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관세 장벽, 미국 발목만 잡았다” 중국 제조업 강화 ‘역효과’
“트럼프의 관세 장벽, 미국 발목만 잡았다” 중국 제조업 강화 ‘역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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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 8년, 미국의 전략 실패 중국 1조 달러 무역흑자, 제조업 집착 강화 “미국은 중국 거시경제 전략에 영향 미칠 능력없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율 관세를 앞세워 중국의 경제 체질 개선을 압박했으나, 중국은 오히려 제조업 중심 성장 전략을 더욱 강화하며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기대한 소비 중심 전환 실현은커녕, 수입 대체와 기술 자립이라는 중국의 새로운 성장 축만 자극한 모양새다.
미국 대신 인도·아프리카 등으로 수출 증가
3일 중국 세관총서에 따르면 중국의 무역흑자는 지난해 9,900억 달러(약 1,410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1조 달러(약 1,430조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올해 1~10월 중국의 무역흑자는 7,850억 달러(약 1,120조원)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6% 늘었다. 중국은 현재 전 세계 170개 이상 국가를 상대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올 들어서만 중국산 자동차 두 배 가까이 늘었고,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의 판매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정점을 넘어선 상태다. 칠레와 에콰도르는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테무의 월별 이용자가 올 들어 143% 급증했다.
미국 외 지역에 대한 중국의 수출 호조는 트럼프의 100% 관세 위협에도 중국이 추가 관세 영향을 덜 받을 것임을 의미한다. 여기엔 미국의 대중 압박에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다른 수출 통로를 찾은 영향이 크다. 또한 중국의 수출 호조는 베트남, 멕시코 등 제3국을 통한 환적 증가를 모두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 관세 인상에 대응해 대체 시장을 모색하거나 제3국을 통해 미국 시장에 간접적으로 상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지난 달 아프리카로의 수출이 56% 급증한 것과 라틴 아메리카로의 수출이 증가한 것도 이를 반영한 것이다.
사회보장체계 미비한 중국, '소비 대신 저축'
이는 미국이 당초 중국의 경제 구조조정을 압박하려던 목표와 정반대 흐름이다. 미국은 그동안 관세를 통해 중국이 수출 중심에서 소비 중심 경제로 바뀌도록 유도하려 했다. 구체적으로는 중국이 14억 자국민의 소비를 억제하는 중상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의료·사회복지 시스템을 개편해 소비를 늘리고, 미국과 세계 각국에서 더 많은 상품을 사들이도록 만들려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관세 정책은 중국의 제조업 자립을 더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 글로벌 컨설팅 기업 트리비움차이나에 따르면 중국은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같은 완제품뿐만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부품과 소재 생산에도 집중하는 방향으로 제조 전략을 바꿨다. 이런 변화로 중국은 글로벌 공급망 전체에 더욱 깊숙이 관여하게 됐다.
이를 두고 코넬대 무역정책 교수이자 국제통화기금(IMF) 중국 부문 전임 책임자인 에스와르 프라사드는 중국이 다른 나라의 제조업을 억누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공장 부문을 키우려는 저개발국이든, 경쟁 위협이 커지는 선진국이든 마찬가지다. 실제로 중국은 자동차·항공기·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전문성을 확보하면서도, 저부가가치 제조업 분야에서 저개발국에 시장 점유율을 내주는 것을 거부해 왔다. 프라사드 교수는 "미국은 중국의 거시경제 전략에 영향을 미칠 능력이 거의 없다"며 "미국은 소비를 중시하는 반면 중국은 제조업 생산을 중시하는 등 경제 성장 방식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다르다"고 짚었다.
실제 미국과 달리 중국인들은 돈을 당장 쓰기보다 모아두려는 성향이 강하다. 통계 사이트인 CEIC Data에 따르면 중국은 여윳돈에서 소비하지 않고 남은 부분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총저축률이 46.46%에 달한다. 17.3%에 그치는 미국은 물론, 독일(25.81%), 일본(28.78%), 한국(34.26%)보다 월등히 높다.
중국의 저축률이 높은 원인은 단순히 중국인이 근면 성실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 상황에 대한 어두운 전망, 거품이 낀 주택시장에 대한 불안감은 현재의 현금 보유를 늘리게 만든다. 인민은행이 지난해 4분기 50개 도시 거주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다음 분기 주택가격 하락을 예상하는 사람이 21.1%로 상승을 예측한 사람(12.5%)보다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 원장은 “GDP가 연 10%씩 성장해도 중국에서 예금금리가 3% 이상 나온 적이 없는데, 중국인의 저축 성향이 높은 건 ‘시간선호도’(현재의 소비를 미래의 소비보다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정도)가 낮기 때문”이라며 “교육, 의료 등 사회보장시스템이 잘 안 돼 있고 분배가 약하다 보니 현금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높다”고 말했다.

소비보다는 생산이 중국의 해법
저축률이 높다는 건 뒤집어보면 소비가 부진하고 내수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성장률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 중 소비가 부진하니 중국 정부가 성장률 숫자를 높이기 위해 집중한 것이 투자와 수출이다. 중국의 가공할 만한 생산성도 여기서 비롯됐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보고서를 보면, 2024년 기준 글로벌 전체에서 생산되는 공산품 가운데 중국산은 29%다. 전 세계 두 번째로 많은 미국산과도 12%포인트 격차가 나는 압도적 1위다. 미국은 물론 유럽 나라들의 공산품 생산액을 모두 합쳐도 중국에서 나오는 물량보다 적다.
미국의 무역 적자, 제조업 붕괴의 원인으로 중국을 지목하는 목소리도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값싼 공산품으로 경쟁력을 잃은 산업들은 미국 내에서 도태되고 제조업 일자리도 사라졌다. 또 중국의 높은 저축률은 중국 당국이 의도적으로 투자와 생산에 보조금을 주는 식으로 가계의 소비를 억압한 결과기도 하다. 실제로 수요 진작보다는 공급 능력 강화, 소비보다는 생산이 중국의 해법이다.
물론 이런 선택에는 그림자도 있다. 지도부는 소비를 적극적으로 촉진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임금 인상이나 저축률 완화 같은 가계 중심 정책이 실질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은 작다. 소비를 살리려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중국 정부는 산업 고도화와 수출 경쟁력 강화를 성장의 안정판으로 보고 있다. 외부 수요가 줄더라도 기술 경쟁력만 확보하면 위기를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 방향은 세계에도 파장을 미치는 만큼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와 수입 대체 전략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관세전쟁이 중국 경제를 제어하기는커녕,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중국의 비중을 더욱 공고히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