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딥파이낸셜] AI가 앞당긴 뱅크런의 시간표

[딥파이낸셜] AI가 앞당긴 뱅크런의 시간표

Picture

Member for

8 months 1 week
Real name
김은실
Position
연구원
Bio
세상을 과학의 언어로 읽고, 사실 위에 통찰을 더하는 글을 전합니다. 복잡한 현상 속에서 본질을 찾아 독자와 함께 사유하겠습니다.

수정

소문 확산과 자금 이동, 같은 속도로 맞물린 금융 환경
공통 모델·플랫폼이 만든 동시 판단과 집단 행동
속도 통제가 사라진 시장, 커지는 시스템 리스크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금융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는 420억 달러(약 60조원)다. 2023년 3월, 한 미국 은행에서 단 하루 만에 빠져나간 예금 규모다. 다음 날 아침에는 추가로 1,000억 달러(약 143조원)가 인출 대기 상태에 올랐다. 이는 사람들이 은행 창구 앞에 줄을 서던 과거의 뱅크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스마트폰 알림, 온라인 뉴스 피드, 전자 이체가 동시에 작동하며 자금 이동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이 사건은 금융 불안이 발생하는 속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정보가 퍼지는 속도와 자금이 움직이는 속도가 사실상 같은 수준으로 맞물린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AI)은 단순한 분석 도구를 넘어, 정보 확산과 의사결정, 실행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작은 소문도 즉각적인 판단으로 이어지고, 판단은 곧바로 자금 흐름을 바꾼다. 금융 리스크는 더 이상 시간이 지나며 누적되지 않는다. AI가 결합된 환경에서는, 짧은 순간에 시스템 전체로 번진다.

소문이 유동성 위기로 번지는 구조

AI가 금융 리스크를 키우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속도다. AI는 정보의 생성과 확산, 판단과 실행을 하나의 연속된 과정으로 압축한다. 이 과정에서 소문은 해석과 검증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채 곧바로 의사결정으로 바뀌고, 그 판단은 즉시 자금 이동으로 이어진다. 정보가 퍼지는 시점과 거래가 실행되는 시점 사이에 존재하던 시간적 완충이 거의 사라진 이유다.

이 변화는 2023년 3월 사태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해당 은행은 불과 8시간 만에 420억 달러(약 60조원)의 예금을 잃었다. 이후 규제 당국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채널이 예금 인출을 가속한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온라인에서 확산된 메시지가 즉시 계좌 이동으로 연결되면서, 유동성 압박이 짧은 시간에 집중된 것이다.

이제 이런 속도는 특수한 상황의 산물이 아니다. AI가 보편화된 금융 환경에서는 위기 국면에서 자금 유출이 ‘하루 단위’가 아니라 ‘시간 단위’로 전개된다. 이 구조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금융 시스템이 실제로 감당해야 할 유동성 위험의 크기와 전파 속도를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하게 된다.

대규모 AI 모델 출시, 2022년 이후 급증
주:2022년을 기점으로 대규모 AI 시스템 출시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기업 간 공통 노출과 동시적 행동이 빠르게 확대됐다. 이는 AI 기반 금융·산업
전반에서 시스템 리스크가 커지는 상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같은 모델이 만든 동시 행동

속도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같이 움직이는 구조’다. 현재 많은 금융기관은 유사한 AI 모델과 데이터,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한다. 정보가 입력되고 해석되며 대응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이 환경에서는 개별 판단처럼 보이는 결정도 실제로는 같은 틀 안에서 동시에 형성된다.

이 구조적 동조는 이미 수치로 확인됐다. 2023년 실증 연구에 따르면, 트위터 활동이 많았던 은행일수록 예금 유출 폭이 더 컸다. 같은 시기에 최소 22개 미국 은행에서 대규모 인출이 동시에 발생했다. 최근 소비자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AI가 생성한 은행 부실 관련 허위 정보에 노출될 경우, 응답자의 약 60%가 예금 이동을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정보의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같은 메시지가 같은 도구를 통해 확산되면서 행동이 함께 움직였다.

모두가 동일한 신호를 동일한 시스템으로 해석하면, 판단 역시 동시에 나온다. 평상시에는 드러나지 않던 위험이 이 구조 안에서 누적되다가, 스트레스 국면에 들어서면 한 방향으로 급격히 분출된다. AI가 만든 동시 행동은 금융 시스템의 변동성을 키우는 핵심 경로로 작동하고 있다.

AI의 속도·불투명성·모델 획일화가 키우는 시스템 리스크 경로
주: AI의 속도, 불투명성, 모델 획일성은 유동성, 공통 노출, 상호연결성, 대체 가능성, 레버리지 등 여러 위험 경로를 동시에 자극한다. 이 중첩 구조가 소문 기반 충격을 짧은 시간에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플랫폼 집중이 만든 단일 장애

앞서 나타난 동시 행동은 기술 구조에서 더 강하게 증폭된다. AI는 소수의 대형 클라우드·모델 기업에 크게 의존하는 방식으로 확산됐다. 개별 금융기관이 내부적으로는 건전하게 운영되더라도, 공통으로 사용하는 플랫폼에 문제가 발생하면 충격은 기관 간 경계를 넘어 동시에 전이된다. 위험의 출발점이 은행 내부가 아닌 외부 기술 인프라로 이동한 셈이다.

이 같은 인식은 규제 대응으로 이어졌다. 영국은 2024년부터 금융 부문 핵심 제3자에 대한 운영 복원력 규제를 시행했다. 유럽연합은 디지털 운영 복원력 법안(Digital Operational Resilience Act, DORA)에 따라 주요 클라우드·데이터 기업을 금융 시스템의 핵심 인프라로 지정하고 직접 감독에 나섰다. 기술 제공자의 장애나 사이버 사고가 금융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제도권 안에서 관리하겠다는 판단이다.

이 조치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기술 기업의 문제는 더 이상 개별 금융기관이 자체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위험이 아니다. AI 리스크는 은행 내부 통제의 범위를 넘어, 공통 인프라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통제 없는 속도가 만든 시스템 리스크

결국 금융에서 AI 리스크의 본질은 속도와 자금이 동시에 움직이는 구조에 있다. AI는 신호가 포착되는 순간부터 거래와 결제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인다. 평상시에는 효율을 높이는 장치로 작동하지만, 위기 국면에서는 유동성 부족을 즉각 드러내는 촉매로 바뀐다. 판단과 실행 사이의 간격이 사라지면서, 작은 충격도 빠르게 누적된다.

2023년 3월 사례는 이를 수치로 보여준다. 해당 은행은 하루 만에 전체 예금의 약 4분의 1을 잃었다. 예금 규모와 주가는 하루 중에도 온라인 발언과 소문에 반응하며 크게 흔들렸다. 유럽 당국 역시 즉시 결제와 모바일 뱅킹 확산으로 뱅크런이 ‘며칠’이 아니라 ‘몇 시간’에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금융 거래의 속도가 정보 확산 속도와 거의 같아졌다는 판단에서다.

이 환경에서는 속도를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큰 위험이 된다. 소문이 확산될 때 대규모 인출을 일시적으로 조정하고, 자동 매매를 멈추며, 검증된 공식 메시지를 빠르게 전달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금융에서 AI 리스크는 개별 판단의 문제보다 네트워크 전체의 반응 속도 문제다. 따라서 해법 역시 기관 단위가 아닌 시스템 전체를 기준으로 설계돼야 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hen Speed Becomes Contagion: How AI Turns Local Shocks into Systemic Risk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Picture

Member for

8 months 1 week
Real name
김은실
Position
연구원
Bio
세상을 과학의 언어로 읽고, 사실 위에 통찰을 더하는 글을 전합니다. 복잡한 현상 속에서 본질을 찾아 독자와 함께 사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