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세금 엑소더스, 신뢰를 잃은 국가의 탈출전
[딥파이낸셜] 세금 엑소더스, 신뢰를 잃은 국가의 탈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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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기 세금 인상과 비공식 경제 확산 영국·프랑스 고소득층 과세 강화로 인한 자본 이동 신뢰·예측 가능성에 기반한 지속 가능한 세제 구축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5년 유럽 각국의 재정 당국이 예산안을 준비하며 마주한 가장 큰 과제는 세원 이탈이다. 남유럽 지역에서는 전체 소득의 약 3분의 1이 여전히 세금 신고 없이 발생하며, 이 비율은 지난 20여 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 경기 침체기에 세금이 오르면 비공식 활동이 늘고, 경기가 회복돼도 제도권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세원이 축소되면 재정의 복원력도 함께 약화된다.
최근 선진국에서 확산되는 ‘세금 엑소더스(tax exodus)’는 이러한 흐름의 합법적 형태다. 과도한 세금과 불안정한 제도를 피해 자산과 거주지를 해외로 옮기는 현상이다. 프랑스는 2025년 GDP 대비 약 5.4%의 재정적자를 예상하고 있으며, 부채는 GDP의 116%에 달한다. 영국은 부유층 이주자에게 출국세(exit tax) 부과를 검토 중이다. 같은 시기 두바이의 고급 부동산 가격은 5년 새 급등했고, 영국인 투자자 비중도 크게 늘었다. 세율이 높고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은 환경에서는 자본과 경제활동이 자연스럽게 외부로 이동한다. 단기적 세수 확대 조치와 장기적 재정 전략을 구분하지 못하면, 이러한 이탈은 가속화된다.

비공식 경제에서 세금 유출로
경기가 악화되면 정부는 세입을 확보하기 위해 세율을 올리거나 과세 대상을 넓히려 한다. 그러나 이는 단기 효과에 그치고 장기적으로 역효과를 낳는다. 세금이 높아질수록 기업과 개인은 제도권을 벗어나고, 빠져나간 세원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이 같은 현상은 선진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제도가 자주 바뀌거나 예측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면 사람들은 제도 밖으로 이동한다. 최근 확산된 세금 엑소더스가 그 대표적 사례다. 프랑스는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부유세 개편을 추진 중이고, 영국은 미실현 이익에 20%를 과세하는 출국세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공정 과세를 내세운 조치지만, 자산가들에겐 불안 신호로 작용해 자금과 거주 이전을 서두르게 한다.
영국의 비거주자(non-dom) 제도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국에 거주하지만, 영구 거주지가 아닌 사람은 해외 소득을 영국으로 송금하기 전까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른바 ‘송금 기준’으로 불리는 이 제도는 오랫동안 부유층과 해외 투자자를 유치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2025년 4월부터 이 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제도 변경이 예고되자 자산가들의 이전이 본격화됐고, 2023~24 회계연도 기준 비거주자 수는 줄었지만, 이들로부터 거둔 세금은 125억 파운드(약 2조1,3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영국 세입이 이동이 자유로운 고소득층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바이의 부동산 시장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2020년 이후 두바이 고급 주택 가격은 급등했고, 영국인은 외국인 구매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25년 2분기 기준 영국인의 두바이 부동산 투자는 전년보다 60% 이상 늘었으며, 일부 개발사는 영국 현지에 판매 사무소를 열었다. 세제 불안이 자본 이동으로 직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상속세나 출국세 같은 핵심 제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자산가들은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먼저 움직인다. 남는 세원은 줄고, 세금 집행은 어려워지며, 세율을 높일수록 세입은 오히려 불안정해진다.

주: 기간(X축), 부채 스프레드 비율(Y축)/비공식 경제 비중이 높은 국가(파란 음영), 비공식 경제 비중이 낮은 국가(주황 음영)
높은 세금이 세원을 줄이는 이유
“돈이 있는 곳에 세금을 매기자”라는 단순한 접근은 자본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OECD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단신 근로자의 세금 부담률은 노동비용의 34.9%로, 2017년 이후 최고 수준이었다. 그러나 세율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신뢰와 예측 가능성이다.
프랑스의 상황이 이를 보여준다. 정부는 2025년 재정적자 축소를 목표로 하지만, 추가 대책이 없으면 부채는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부유세 부활 논의가 나오자, 시장은 세금 인상이 이어질 것으로 해석했다. 납세자는 법보다 분위기, 즉 향후 조세정책의 방향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영국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비거주자 수는 줄었지만, 이들로부터의 세수는 오히려 늘었다. 예산책임처(OBR)는 소수의 고소득층이 전체 세수의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민간 연구기관들은 세수의 향방이 단순한 인원 변화가 아니라, 자산가들이 어느 시점에 얼마나 빠르게 해외로 이주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고소득층의 이동이 조금만 늘어나도 세입은 크게 흔들린다.
출국세 역시 신중해야 한다. 섣불리 시행하면 부유층에게 “세금 조건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신호를 줄 수 있다. 프랑스, 미국, 독일 등 주요국은 이미 각기 다른 형태의 출국세 제도를 운영 중이다. 영국이 이를 도입하려면 세율보다 국제 기준과 조화를 이루는 일관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소급적이거나 징벌적인 과세는 법적 분쟁을 부르고 신뢰를 훼손한다.
세율 인하만으로 비공식 경제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세금의 높낮이보다 제도가 공정하게 작동하는가, 집행이 일관되는가에 반응한다. 행정 절차가 복잡하거나 제도 집행이 불투명하면 세율이 낮아도 제도를 떠난다. 반대로 과도한 단속은 비용을 높여 더 많은 사람을 음지로 밀어낸다. 세원을 지키는 방법은 단순하다. 임의로 바꿀 수 없는 제도, 단순한 과세 체계, 그리고 투명하고 신속한 집행이다. 제도가 신뢰를 얻을 때만 세금은 유지된다.
제도를 붙잡아두는 힘
세원을 확대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세원이 빠져나가지 않게 붙잡는 일이다. 정부가 재정을 유지하려면 올해의 세수보다 내년에도 납세자가 제도권 안에 머물게 하는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세원을 지키는 핵심은 안정성이다. 세금은 높고 낮음보다 일관성이 중요하다. OECD에 따르면 2024년 다수의 국가가 세 부담을 늘렸지만, 일시적 조치를 상시화하면 세원은 줄어든다. 불가피하게 세수를 늘려야 한다면, 기간이 명확히 정해진 임시 조치로 한정하고 종료 시점과 철회 절차를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 예측 가능한 제도만이 납세자의 신뢰를 확보한다.
이동성에 맞는 세제 설계도 필요하다. 출국세는 국제 기준에 부합할 때만 정당성을 가진다. 과세 대상은 국내에서 발생한 미실현 이익으로 제한하고, 유럽연합(EU)과 유럽경제지역(EEA) 내에서는 납부 이연이나 보증을 허용하며, 이미 해외에서 낸 세금은 공제해야 한다. 프랑스는 EU 내에서는 자동 이연을, 외부 국가는 신청 시 이연을 허용하고 있다. 독일은 일정 규모 이상 주식을 보유한 거주자가 해외로 이주할 때 평가이익에 세금을 부과한다. 영국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세율보다 이러한 보호 장치와 제도의 일관성을 우선시해야 한다. 출국을 막는 ‘징벌세’가 아니라, 신뢰를 지키는 제도여야 한다.
또 하나의 과제는 제도권 내 활동의 비용을 줄이는 일이다. 이는 단순한 세금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행정 절차와 불확실성의 문제다. IMF 연구에 따르면 매출의 2~3%만 부과하는 단순 매출세 제도는 영세 사업자가 회계 부담 없이 제도 안에서 활동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절차가 간단하고 행정이 예측 가능할 때 제도권 참여는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신속한 인허가, 전자 세금계산서, 공공 은행의 자금 지원 같은 실질적 개선이 뒤따를 때, 단순한 세율 인하보다 비공식 경제를 훨씬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정책의 선택, 지금의 세수와 미래의 신뢰
재정 압박에 놓인 정부가 선택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단기 세수 확대보다 지속 가능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프랑스가 유럽연합(EU)의 재정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면, 이동성이 낮은 자산에 한정하고 법에 일몰조항을 명시해야 한다. IMF가 권고하듯 지출 제한을 병행하지 않으면 구조적 적자는 해소되지 않는다.
영국이 출국세를 도입한다면 적용 범위를 좁히고 시행 전 명확한 지침을 내야 한다. 자산 이전을 위한 유예기간을 두어 납세자의 예측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 핵심은 언론의 주목이 아니라 제도의 일관성이다.
정책의 초점은 행동 변화가 가장 큰 영역에 맞춰져야 한다. 2024년 OECD 대부분의 나라에서 평균 근로자의 세 부담이 늘었다. 노동세를 더 올리기보다 자본세와 법인세의 준수율을 높이는 개혁이 필요하다. 세금 납부 절차를 단순화하고 집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공식 경제 활동이 더 안전하다’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자산 시장의 흐름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영국의 두바이 부동산 구매 급증은 세제 개편 발표 직후 나타났다. 반면 프랑스의 고급 주택 거래는 부유세 논의가 시작되자 둔화됐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시장 반응이 아니라 세원이 이동하는 방향을 보여주는 신호다. 이를 무시하면 임시 조치가 구조적 문제로 굳어진다.

주: 경제 시나리오-기준, 유연, 공식 부문 상호 보완, 비공식 부분 반응, 부채 불이행 없음(X축), 소비 변동비용(Y축)
신뢰와 세원의 지속성
비공식 경제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거시 경제의 경고 신호다. 선진국 정부가 경기 둔화기에 단순하고 즉각적인 세금 해법을 택하면 제도권 밖으로의 이탈과 자본 이동이 동시에 일어난다. 두 현상 모두 세원을 약화시키고 부채 부담을 키운다.
결국 핵심은 사라지는 세원을 쫓는 임시 처방이 아니라, 세원을 지켜내는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한시적 세금 인상은 불가피할 수 있지만, 국제 기준과 보호장치를 갖춘 출국세, 제도 참여 부담 완화, 공공서비스의 신뢰 회복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신뢰 그 자체가 세수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한 제도와 안정된 규칙은 자본을 붙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제도가 있을 때, 세원은 남고 경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ax Exodus and the Informal Economy: How High-Tax Fixes Can Shrink the Bas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