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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화학 생산능력 9% 사라지는 동안 투자는 ‘얼음’, 자동차까지 번진 충격파

유럽 화학 생산능력 9% 사라지는 동안 투자는 ‘얼음’, 자동차까지 번진 충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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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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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부담·수요 둔화 속 공장 폐쇄 급증
관련 산업 위기 확산, 제조 생태계 흔들
중국 공세에 규제 및 관세 카드 꺼낸 EU

2022년 이후 유럽 화학산업에서 공장 폐쇄가 잇따르면서 대규모 생산 능력이 사라지고, 일자리 감소가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반면 신규 투자는 급감하면서 설비 감소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기초 화학 분야의 위축은 자동차·부품 산업으로 확산됐고, 유럽연합(EU)은 관세와 경쟁국 장비 배제 등 통상·안보 대응에 나섰다. 산업 기반 약화와 공급망 재편이 맞물린 국면에서 유럽 제조업 전반의 방향 전환도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주요 기업 감산·공장 폐쇄 행렬

19일(이하 현지시각) 유럽화학산업협의회(CEFIC)에 따르면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유럽 화학산업에서는 누적 3,700만 톤(t)의 생산 능력이 사라졌다. 이는 전체 유럽 화학산업 생산 능력의 약 9%에 해당하는 비중으로, 이 과정에서 직접 일자리 2만 개도 함께 증발했다. CEFIC의 의뢰로 연구를 진행한 경영컨설팅 업체 롤랜드버거는 “공급망 연쇄 효과를 고려할 때, 간접 일자리 8만9,000개도 위협을 받는다”고 분석하며 “기존 생산 시설을 잃는 속도를 신규 투자가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짚었다. 새로 들어서는 생산 시설의 연간 예상 생산 능력은 2022년 약 270만 t에서 지난해 30만 t으로 줄었다.

폐쇄된 설비의 상당 부분은 석유화학 부문에 집중됐다. 전체 폐쇄 용량 가운데 48%가 석유화학에서 발생했고, 그중 절반은 스팀 크래커 9기의 가동 중단에서 비롯됐다. 국가별로는 독일이 전체 폐쇄 용량의 25%를 차지했으며, 네덜란드가 20%로 그 뒤를 이었다. 마르코 멘신크(Marco Mensink) CEFIC 사무총장은 “지금은 마지막 5분 전인지 후인지를 따질 때가 아니다”라면서 “공장 폐쇄와 투자 감소 두 방향 모두에서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당장 올해 현장에 실질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별 기업 사례는 위기의 강도를 더 분명히 보여준다. 엑슨모빌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틸렌 공장을 이달 영구 폐쇄하기로 했다. 1985년 상업 가동을 시작해 40여 년간 운영된 해당 공장은 연간 83만 t에 이르는 생산 능력을 앞세워 영국을 대표하는 에틸렌 생산기지로 평가됐다. 리온델바젤 역시 프랑스 베르(연산 46만5,000t)와 독일 뮌스터(연산 40만 t) 에틸렌 크래커 2기와 스페인 타라고나의 폴리프로필렌 공장(연산 39만 t)을 매각하기로 했다. 이들 모두 일시 중단이 아닌 영구 폐쇄 또는 매각을 택했다는 점에서 사안의 중대성이 한층 부각되는 양상이다. 

비닐·PVC 및 염소계 원료를 생산하는 이네오스 그룹의 핵심 화학 기업 이노빈(INEOS Inovyn)의 결정도 상징적이다. 이노빈은 지난해 10월 독일 라인베르크에 있는 두 개의 생산 공장을 폐쇄했고, 이 과정에서 최소 175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스티븐 도셋 이노빈 최고경영자(CEO)는 “유럽이 ‘산업 자살’을 하고 있다”는 격한 표현까지 사용하며 “미국과 중국의 경쟁자들이 저렴한 에너지로 혜택을 받는 반면, 유럽 생산자들은 우리 정책과 관세 보호 부재로 인해 가격 경쟁에서 밀려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노빈은 라인베르크 이전에도 영국 그레인지마우스, 벨기에 질에 공장을 폐쇄한 바 있으며, 프랑스 타보와 스페인 마르토렐에서는 가동을 중단했다. 

원재료 위축→자동차·부품 산업 파급

화학업계의 위기는 연관 산업인 자동차 및 부품 분야로도 확산하는 추세다. 독일 최대 자동차업체 폭스바겐은 창사 88년 만에 처음으로 자국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2002년 가동을 시작한 드레스덴 공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해당 공장은 지금까지 생산한 차량이 20만 대를 넘지 않을 정도로 소규모 시설이었지만, 고급 세단 페이톤과 전기차 ID.3 등 자사의 기술력을 과시하려는 일종의 ‘쇼케이스’ 성격이었다는 점에서 폐쇄의 충격이 컸다. 드레스덴 외에도 오스나브뤼크 공장이 중단을 앞둔 상태며, 이에 따라 폭스바겐의 독일 내 연간 생산 능력은 73만4,000대가량 축소될 전망이다. 

구조조정 강도도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폭스바겐 노사는 지난해 합의에서 독일 내 일자리 3만5,000개 이상을 줄이기로 뜻을 모았다. 이는 전체 직원 12만 명 가운데 약 30%에 해당한다. 사측은 당초 독일 내 10개 공장 중 최소 3곳 폐쇄와 임금 10% 삭감을 제시했는데, 최종 합의안에는 임금 5% 인상분을 회사 기금으로 적립해 비용 절감에 활용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아르노 안틀리츠 폭스바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연간 최대 50억 유로(약 8조5,000억원)에 달하는 관세 부담이 지속되는 상황”이라며 “총 1,600억 유로(약 272조원) 규모의 5개년 투자 계획도 재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부품업계도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타이어 업체 미쉐린은 자국 공장 두 곳을 올 상반기 내 폐쇄하고 직원 1,250명을 감축한다. 이는 프랑스 직원의 약 7%에 해당한다. 이에 앞선 2024년 초에는 독일 2위 자동차 부품사 ZF가 공장 두 곳을 폐쇄하면서 “향후 6년간 최대 1만2,000명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으며, 비슷한 시기 또 다른 부품사 셰플러 역시 4,700여 명 해고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는 “2019년 이후 5년간 독일 자동차 부품 업계에선 4만6,000여 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는데, 2035년에는 누적 최대 19만 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관측하기도 했다. 

업계는 이 같은 연쇄 조정이 화학 산업 위축과 분리해 보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 합성고무 등 기초 화학 제품은 타이어나 플라스틱 부품, 차체 경량화 소재에 널리 쓰인다. 이 때문에 원재료 생산 축소는 완성차 업계는 물론 부품사의 비용 구조에 직접 반영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국 전기차 업체의 공세와 전기차 전환 과정의 부품 수 감소 등이 겹치면서 유럽 제조 생태계 전반의 고용·설비 기반이 동시 압박받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학에서 시작된 생산 기반 축소가 자동차·부품으로 확산하며 제조업 전반의 파급 효과를 확대하는 셈이다.

중국과는 무역 갈등 격화 가능성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최고 45% 수준의 상계 관세를 유지하거나 확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특히 상하이자동차(SAIC) 등 조사에 비협조적인 기업에는 45.3%의 최고 세율이 적용되는 방안이 거론된다. 여기에는 현지 자동차 산업 기반이 흔들린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 격차를 보조금으로 보전한 중국산 자동차를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 짙게 작용했다. 아울러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밀려난 물량이 유럽으로 대거 유입되는 경로를 차단하겠다는 계산 또한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통신·디지털 인프라 분야에서도 중국산 배제 기조가 강화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달 21일 “EU 집행위가 회원국들에 5세대 이동통신(5G)망에서 화웨이·ZTE 장비를 강제 퇴출하도록 법제화를 추진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EU는 이에 앞선 2020년부터 사이버보안 위험을 이유로 해당 장비 사용 배제를 권고해 왔는데, 강제성이 없어 그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법안이 채택되면 3년 내 강제 퇴출을 완료해야 한다. 화웨이는 “공정성과 비례성에 위배되는 처사”라고 반박했지만, EU는 도리어 커넥티드카·클라우드컴퓨팅 등 여타 첨단 산업으로 배제 범위를 확대할 조짐을 보였다. 

중국은 부랴부랴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은 이달 초 에마뉘엘 본 프랑스 외교 수석과의 통화에서 “중국과 유럽은 경쟁자가 아니라 파트너”라며 “양측은 대화를 통해 구체적인 무역 분쟁을 조율하고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시장 접근이 제약된 상황에서 유럽까지 관세 장벽을 높일 경우, 수출 중심 전략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내수 부진을 수출 확대로 보완한 정책 기조가 제동을 받으면, 중국의 중장기 성장 경로도 수정이 불가피한 까닭이다. EU의 관세·규제 카드와 중국의 대화 제안이 교차하는 지점에 각국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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