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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폴리시] 중국은 커졌고 EU는 멈춘, 기업 성장 규모에서 갈린 경쟁력

[딥폴리시] 중국은 커졌고 EU는 멈춘, 기업 성장 규모에서 갈린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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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onths 1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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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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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과학의 언어로 읽고, 사실 위에 통찰을 더하는 글을 전합니다. 복잡한 현상 속에서 본질을 찾아 독자와 함께 사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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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수 많지만 규모 확장은 정체
단일 시장 유지에도 국경 간 진출 제약
기업 성장 정체와 경쟁력 격차 동시 확대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국과 유럽연합(EU) 간 통상 경쟁이 빠르게 격화되면서 유럽 경제의 구조적 약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기업 수만 놓고 보면 유럽은 결코 뒤처지지 않지만, 상당수 기업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지 못한 채 성장 정체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단일 시장이라는 제도적 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산업 전반의 규모를 키울 만큼의 결속력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기업 성장은 속도와 범위 모두에서 제약을 받았고, 이는 곧 산업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졌다.

통상 마찰이 심화될수록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외부 충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산업 기반이 아직 충분히 두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유럽이 직면한 핵심 과제는 기업의 수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기존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규모를 확장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에 있다.

규모 확장에 막힌 유럽 기업

EU의 기업 구조는 양적으로는 풍부하지만, 규모 확대로 이어지는 경로는 약하다. EU 통계청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EU 전체 기업의 약 99%는 초소형·소기업에 속한다. 종업원 기준으로 의미 있는 규모에 도달한 기업 비중은 0.025%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이 소수의 대기업이 기업 부가가치의 약 절반을 창출하고, 민간 부문 일자리의 3분의 1 이상을 책임진다. 수치가 보여주듯 기업이 일정 단계에 도달했을 때의 경제적 파급력은 크다.

그러나 그 단계로 이동하는 통로는 좁고 제한적이다. 다수의 기업은 성장 초기 구간에 머문 채 규모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산업 전반의 평균 체급은 좀처럼 높아지지 않고, 성장의 무게 중심은 소수 기업에 집중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EU·미국 기업의 국경 간 판매 비중 비교
주: EU 기업은 국내 판매 대비 국경 간 판매 비중이 낮은 반면, 미국 기업은 주(州) 간 거래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 단일 시장을 표방하는 EU에서도 실제 거래 구조는 국가 경계에 의해 제한돼 있으며, 시장 통합이 구조적으로 미완성 상태임을 보여준다.

분절된 단일 시장과 확장 비용

기업 성장이 제약되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제도 비용이다. EU 내부에서는 국가별로 상이한 세제, 기업·파산 법제, 금융 관행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이 차이는 국경을 낮추기보다 새로 만든다. 그 결과 EU 기업의 국경 간 판매 비중은 미국 기업의 주(州) 간 거래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문다.

단일 시장이라는 틀은 갖춰졌지만, 법과 금융 영역에서는 통합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 조건에서는 기업이 EU 전역을 하나의 시장으로 확장이 아닌, 외부 자본에 매각하거나 본사를 이전하는 선택이 반복된다. 확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과 비용을 피하기 위한 판단이다.

이러한 선택이 누적되면서 산업의 성장 축은 내부에서 형성되지 못하고, 통상 경쟁의 국면에서는 산업 주도권이 점진적으로 외부로 이동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생산성 지표에 드러난 규모 한계

이 같은 구조적 제약은 생산성 지표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로스타트 자료를 종합하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21개국)의 생산성은 2023년에 둔화됐으며 이후 회복 속도 역시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단기적인 경기 요인보다는 기업 구조와 산업 구성의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연구개발(R&D) 투자, 글로벌 공급망 구축, 해외 시장 진출과 같은 활동은 대체로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을 전제로 한다. 이 때문에 대기업 비중이 높고 금융시장이 발달한 지역일수록 생산성과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일부 국가와 연도의 세부 수치는 2022~2024년 평균값으로 보완했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일관적이다.

기업이 규모의 문턱에 묶일수록 생산성 개선의 여지도 함께 제한되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결국 기업 규모에 대한 제약은 생산성이 도달할 수 있는 상단을 장기간 억눌러 온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EU 역내 수출 규모의 국가별 집중도
주: EU 역내 수출은 절대 규모로는 크지만, 독일(DEU), 프랑스(FRA), 네덜란드(NLD) 등 일부 국가에 집중돼 있다. 국가별 편차가 크게 나타나면서, 역내 교역이 유럽 전역의 기업 확장으로 연결되기보다는 개별 국가의 성장 한계를 강화하는 구조가 형성돼 있음을 보여준다.

산업 인프라로서의 연방

이 지점에서 EU 연방에 대한 논의는 정치적 수사라기보다 산업을 실제로 작동시키는 제도적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핵심은 권한의 상징성에 있지 않고, 기업 활동 전반의 비용을 낮추는 제도 설계에 있다. 19세기 독일 관세동맹(Zollverein)은 관세를 정렬하고 공동 재원을 마련함으로써 거래 비용을 줄였고, 그 결과 시장 확대는 기업의 투자와 성장으로 이어졌다. 제도가 먼저 구축됐고, 성장은 그 뒤에 따라온 것이다.

오늘날 EU가 직면한 과제 역시 이와 닮아 있다. 기업법과 파산법의 일관화, 전략적 공동 투자, 자본시장연합(Capital Markets Union, CMU)의 실질적 완성은 기업이 국경을 의식하지 않고 규모를 확장하는 데 필요한 기본 조건이다. 여기에 주식·채권 발행 규칙의 조화, 국경 간 청산 체계, 표준화된 차입 구조가 더해질 경우 자본 조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s Act, DMA)처럼 집행력이 담보된 규칙이 기업의 전략과 행동을 변화시킨 사례도 이미 확인됐다. 통상 경쟁이 심화되는 환경에서 연방은 산업 규모를 키우는 인프라로 기능해야 하며, 그 성과는 궁극적으로 경쟁력 지표를 통해 검증돼야 한다.

기업 규모가 가르는 유럽 경쟁력

유럽 기업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하는 문제는 개별 기업의 역량을 넘어 제도적 한계로 귀결된다. 기업의 수는 이미 충분하지만, 그 성과가 규모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은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수록 통상 경쟁이 심화되는 국면에서 유럽은 기업과 산업의 주도권을 외부에 넘기는 선택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논점은 선택의 문제로 압축된다. 분절된 단일 시장을 유지한 채 경쟁력 격차를 감내할 것인지, 아니면 제도 정렬을 통해 기업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통상 경쟁의 시대에 연방은 그 자체가 목표라기보다 하나의 전제에 가깝다. 산업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출 수 있는지가 유럽 경쟁력의 향방을 결정하게 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hy an EU federation is the Only Real Way to Build Bigger, Competitive European Firm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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