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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대화 신호에 유가 5% 급락, 가격에서 먼저 지워진 충돌 시나리오

미·이란 대화 신호에 유가 5% 급락, 가격에서 먼저 지워진 충돌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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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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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대화 중” 긴장 완화 시그널
배럴당 130달러 전망에서 이탈 
‘일촉즉발’ 호르무즈 해협 이목 집중

국제유가가 불과 하루 만에 5%가량 떨어지면서 빠른 가격 조정 국면을 보였다. 가격 급락의 직접적 원인으로는 미국과 이란 간 핵 관련 대화 재개 가능성이 꼽힌다. 양국 수뇌부가 대화에 나설 의지를 보이면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낮아졌고, 지금까지 가격에 선반영된 중동 지정학 리스크도 대폭 축소되는 모양새다. 여기에 달러 강세와 온화한 기후 전망 등 환경 요인까지 겹치면서 유가 하락 압력은 한층 확대되는 양상이다. 

1월 유가 상승 요인 일제히 약화

2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3.51달러(5.3%) 하락한 배럴당 61.70달러에 장을 마쳤다. 4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역시 ICE선물거래소에서 3.40달러(4.9%) 내린 65.92달러의 종가를 기록했다. 로이터는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된 가운데, 강달러 현상과 온화한 기후 전망 등이 겹치면서 유가 하락 압력이 커졌다”고 짚었다. 늦겨울 기온이 예년보다 온화할 것이라는 예보가 나오면서 난방 및 발전용 디젤 수요가 급감했다는 설명이다. 

시장은 유가 급락의 원인으로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포착된 기류 변화를 지목했다. 중동 지역 내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인식이 시장 전반에 확산하면서 그동안 가격에 축적돼 있던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이 단기간에 해소됐다는 분석이다. 1일 이란 관영 파르스통신은 “마수드 페제슈키안 이란 대통령이 미국과의 핵 관련 대화 개시를 지시했다”고 전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이란과 진지한 대화 중”이라고 밝히면서 외교적 긴장 완화 가능성을 높였다. 

전문가들은 1월 내내 유가 상승을 지탱했던 요인들이 동시에 약화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북극 진동(Polar Vortex)’에 따른 혹한과 중동 긴장이 완화 국면에 들어서면서 시장의 초점은 다시 공급과 재고 문제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에너지 중개 업체 PVM은 “지난달 WTI 가격이 14%, 브렌트유 가격이 16% 상승하는 데 기여했던 지정학적·기상 요인이 후퇴하면서 원유 시장은 다시 생산과 재고, 산유국 정책 변수에 좌우될 전망”이라면서 “최근 산유국 간 협의체(OPEC+)가 3월 원유 생산량 동결에 합의한 점도 이런 환경 변화 속에서 해석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란 원유 생산·수출 차질 시 충격 불가피

그간 국제유가를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극단적인 가정으로 제시된 시나리오는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WTI 가격이 배럴당 130달러 수준까지 급등할 수 있다는 관측이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양국의 충돌 시 공급 차질이 어디까지 확산할 수 있는지를 계산해 이와 같은 시나리오를 내놨다. 실제 이란은 세계 6위 산유국으로 지난해 말 기준 원유 생산량은 하루 320만 배럴에 달했다. 이 가운데 수출 물량만 하루 약 150만 배럴에 이르는 만큼 군사 충돌로 생산이나 수출이 차질을 빚을 땐 국제 시장에 미치는 충격 또한 즉각적일 수밖에 없다.

여타 금융기관과 연구기관들도 다양한 추측을 제시했다. 시티그룹은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이란 원유 수출이 전면 중단될 경우 브렌트유 가격이 2분기에 배럴당 71달러로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골드만삭스는 “이란의 원유 생산 시설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면서 “생산량이 하루 100만 배럴 감소할 경우, 유가는 배럴당 20달러가량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전망들은 이란의 공급 차질 상황에서도 다른 산유국들이 이를 단기간에 대체하지 못할 경우를 전제로 했다. 

시장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지점은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다. 이란이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북쪽에 접해 사실상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까닭이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 금융 자문사 드베어 그룹의 나이절 그린 최고경영자(CEO)는 “석유 거래업자들은 호르무즈 해협이 전 세계 석유 공급을 마비시키는 전략적 요충지로 변모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 의회조사국 또한 “호르무즈 해협이 장기간 폐쇄되거나 통항에 차질이 발생할 땐 글로벌 원유 공급과 가격 모두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비관적 전망을 뒷받침하듯 최근 국제유가는 높은 변동성을 보였다. 1월 한 달 동안 국제유가는 10% 안팎으로 급등하며 널뛰기 장세를 연출했다. 두바이유는 1월 초 배럴당 60.32달러에서 월말 66.34달러로 9.9% 상승했고, 브렌트유는 16.3% 오른 70.71달러, WTI는 14.1% 상승한 65.42달러까지 뛰었다. 극단적 시나리오로 제시된 ‘배럴당 130달러’ 가능성은 이미 변동성이 확대된 시장 환경에서 현실적 위험으로 인식된 상방 전제에 가까웠던 셈이다.

세계 최대 에너지 수송로 두고 ‘신경전’

이란 역시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호르무즈 해협에서 대규모 실사격 해상 훈련을 진행하겠다고 예고하며 시장의 불안을 자극했다. 이는 미국이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을 포함한 대규모 함대를 해당 지역에 전개한 상황과 맞물려 군사적 긴장을 급격히 끌어올렸다. 훈련은 이란 내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진행될 예정이었으며, 미국의 군사 개입 가능성이 공개적으로 거론되던 시점과도 겹쳤다. 이에 시장은 양국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물론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갖는 상징성과 파급력에 주의를 기울였다.

미국은 즉각 반응했다. 미군 중동 담당 사령부인 중부사령부는 성명을 통해 “이란군이 국제 공역과 해역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할 권리를 인정한다”면서도 “미군이나 동맹국, 상업 선박 근처에서 위험하고 비전문적 행동은 충돌과 긴장 고조,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군 인력과 군함, 항공기의 안전을 위해 불분명한 고도비행이나 충돌 경로에 고속 선박 접근, 무장 조준 등 위험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도 덧붙였다. 이 같은 미군의 입장 발표는 이란의 군사 행동이 실제 무력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로 읽혔다. 

긴장은 이란 혁명수비대(IRGC) 해군이 예고했던 호르무즈 해협 훈련을 돌연 취소하면서 단기간에 급격히 완화됐다. 1일 이란 정부 당국자는 “훈련 계획 자체가 공식적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었다”며 앞서 전해진 보도를 부인했고, 나아가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상업 선박의 안전 항행과 자유는 이란뿐 아니라 인접 국가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이란 외교당국도 “외부 세력의 군사적 존재가 오히려 긴장을 고조시키는 추세”라는 발언으로 해협을 둘러싼 불안과 관련해 자국의 책임 소재를 덜어내려는 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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