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일본 AI 도입 부진, 기술보다 경쟁 부족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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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기업 관성과 낮은 경쟁 압력, AI 도입 지연 초래 국가·기업 간 활용 격차 확대에 따른 혁신 양극화 심화 기술 지원 넘어 구조 개혁 필요, 생산성 회복 관건 부상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난 1년간 일본에서 인터넷을 이용한 성인 가운데 챗GPT(ChatGPT), 코파일럿(Copilot), 제미나이(Gemini) 등 생성형 AI를 사용해 본 비율은 20% 수준에 그쳤다. 일본 정부의 2024회계연도 조사에서도 생성형 AI 이용률은 26.7%로 집계됐다. 이는 선진국 역시 생산성 혁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더 주목할 점은 AI 활용 격차가 기술 접근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재 생성형 AI 서비스는 대부분 저렴하거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도입도 어렵지 않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경쟁 환경이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는 기업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새로운 기술과 업무 방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노동시장과 교육 현장 역시 이에 맞춰 변화한다. 반면 안정적인 거래 구조와 오랜 관행, 낮은 퇴출 압력이 유지되는 환경에서는 신기술 도입을 서두를 유인이 크지 않다. 일본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그리고 일부 유럽 국가들에서도 유사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기업 내부에서 시작되는 AI 도입 격차
일본의 AI 도입 부진은 새로운 기술을 성장 동력보다 관리 대상 위험으로 바라보는 기업 문화에서 비롯된다. 그렇다고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일본은 로봇공학과 첨단 제조업, 소재·정밀기기 분야에서 여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기존의 공장 자동화와 성격이 다르다. 생산 공정을 넘어 기획과 행정, 고객 관리, 소프트웨어 개발, 데이터 분석 등 기업 운영 전반의 업무 방식을 재편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는 빠른 실험과 시행착오, 유연한 업무 재설계를 수용하는 조직 문화가 중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위계적 조직 구조와 합의 중심 의사결정, 종신고용 관행 등 일본 기업의 전통적인 운영 방식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특히 경쟁사들 역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변화에 대한 압박은 더욱 약해진다. 업계 전반이 관망하는 상황에서는 행동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실제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업무에 AI를 활용한다고 답한 일본 근로자의 비율은 8.4%, 생성형 AI 활용 비율은 6.4%에 그쳐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로이터와 니혼게이자이신문의 2024년 조사에서도 일본 기업의 AI 도입률은 24%에 머물렀으며, 40% 이상은 도입 계획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기업들이 기존 업무 체계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누구도 AI 활용을 막지 않지만, 도입을 미루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그 결과 새로운 기술을 축적하고 활용하는 학습 역량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눈에 띄지 않는 손실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 경쟁력과 혁신 역량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노동시장 정체가 낳은 교육 혁신의 한계
기업의 AI 도입 지연은 교육 현장의 변화 속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업들이 AI 역량을 갖춘 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교육기관 역시 교육과정 개편에 속도를 내기 어렵다. 노동시장의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AI 교육은 일부 교과목에 머무르게 되고, 학생들도 기존 자격 취득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일본이 AI 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대학들도 데이터과학과 AI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일부 대학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기초 AI 교육을 실시하고 전공별 응용 과정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인턴십과 신입사원 교육, 공공 부문 등 실제 업무 현장에서 활용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현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정보를 검증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결과물을 평가하는 능력, 나아가 AI가 제시한 답변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역량이다. 이러한 능력은 강의실 교육만으로 확보하기 어렵고 실제 업무 경험을 통해 축적된다. 이를 위해 기업은 교육 현장과 연계한 실무 과제를 확대하고, 대학은 전공 간 경계를 넘어선 AI 활용 프로젝트를 강화해야 한다. 교육과 산업 현장의 연계가 강화될 때 AI 교육 역시 실질적인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럽으로 확산되는 AI 도입 격차
이 같은 현상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연합(EU) 역시 AI 도입 과정에서 국가 간, 기업 규모별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EU 통계기구 유로스타트(Eurostat)에 따르면 직원 10명 이상 기업 가운데 최소 한 가지 AI 기술을 활용하는 비율은 19.95%에 그쳤다. 대기업은 55.03%에 달했지만, 중소기업은 17% 수준에 머물렀다. 국가별 격차도 뚜렷했다. 2025년 기준 덴마크(42%), 핀란드(38%), 스웨덴(35%)은 높은 도입률을 기록한 반면 루마니아와 폴란드, 불가리아는 9%를 밑돌았다. 단일시장 체제를 갖춘 EU 내부에서도 AI 활용 수준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유럽이 일본과 공유하는 문제는 산업·제도 구조에 기인한다. 복잡한 규제 체계와 분절된 시장, 은행 중심의 금융 구조, 보수적인 공공조달 시스템 등은 기업의 혁신 압력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일부 기업은 업무 혁신이나 사업 재편 없이도 규제 준수와 기존 거래처 관리만으로 안정적인 성과를 유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AI 활용이 빠르게 확산된 일부 국가와 기업으로 인재와 자본이 집중되는 반면, 나머지 경제권은 혁신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본은 여기에 인구구조 변화라는 구조적 부담까지 안고 있다. 일본 민간 싱크탱크인 리크루트웍스연구소(Recruit Works Institute)는 현재 수준의 노동 수요가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 2040년까지 1,100만 명 이상의 노동력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석에 따르면 일본의 시간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2000~2008년 연평균 1.2%에서 2019~2024년 0.3%로 낮아졌다. 이와 같이 노동력 감소와 생산성 둔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AI 도입 지연은 단순한 기술 수용의 문제가 아니다.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공공서비스와 돌봄 체계, 지역경제 전반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경쟁 환경 개선이 AI 확산의 출발점
일본과 유럽이 직면한 과제는 AI 기술을 현장에 확산시키고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경제·산업 구조 구축에 있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 대응은 경쟁 정책과 AI 정책을 별개의 과제로 보지 않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반도체 인프라 구축과 연구개발(R&D), 국가 AI 모델 육성에 대한 지원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기존의 업무 방식과 조직 구조가 유지되는 한 생산성 향상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부는 중소기업 지원 과정에서 업무 프로세스 개선과 디지털 역량 강화, 공급망 개방 등 구조 개선 노력을 지원 조건과 연계가 필요하다. 생산성 제고 의지가 부족한 기업을 보호하는 데 정책 자원이 투입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공 보증과 금융 지원 역시 경쟁력 있는 기업의 투자와 사업 확장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운영돼야 하며, 시장 내 자원이 더욱 효율적으로 재배분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해야 한다.
일본과 유럽의 후발 국가들이 직면한 과제는 새로운 기술 도입을 촉진하지 못하는 제도와 시장 구조에 기인한다. 변화보다 현상 유지의 비용이 낮은 환경에서는 생산성 혁신도 속도를 내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AI는 선진 경제권의 구조 개혁 역량을 가늠하는 시험대로 부상하고 있다. AI가 생산성 둔화와 고령화를 해결할 만능 해법은 아니지만,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확산하고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하느냐가 향후 국가 경쟁력과 성장 잠재력의 격차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Japan’s AI Adoption Gap Is Not a Technology Problem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