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질서의 비용] 우크라이나 EU 가입, '조기 통합' 환상 버리고 '실질적 연착륙' 택해야
[국제 질서의 비용] 우크라이나 EU 가입, '조기 통합' 환상 버리고 '실질적 연착륙' 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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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가입, 속도보다 조건과 이행 순서가 핵심 재정 부담과 만장일치 구조는 최대 변수 단계적 통합·성과 연동 지원이 현실적 해법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이 시나리오를 넘어 현실 정치의 의제로 본격화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해 9월까지 EU 가입 스크리닝(법제 정비 심사)을 마치며 가입 절차의 핵심 단계를 통과했다. 3년 전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진전이다.
하지만 절차상 진척이 곧 회원국들의 정치적 합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EU 가입은 규정 충족을 넘어 각국 정부의 정치적 결단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다. 거부권 행사와 예산 분담, 국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겠다는 판단이 뒷받침돼야 최종 결정이 가능하다.
이 같은 구조적 제약의 핵심에는 재정 문제가 놓여 있다. 국제연합(UN)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우크라이나 재건에 필요한 비용은 5,880억 달러(약 869조원)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국내총생산(GDP)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파괴된 교통망과 에너지 인프라, 주택 복구에 투입될 막대한 재원은 EU 전체 예산과 회원국 간 분담 구조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우크라이나 국민의 85%가 EU 가입을 지지하고 있지만, EU 내부에서는 재정 부담을 둘러싼 신중론이 거세지는 형국이다.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 특례를 적용한 조기 가입을 추진할 것인지, 기존 원칙을 유지할 것인지를 두고 회원국 간 입장 차가 뚜렷하다.
단계적 로드맵의 필요성
그간 우크라이나 EU 가입 방식을 둘러싼 그간의 논쟁은 ‘신속 가입’과 ‘엄격한 기준 적용’이라는 이분법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핵심은 어떤 절차와 조건 아래 통합을 추진할 것인가라는 실행의 문제다. 지난해 9월 마무리된 EU 가입 스크리닝은 개혁 완료를 의미하는 단계라기보다 제도 이행의 출발점에 해당한다. 법치 확립, 투명하고 기능하는 시장경제 구축, 소수자 보호와 같은 핵심 원칙은 가입 협상의 전제 조건이다. 이러한 기준이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절차를 앞당길 경우 통합의 완성도와 지속 가능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준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입을 서두를 경우 역효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솅겐 체제 편입, 유로화 도입, 노동시장 통합과 같은 제도적 결합을 정비 없이 추진하면 EU 전체 시스템의 안정성이 흔들릴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요구되는 해법은 단계적 설계다. 가입 시점을 앞세우기보다 교육·행정·정책 전반의 우선순위를 선제적으로 재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학위 상호 인정 확대, 학생 교류 활성화, 연구 협력 강화 등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영역부터 통합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 이러한 축적을 통해 제도적 통합의 기반을 공고히 할 수 있다.

재건 비용과 조건의 신뢰성
재건 비용의 규모는 정책 선택의 현실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다. EU는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를 반복해 표명하고 있으나, 회원국 내부 여론은 엇갈린다. EU 평균 확대 지지율은 56% 수준이지만, 일부 주요국에서는 40% 초반에 머문다. 단순 행정 절차가 마무리됐다는 사실만으로 각국 의회의 비준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가입 조건은 구체적 성과와 연동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부패 척결과 공공 조달 개혁 등 가시적 진전이 확인될 때마다 단일시장 접근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성과에 비례해 권한을 넓히는 구조가 회원국의 신뢰를 확보하는 장치다.
재원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 AP통신은 동결된 러시아 자산 활용을 포함한 재원 조달 방안이 전황 변화에 따른 다양한 시나리오 아래 검증돼야 한다고 짚었다. 재정 소요와 위험을 사전에 계산해야 각국 정부와 의회가 부담 규모를 가늠한 뒤 표결에 나설 수 있다. 이 같은 조건부·단계적 설계는 가입 기준 완화라는 우려를 차단하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분명한 가입 경로를 제시하는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만장일치 구조의 한계와 제도적 대응
재정적 불확실성 못지않은 장벽은 모든 핵심 사안에 전원 합의를 요구하는 EU 특유의 의사결정 구조다. 신규 회원국을 받아들이려면 27개 회원국 전체의 찬성이 필요하며, 이 만장일치 원칙이 가입의 결정적 문턱으로 작용한다.
과거 헝가리 사례는 이 구조가 특정 국가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한 협상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입 조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을 연계해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관행이 반복될 경우, EU의 가입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도는 약화된다.
물론 국가 주권을 존중하는 원칙은 유지돼야 한다. 다만 가입 기준과 무관한 사유로 전체 절차를 지연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제도적 견제 장치가 요구된다. 만장일치라는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개별 국가의 정치적 계산이 통합 동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균형을 설계하는 과제가 향후 가입 협상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그 대안으로 ‘가중다수결’의 부분 도입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한 분야에 대해서는 다수결로 우선 승인하고, 최종적인 정식 가입 단계에서만 전체 회원국의 만장일치 원칙을 적용하는 이원화 구조다. 이는 절차의 경직성을 완화하면서도 최종 결정의 정당성은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다.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은 ‘성급한 추진’과 ‘원칙 고수’ 사이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가입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법적 기준과 재정 현실을 함께 고려한 연착륙 경로를 설계하는 데 있다. 해법은 단계적 로드맵이다. 단일시장 접근과 교육·연구 프로그램 참여는 우선 확대하되, 예산 지원은 부패 척결과 법치 개혁 등 성과 지표와 엄격히 연동해야 한다. 정식 회원국 지위는 기존의 만장일치 원칙에 따라 신중히 판단하되, 그에 앞서 행정 역량과 제도 정비 등 기초 통합을 선행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러한 질서 있는 이행이 뒷받침될 때 가입은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통합이라는 결실로 이어질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ill Ukraine Join the EU in the Next Decade? Rethinking "Fast-Track" Membership and Its Cost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