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C 확대에 ENC 신설” 사우디, 게임·e스포츠 국가 전략 산업화
“EWC 확대에 ENC 신설” 사우디, 게임·e스포츠 국가 전략 산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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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에서 e스포츠로 산업 축 이동 시도
글로벌 스포츠·엔터테인먼트 IP 흡수
전통 게임 강국 한국은 상대적 존재감↓

사우디아라비아가 ‘e스포츠 강국’을 자처하며 기존 클럽 대항전에 더해 국가 대항전을 신설하고 나섰다. 매년 여름 개최 중인 클럽 대항전에 이어 가을 국제전까지 정례화하면서 사우디는 글로벌 e스포츠 운영 구조 자체를 재편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제도 개편 및 확대는 국부펀드 중심의 대규모 투자와 연이은 대형 게임사 인수, 스포츠 산업 전반으로의 확장 전략과 맞물려 매우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흐름이다.
e스포츠 산업 주도권 확보 의지
19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e스포츠 전문 매체 TEC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는 지난 17일 각료 회의에서 ‘e스포츠 월드컵 재단’의 정관 개정안을 논의, 의결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 왕세자 겸 총리가 이사회 의장을 맡아 이목을 끈 바 있는 해당 재단은 2024년부터 매년 e스포츠 월드컵(EWC)을 개최 중이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재단의 명칭은 ‘e스포츠 재단’으로 바뀌고, 클럽 대항전인 EWC 외에도 국가 대항전 e스포츠 네이션스컵(ENC)을 매년 11월 개최하게 된다.
EWC에 ENC까지 더해질 경우, 사우디는 단숨에 연중 국제 e스포츠 캘린더를 주도하는 위치로 올라서게 된다. 지난해 개최된 'EWC 2025'의 총 상금 규모는 7,000만 달러(약 1,000억원)였으며, 오는 7월 열릴 EWC 2026의 상금은 7,500만 달러(약 1,090억원)으로 확대됐다. 여기에 새로 신설되는 ENC에도 2,000만 달러(약 290억원)의 상금이 책정됐다. 상금 총액만 놓고 보면 단일 국가가 복수 국제 대회에 투입하는 자금 규모로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평가다.
2010년대 후반부터 탈(脫)석유 경제를 모색한 사우디는 게임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지목하고 국부펀드 PIF를 앞세워 공격적인 인수·투자를 집행했다. 가까운 과거인 지난해 9월에는 사모펀드 실버레이크, 어피니티파트너스와 함께 미국 일렉트로닉 아츠(EA)를 550억 달러(약 77조2,6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테이크투 인터랙티브와 함께 미국 3대 게임사로 분류되는 EA는 ‘EA 스포츠 FC’, ‘배틀필드’, ‘에이펙스 레전드’ 등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지닌 e스포츠 종목을 다수 보유 중이다.
PIF는 EA 인수 과정에서 JP모건으로부터 200억 달러(약 29조원)를 차입했는데, 이는 레버리지 바이아웃(LBO) 가운데 월스트리트 역사상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이처럼 초대형 차입을 동반한 인수 구조는 사우디가 게임 및 e스포츠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격상해 장기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대목으로 해석됐다. PIF는 이에 앞선 2022년에는 닌텐도 지분 5%를 인수했고, 엔씨소프트와 넥슨에도 각각 1조원대 투자를 집행했다. PIF 산하 새비게임즈 그룹도 ‘킹 오브 파이터즈’ 개발사 SNK와 ‘모노폴리 고’ 개발사 스코플리, ‘포켓몬 고’ 개발사 나이언틱의 게임 사업 부문을 연이어 인수했다.
정부 차원의 제도 정비와 재정 지원이 병행되면서 물리적 인프라 구축 역시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사우디 수도 리야드 서남쪽 약 40㎞ 사막지대 키디야에는 e스포츠·게임 지구가 조성되고 있으며, 당장 2027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최하는 제1회 ‘올림픽 e스포츠 대회’가 리야드에서 열릴 계획이다. 대회 개최권과 글로벌 지식재산권(IP) 확보, 인프라 구축을 병행하는 방식은 사우디가 앞세운 ‘비전 2030’의 산업 다각화 전략에 가깝다. 아울러 “우리가 곧 e스포츠”라는 구호 또한 자본·IP·플랫폼을 결합한 사우디의 장기 구상으로 읽힌다.

스포츠 생태계 확장 전략
사우디는 e스포츠 주도권을 발판으로 삼아 스포츠 산업 전반의 영향력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분위기다. 대회 상금 증액과 국제 대회 신설이 외형적 확장이라면, 그 이면에는 국부펀드 중심의 지배 구조 재편과 글로벌 스포츠·엔터테인먼트 자산 흡수가 병행되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다소 과도한 투자”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궁극적 목표가 스포츠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플랫폼 구축에 있는 만큼 공격적 행보는 갈수록 그 보폭을 넓히는 추세다. 자본과 리그, IP, 스타 선수, 팬 커뮤니티를 하나의 축으로 묶어 장기적 지배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PIF는 새비게임즈에 120억 달러(약 17조6,000억 원)상당의 게임 관련 주식 이전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전 대상에는 닌텐도와 반다이 남코 홀딩스 지분이 포함된다. 주식 이전이 완료되면, 새비게임즈는 코에이테크모홀딩스, 엔씨소프트, 넥슨, 스퀘어에닉스홀딩스 등에서 각각 약 10%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새비게임즈 대변인 아마르 바트쿠는 “이번 이전으로 PIF의 게임 투자 운영이 새비로 이동하게 된다”면서 “게임 및 e스포츠는 국가 전략의 핵심 요소인 만큼 투자 기조는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1년 탈석유 다각화 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된 새비게임즈는 지금까지 게임 투자에만 380억 달러(약 54조8,000억원)를 집행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e스포츠 시장의 40%를 장악하고 있다. 브라이언 워드 새비게임즈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며 “매년 수백 건의 잠재적 인수 대상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가장 최근에는 상하이에 본사를 둔 아시아 최대 e스포츠 기업 히어로E스포츠의 지분 30%를 사들였다. 이를 두고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의 요스트 판 드뢰넨 교수는 “사우디의 전략은 돈으로 시장 지배력을 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오프라인 스포츠와의 접점도 눈에 띈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리야드 연고 구단 ‘알나스르FC’의 주장을 맡고 있는데, 해당 구단의 대주주는 PIF다. 격투 게임 ‘아랑전설’ 최신 버전에 호날두가 신규 캐릭터로 등장한 사례는 이러한 연결 고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 개발사 SNK의 대주주는 사우디 비영리 단체 미스크 재단이며, 이 재단의 설립자이자 회장은 빈 살만 왕세자다. 이는 특정 종목이나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실제 스포츠 스타와 게임 IP, 자본 소유 구조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중동 내 흡수 가속, 일부 우려도
사우디의 광폭 행보는 과거 전통적 e스포츠 강국으로 불렸던 한국과도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한국이 온라인 게임과 리그 운영, 프로 선수 육성 체계에서 선도적 위치를 구축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글로벌 자본의 흐름과 대형 인수·합병 국면에서는 중동 자본의 존재감이 빠르게 부각되는 상황이다. 특히 사우디는 리그와 개발사, 인프라를 묶는 통합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며 시장 판도를 흔들기 시작했다. 이는 탄탄한 자본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정부 정책을 결합한 장기 전략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민간 중심 산업 구조와 결이 다르다.
사우디 정부에 따르면 사우디의 e스포츠 시장 규모는 2030년 133억 달러(약 19조2,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2024년 기준 사우디 인구의 약 67%인 2,350만 명이 게임을 즐기며, 이 중 1,000여 명은 프로게이머로 활동 중이다. 사우디 정부는 e스포츠 산업을 통해 최대 3만9,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프로게이머뿐 아니라 이벤트 운영, 마케팅, 게임 개발, 기술 지원 등 연관 산업 전반에서 청년층 고용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전체 인구 중 35세 미만이 70%에 달하는 인구 구조는 이러한 전략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확장 전략은 역내 기업 유치에서도 확인된다. 아랍에미리트(UAE) 기반 게임 개발사 코수프 스튜디오는 올해 초 60만 달러(약 8억8,000만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해당 자금은 사우디 이전 지원에 활용될 예정이며, 이는 ‘비전 2030’ 목표에 부합하는 게임 개발 허브 조성의 일환으로 설명됐다. 이번 투자는 사우디 국가개발기금의 지원을 받는 메락캐피털의 게이밍 펀드를 통해 이뤄졌다. 메락캐피털의 압둘렐라 알샤리프 CEO는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게임 개발사를 지원하겠다는 확신”이라는 말로 투자 명분을 밝혔다.
글로벌 게임 시장 내 사우디의 입지가 커지면서 주요 콘텐츠의 방향성 변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EA 인수를 놓고는 “‘미국적 사고를 담은 웰메이드 게임’의 종언이 왔다”는 우려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과거 1992년 걸프전 직후 EA가 가상의 아랍 독재자를 등장시킨 ‘데저트 스트라이크’를 출시한 경험과 2005년 ‘배틀필드2’에서는 미군이 중동 연합과 맞서는 설정이 등장한 사례를 떠올리면,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관심이다. 앤드루 윌슨 EA 대표는 “과감하면서도 표현력이 풍부한 콘텐츠를 최우선으로 하는 EA의 방향성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지만, 대주주 변화가 콘텐츠 제작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전반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