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 인프라 지킨다” EU, 러시아 위성 활동 겨냥 ‘우주 방패’ 공식화
“하늘 위 인프라 지킨다” EU, 러시아 위성 활동 겨냥 ‘우주 방패’ 공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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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위성 기반 인프라 안보 영역으로 편입
경보→요격 포괄 미국식 우주 방패와 대비
자주국방 논의 우주 영역으로 확대 움직임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위성 교란 활동을 직접적인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며 통합 감시 체계인 ‘우주 방패’ 구축에 착수했다. 위성 항법과 통신 인프라가 경제·안보 전반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우주 자산 보호를 국가 안보 범주에 명시적으로 편입한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중심으로 한 미국과의 협력 경험은 유럽이 최소한의 독자 감시·경보 능력을 확보하는 토대가 될 전망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럽의 행보는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을 벗어나는 데 앞서 자체 판단과 대응 여지를 넓히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주요 위성 궤도 이탈·추락 가능성
5일(현지시각)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최근 사이버와 물리적 보안을 결합한 통합 방어 체계인 우주 방패 출범을 공식화했다. 위성 항법과 통신, 정부·군사 통신이 결합된 우주 자산을 현대 경제·안보의 중추로 규정하고, 러시아의 위성 감청·교란 가능성을 실질적 위협으로 판단한 데 따른 조치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우주 공격은 세계 경제를 마비시키고 교통망을 혼란에 빠뜨리며 많은 인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새로운 형태의 하이브리드 전쟁에 직면했다”고 강조했다.
유럽 우주·정보 당국은 러시아가 전파 방해, 센서 마비, 위치 정보 기만을 조합한 방식으로 유럽 위성망을 시험한다고 봤다. 특히 러시아의 ‘루치(Luch)-1’과 ‘루치-2’ 위성이 정지궤도에서 유럽 통신 위성에 장기간 근접 기동을 반복하며 신호정보 수집 활동을 수행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지적이다. 정지궤도 위성은 지상 약 3만5,000km 상공에서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중동 일부의 통신·방송을 담당하는 핵심 인프라로, 명령 링크의 암호화가 불충분할 경우 궤도 이탈·추락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유럽 측의 핵심 우려다.
이 같은 인식은 단순 감시를 넘어 억지와 방어의 제도화로 이어졌다. EU 집행위원회는 24시간 감시망을 중심으로 조기경보와 위협평가, 대응 절차를 한데 아우르는 ‘안보·국방을 위한 우주 전략’을 올 하반기 발표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민간과 군의 경계가 흐릿한 위성 자산의 특성을 고려해 통신·항법·지상국 보호를 동시에 다루는 패키지형 설계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여기에는 에어버스,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 OHB 등 유럽 내 다수 항공우주 기업의 참여도 예고됐다.
회원국 차원의 대응도 가속하고 있다. 독일은 러시아의 서구 인공위성 파괴 공작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2030년까지 우주 방어에 350억 유로(약 60조원) 투입 방침을 밝혔다.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전후로 통신위성 네트워크를 교란해 독일 풍력발전기 5,800대에 장애가 발생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위성 취약성이 에너지·물류 등 실물 경제로 직결될 공산이 크다는 우려에서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위성 네트워크는 현대 사회의 아킬레스건”이라며 우주 억지력 확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은 ‘감시·경보·대응’ 완성 단계
유럽보다 먼저 우주를 독립된 안보 영역으로 규정하고 방어 체계를 축적한 사례로는 미국을 꼽을 수 있다. 미국의 우주 방어 구상은 특정 사건에 대한 단기 대응 성격을 띠기보다는 냉전기부터 이어진 장기 전략의 연장선에 가깝다. 1983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제시한 전략방위구상(SDI·일명 ‘스타워즈 프로젝트’)은 비록 기술적 한계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우주 공간을 미사일 방어의 전방 영역으로 설정하는 사고방식을 제도권에 깊이 새겼다. 이후 미국은 조기경보 위성과 미사일 추적 레이더, 요격체를 단계적으로 결합하며 우주 다층 방어 개념을 축적했다.
최근 다시 부상한 미국판 우주 방패 구상 역시 이 같은 흐름에서 등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재취임 직후 우주 방패 개발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미사일 방어 범위를 지상과 대기권을 넘어 우주로 확장하겠다는 청사진을 공식화했다. 이어 ‘골든돔(Golden Dome)’이라는 명칭의 우주 기반 미사일 방어 체계를 발표하고, 총 1,750억 달러(약 257조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구상은 우주에 배치된 감시 위성과 요격 수단을 활용해 미사일 발사 직후부터 낙하 단계까지 전 과정을 추적·요격하는 다층 방어망을 전제로 한다.
문제는 이 같은 미국의 구상이 기술적·경제적 제약을 동시에 안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학계에서는 레이저 기반 요격 기술의 실현 가능성을 가장 큰 변수로 지목했다. 탄도미사일을 레이저로 무력화하려면 발사 후 3~5분에 불과한 상승 단계에서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유효 사거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현존 기술로는 안정적 구현이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에너지 문제 역시 미사일 요격용 레이저를 탑재한 위성은 소형 원자력 발전기에 준하는 출력이 필요하지만, 이를 장기간 우주에서 운용할 수 있는 동력 기술은 아직 성숙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기술적 불확실성은 다시 비용 문제로 직결된다. 미 국립과학원은 2012년 기준으로 제한적인 성능의 우주 방어 체계를 구축하는 데 최소 650기의 인공위성이 필요하며, 그에 따른 비용만 3,000억 달러(약 4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여기에 유지·보수와 운용 인력, 이후의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실제 소요 자금은 훨씬 늘어날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미국은 조기경보 위성망과 우주 감시 자산, 관련 산업 생태계를 이미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 막 감시·경보·대응 체계를 새로 설계하는 단계에 돌입하는 유럽과는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최소한의 억지·조기경보 능력 확보에 방점
EU는 나토 체제 안에서 미국과 함께 축적한 위성 정보와 우주 감시 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우주 방어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그간 유럽의 우주 안보는 미국 주도의 정보·경보 체계에 크게 의존했지만, 러시아의 위성 감청·교란 사례가 반복적으로 보고되면서 최소한의 자율적 대응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정책 전면에 부상했다. EU가 우주 방패를 통해 24시간 감시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배경에는 기존 나토 협력 틀에서 축적한 기술·운영 경험을 독자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셈이다.
실제로도 유럽 국가들은 나토를 통해 위성 기반 정찰·통신 정보와 경보 데이터를 공동으로 활용 중이다. 더욱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에는 미국이 제공하던 정보의 일부를 유럽 자산으로 보완하는 흐름도 강화됐다.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위성망은 군사 목적은 물론 민간 통신과 에너지·물류 인프라 관리 전반에 활용됐다. EU 차원의 독자 감시 체계 구상은 이와 같은 경험을 제도화해 외부의 위협에 즉각적인 대응 조치를 취할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다만 유럽의 준비 수준은 미국과 비교해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은 2019년 우주군 창설을 기점으로 위성 추적과 경보 대응 체계를 견고하게 쌓아 올렸고, 안보 분야 전반에서 위성 방어를 독립된 전장 개념에 뒀다. 반면 EU의 우주 방패는 본격적인 요격이나 공격 능력보다는 감시와 경보에 초점을 둔 초기 단계에 그친다. 이 때문에 유럽 내부에서도 이를 최소한의 억지력과 조기 경보 능력을 확보하는 현실적 선택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강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