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문화 바뀌자 도시 풍경도 달라졌다, 서울 구둣방 10년 새 400곳 넘게 문 닫아
직장 문화 바뀌자 도시 풍경도 달라졌다, 서울 구둣방 10년 새 400곳 넘게 문 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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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정비 도중 드러난 도심 풍경 변화 정장 대신 캐주얼 입은 MZ 직장인들 도심 상권 구조까지 바꾼 직장 문화

과거 서울 도심에서 흔하게 보이던 구둣방이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10년 전 1,000곳을 훌쩍 웃돌던 구두수선대는 10곳 중 4곳 가까이가 문을 닫으며 도시 생활 방식 전반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직장인의 출퇴근 복장이 정장에서 캐주얼로 이동하며 구두 착용 자체가 줄어든 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 확산으로 도심 유동 인구가 감소하면서 수요 기반이 급격히 흔들린 것이다. 여기에 스니커즈 중심의 패션 트렌드까지 겹치며 도심의 오래된 생활 서비스 업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대 이유는 판매 부진
12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서울 내에서 영업 중인 구두수선대는 695개로 집계되며 2016년(1,117개)과 비교해 38%가량 줄었다. 서울시는 구두수선대와 가로판매대 등 ‘보도상 영업시설물’ 디자인을 교체하려는 과정에서 이 같은 변화가 포착됐다고 밝히며 “미관 정비와 보행 환경 개선을 위한 행정 절차를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단순한 시설 개선 사업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서울 도심 보도 위에서 오랜 기간 유지돼 온 생활형 영업 기반이 빠르게 축소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각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점포 축소는 영업시설물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 보도상 영업시설물 수는 2011년 2,550곳에서 2023년 말 1,552곳으로 39.1% 감소했다. 유형별 감소 폭은 더 선명하다. 가로판매대는 1,284곳에서 670곳으로 줄어 2년 사이 47.8% 감소했고, 구두수선대는 1,266곳에서 882곳으로 30.3% 줄었다. 이들 시설물은 과거 버스 토큰이나 신문·잡지 판매, 구두 굽 교체 등 일상적인 편의를 제공하던 시설이었지만, 시민들의 생활과 유통 환경이 달라지면서 역할이 크게 줄었다.
이는 폐점 원인을 분석한 결과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해 문을 닫은 보도상 영업시설물 가운데 판매 부진을 이유로 꼽은 비중은 38.6%로 가장 많았다. 이어 고령에 따른 영업 포기가 20.2%로 집계됐고, 운영자 사망도 11.8%에 달했다. 서울시는 이러한 보도상 영업시설물 감소에 대응해 관리 기준도 함께 정비하고 있다. 운영 포기나 허가 취소로 보도 위에 방치된 시설물은 매각이나 철거 절차를 통해 정리하고, 전매·전대 등 규정 위반 여부에 대한 점검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운영자 고령화는 감소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8월 기준 보도상 영업시설물 전체 운영자의 86%가 60대 이상 고령층으로 파악됐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에서도 전국 가죽·가방·신발 수리업 종사자는 2021년 3,134명에서 2023년 2,938명으로 2년 만에 6.3% 감소했다. 같은 기간 60세 이상 종사자는 787명에서 1,874명으로 늘어 업종의 고령 편중이 더 짙어졌다. 서울시청 인근에서 구둣방을 운영하는 이모 씨(65)는 “젊은 인력이 새로 들어올 리도 없고 지금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사실상 구둣방의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층 캐주얼 출근 문화 확산
과거 정장 중심이던 출퇴근 복장 관행이 완화되고, 편안함을 중시하는 캐주얼 복장이 확산한 점도 구두 수선업 수요 감소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금융회사와 증권사가 밀집한 서울 여의도 일대만 보더라도 거리에서 정장 차림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현장 증언이 이어진다. 티셔츠와 청바지, 운동화 등 편안한 복장이 일반화되면서 구두를 일상적으로 신는 직장인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여의도에서 34년 동안 구둣방을 운영했다는 오모 씨는 “예전에는 하루 50켤레씩 구두를 닦기도 하고 뒷굽 교체 같은 수선도 꾸준했지만, 요즘에는 손님 자체를 만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업무 환경 변화에 맞춰 신발 규정 자체를 바꾸는 사례도 나타났다. 특히 호텔업계에서는 프런트 직원과 객실 담당자, 식음 매장 직원 등 장시간 서서 근무하는 인력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유니폼 신발을 구두에서 운동화로 교체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프런트와 하우스키핑 직원은 물론 사무직 직원까지 동일한 운동화를 착용하도록 한 글래드호텔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서비스 직군에서 오랫동안 통용되던 ‘구두=격식 있는 외형’이라는 상징성 또한 무너지게 됐다.
직장 문화와 생활 방식이 동시에 변하면서 구둣방 시장의 경제적 가치도 크게 낮아졌다. 과거 도심 구둣방은 수천만원대 권리금이 형성될 정도로 안정적인 소규모 상권으로 평가됐지만, 지금은 해당 시세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에 2010년 개정된 서울시 조례로 구두수선대 운영권을 직계가족 외에 양도하기 어렵게 된 점도 시장 위축을 가속했다. 남아 있는 구둣방들조차 도로점용료와 시설 이용료 등 연간 약 150만원 수준의 유지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일관된 목소리다.
재택근무·화상 회의로 격식 타파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확산한 재택근무는 도심 상권의 소비 패턴 자체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점심시간에도 건물을 나서는 직장인이 사라지면서 구둣방의 ‘고정 일감’ 구조가 무너지고, 비대면 회의가 일반화되면서 영업사원이나 직장인들이 외부 미팅이나 회의를 앞두고 구두를 맡기는 일도 자취를 감춘 것이다. 또 과거에는 인근 사무실을 돌며 구두를 한꺼번에 받아 수선하거나 광택을 내고 다시 전달하는 방식의 영업이 가능했지만, 빌딩 출입 제한이 늘면서 과거 영업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이러한 수요 위축은 구둣방 운영자의 수입 감소로 직결돼 생계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이에 일부 수선공은 부랴부랴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중구 서소문동 골목에서 구두수선점을 운영하는 60대 김모 씨는 “지금이라도 자리가 있다면 연금이 나오는 경비원 일을 하고 싶다”면서도 “70에 가까운 나이에 다른 일을 찾기 어려워 그저 평생 해 온 구두 닦는 일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례는 도심 구둣방이 생활에 밀접한 소규모 상업 시설인 동시에 고령층 생계 기반과도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기업 조직문화 변화는 이러한 흐름을 한층 가속한다. 비교적 최근까지 복장 규정이 엄격했던 대기업들도 이제는 자율 복장 문화를 적극 장려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에서는 남성 직원들의 반바지 착용까지 허용될 정도로 복장 규정이 완화됐다. 삼성전자 한 임원은 “특별한 행사나 회의가 아니라면 노타이에 재킷 정도의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는다”며 “옷이 편해지면서 신발도 운동화나 로퍼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는 도심 직장 밀집 지역에서 정장을 착용한 직장인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심지어 네이버와 카카오 등 IT 기업에서는 격식을 갖춘 정장 차림이 오히려 보기 드문 풍경이 됐다. 판교에 위치한 한 IT 업체 직원은 “직원이 1,000명이라고 치면, 999명이 운동화나 스니커즈를 신는다”며 “어쩌다 정장에 구두를 신은 동료를 만날 경우엔 ‘오늘 정부기관 가느냐’는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라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 도심의 구둣방 감소가 특정 업종의 쇠퇴를 넘어 직장 문화와 생활 방식 변화가 반영된 도시 풍경의 변화라는 해석으로 이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