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러다이트] 미국 공장에 먼저 선 휴머노이드, 현대차가 선택한 길
[21세기 러다이트] 미국 공장에 먼저 선 휴머노이드, 현대차가 선택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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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생산비 구조 재설계 움직임
노사 관계, 도입 속도 좌우하는 변수로
인간 노동 중심 제조업 구조 균열 신호

현대차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글로벌 생산기지에 투입하며 제조 방식 전반의 재편을 예고했다. 표면적으로는 관세 대응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인건비 부담이 큰 미국 공장을 자동화 실험의 거점으로 삼아 생산비 구조를 장기적으로 바꾸려는 계산으로 읽힌다.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도록 설계된 휴머노이드의 양산과 단계적 투입은 공정 설계의 전제를 인간에서 기계로 이동시키는 흐름을 보여준다. 산업계는 현대차의 자동화 전환 사례가 자동차를 넘어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생산 공정 표준 재정의 시도
6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현대차는 이르면 연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글로벌 생산기지에 본격 투입한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 ‘CES 2026’에서 아틀라스를 공개하고,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에 위치한 메타플랜트(HMGMA)를 포함한 자사 생산라인 전반에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표면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에 대응하는 조치로 설명됐지만, 실제로는 인건비 부담이 큰 미국 공장에서 비용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방향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는 미국 시장 내 실적과 수익성 간 괴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연간 판매 100만 대를 돌파했지만, 관세 부담은 실적에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의하면 현대차의 작년 매출은 186조2,545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21.7% 감소한 10조3,648억원에 그쳤다. 여기에 기아 실적을 합산할 경우, 미국 관세로 인한 손실 규모는 7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에 이승조 현대차 재경본부장(CFO)은 최근 실적 발표회에서 “관세의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상 대응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아틀라스는 현대차가 검토한 비상 대응 해법의 중심에 서 있다. 고정식 산업용 로봇과 달리 사람과 유사한 형태로 설계된 아틀라스는 작업 동선이 수시로 변하는 자동차 공장에서 인간과 동일한 공간을 공유하며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또 온도 변화, 먼지, 진동이 상존하는 생산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내구성 요건을 강화해 물류·조립·정비 등 복수 공정으로의 확장도 가능하다. 나아가 자동 배터리 교체 시스템을 통해 24시간 연속 가동이 가능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는 공정 운영의 기본 전제를 기계로 옮기겠다는 현대차의 중장기 구상에 설득력을 더한다.
비용 측면에서도 아틀라스 투입의 효과는 구체적이다. 삼성증권은 아틀라스 3만 대 양산 체제가 구축될 경우, 로봇의 시간당 운영 비용은 초기 9.40달러(약 1만3,800원)에서 1.20달러(약 1,760원) 수준까지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미국 현지 노동자 임금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임은 물론 중국의 인건비와 비교해도 6분의 1 수준이다. 현대차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조지아 메타플랜트에서 아틀라스의 기술 검증(PoC) 작업을 진행 중이며, 2028년에는 부품 분류와 서열 작업, 2030년 이후에는 부품 조립 공정까지 투입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韓 공장 ‘불가’ 아닌 ‘지연’ 문제
반면 국내 생산현장 투입은 노동조합의 거센 반발 탓에 늦어지는 실정이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지난달 22일 소식지에서 “노사 합의 없이는 단 1대의 로봇도 생산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특히 글로벌리더스포럼(GLF)에서 논의된 것으로 알려진 ‘DF247’ 구상, 즉 불을 켜지 않고 24시간 7일 가동되는 무인공장 프로젝트가 언급되며 갈등의 강도는 한층 높아졌다. 노조는 “사람을 배제하고 인공지능(AI) 기반 로봇만으로 운영되는 공장은 결국 모든 일자리를 대체하게 된다”고 주장하며 로봇 도입을 고용 문제와 직접 연결했다.
이후 같은 달 29일에도 현대차 노조는 “로봇 투입이 가능한 해외 공장으로 물량을 빼낸 뒤, 국내 공장은 유휴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휴화된 공장에는 자동화가 극대화된 신공장이 들어설 것”이라며 로봇 도입이 국내 생산 기반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로봇 투입을 반대하는 노조를 ‘기술 발전에 대한 저항’으로 규정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대안 없는 물량 이전과 자동화를 묵인하라는 요구”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차 측은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시간표를 조정하는 전략을 취하는 모양새다. 현동진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장은 5일 한국최고경영자포럼에서 “기술은 그 자체보다 그것을 운용하고 제도를 만드는 사람이 중요하다”며 “디스토피아를 상상하기보다 기술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로봇 도입이 곧바로 인간 노동의 전면 대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는 “로봇이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려면 기술적 진전과 사회적 합의가 모두 필요하며,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조직·고용·산업 생태계 전반에 영향
산업계는 현대차의 아틀라스 투입이 단일 기업의 자동화 실험을 넘어 인간 노동 중심으로 전개되던 제조업 생태계가 근본적으로 뒤바뀌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데 전망이 일치했다. 그동안 반복적이고 위험 공정에만 그쳤던 산업용 로봇의 활용도가 사람과 유사한 작업을 수행하는 단계로 진입하면서 기존 공정의 설계는 물론 인력 배치의 전제마저 흔들리게 됐다는 평가다. 특히 자동차와 같은 중공업 분야는 공정 복잡도와 생산 규모가 큰 만큼 이러한 변화가 가장 먼저 표면화하는 분야로 지목된다.
아틀라스의 기술적 진화 과정도 관심의 대상이다. 2013년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주도로 개발된 초기 아틀라스는 재난 구조를 목적으로 한 유압식 연구 플랫폼이었다. 당시에는 두 발로 서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연구 과제였다. 이후 2016년을 전후해 전동 기반과 유압 액추에이터를 결합한 모델이 등장하며 점프, 회전, 백플립, 파쿠르 동작이 공개됐고, 전신 제어와 동적 균형 기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이 시점까지도 아틀라스는 산업 현장에서 장시간 반복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로봇과는 성격이 달랐다.
전환점은 2024년에 나타났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10년 넘게 사용해 온 유압식 모델을 공식 퇴역시키고, 완전 전동식 아틀라스를 공개하며 연구 프로젝트에서 산업용 제품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외형은 보다 직립형으로 바뀌었고, 인간 관절 범위를 넘어서는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 자유도를 확장했다. 작업 목적에 따라 교체 가능한 그리퍼 구조를 적용해 단일 기능 로봇이 아닌 범용 작업 단위로의 활용을 전제로 설계했다. 이는 로봇이 더 이상 특정 공정이나 작업 환경에 갇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현대차가 강조하는 양산 전제 역시 산업계의 해석을 바꾸는 요인이다. 현대차는 자사의 제조실행시스템(MES), 창고관리시스템(WMS)과 연동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오르빗(Orbit)’을 통해 다수의 아틀라스를 동시에 운영하고, 한 대가 학습한 작업 데이터를 다른 로봇들과 공유하는 구조를 상정했다. 이는 개별 로봇에서 강화된 성능을 집단 답위로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자동차 생산 라인에서 축적된 운용 경험은 향후 물류와 조선, 철강, 전자 등 여타 제조 분야로 확산될 공산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을 인간 노동의 급격한 소멸로 단정하는 것에 주의를 요구했다. 반복적이고 위험도가 높은 작업은 로봇이 수행하되, 공정 설계·운영·유지보수·데이터 관리 영역에서 인간의 판단 능력은 더 중요해진다는 점에서 역할 분담의 재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도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는 만큼 빨리 적응해야 한다”며 로봇의 대체로 인한 일자리·소득 감소에 대응한 사회제도 관련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