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 카타르 ‘불가항력’ 선언에 전 세계 가스 공급 20% 증발, 유럽·아시아는 울고 미국은 웃는다
[미국-이란 전쟁] 카타르 ‘불가항력’ 선언에 전 세계 가스 공급 20% 증발, 유럽·아시아는 울고 미국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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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리스크 속 LNG 공급망 ‘흔들’ 유럽 가스값 68% 폭등, 아시아도 직격탄 미국 LNG 업계는 ‘반사이익’

중동의 에너지 심장부가 이란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멈춰 섰다.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의 20%를 담당하는 카타르가 생산 중단을 선언하자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유례 없는 대혼란에 빠졌다. 유럽 가스값은 한 주 만에 68% 폭등했고, 아시아도 급등세를 피하지 못했다. 반면 유연한 공급망을 갖춘 미국의 LNG 수출 기업들은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란 드론 공격에 ‘카타르 라스라판’ 설비 가동 중단
12일(이하 현지시간) 에너지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Oilprice.com)에 따르면, 카타르의 공급망 마비로 인해 글로벌 가스 시장 가격이 일주일 사이 최대 85%까지 폭등하며 2022년 에너지 대란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주 카타르 국영 에너지 기업 카타르에너지(QE)는 연간 7,700만 톤 규모의 LNG 생산시설 가동을 멈추고 출하 예정 물량에 대해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 아울러 자국 가스 시설 증설 계획도 2027년으로 연기한 상태다.
이에 따라 카타르에서 매년 1,200만 톤(t) 이상의 LNG를 인도받아 전 세계 유틸리티 기업에 판매해 온 쉘과 토탈에너지스도 11일 하부 고객사들에 공급 차질을 공식 통보했다. 불가항력은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책임을 면제해 주는 조항이다.
이번 가스 쇼크의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암살에 반발한 이란의 보복 공격이다.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카타르가 라스라판 및 메사이드 산업단지의 LNG 생산을 전면 중단하면서 시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카타르는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LNG 수출국으로, 이번 가동 중단으로 글로벌 단기 공급량의 약 19%가 사라진 것으로 골드만삭스는 추산했다. 중동의 여러 국가가 원유를 생산하는 것과 달리 LNG 생산은 카타르의 라스라판 산업단지 한 곳에서 이뤄진다.
여기에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을 전면 봉쇄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물류 대란까지 겹쳤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해상 통로로,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중동에서 생산되는 LNG 역시 상당 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이동한다. 만약 해협 통항이 차질을 빚으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전반에 파장이 불가피하다.
유럽·아시아 덮친 ‘가스 쇼크’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발생했던 ‘제2의 에너지 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오는 3월 18일부터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 및 LNG 수입 전면 금지 조치가 발효되는 유럽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주 유럽 천연가스 거래 기준인 네덜란드 TTF 선물 가격은 지난달 말 대비 68% 급등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였던 2022년 3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러시아산 가스 공급을 대폭 줄인 이후 LNG 의존도가 높아진 유럽은 중동발 공급 차질에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다.
유럽 내에서도 영국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영국 국영 가스 송전망 운영사 내셔널가스에 따르면, 7일 기준 영국의 가스 저장량은 6,999기가와트시(GWh)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같은 시기의 9,105GWh와 비교해 크게 줄어든 수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대 12일분의 가스를 저장할 수 있지만 현재 저장량은 이틀분도 채 되지 않는다”며 “영국 정부는 다양한 가스 공급원을 확보하고 있어 가스 안정성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이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가스 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골드만삭스는 LNG 가격이 4분기 동안 10% 상승할 경우, 영국과 유로존의 국내총생산(GDP)이 0.2%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시아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카타르산 LNG의 주요 수출처는 한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다. 아시아 지역 LNG 현물가격은 최근 100만BTU(영국열량단위)당 25.4달러로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뒤, 10일 기준 24.8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11달러 수준에서 2배 이상 오른 가격이다. 일본·한국 마커(JKM)의 지난주 가격 역시 100만BTU당 1만5,068달러로, 전주 대비 41% 급등했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의 경우 수입 원유의 70.7%, LNG의 29.4%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돈을 주고도 연료를 구하지 못하는 공급 단절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란산 대신 미국산 사라”
전 세계가 에너지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미국은 나홀로 호황을 맞았다. 미국은 LNG는 세계 1위, 석유는 세계에서 3번째로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다. 중동 길이 막히면 미국 외에는 대안이 그리 많지 않다. 중동 LNG 상당 물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하는 구조인 만큼 해협 긴장이 장기화될 경우 미국산 LNG의 상대적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도 지정학적 위기가 발생할 때 공급 안정성이 높은 지역으로 수요가 이동하는 패턴이 반복돼 왔다.
미국은 당장 다음 달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산 원유와 가스 구매를 의제로 삼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측에 러시아와 이란산 원유, 가스 대신 미국산을 사라고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는 전체 원유 수입량의 20~25%를 차지하는 중동산 일부를 미국산으로 대체해 공급 안정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약속한 150억 달러(약 22조3,000억원)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 계획과도 맞물려 있다.
미국이 중동발 충격을 버텨낼 수 있는 근거는 셰일가스 혁명에 있다. 미국 굴착 업체들은 지난 10년간 셰일층에서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를 뽑아내며 미국을 세계 최대 에너지 수출국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결과 중동 분쟁이 터져도 미국 내 가스 시장은 흔들리지 않을 만큼 공급 기반이 탄탄해졌다. 이에 미국 LNG 수출업계도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계약상 목적지가 고정돼 있지 않아 수요가 급증하는 곳으로 물량을 유연하게 돌릴 수 있는 미국 천연가스 산업의 특성 덕분이다. 장기계약은 통상 15~20년 기간으로 체결되며, 수출 터미널 건설을 위한 투자 결정(FID)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조건으로 작용한다.
다만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에너지 가격 상승의 책임이 미국 외교 전략으로 향할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특히 이란의 대응 변수는 향후 중동 정세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공산이 크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경우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은 지속적인 리스크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한 군사안보 전문가는 “전쟁의 종결 여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으로 결정될 수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 이후의 국면”이라며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요충을 쥔 국가가 장기적 보복 전략에 나설 경우, 드론 공격이나 해상 위협만으로도 글로벌 에너지 시장 전체가 지속적인 불안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