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튜트급 가동률 0%" 구조적 한계 부딪힌 英 핵잠, 근본적 운용 역량 의구심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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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핵심 전력 애스튜트급 핵잠수함, 동시 입항으로 전력 공백 발생 구조적 한계로 곳곳에서 잡음 이어져, 오커스 동맹도 미래 불투명 예산·가용 함정 부족으로 핵잠수함 운용 및 폐기에도 차질 잇따라

영국 해군의 최첨단 공격형 핵잠수함 전력이 정비 독(Dock)에 한꺼번에 묶였다. 작전 투입 가능 전력의 가동률이 0%로 추락하며 영국 해군 체계의 구조적 문제가 재차 부각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사태는 단순한 전력 공백을 넘어 영국의 근본적인 핵잠수함 운용 역량과 미국, 영국, 호주의 핵잠수함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 구상 전반에 대한 의구심까지 키우고 있다.
英 최첨단 핵잠 전력 구멍 뚫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각)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현재 영국 해군의 핵심 수중 전력인 애스튜트급 핵잠수함 5척이 기술적 문제와 정비 지연으로 전체가 입항 상태다. 최근 호주 연합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안손함에서 결함이 발견된 후 전력화된 함정이 모두 정비 독에 발이 묶이고, 영국 안보 체계의 핵심 축이 마비된 것이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배경에는 영국 방산 인프라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영국군 전력은 수년간 이어진 국방 예산 삭감, 긴축 정책, 산업 기반 축소 등의 영향으로 급격히 소모돼 가는 중이다. 잠수함 전력은 상대적으로 우선순위가 높아 여타 분야보다 타격이 적었지만, 그럼에도 심각한 제약 속에서 나날이 국제적 위상을 잃어 가는 실정이다. 특히 애스튜트급 핵잠수함 사업은 장기간 일정 지연과 비용 초과 문제를 겪어 왔다. 애스튜트급 함정 한 척을 건조하는 데 드는 비용은 20억 달러(약 3조원)에 달하며, 생산 기간은 여타 주요국의 상위 성능 잠수함들보다 훨씬 길다.
인프라의 구조적 병목 현상 역시 문제다. 영국은 데번포트 등 방사능 안전 설비를 갖춘 독에서만 핵잠수함 정비가 가능하고, 숙련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 군데서 정비가 지연되면 전 함대가 대기하며 전력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형태다. 영국 내부에서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12월 영국 국방부(MoD) 핵정책 책임자를 지낸 필립 마티아스 예비역 해군 소장은 “영국에는 더 이상 핵잠수함 프로그램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며 “프로그램 전반의 성과는 모든 분야에서 계속 악화하고 있으며, 이는 핵잠수함 시대에 전례 없는 상황이 후계자 양성과 리더십 계획의 재앙적 실패”라고 지적했다. 장기간에 걸친 관리 실패가 함대 가동률을 비롯한 각종 성과 지표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평가다.
위태로운 英 잠수함 기술력
이러한 영국 잠수함 체계의 불안정함은 실질적인 잡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4년에는 영국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트라이던트 2'가 8년 만의 시험 발사에 실패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트라이언트 2를 발사한 것은 영국 전략 핵잠수함 HMS 뱅가드호이며, 모의 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은 당초 예정지인 브라질과 서아프리카 사이 대서양이 아닌 잠수함에서 불과 수 미터(m) 떨어진 바다로 추락했다. 3단 고체 연료 로켓 중 1단 로켓의 점화에 문제가 생기며 발사 직후 추진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뱅가드호는 전략 핵잠수함 뱅가드급 잠수함 4척 중 첫 번째 함정으로, 발사 직전 3년간 5억 파운드(약 1조원)가 투입된 전면 개장 공사를 거친 바 있다.
오커스 동맹 역시 영국의 기술 부족 문제로 인해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2021년 출범한 오커스는 미국과 영국, 호주가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맞서기 위해 체결한 동맹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는 데 필요한 핵잠수함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계획에 따라 미국은 2030년대 초부터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최대 5척을 호주에 판매하기로 했으며, 영국과 호주는 미국의 첨단 기술을 도입한 재래식 무장 핵잠수함을 공동 개발해 각자 자국 조선소에서 건조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월 마티아스 예비역 소장은 호주 지역 언론인 브리즈번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핵잠수함은 정책과 자금이 아닌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며 "영국은 적절한 기술과 경험을 갖춘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이 호주에 핵잠수함을 판매할 수 있지만 영국 측이 주도하는 사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렇게 되면 호주가 핵잠수함을 건조하려던 계획이 취소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호주가 영국 핵잠수함 프로그램의 위태로운 상황에 대한 충분한 실사 없이 동맹에 가입한 것은 매우 순진한 행동"이라며 "지난 4년간 수많은 발표와 국제 방문, 포럼, 토론이 있었지만 핵잠수함 건조·지원에 필요한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는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퇴역·가용 전력 관리에도 잡음
인프라의 한계는 영국의 잠수함 운용 체계 자체에도 막대한 혼란을 야기했다. 핵잠수함 해체 지연이 대표적이다. 영국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로지스와 데번포트 기지에는 해체를 기다리는 퇴역 핵잠수함이 20여 척 이상 계류돼 있다. 이들 함정 중 상당수는 수십 년 전 퇴역했다. 영국 최초의 핵잠수함 HMS 드레드노트는 1980년 퇴역했지만 아직도 완전히 해체되지 않았으며, 냉전 시기 운용됐던 다수의 잠수함도 처분을 기다리는 중이다. 영국 의회와 감사 기관들은 국방부가 비용 부담과 시설 부족을 이유로 해체 사업을 미뤄 왔다고 비판한다. 2019년 영국 국가감사원(NAO)은 퇴역 핵잠수함 보관 비용이 이미 5억 파운드를 넘어섰으며, 관련 장기 부담 규모는 75억 파운드(약 15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핵심적인 문제는 해체 인프라 부족이다. 핵연료 제거, 원자로 처리, 방사성 폐기물 관리 등을 수행할 시설과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잠수함이 퇴역한 뒤에도 장기간 계류 상태로 남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이를 장기적인 과제로 규정하고 있으며, 올해 들어서야 20여 년 만에 퇴역 핵잠수함의 핵연료 제거 작업을 재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다만 첫 시범 해체 대상으로 선정된 HMS 스위프트슈어 1척을 처리하는 데만 수년이 소요되는 만큼, 현재 적체된 20여 척 이상의 퇴역 잠수함을 모두 해체하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가용 함선 및 승조원들이 받는 부담도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에는 뱅가드급 핵잠수함이 205일간의 무중단 작전을 마치고 복귀하며 영국 해군 역사상 최장 잠항 기록을 쓰기도 했다. 통상 3~4개월 운항을 기준으로 설계된 뱅가드급 잠수함에 200일 치가 넘는 보급품을 싣고, 승조원들이 6시간마다 교대하는 2교대 시스템을 반년 이상 반복한 것이다. 이는 영국 해군의 전력 공백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노후 뱅가드급 잠수함의 교체 사업이 지연되는 가운데, 가용 함정 수까지 줄어들면서 핵 억지력 유지를 위한 개별 잠수함의 작전 기간이 계속해서 연장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