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열풍 속 美 전력망 병목 심화, 인프라 노후화·장비 공급난에 '효율화'로 돌파구 모색
입력
수정
AI 데이터센터發 전력 수요 급증, 美 전력 소비·도매가격 동반 상승 "송전망 노후화에 변압기 공급난까지" 현지 전력 인프라 병목 심화 美 산업계·정부, 기존 발전설비 효율화하며 위기 극복 '총력'

미국 전력 소비가 올해와 내년 잇달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상업용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전력 소비량 및 가격의 상승 압력이 커지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는 미국에 이 같은 수요 증가세를 뒷받침할 핵심 전력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비 노후화, 장비 공급망 병목, 계통 연계 지연 등이 겹치면서 신규 발전설비 건설이 실제 전력 공급으로 연결되는 시차가 확대된 탓이다.
美 전력 소비 폭증
6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발표한 단기에너지전망(STEO)에 따르면, 미국 전력 소비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4조1,950억 킬로와트시(kWh)에서 올해 4조2,880억kWh, 내년 4조3,560억kWh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데이터센터가 포함된 상업용 판매는 올해 1조5,490억kWh로 지난해 최고치보다 3.8% 증가할 전망이다. 이는 주택용 증가율(1.7%)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다. EIA는 상업용 수요가 내년에도 2.8% 확대될 수 있다고 봤다.
전력 수요 증가와 함께 도매 전력 가격도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EIA는 이상기후 현상의 여파로 올해 미 도매 전력 가격이 메가와트시(MWh)당 평균 52달러(약 7만원)를 기록하며 지난해 대비 약 11% 뛸 것으로 추정했다. 겨울철 폭설 및 한파, 평년 기온을 크게 웃도는 여름철 무더위 등이 전력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는 평가다. 지역별로는 데이터센터 밀집지인 버지니아를 포함한 동부 연안 13개 주에 전기를 공급하는 PJM 관할 지역의 도매 전력 가격이 41% 폭등할 것으로 예측됐다.
전력망 위기 가시화
시장에서는 이러한 수요를 미국 전력망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내 고객 수 기준 최대 전력 회사인 엑셀론의 캘빈 버틀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포춘 브레인스톰 AI 콘퍼런스에서 현재 미국 전력망 상황을 '고장 직전의 자동차'에 비유한 바 있다. 버틀러 CEO는 "차를 몰고 가다가 엔진 경고등이 켜졌을 때, 정비소에 가지 않고 '조금만 더 타자'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그러다 결국 고장 나기 전까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장 더운 날이나 가장 추운 날, 전력 공급이 부족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라며 "그때는 사람들이 실제로 고통을 겪게 되니 지금 당장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우려가 나오는 배경에는 미국 전력 인프라의 구조적 불균형이 자리하고 있다. 미 에너지부(DOE)는 올해 공개한 국가 송전망 수요 연구에서 "데이터센터와 제조업을 중심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송전망의 용량 제약과 혼잡 문제가 한층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미국의 고압 송전망 증설 속도는 수요 증가세에 비해 더딘 수준이다. 전력망 컨설팅 업체 그리드스트래티지스가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미국에서 신규 건설된 고압 송전선은 2010년대 전반 연평균 약 1,700마일에서 후반에는 645마일까지 감소했다. 2024년에도 345킬로볼트(kV) 이상 초고압 송전선 신규 건설 규모는 수백 마일에 머물렀다.
인프라 노후화 문제 커
이처럼 신규 송전망 구축이 지연되면 이미 노후화한 기존 전력 인프라의 부담이 커지게 된다. DOE에 따르면 미국 내 송전선과 전력용 변압기의 70% 이상은 설치된 지 25년을 넘겼다. 특히 장거리 송전을 위해 필요한 대형 전력용 변압기(LPT)의 경우 통상 설계 수명이 약 40년인데, 북미 지역에서 운용되는 설비의 평균 연령은 이미 2014년 기준 38~40년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배전 단계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2024년 DOE와 미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는 미국에서 운용 중인 배전용 변압기의 약 55%가 33년 이상 된 노후 설비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데이터센터, 전기차 충전 시설 등 대규모 신규 전력 수요가 늘어나면 기존 설비에 걸리는 부하가 커지면서 열화 및 고장이 빨라질 수 있다.
노후화한 설비를 단기간 내 교체하기도 어렵다. 핵심 전력 장비의 공급망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용량 변압기의 수급난이 심각하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우드매켄지에 따르면 미국 내 발전기 승압 변압기(GSU) 수요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274% 급증했으며, 변전소용 전력 변압기 수요도 같은 기간 116% 늘었다. 하지만 대형 전력 변압기는 발전소와 변전소별 전압·용량에 맞춰 주문 제작되는 데다, 제작에 필요한 방향성 전기강판(GOES)과 구리 등 핵심 소재 공급도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변전소와 발전소에 투입되는 대형 변압기의 납기는 최근 3~4년까지 길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표1. 미국 전력망의 구조적 한계
| 부문 | 문제점 |
|---|---|
| 송전망 확충 지연 | 고압 송전선 건설 신규 건설 둔화로 용량 제약·계통 혼잡 심화 |
| 설비 노후화 | 송전선·변압기 상당수가 설계 수명에 근접, 신규 전력 수요에 따른 고장·성능 저하 위험 확대 |
| 장비 공급망 병목 | 대형 변압기의 주문 제작 구조 및 핵심 소재 부족으로 납기 장기화 |
| 계통연계 적체 | 송전망 보강·영향평가 지연으로 신규 발전·에너지저장 설비의 대기 물량 증가 |
신규 발전설비 가동도 '급제동'
이러한 공급망 차질은 발전설비의 실제 가동 시점을 늦추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국에서 송전망 연결을 신청하고 대기 중인 발전·에너지 저장 프로젝트는 약 8,200건, 설비 용량은 총 2,061기가와트(GW)에 달했다. 이 가운데 발전설비가 1,312GW, 배터리 등 에너지 저장 설비가 749GW를 차지했다. 이는 현재 미국 전체 발전설비 용량을 웃도는 규모다. 이처럼 대기 물량이 쌓이는 것은 신규 발전소가 송전망에 연결되기 전 계통영향 평가 및 보강 공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계통 운영 기관은 신규 설비가 들어올 때 기존 송전선과 변전소가 추가 전력을 감당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송전선 증설, 변전소 확충, 변압기 교체 등을 요구한다.
계통연계를 신청한 프로젝트가 실제 상업 운전에 착수할 때까지 걸리는 기간도 빠르게 늘고 있다. LBNL 집계에 따르면 2000년대 초 상업 운전에 들어간 프로젝트는 계통연계 신청부터 가동까지 걸린 기간이 중앙값 기준 2년 미만이었지만, 2025년 준공 프로젝트는 5년을 넘어섰다. 계통연계 신청부터 계약 체결까지만도 중앙값 기준 3년 이상이 소요됐다. 특히 지난해 말 기준 계통연계 계약 초안이 마련됐거나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상업 운전에 들어가지 않은 발전·에너지 저장 설비 규모는 549GW에 달했다.
기존 인프라 개선 노력
미국의 전력망 위기가 나날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현지 시장에서는 에너지 병목 해소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는 중이다. 일례로 구글은 6일 콘스텔레이션에너지와 20년 전력구매계약(PPA)을 맺고, 미국 원전 6곳의 원자로 11기를 개조해 발전 용량 890메가와트(MW)를 추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규 원전을 짓는 대신 기존 설비 개선을 통해 전력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콘스텔레이션은 터빈과 증기발생기, 디지털 제어시스템 등을 교체·개선해 원자로의 열효율과 발전효율을 제고할 예정이다. 이에 더해 구글은 지난 3월에도 테슬라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과 함께 에너지 연합체 ‘유틸라이즈(Utilize)’를 공식 출범했다. 이 연합은 미국 전력 시스템의 활용도를 높여, 늘어나는 전력 사용량과 전기 요금 부담 문제를 동시에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업과 공공기관, 정책 담당자들이 함께 기존 인프라의 운영 방식을 개선하는 정책 및 기술 도입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정부 역시 기존 발전 시설의 수명을 연장하고 발전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 혁신에 나섰다. 지난 5일 DOE 산하 수력·수동력국(H2O)은 수력발전 시험네트워크(HyTN)의 2차 기술 지원 대상으로 14개 프로젝트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사업은 21개 시험 시설과 65개 이상의 전문 시험·분석 기술을 활용하며, 기업이 국립 연구소 등의 시험 시설에서 신기술의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표적으로 분산형 수력발전 기술기업 에머지는 농업용 수로 등 기존 인공 수로에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저낙차 터빈을 시험할 예정이며, 모듈형 수력발전 스타트업 젠에이치는 발전설비가 없는 기존 댐에 신속하게 설치 가능한 수력발전 기술을 검증한다. 재생에너지용 3D 콘크리트 프린팅 기술 기업 알캠테크놀로지스는 해저에 설치한 3D 프린팅 콘크리트 구형 구조물을 활용한 양수발전형 에너지 저장 기술을 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