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 들어간 PF 시장, 부실 정리는 더디고 리스크는 커진다
'버티기' 들어간 PF 시장, 부실 정리는 더디고 리스크는 커진다
입력
수정
대출 만기까지 완공 어려운 사업장, 본PF로 눈속임 전환 정부의 부실 브릿지론 정리 압박에 일시적인 연명 모색 최근에는 고강도 부동산 규제책으로 건설사 자금 경색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버티기 모드'에 들어간 가운데, 대출 만기까지 완공이 불가능한 사업장들이 브릿지론에서 본PF로 갈아타는, 이른바 '가짜 본PF'가 증가하고 있다. 본래 대형 건설사나 우량 입지의 사업장에 한정된 방식이었지만, 정부가 부실 브릿지론 정리를 압박하면서 이를 일시적인 돌파구로 삼는 움직임이 늘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로 PF 시장의 자금 경색이 심화한 상황 속에 PF 부실의 규모가 커지고 처리 속도는 더뎌지면서, 시장 전반에 잠재적 리스크가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짜 본PF, 만기 시점 상황 예측하기 어려워
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부동산 PF 시장에는 가짜 본PF가 은밀히 확산되고 있다. 일반적인 본PF는 예기치 못한 변수로 공사가 지연되는 상황에 대비해 대출 만기일을 완공 예정일보다 한두 달 늦게 설정한다. 분양과 입주가 대출 만기 전에 이뤄져 금융기관이 안정적으로 상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브릿지론에서 본PF 전환을 통해 개발·공사비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완공 예정일은 만기 이후 기간으로 설정하는데 주로 대형 건설사, 좋은 입지 등을 갖춘 사업장 위주로 사용한다.
이례적인 구조지만 현재의 시장 상황에서 가짜 본PF는 나름 합리적인 대응책으로 작용한다. 시행사나 건설사 입장에서 가장 큰 이익은 금리 부담 완화다. 본PF 조달금리에 각종 수수료를 더한 총비용은 5~7% 수준으로, 금리가 9~12%에 달하는 브릿지론을 대체할 경우 이자 절감 효과가 크다. 브릿지론 단계에서 발생한 우발채무를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이점으로 꼽힌다. 대주 입장에서는 회수가 지연되는 대출을 정상화된 여신으로 분류할 수 있어 회계상 부실채권으로 인식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만기 시점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브릿지론에서 가짜 본PF로 전환하는 사업장은 사실상 대출 만기 내 완공이 불가능한 곳으로 사업이 원활하지 않거나 2차 본PF 작업에 차질이 생길 경우 부실 여파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특히 부실 브릿지론은 그동안 PF 구조조정의 최대 뇌관으로 지목돼 왔다. 지난해 사업성 평가가 본격화되면서 신규 부실 사업장은 줄었지만, 이미 쌓여 있는 브릿지론은 정리가 더딘 상황이다.
브릿지론 만기 연장 두고 시행사 희비
가짜 본PF 전환이 어려운 사업장들은 기존 브릿지론을 연장하며 시간을 벌고 있는데, 만기 연장을 두고 사업장별로 희비가 갈리고 있다. 인천 중구 항동의 SK에너지 유류 저장소 부지 개발사업은 브릿지론 만기 연장에 실패하며 좌초 위기에 몰렸다. 시행사 RBDK가 추진하던 이 사업은 부지 공매가 진행 중이지만, 지난달까지 낙찰자 없이 유찰되면서 대주단의 엑시트(투자금 회수)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최초 공매 당시 최저입찰가는 1,516억원이었으나, 마지막 회차에는 1,030억원까지 낮아졌다.
반면 앨리웨이 오산 개발사업을 추진 중인 네오밸류는 최근 600억원 규모 브릿지론의 만기를 6개월 연장했다. 시공사인 태영건설의 신용보강 기간도 내년 3월까지 함께 연장됐다. 네오밸류는 사업 초기 브릿지론 조달에는 성공했으나, 인허가 지연 등으로 착공이 미뤄지며 6년 넘게 사업이 정체된 상태다. 인허가 절차와 대체 시공사 확보 등 해결 과제가 남은 가운데, 시행사인 네오밸류의 유동성도 넉넉지 않다. 지난해 말 기준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353억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중단 위기에 놓였던 걸포4지구 도시개발사업의 경우 지난달 200억원 규모의 브릿지론 만기를 1년 연장하면서 숨통을 틔웠다. 이 사업은 김포도시관리공사가 출자한 공공·민간 합작형 도시개발의 대표 사례로, 태영건설이 이탈한 이후에도 자금 조달을 추진하며 대체 사업자를 물색 중이다. 연장된 만기는 2026년 10월 24일로 내년 착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시행자 측은 인허가 절차를 마무리한 뒤, 2029년 준공을 목표로 2026년 상반기 본PF 전환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실 사업장 정리도 통계 착시효과 고려해야
이런 가운데 시장 일각에서는 가짜 본PF나 고위험 브릿지론과 같이 부실 위험이 있는 사업장이 여전히 시장 곳곳에 남아 부동산 PF의 잠재적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정부가 매각 사업장 정보를 공개하는 등 사업장 정리에 속도를 내면서 추세적으로는 부실 사업장 수가 줄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방에서는 악성 미분양 매물이 쌓이고 있고, 서울 중심지에 있는 사업지도 잇달아 경·공매로 나오고 있어 PF 시장 뇌관이 제거됐다는 ‘낙관론’을 펼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금융투자협회 정보공개 플랫폼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전국 PF 사업장 매물 중 지방은 179곳으로 전체 66.3%의 비중을 차지했다. 전월(198곳) 대비 9.6% 감소했지만, 여전히 비중이 높다. 같은 기간 수도권은 101곳에서 91곳으로 9.9% 줄었고, 서울은 20곳으로 전월 대비 16.7% 감소했다. 수도권의 저렴한 매물을 중심으로 매각이 이뤄지면서 지방의 악성 매물은 적체된 상태다. 여기에 연체율 추이 또한 전체 PF 대출 규모에 비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업계에서는 업황이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더욱이 정부가 6.27 대책에 이어 10.15 규제책을 내놓으면서 PF 시장의 자금 흐름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주택 매수세가 꺾이고 분양 리스크가 커지자 자금 조달 창구가 좁아졌고, 건설사들은 일제히 ‘현금 방어전’에 나섰다. 또한 금융권은 신규 심사에 제동을 걸었고, 대형사는 계열사나 모기업 지원에 기대며 버티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반면에 중견사와 지방 중소 시행사들은 자금줄이 막히면서 신규 착공과 분양을 미루거나, 기존 사업의 채무 조정에 나서는 등 생존 전략이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