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산 전기차 우대 추진하는 EU, 공급망 준비 없이 장벽부터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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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역내 생산 우대에 해외 車업계 현지화 부담 가중 관세까지 짊어진 中, 유럽 기업과 생산 협력 확대 中 의존 낮추려는 유럽에도 대체 공급망 확보 과제

유럽연합(EU)이 전기차 구매 지원과 공공조달에 역내 생산·부품 조달 요건 도입을 추진하며 자동차산업 보호에 나섰다. 배터리를 제외한 부품 총액의 70% 이상을 EU산으로 채우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유럽 시장에 진출한 해외 자동차업체들도 현지 생산과 부품 조달 전략을 재검토할 필요성이 커졌다. 특히 유럽 시장에서 수익을 확보해 온 중국 업체들은 기존 관세 부담에 현지 투자 조건까지 더해지면서 생산 거점을 옮기는 데도 제약을 받게 됐다. 다만 EU 역시 중국산 배터리 소재를 대체할 공급망이 충분하지 않아, 현지화 요건을 강화하는 속도에 맞춰 역내 생산 기반을 갖춰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전기차 지원금에 ‘유럽산 70%’ 조건
6일(이하 현지시간) 유럽 전문 매체 유로뉴스에 따르면 EU는 전기차 구매 지원에 역내 생산·조달 요건을 붙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산업가속기법(IAA) 초안에는 일정 수준의 EU산 부품을 사용한 차량에 지원 자격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대상 차종은 순수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수소연료전지차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원 제도에 관련 조건을 붙이고, 공공기관이 차량을 구매하거나 임차하는 공공조달에도 원산지 요건을 적용하도록 했다. 지원 대상에 포함되려면 우선 차량 조립이 EU 역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 배터리를 제외한 차량 부품 총액 가운데 EU산 비중을 70% 이상으로 맞추도록 규정했다. 해당 비중을 산정하는 기준은 각 부품의 공장도 가격이다. 집행위 안은 법 발효 6개월 후부터 신설하거나 갱신하는 공적 지원 제도에 이 같은 기본 요건을 적용하도록 설계됐다.
차량 부품 비중 산정에서 빠진 배터리에는 별도의 현지화 조건이 붙는다. 초기에는 배터리 셀을 포함한 주요 구성요소 최소 3개를 EU산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이후 법 발효 3년이 지나면 EU산으로 갖춰야 하는 구성요소가 최소 5개로 늘어나는 구조다. 이 단계에서는 배터리 셀에 더해 양극활물질과 배터리관리시스템(BMS)도 반드시 EU산을 사용해야 하는 항목에 포함됐다. 발효 3년 후부터는 전기 구동계와 주요 전자시스템에도 추가 조달 기준이 적용된다. 두 분야 모두 각각의 부품 출고가격을 기준으로 EU산 비중을 50% 이상 확보하도록 했다. 소형 전기차로 분류되는 M1E 차종에는 일부 요건을 선택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특례가 담겼다. EU 내 조립을 전제로 배터리를 제외한 차량 부품의 역내 조달 비중 70%를 맞추거나, 셀을 포함한 배터리 주요 구성요소 최소 3종을 EU산으로 사용하는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하는 방식이다.
표1. EU 전기차 구매 지원·공공조달 현지화 요건 초안
| 구분 | 핵심 내용 |
|---|---|
| 적용 대상 | 순수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수소연료전지차의 공적 구매 지원 및 공공기관 구매·임차 |
| 기본 요건 | EU 내 차량 조립 및 배터리 제외 부품 총액의 EU산 비중 70% 이상 확보 비중은 부품 공장도 가격 기준 |
| 기본 요건 적용 시점 | 법 발효 6개월 후부터 신설·갱신하는 공적 지원 제도에 적용 |
| 배터리 초기 요건 | 셀을 포함한 주요 구성요소 최소 3개를 EU산으로 사용 |
| 배터리 강화 요건 | 법 발효 3년 후 EU산 구성요소를 최소 5개로 확대 셀·양극활물질·배터리관리시스템(BMS)은 EU산 필수 |
| 구동계·전자시스템 | 법 발효 3년 후 전기 구동계와 주요 전자시스템 각각 EU산 비중 50% 이상 확보 비중은 부품 출고가격 기준 |
| 소형 전기차 특례 | M1E 차종은 EU 내 조립을 전제로 다음 중 하나 충족 ① 배터리 제외 차량 부품의 EU산 비중 70% 이상 ② 셀 포함 배터리 주요 구성요소 최소 3종 EU산 사용 |
영국 자동차산업에 닥친 원산지·관세 이중 부담
EU가 역내 생산을 우대하면서 브렉시트 이후 EU와 공급망을 유지해 온 영국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IAA와 별개로 영국·EU 무역협력협정에 따른 배터리 원산지 기준까지 내년부터 강화될 예정이어서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는 내년 EU에서 영국으로 수출할 전기 승용차·밴 52만 대 가운데 82%가 해당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10% 관세를 부담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영국 완성차업계는 배터리 셀과 양극재의 현지 조달 의무를 단계적으로 늦춰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영국으로서는 EU와의 경제적 결속을 다시 강화할 유인이 커질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영국 산업계는 EU의 ‘유럽산 우대’ 정책에서 자국 기업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양측은 영국의 참여 범위를 놓고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중국산 전기차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EU가 영국의 IAA 참여 문제를 논의하면서 중국산 차량에 대한 관세 인상과 통상정책 공조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정부 내에서는 중국산 전기차의 관세율을 EU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다만 중국의 보복 조치가 재규어랜드로버 등 자국 완성차업체의 대중 수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최종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자국 산업과 경제적 이익을 고려해 대응 방향을 정하겠다며 업계와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유럽 공략 나선 한국 기업들, 부품 조달도 현지로
셈법이 복잡하긴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 제조업체에는 유럽 현지 생산과 부품 조달을 함께 늘리는 전략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EU 원산지 요건을 충족한 부품은 역내 조달 비중을 높여야 하는 완성차업체의 수요를 확보하는 데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의 유럽 공장에 납품해 온 국내 부품업체들에도 현지 생산 기반을 바탕으로 유럽 완성차업체와 거래를 확대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수요를 수주로 연결하려면 생산시설 확충과 함께 주요 소재·부품의 조달처도 점검해야 한다. 배터리와 전기 구동계에 별도의 현지화 기준을 적용하는 만큼, 품목별로 EU산 인정 요건을 따져볼 필요가 있어서다. 현지 설비를 늘리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규제 시행 시점과 고객사의 신차 양산 일정을 함께 고려한 투자·조달 계획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 부품업계는 이미 유럽 생산 거점을 확충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 전문 제조기업 현대위아는 약 400억원을 투입한 슬로바키아 마틴 신공장에서 지난달 30일 양산을 시작했다. 2023년 4월 현지법인을 설립한 뒤 기존 공장에서 등속조인트를 생산해 왔으며, 앞으로 늘어날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 새 공장으로 생산시설을 옮겼다. 신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동력을 바퀴에 전달하는 등속조인트 80만 대, 냉각수 모듈 28만 대 규모다. 이곳에서 생산한 구동·열관리 부품은 기아 EV2·EV4 등에 공급할 예정이다. 현대위아는 추가 투자를 통해 등속조인트 생산능력을 최대 5배로 늘리고, 냉난방을 담당하는 공조 모듈까지 생산 품목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맞춰 현지 고용 인원도 현재 98명에서 2030년 약 410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중국차, 유럽 수출도 현지 생산도 부담
유럽의 규제 강화로 대응이 가장 시급해진 쪽은 중국 완성차업체들이다. 내수 부진과 과잉 생산, 가격 인하 경쟁으로 수익성이 압박받는 상황에서 유럽은 판매 물량과 이익을 확보할 핵심 시장으로 꼽힌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중국산 전기차 수출액의 약 40%가 유럽에서 발생했다. 유럽은 중국에서 생산한 차량을 내수시장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어, 중국 업체들이 해외 사업을 통해 수익성을 보완하는 데도 중요한 시장이다. 체리 역시 해외 판매를 브랜드 가치와 수익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런 시장에 추가 관세가 부과된 데 이어 역내 생산·조달 요건 도입까지 추진되면서 중국 업체들은 수출 비용 상승과 현지 투자 부담을 함께 떠안게 됐다.
그러나 중국 업체들이 관세를 피해 유럽 현지 생산을 늘리려 해도 까다로운 투자 조건과 높은 생산비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EU가 중국에 대한 산업 의존도를 낮추려는 만큼, 현지 투자에도 기술 이전과 지분 구조 등 별도 조건을 붙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IAA 초안은 전기차·배터리 등 전략산업에서 세계 생산능력의 40%를 초과해 보유한 국가의 기업이 EU에 1억 유로 넘게 투자할 경우 강화된 요건을 적용하도록 했다. 중국 기업들이 주요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현지 고용 외에 합작투자·외국인 지분 제한·기술 이전 등이 심사 조건에 포함됐다. 투자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유럽의 높은 생산비를 감당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IEA는 정부 지원을 제외한 유럽과 미국의 배터리 생산비가 중국보다 최대 50% 높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저렴한 소재·부품과 높은 제조 효율이 비용 격차를 뒷받침하는 만큼, 유럽산 부품 사용을 늘리는 과정에서 관세 절감 효과가 생산비 상승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유럽산 의무 늘리는데 핵심 소재 공급망은 ‘미완’
이 같은 부담 속에서도 중국 업체들은 하이브리드 판매와 현지 생산을 병행하며 유럽 시장 공략을 이어가고 있다. 우선 중국산 순수전기차에 대한 추가 상계관세가 적용되지 않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를 앞세워 판매 물량을 늘리는 방식이다. 유럽 환경단체 교통과환경(T&E)의 지난 7월 분석에 따르면 중국 브랜드의 EU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시장 점유율은 2024년 3%에서 13%로 높아졌다. 현지 생산에서는 리프모터와 스텔란티스, 지리와 포드 등의 협력을 통해 기존 공장을 활용하고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이는 전략을 택했다. 유럽 협력사에도 생산 물량과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어, 중국 업체들이 현지 사업 기반을 넓히는 데 유리한 카드다. 다만 EU가 중국에 하이브리드차 수출의 자율 제한까지 요구하면서 차종 전환을 통한 대응에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중국 업체들로서는 현지 투자와 생산 협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통상 협상의 결과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중국의 대응에 맞춰 규제를 강화하는 유럽도 사실상 핵심 소재 공급망을 충분히 갖추지는 못했다. IEA는 유럽 배터리 공장들이 주요 구성요소의 상당 부분을 중국산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중간재 생산에 대한 투자 부족이 공급망의 취약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역내 생산 확대를 지지하는 T&E 역시 지난 1일 분석에서 양극활물질과 전구체를 유럽 배터리 공급망의 병목으로 꼽았다. 2030년까지 공적 지원 대상 차량에 필요한 배터리 셀을 역내에서 공급할 수 있다는 전망도 계획된 공장들이 실제 가동에 들어간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 양극활물질은 법인 차량 수요에 대응할 여지가 있지만 개인 구매 차량까지 충당하려면 생산능력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는 평가다. 대체 조달처가 충분히 확보되기 전에 수입 제한과 현지화 의무가 강화되면 유럽 완성차업체도 부품 확보와 생산 일정에 부담을 안을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