침해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략특허 수는 1,000여 개다. 이 중 실제로 침해된 것으로 확인된 특허는 580건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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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공장 전경/사진=LG에너지솔루션 제공

전략특허 무임승차 강력 대응

LG에너지솔루션은 정보기술(IT) 기기용 소형 배터리부터 전기차용 중대형 배터리에 이르기까지 이미 시장에 판매되고 있는 경쟁사 제품에서 고유 기술 침해 사례를 다수 발견했다. 실제 유럽 각지에 전기차를 판매하는 A사의 전기차 배터리를 분석한 결과 LG에너지솔루션의 코팅분리막, 양극재, 전극·셀 구조 등 핵심 소재와 공정에서 특허 침해 30건 이상을 확인했다. 세계 굴지 전자기기 제조 업체에 납품되는 B사의 배터리에서도 확인된 특허 침해만 50건 이상이라고 LG에너지솔루션은 부연했다.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무역위원회(ITC)나 독일 법원 등에 경쟁사를 대상으로 특허침해나 영업비밀 탈취에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대응을 해왔다. 그럼에도 부당한 지식재산권 침해가 지속되고 있어 보다 강력히 대응하기로 했다. 정당한 라이선스 계약 없이 무분별한 기술 침해가 이어질 경우 특허 침해 금지소송에 나설 방침이다.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현지 전문가를 확보, 글로벌 소송 역량도 강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해외 IP오피스도 확대해 글로벌 지식재산권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기업의 존속과 산업의 발전을 위해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무분별한 특허 침해에 엄중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합리적인 라이선스 시장 구축에 앞장서 특허권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수취하고 미래 핵심 기술 개발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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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 특허 현황 및 전략/출처=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후발기업들의 무분별한 지적재산권 침해 이어져

LG에너지솔루션이 특허 무임승차 강경대응에 나선 이유는 최근 배터리 후발기업의 무분별한 지적재산권(IP) 침해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배터리 제조에 상용화돼 쓰이는 기초 기술인 1세대 기술부터 첨단 3세대 기술까지 현재 등록기준 3만2,000건, 출원기준 5만8,000여건에 이르는 특허를 확보하고 있다. 이 중 경쟁사가 침해하거나 침해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략특허’는 1,000여 개다. 이 가운데 실제로 경쟁사가 침해한 것으로 확인된 특허만 해도 580건에 이른다고 LG에너지솔루션 측은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은 “IT 기기용 소형 배터리부터 전기차용 중대형 배터리에 이르기까지 이미 상업화돼 시장에 판매되는 경쟁사의 제품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고유 기술을 침해하는 사례가 다수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소송에도 불구하고 지적재산권 침해가 지속되고 주요 완성차 업체들조차 배터리 공급사 선택에 특허권 준수 여부를 고려하지 않는 등 시장 왜곡이 심각해져 보다 강력한 대응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합리적인 라이선스 시장 구축에 박차, "선순환 구조 만들 것"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2015년 28GWh(기가와트시)에서 2023년 706GWh로 25배가량 성장했으며, 2035년에는 5,256GWh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시장 규모가 성장하면서 주요 기술 특허를 선점한 LG에너지솔루션과 달리 질적으로 우수한 특허를 확보하기 어려운 후발 기업들이 특허 무단 탈취를 통해 유럽, 중국, 인도, 동남아 등으로 시장 진출을 확대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은 합리적인 라이선스 시장 구축을 주도하기 위해 특허풀(Pool)이나 특허권 매각 등 다양한 방식의 수익화 모델을 활용해 나갈 계획이다.

먼저 현재 시장에서 침해 중인 특허를 중심으로 글로벌 특허풀을 통해 주요 특허를 단계적으로 라이선스해 라이선스 사업과 관리를 효율화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선도업체는 특허권에 대한 합리적인 로열티를 받아 기술 개발 등에 투자를 확대하고, 후발기업은 정당한 특허권 사용을 통해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온과 특허 침해 공방전 끝에 2조원 합의금 받아낸 전력도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2019년 SK온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ITC와 미국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SK온의 모회사)을 제소한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승소로 SK온은 10년간 미국에서 배터리 판매가 금지될 뻔한 위기에 놓였으나, 양사가 극적으로 합의에 성공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당시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이 영업비밀을 빼갔고 미국 폭스바겐 전기차 배터리 물량을 대거 따낸 배경이 됐다는 것이 알려지자 국내 배터리 업계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큰 논란이 됐다. SK 측의 패소로 소송이 끝나자 10년간 판매 금지 결정이 미국 바이든 대통령에게 올라갔고, 대통령 서명 제한 시간을 눈앞에 두고 양측이 합의금 1조원과 3조원 사이 팽팽하게 맞서던 것을 2조원으로 타협한 것이다.

결국 SK이노베이션이 현금으로 1조원, 로열티로 1조원을 각각 합의된 방법으로 LG에너지솔루션에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합의 당시 현금 1조원(약 7억3,000만 달러)을 지급하고, 2023년부터 누적 지급액이 1조원이 될 때까지 연간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매년 지급하는 방식이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은 SK에 배터리 매출의 3%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중국 ATL을 상대로 ITC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을 때 최종판결 직전 안전성 강화 분리막 매출의 3%를 기술 로열티를 받기로 합의했던 전례를 따른 것이다. 다만 SK온과 합의한 금액은 매출액의 약 1%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 전문가들은 LG에너지솔루션의 전략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업계에 이미 알려진 주요 중국 기업들이 이번 특허 소송의 주요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어 SK온과의 법적 분쟁 시 국내 기업 간의 극적인 합의를 위해 한국 및 미국 정부가 나섰던 것과 달리, 중국 기업들의 특허 침해는 앞서 2017년에 있었던 중국 ATL과의 선례가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미국이나 EU 각국 정부가 중국 기업들을 배려해 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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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시간외 주가 폭등에 국내 2차전지도 덩달아 상승폭 키워

테슬라 시간외 주가 폭등에 국내 2차전지도 덩달아 상승폭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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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시간외 주가 폭등, 장 시작 전까지 13.3% 뛰어
국내 2차전지 주식들도 동반 상승세 보여
미-중 갈등 심화에 유럽 전기차 수요 돌아와
2분기부터 테슬라 매출액도 회복될 전망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올해 1분기 매출이 1년 전보다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테슬라가 저가형 전기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과 인공지능(AI)에 대한 투자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시간외 거래에서의 주가는 폭등했다. 현지시간 오후 4시 144.68달러에 장을 마감한 직후 10.11% 상승한 159.31달러까지 치솟았다가 24일 개장 직전 163.96달러까지 급등했다.

이에 24일 국내 시장에선 2차전지 관련주들까지 덩달아 3~5%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LG에너지솔루션(4.05%↑), 삼성SDI(3.69%↑), SK이노베이션(1.48%↑) 등의 유가증권 상장사들과 코스닥시장 대장주로 꼽히는 에코프로비엠(5.14%↑) 모두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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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기준 테슬라의 장외 주가 움직임/출처=구글

1분기 실적은 어닝 쇼크, 주가는 폭등

테슬라가 발표한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테슬라는 매출 213억100만 달러(약 29조3,102억원)를 기록, 전년 같은 기간(233억2,900만 달러) 대비 9% 감소했다. 이는 금융정보업체 LSEG가 집계한 월가 평균 예상치인 221억5천만 달러를 하회하는 수준이다. 테슬라의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하락한 것은 코로나 영향을 크게 받았던 2020년 2분기 이후 4년 만이며, 9%의 매출 하락폭은 2012년 이후 최대치다.

이어 1분기 순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55% 급락한 11억2,900만 달러(약 1조5,500억원)에 그쳤다. 사업 부문별로 보면 자동차 매출이 173억7,800만 달러(약 23조9,000억원)로 전년 대비 3% 떨어졌다. 앞서 테슬라는 최근 1분기 차량 인도량이 전년 동기 대비 8.5% 감소했다 밝힌 바 있는데, 이것이 그대로 실적에 반영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이날 투자자를 대상으로한 전화 회의(컨퍼런스 콜)에서 “당초 2025년 하반기에 생산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됐던 신규 모델의 생산을 올해는 아니더라도 내년 초부턴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테슬라가 저가 모델 생산 계획을 잠정 중단한다는 보도가 있었던 것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해당 발표 후 테슬라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13.3% 상승했다. 신규 저가 모델이 판매가 정체된 테슬라의 실적을 끌어올릴 새로운 ‘캐시 카우’로 인식되면서다.

테슬라는 이날 “작년 생산량보다 50% 이상의 성장을 달성하는 것이 올해의 목표”라며 “새로운 제조라인에 투자하기 전에 현재 생산 능력을 완전히 활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분간은 신규 투자 대신 기존 생산라인들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머스크는 이달 인도에 방문해 신규 기가팩토리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됐었지만, 테슬라의 실적이 휘청인 탓에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올 1분기 자본 지출이 27억7,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크게 늘어났다는 점도 언급됐으나, 이에 테슬라는 AI 인프라에 대한 10억 달러 규모의 지출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테슬라는 AI 인프라를 통해 오는 8월로 예정된 자율주행 로보택시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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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테슬라

테슬라 훈풍에 국내 2차전지 주식들 동반 상승

올 초 테슬라가 글로벌 시장에서 약 10% 인력을 감원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투자자들은 올 것이 왔다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해부터 생산 차질, 중국 내 경쟁 심화, 지속적인 가격 인하 등으로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면서 연초 대비 주가가 40% 이상 하락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4월 들어서는 미국, 중국, 유럽에서 차량 인도 가격을 2천달러 낮추면서 주가 하락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 우려와 달리 저가형 전기차 생산 속도가 빨라진 데다 자율주행 차량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면서 시간 외 시장에서 주가 폭등이 나타났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해석이다.

폭등 소식이 알려지자 테슬라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국내 2차전지 주식들도 동반 상승세를 보였다. LG에너지솔루션은 주당 15,000원(4.05%) 오른 385,000원에 마감됐고, 삼성SDI도 15,000원 뛰어 422,000원을 기록했다. 배터리 사업 이외에 SK그룹의 화학 사업 전체를 포함한 중간지주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경우 미국 판매망이 현대차와 독일 3사에 치우친 탓에 상승폭이 1,600원(1.48%)에 그쳤다.

국내 전기차 시장은 주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지속 성장세

전문가들은 국내 전기차 시장이 경기 불안 등의 이유로 다소 주춤한 추세지만, 글로벌 시장은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2분기 이후 테슬라의 매출액도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다. 지난해 3분기부터 이어진 전기차 시장 침체는 중국의 저가 차량 공세 탓이었으나, 품질 불량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고, 미-중 갈등 심화로 유럽 각국에서 중국 전기차 수입을 중단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다시 테슬라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회복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22일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Canalys)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전기차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27.1%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시장은 각국의 탄소 저감 정책과 정책 지원, 완성차 제조업체들의 전동화 추진 전략 등을 감안했을 경우 여전히 성장 산업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유럽 국가의 경우, 오는 203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확대하는 등 에너지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오는 2035년부터 27개 회원국에서 휘발유 등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여기에 유럽의 자동차 이산화탄소(CO₂) 배출 및 연비 규제도 점차 강화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개별 회원국과 유럽 내 주요 완성차 및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전동화 로드맵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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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은 '2인자' 삼성-AMD, 업계 1위 탈환할 게임 체인저는 HBM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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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시장서 SK하이닉스에 못 미치는 삼성, AMD와 손잡고 역전 하나
"삼성-AMD 결국 둘 다 2인자, SK하이닉스-엔비디아 선두권 탈환 힘들어"
HBM4 개발 성공 여부에 시장 관심 집중, 삼성도 '사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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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를 뛰어넘기 위해 미국 AMD, 인텔 등과 손잡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당분간은 주도권을 빼앗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인텔은 엔비디아를 잡기 위해 가우디3를 내놨으나 여전히 HBM2E 등 2세대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데다, AMD 역시 삼성전자의 HBM3E를 사용하지만 AI 가속기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SK하이닉스 또한 대만 TSMC와 HBM4 개발 협력을 발표하면서 또다시 한발 앞서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AMD 공동 전선 구축, 반도체 주도권 잡을 수 있을까

24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메모리 반도체사들의 경쟁은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HBM 시장 내에서 경쟁이 주로 이뤄질 것이란 의견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와 AMD는 올해 2분기 AMD 신형 AI칩인 '인스팅트 MI350'에 삼성전자의 12단 HBM3E D램을 공급할 전망이다. 올해 하반기 양산할 예정이었던 MI350의 출시 일정을 상반기로 당기고 D램을 HBM3에서 HBM3E로 교체해 엔비디아를 잡고 주도권을 건네받겠단 계획이다.

이에 대해 대만의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가 AMD의 AI 반도체 MI300 시리즈에 HBM을 납품할 수 있는 인증을 받으면서 AMD의 중요한 공급 업체로 입지를 강화했다”며 “1분기부터 삼성전자의 HBM3 생산을 늘릴 기반을 마련한 셈"이라고 삼성전자의 성과를 높이 평했다.

삼성전자와 AMD가 손을 잡은 건 양사의 니즈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무조건 엔비디아에 제품을 납품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HBM3E 제품의 성능 향상과 엔비디아의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레퍼런스가 필요하다"며 "이에 AMD에 HBM3E 납품을 통해 기술력 향상과 경험을 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올해 삼성전자는 적극적인 HBM 증설과 판매를 통한 점유율을 극대화가 절실하다. 업계에 따르면 인텔에 HBM2E 제품을 다수 공급해 HBM 자체 출하량을 높이고 AMD에도 제품 공급을 늘려 HBM 출하량에서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게 삼성전자의 전략이다.

AMD 역시 엔비디아의 대항마가 되기 위해선 HBM3를 뛰어넘는 HBM3E 등 향상된 성능을 가진 D램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이 같은 배경이 맞물려 삼성전자 제품을 적극 받아들이게 된 것으로 예측된다. 물량이나 가격 면에서 SK하이닉스 제품보다 삼성전자의 제품이 더 사용하기 용이했단 것이다. 실제 AMD에 들어가는 HBM은 현재로서 삼성전자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인자 연합'이라는 한계 여전, "업계 1위는 건재할 듯"

다만 삼성전자와 AMD 연합의 영향력이 얼마나 클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의견이 업계를 중심으로 쏟아진다. 삼성전자와 AMD 모두 HBM 시장에선 '2인자' 수준에 머물고 있는 탓이다. 그간 삼성전자는 3세대 HBM 시대를 기점으로 SK하이닉스에 줄곧 밀리는 모습을 보여왔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이 커지기 시작했던 2022년 6월 가장 먼저 HBM3 양산을 시작하면서 초반 승기를 확보,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칩인 H100 GPU에 최적화된 HBM3를 업계에서 가장 먼저 공급하기 시작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에야 HBM3를 양산했고, 아직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엔 본격적인 제품 공급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양사의 HBM 기술 격차가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AMD 또한 엔비디아의 저력을 당해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엔비디아의 경우 프리미엄급 제품에서 강력함을 보이고 있는 데다, 거듭 경쟁력 있는 신제품 출시 계획을 밝히며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끌어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글로벌 AI반도체 시장 점유율도 92%에 달한다. 겨우 엔비디아의 뒤를 쫓는 AMD 입장에선 태산이 앞에 놓인 것과 진배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에 대해 투자 전문지 팁랭크스는 "엔비디아가 AI 분야에서 확실한 선두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앞으로 5년간 75~90% 수준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 업계 관계자도 "AI 가속기도 일종의 티어(tier, 등급)가 생겨 최고 사양급 제품은 엔비디아가 가장 높은 선호도를 유지할 것이고 그만큼의 성능이 필요 없는 곳에서는 인텔이나 구글 등의 제품이 쓰일 것"이라며 "자동차로 치면 엔비디아가 포르쉐나 벤츠고, 나머지 업체들이 소나타나, 그랜저 같은 제품으로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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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4에 사활 건 삼성, "맞춤형 메모리 생태계 구축하겠다"

이에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명운을 가를 분수령은 AMD와의 공동 전선 구축보단 'HBM4 개발 성공 여부'라는 목소리가 높다. HBM3에서 앞서나간 SK하이닉스가 지금까지 주도권을 꽉 잡고 있듯, 삼성전자가 HMB4 개발에 먼저 성공하면 SK하이닉스에 쥐여준 주도권을 다시 앗아오는 것도 꿈은 아니리란 의견이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도 삼성전자를 주목하는 모양새다. 향후 반도체 시장의 판도가 삼성전자의 HBM4에 달려 있는 만큼 시장의 관심도 덩달아 높아진 것이다.

삼성전자도 HBM4 개발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 18일 삼성전자가 자사 뉴스룸을 통해 공개한 인터뷰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내년 개발 완료를 목표로 HBM4 16단 제품을 준비 중에 있다. 이와 관련해 윤재윤 삼성전자 D램 개발실 상무는 "고온 열 특성에 최적화된 '비전도성 접착 필름(NCF)' 조립 기술과 최첨단 공정 기술을 통해 차세대 HBM4에 16단 기술을 도입할 계획”이라며 생성형 AI 시대에 걸맞은 최고의 솔루션을 지속 선보여 시장을 주도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메모리부터 파운드리·시스템LSI·첨단패키징(AVP) 등에 이르기까지 종합 역량을 활용해 ‘맞춤형 메모리’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포부도 전했다. HBM4-맞춤형 메모리를 통해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다시 잡겠단 의지를 강력히 내비친 셈이다. 이에 대해 김경륜 삼성전자 상품기획실 상무는 "앞으로 HBM 시장이 성숙하면 '맞춤화 요구'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맞춤형 HBM은 범용 인공지능(AGI) 시대를 여는 교두보로, 삼성전자는 메모리, 파운드리, 시스템LSI, AVP 등 종합 역량과 차세대 HBM 전담팀을 통해 대응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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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드 점유율 1위 굳히기 들어가나" 삼성전자, 업계 최초 ‘9세대 V낸드’ 양산 돌입

"낸드 점유율 1위 굳히기 들어가나" 삼성전자, 업계 최초 ‘9세대 V낸드’ 양산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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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더블 스택으로 구현 가능한 최고 단수 'V낸드' 양산
이전 세대 대비 33% 향상된 데이터 입출력 속도 지원
SK하이닉스, 내년 트리플 스택 낸드 출시로 바짝 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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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9세대 V낸드 플래시/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최고 적층(저장공간인 셀을 쌓아 올린 것) 단수인 286단을 적용한 ‘9세대 V(vertical·수직) 낸드플래시’ 생산에 들어갔다. 286단은 기존 제품(236단)보다 50단 높은 것으로 현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최고 단수다.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경쟁력 저하에 대한 우려를 떨쳐내고 ‘기술 초격차’에 재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블 스택 구조 적용한 '9세대 V낸드' 생산 착수

삼성전자는 23일 “‘더블 스택’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최고 단수 제품인 9세대 V낸드를 양산한다”고 발표했다. 9세대 V낸드는 현재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인 236단 8세대 V낸드의 뒤를 잇는 최첨단 제품이다.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키오시아 등 경쟁 업체는 218~238단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9세대 V낸드플래시에 다양한 신기술을 적용했다. 제품 크기를 줄이면서 적층 단수를 높이려면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선 저장 공간인 셀의 면적을 축소하기 위해 동작하지 않는 면적을 줄이는 ‘더미 채널 홀(Dummy Channel Hole) 제거 기술’을 활용했다. 셀의 크기가 줄면서 생기는 간섭 현상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셀 간섭 회피 기술’과 ‘셀 수명 연장 기술’을 적용했다. 그 덕분에 낸드플래시 경쟁력의 척도인 ‘비트 밀도’(bit density·단위 면적당 저장되는 비트 수)를 8세대보다 1.5배 늘릴 수 있었다.

차세대 낸드플래시 인터페이스(기술 규격)인 ‘토글(Toggle) 5.1’도 활용했다. 이를 통해 8세대 V낸드 대비 33% 향상된 최대 3.2Gbps(초당 기가비트)의 데이터 입출력 속도를 구현했다. 저전력 설계 기술을 통해 이전 세대 제품 대비 소비 전력을 10% 정도 개선했다.

삼성전자는 9세대 V낸드를 앞세워 데이터저장장치(SSD) 시장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는다는 계획이다. 대용량 데이터 처리가 필수인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고용량·고성능 낸드플래시와 SSD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 규모는 지난해 387억 달러에서 2028년 1,148억 달러로 연평균 24% 성장할 전망이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올해 V9 출시 이후 내년엔 400단대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츠는 삼성전자가 내년 하반기 430단 낸드플래시인 10세대 V낸드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V10부터는 ‘트리플 스택’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만큼 300단대 중후반 제품을 건너뛰고 곧바로 400단대로 직행하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소비전력은 10% 낮추고, 속도는 33% 올리고

낸드는 전원이 꺼져도 정보를 계속 저장할 수 있는 플래시 메모리 중 하나다. 평면 구조로 설계돼 온 낸드는 2010년 들어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직으로 쌓는 기술 경쟁 국면에 진입했다. 적층 단수는 곧 데이터 저장 용량과 직결돼 높은 적층 수를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쌓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수직 적층 개념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선보이며 시장 초기 격차를 유지해 온 기업은 삼성전자다. 2013년 24단 낸드로 1세대 제품을 선보인 후 꾸준히 기술 격차를 유지해 왔다. 그러다 2019년부터 추격을 본격화한 후발 주자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최초 타이틀을 가져가며 경쟁이 거세지고 있다.

삼성의 이번 9세대 V낸드는 저장 용량을 늘렸을 뿐 아니라 소비전력을 10% 줄이고, 데이터 입출력 속도(최대 3.2Gbps)는 33% 끌어올렸다. 업계는 고용량·고성능·저전력소비 낸드가 필요한 AI·클라우드 서버 업체의 ‘러브콜’이 쏟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더블 스택 적층 기술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더블의 의미는 쌓아 올린 저장공간인 셀을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채널 홀’을 두 번 뚫는다는 뜻이다. 채널 홀을 적게 뚫을수록 생산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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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321단 4D 낸드 플래시/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내년 초 '트리플 스택' 낸드 출시

삼성이 더블 스택으로 최고 단수의 낸드 양산에 성공한 가운데, SK하이닉스는 2025년 상반기 트리플 스택 기술을 활용한 321단 제품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8월 미국에서 열린 '플래시 메모리 서밋 2023'에서 ‘1Tb TLC 321단 4D 낸드’ 샘플을 공개하며 글로벌 반도체 업계 최초로 300단 이상 낸드 개발을 공식화한 바 있다. 2021년 176단을 양산한 지 불과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층수를 높인 것이다.

321단 4D 낸드 양산에 대해 지난 2월 이동훈 SK하이닉스 부사장은 "현재 개발 중인 321단 4D 낸드는 압도적인 성능으로 업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321 낸드의 경우 성능뿐 아니라 신뢰성 확보가 핵심"이라며 "빠르게 늘어나는 수요에만 집중하다 보면 품질이나 신뢰성 등에 리스크가 생기기 마련이다. 최대한 빠르게 개발을 마무리하고 제품을 공급하며,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을 단기적인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다양한 도전을 통한 혁신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사장은 "지금까지 낸드 개발의 핵심은 비용 대비 성능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것이었다. 과거 2D, 3D 낸드에 이어 4D 낸드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며 "현재 우리가 변혁의 중심에 있는 만큼 낸드 역시 여러 방향성을 가지고 혁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반도체 업계에 순풍이 불고 있다고 진단하며 D램에 이어 낸드 역시 올해는 업턴(상승국면)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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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DS] 인공지능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양자 트랜스포머, 앞으로는 클래식-퀀텀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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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러닝 분야에 혁신을 불러일으킨 '트랜스포머',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고 있어
양자 트랜스포머, 양자 컴퓨팅과의 만남으로 트랜스포머는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기대돼
고전·양자 컴퓨팅의 장점을 결합한 클래식-퀀텀 하이브리드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

[해외DS]는 해외 유수의 데이터 사이언스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저희 글로벌AI협회 연구소(GIAI R&D)에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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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cientific American

딥러닝 분야에 혁신을 불러일으킨 트랜스포머는 2017년 구글 연구원들에 의해 처음 소개된 이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왔다. 기존 방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한 처리 능력을 보여주며 단숨에 딥러닝의 주류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딥러닝 혁신의 주역, 트랜스포머가 가능케 한 것들

챗GPT를 비롯한 최근 등장한 챗봇들의 자연스럽고 유창한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 역시 바로 트랜스포머다. 트랜스포머는 문장의 맥락을 이해하고 관련 단어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 이전 챗봇들 보다 정교하고 인간적인 대화를 구현할 수 있게 한다.

7년간 놀라운 성과를 거둔 트랜스포머는 이제 양자 컴퓨팅과의 만남을 통해 더욱 강력한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양자 트랜스포머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모델은 기존 슈퍼컴퓨터로는 해결하기 어려웠던 복잡한 문제들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Quantum'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간단한 하드웨어를 사용한 기초적인 양자 트랜스포머 모델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양자 트랜스포머가 실제 응용 분야에 적용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더 발전된 양자-AI 조합이 암호 해독이나 새로운 화학 물질 개발 등의 문제들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한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컴퓨터, 트랜스포머와 어텐션 메커니즘

트랜스포머는 단순히 입력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 모델이 아니다. 마치 인간처럼 입력의 어떤 부분이 중요하고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초록색 사과를 먹고 있다"라는 문장을 만난 트랜스포머는 '먹다', '초록색', '사과'와 같은 핵심 단어를 골라낸다. 그리고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먹는다'라는 행위는 '초록색'보다는 '사과'와 더 관련이 있다는 것을 파악한다. 이 놀라운 능력은 '어텐션 메커니즘'(Attention Mechanism)이라고 불리며, 인간 언어 처리 방식을 모방한 기술이다.

어텐션 메커니즘은 인공지능 분야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자연스러운 언어 이해, 정확한 이미지 분석, 뛰어난 단백질 시퀀스 모델링 등이 가능해졌다. 챗GPT와 같은 챗봇 시스템도 어텐션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작동하며, 인간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과거에는 컴퓨터에 매우 어려웠던 작업을 이제는 능숙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어텐션 메커니즘은 강력한 프로세서를 갖춘 슈퍼컴퓨터에서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0 또는 1의 값을 저장하는 기본 이진 비트를 사용하고 있어 비실용적인 측면이 남아 있는 컴퓨팅 방식이다. 반면 양자 컴퓨팅은 양자역학의 특성을 활용해 기존 컴퓨터로는 불가능했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큐비트(qubit)라고 불리는 양자비트는 0과 1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인 계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정확도는 유지하면서 복잡도는 획기적으로 낮춰

양자 컴퓨터와 트랜스포머의 만남은 이미 실제 연구 단계에 접어들었다. 앞서 언급한 'Quantum'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의 저자인 조나스 랜드먼(Jonas Landman)와 그의 동료들은 의료 분석용 트랜스포머를 양자 컴퓨터에 적용하여 1,600명의 건강한 눈과 당뇨병으로 인한 실명 환자의 망막 이미지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양자 트랜스포머 모델의 정확도를 검증했다. 각 이미지를 손상 없음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까지 5단계 중 하나로 분류해야 하는 과제였다.

결과를 확인하기에 앞서 이번 연구에서 3단계로 진행된 양자 트랜스포머 개발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첫 단계에서는 양자 하드웨어에 적용하기 전에 트랜스포머를 위한 양자 회로를 설계해야 했다. 연구원들은 수학적 증명을 통해 기존 트랜스포머보다 더 효율적인 세 가지 버전의 양자 회로를 만들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실제 양자 컴퓨터에 적용하기 전에 큐비트 에뮬레이터에서 설계를 테스트했다. 에뮬레이터는 실제 양자 컴퓨터에서 발생하는 오류 문제(열, 전자기파 및 기타 간섭)를 방지하여 설계의 정확성을 검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시뮬레이터에서 각 양자 트랜스포머는 망막 이미지 세트를 50~55%의 정확도로 분류했는데, 이는 망막을 무작위로 다섯 가지 범주 중 하나로 분류했을 때의 정확도 20%보다 더 높은 수치다. 50~55% 범위는 훨씬 더 복잡한 네트워크를 가진 두 개의 일반 트랜스포머가 달성한 정확도(53~56%)와 거의 동일한 수준이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실제 IBM 양자 컴퓨터에서 트랜스포머 모델을 구현했다. 연구원들은 한 번에 최대 6개의 큐비트를 사용하여 세 가지 버전의 양자 트랜스포머 모델을 작동시켰다. 그 결과, 모든 모델은 45~55%의 정확도를 유지했다.

물론 큐비트 6개는 그리 많지 않은 개수다. 일부 연구자들은 구글의 제미나이나 오픈AI의 챗GPT와 같은 거대 챗봇에 맞설 수 있는 양자 트랜스포머를 개발하려면 수백 큐비트를 사용하는 코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정도 크기의 양자 컴퓨터는 이미 존재하지만, 간섭과 잠재적 오류로 인해 비교적 거대한 양자 트랜스포머를 설계하는 것은 아직 실용적이지 않다. 해당 연구진도 더 높은 큐비트 수를 시도했지만 동일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전했다.

양자 vs 기존 트랜스포머, 클래식-퀀텀 하이브리드가 열쇠

반대로 1,000개 이상의 큐비트가 있고 간섭이 최소로 유지되는 신뢰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양자 트랜스포머가 항상 유리할까? 아닐 수도 있다. 양자 트랜스포머와 기존 트랜스포머는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1:1로 직접 비교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 방식이 아니다. 양자 컴퓨터와 기존 머신러닝은 각각 다른 종류의 문제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최신 딥러닝 알고리즘은 학습 데이터 내에서 패턴을 감지한다. 큐비트가 동일한 패턴을 인코딩하는 방법을 배울 수는 있지만, 큐비트가 해당 작업에 최적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큐비트는 문제가 '구조화되지 않은', 즉 애초에 찾을 수 있는 명확한 패턴이 없는 데이터일 때 가장 큰 이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화번호부에서 알파벳이나 순서가 전혀 없는 이름을 찾으려고 할 때 양자 컴퓨터는 기존 컴퓨터가 걸리는 시간의 제곱근 안에 해당 단어를 찾아낼 수 있다.

반면 기존 컴퓨팅은 비용과 친숙함이라는 이점이 있다. 양자 컴퓨팅 기술이 성숙하더라도 양자 컴퓨터가 그 영역을 확장하는 데는 수년이 걸릴 것이며, 그동안 고전 컴퓨터의 성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 양자컴퓨팅 기업 자나두(Xanadu)의 소프트웨어 책임자 네이선 킬로란(Nathan Killoran)은 고전적인 머신러닝은 매우 강력하고 자금이 풍부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양자 컴퓨팅과 같은 새로운 기술로 완전히 대체할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옵션이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많은 양자 연구자들은 양자 트랜스포머의 이상적인 형태는 클래식-퀀텀 하이브리드 시스템일 것으로 내다봤다. 양자 컴퓨터는 화학과 재료 과학의 까다로운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반면, 기존 시스템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또한 양자 시스템은 데이터를 해독하는 암호 키나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물질의 특성 등 기존 컴퓨터가 수행하기 어려운 작업을 생성하는 데 유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현재 거의 접근이 불가능한 작업을 수행하도록 기존 트랜스포머를 훈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양자 트랜스포머는 또 다른 이점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규모의 기존 트랜스포머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전력 회사들은 새로운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탄소를 뿜어내는 석탄 발전소를 계속 가동하고 있다. 따라서 양자 트랜스포머의 꿈은 에너지 부하를 줄여주는 더 가볍고 효율적인 기계에 대한 꿈이기도 하다.

한편 다른 곳에서도 양자 트랜스포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IBM 왓슨 연구 센터의 연구원들은 '그래프 트랜스포머'로 알려진 트랜스포머 계열의 양자 버전을 제안했다. 그리고 호주 시드니 공과대학교의 양자 컴퓨팅 연구원 크리스토퍼 페리(Christopher Ferrie)는의 연구팀은 자체 트랜스포머 양자 회로를 설계했다.

*편집진: 영어 원문의 출처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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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멸 위기' 석유화학업계, LG화학-롯데케미칼의 출구전략은 NCC 부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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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종연횡 본격화한 석유화학업계, 업계 1·2위 LG·롯데도 통합 타진
통합 목적은 효율성 제고? 일각선 "불편한 동거될 수도" 지적도
실적 기대치 '뚝뚝' 떨어지는데, "기회만 있다면 합작 가능성 높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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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석유화학업계 2위 업체인 롯데케미칼이 1위 LG화학에 범용 나프타분해설비(NCC) 부문 통합을 제안하고 나섰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석유화학산업이 공멸 위기를 맞으면서 업체 간 합종연횡을 본격화한 것이다. 다만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앞서 통합을 이뤘다가 '불편한 동거'라는 선례만 남기고 분할 타진에 나선 여천 NCC 꼴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LG화학-롯데케미칼 사생결단? '합종연횡' 이루나

2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각사의 석유화학 일부 사업을 합치는 내용의 초기 단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협상은 범용 NCC 부문을 한 곳이 인수하거나 합작사(JV)를 세우는 방안 등을 골자로 한다. 이에 대해 IB업계 관계자는 "힘을 합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놓고 실무진 차원에서 모색해 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쟁사인 양사가 머리를 맞대고 나선 건 석유화학업계 자체가 공멸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원인은 중국이다. 당초 중국은 국내 기업이 생산한 석유화학제품의 최대 수요처였으나, 지난 2019년부터 범용 제품의 완전 자급화에 성공하면서 경쟁자로 돌변했다.

실제로 중국의 에틸렌 생산 능력이 세계 1위로 올라서면서 한국의 석유화학제품 중국 수출량은 2019년 1,801만t에서 지난해 1,470만t으로 18.4% 급감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석유화학제품 전체 수출량도 2019년 3,797만t에서 지난해 3,677만t으로 줄었다. 수출국 다변화를 위해 노력해 왔음에도 중국의 부재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 것이다.

이에 양사는 석유화학 사업부를 통합하는 등 합종연횡을 이룸으로써 경쟁적인 과잉 투자를 자제하고 정유사에서 나프타 등 원료를 도입할 때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리는 등 효율성을 제고하겠단 방침이다. 양사의 긴밀한 협력 아래 각사 해외법인의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긍정평가되는 지점이다. 업계에선 롯데케미칼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있는 에탄크래커(ECC) 설비에서 생산한 에틸렌을 LG화학이 먼저 공급받아 미국 시장 내 고부가가치 제품 점유율을 늘리는 식의 협력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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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작업도 착수했지만, "매각 여부 불확실"

양사는 각자 슬림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중국의 영향으로 부가가치가 낮아진 사업을 점진적으로 정리해 효율화를 이루겠단 방침이다.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2조원(약 14억5,000만 달러)을 투입해 증설한 여수 NCC 2공장을 가동 2년여 만에 시장에 내놨다. 석유화학사업을 자회사로 분할한 뒤 쿠웨이트 국영석유공사(KPC)에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롯데케미칼도 해외 진출의 상징이던 LC타이탄의 매각을 추진 중에 있다. LC타이탄은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가 되는 에틸렌,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면서 롯데케미칼의 해외 전진기지 역할을 해온 알짜회사였지만, 2022년 2분기부터 적자로 돌아서면서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다만 문제는 이들의 슬림화 작업이 제대로 이뤄질지 여부가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LG화학은 앞서 지난해 여수 NCC를 매각하기 위해 몇몇 업체와 접촉한 바 있으나 매각가를 합의하지 못해 불발됐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NCC는 시설 투자비만 3조원이 들었다”며 “중국의 자급력 확대 이슈가 커지는 상황에서 그만한 금액을 지불할 업체는 사실상 없지 않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케미칼의 LC타이탄도 원하는 값을 받기는 어려우리란 전망이 많다. '지는 해'로 치부되는 석유화학 산업계에 큰돈을 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통합에도 우려 섞인 목소리, "여천NCC 꼴 날 수도"

일각에선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의 합종연횡 또한 불안한 지점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합작했다가 결국 분할을 타진하기 시작한 여천NCC의 사례를 목도했기 때문이다. 여천NCC는 1999년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보유한 여수의 나프타분해설비(NCC)를 50:50의 비율로 합쳐 세운 합작사로, 나프타를 분해해 석유화학제품의 쌀로 통하는 기초 원료 에틸렌을 비롯한 화학제품을 생산해 한화솔루션 DL케미칼 등에 납품해 왔다.

여천NCC의 실적은 건재했다. 업계에 따르면 여천NCC의 2017~2021년 연평균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5조3,387억원(약 39억 달러), 5,567억원에 달했고, 벌어들인 이익의 상당액을 모회사에 배당하고 있었다. 동기간 여천NCC의 누적 배당금은 총 2조700억원에 이르렀으며, 평균 연봉도 1억1,200만원에 달하는 등 관계자들 사이에선 '신의 직장'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런 여천NCC가 찢어지기 시작한 건, 합작을 이룬 두 회사가 '불편한 동거'를 이어온 탓이 크다. 실제 지난 2007년 인사권을 두고 DL그룹 측 임직원과 한화그룹 측 임직원들은 물리적 충돌을 겪은 바 있다. 해당 갈등이 봉합된 후에도 양사의 마찰은 이어졌고, 결국 여천NCC 폭발 사건이 발생하면서 관계가 상당 부분 틀어졌다. 지난 2021년 여천NCC 공장에서 시험가동 중이던 열교환기가 폭발하면서 근로자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사고 수습 과정에서 한화그룹과 DL그룹은 여천NCC를 분할해 관리하는 게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업계에선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의 합작이 이뤄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석유화학업계의 부진이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 석유화학업체의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나프타 가격을 뺀 수치)는 손익분기점으로 꼽히는 300달러 선을 밑돌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월평균 에틸렌스프레드는 t당 186달러에 그쳤는데, 이는 지난 2월 평균(t당 226.5달러)보다 악화한 수준이다. 유가 상승으로 나프타 가격이 오르면서 업황도 덩달아 나빠진 것이다. 여기에 차후 이란과 이스라엘의 분쟁 여파로 유가가 더 오르면 스프레드가 떨어져 수익성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1분기 실적 기대치도 낮아지는 추세다. 에프앤가이드에 의하면 LG화학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7.9% 줄어든 1,524억원에 그칠 것으로 추정됐다. 3개월 전 영업이익 예상치(5,343억원)에 비해 71% 넘게 쪼그라든 수치다. 이런 가운데 증권가는 롯데케미칼과 한화솔루션이 1분기에 각각 1,086억원, 1,003억원의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다 보니 한계사업 정리에 박차를 가해야 할 LG화학과 롯데케미칼 입장에서, 기회만 있다면 통합 노선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리란 전망이 업계를 중심으로 거듭 나오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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