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개발에 자석 생산까지 손잡은 美·동맹국, 中 희토류 독점 흔들 공급망 확충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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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출통제·중동 전쟁에 희토류 조달 불안 확대 美, 가격·판로 보장 앞세워 국내외 생산시설 투자 대체 공급 확대 시 中 희토류 시장 지배력 약화 전망

미국이 중국에 집중된 희토류 공급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국 생산시설과 동맹국의 광산·가공설비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의 수출통제와 중동 전쟁으로 원료 조달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미국 정부는 가격과 판로를 보장하며 생산업체의 증설을 뒷받침하고 나섰다. 해외에서도 광산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고 생산 물량을 장기간 확보하는 방식으로 대체 공급망을 넓히는 중이다. 미국과 동맹국의 신규 설비가 가동되고 장기 구매계약에 따른 납품이 본격화하면 중국이 수십 년간 쌓아온 시장 지배력도 약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핵심 광물 中 공급 비중 최대 96%
1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가 공개한 공급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화합물 반도체 원료인 갈륨의 세계 공급량 약 95%, 증착 공정용 전구체 제조에 쓰이는 텅스텐의 약 8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갈륨은 전력·통신용 화합물 반도체의 주요 원료로, 텅스텐은 반도체 회로에 얇은 막을 입히는 증착 공정용 전구체의 원료로 쓰인다. 두 광물 모두 칩 제조에 직접 투입되는 만큼 중국의 공급 여건에 민감한 품목으로 꼽혔다.
반도체 제조 장비에 들어가는 희토류도 중국 의존도가 높다. 정밀 모터와 로봇, 펌프 등에 쓰이는 고성능 영구자석 원료인 네오디뮴·프라세오디뮴(NdPr)은 중국의 공급 비중이 96%에 달했다. 정밀 구동 장치용 자석에 필요한 터븀 역시 95%를 중국이 공급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희토류로 만든 영구자석은 웨이퍼를 옮기는 로봇과 박막을 형성하는 스퍼터링 장비 등의 주요 부품이다. SIA는 희토류를 반도체 공급망에서 공급 차질 위험이 가장 큰 원료군 중 하나로 분류했다.
中 수출통제에 중동 전쟁까지 겹친 희토류 조달
중국의 엄격한 수출허가제는 해외 기업들의 희토류 조달 부담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사마륨·디스프로슘·터븀 등 7개 희토류와 관련 자석을 수출통제 대상에 올린 중국은 군사용 전용 방지를 명분으로 최종 사용자와 사용 목적을 심사하고 있다. 허가를 받으려는 기업은 고객 정보와 제조 공정 등 민감한 자료까지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통제 시행 초기에는 자석이 모터 등 부품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설계 정보를 요구받거나, 일부 항목을 기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청이 반려돼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는 사례도 나왔다. 당시 일부 업체는 생산 중단을 피하기 위해 허가가 떨어진 물량을 비싼 항공편으로 급히 운송하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도 올해 초 5G 통신용 부품에 쓰이는 스칸듐의 수출허가가 지연되면서 미국 업체들이 자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제3국 공급업체에서 원료를 구매해 왔으며, 중국이 수출 심사 과정에서 최종 사용자를 확인하면서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이란전쟁으로 중동발 공급 불안까지 겹치면서 미국의 희토류 조달 여건은 한층 빡빡해졌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차질로 공급에 제동이 걸린 품목 중에는 희토류 정제에 필요한 황산의 원료인 황도 포함돼 있다. 중동은 세계 황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며, 전 세계 해상 운송 물량의 절반가량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원료 확보에 차질이 생기면 중국 밖에서 희토류를 정제해 공급하려는 업체들도 생산 비용과 물량 확보에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게다가 미국은 전쟁에서 소모한 미사일과 정밀유도무기 재고를 보충해야 해 희토류 수요도 커진 상태다. 자국과 동맹국을 중심으로 대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만큼, 무기 생산을 서두를수록 중국산 희토류에 대한 의존이 심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美 희토류 증산에 정부가 투자·판로 보장
이에 미국은 희토류의 자국 내 생산을 늘리기 위해 지분 투자와 가격 보장, 장기 구매 약정을 동원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7월 마운틴패스 광산을 운영하는 MP머티리얼스에 4억 달러(약 5,350억원)를 투자하는 계약을 맺었고, 중희토류 분리시설 확충을 위한 1억5,000만 달러(약 2,010억원)의 대출도 지원했다. 네오디뮴·프라세오디뮴 제품에는 10년간 ㎏당 110달러(약 14만7,150원)의 최저가격을 보장해 가격 하락에 따른 위험을 덜어줬다. 새로 건설하는 자석 공장의 생산 물량도 10년간 전량 판매를 보장하기로 했다. 초기 투자비와 판로 부담을 함께 덜어주는 지원책을 통해 채굴·정제부터 자석 제조까지 미국 내 생산 기반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미국산 희토류의 주요 구매처는 한국과 일본 기업들이다. 미국 내에서는 희토류를 가공해 자석으로 만드는 산업이 아직 초기 단계여서 생산업체들이 아시아에서 판로를 확보하고 있다. 지난 7월 확인된 MP머티리얼스의 분기 실적에서도 NdPr 산화물·금속 매출 대부분은 일본 고객에게 소재를 공급하는 스미토모 미국법인과의 계약에서 발생했다. 희토류 재생기술 기업 피닉스테일링스의 닉 마이어스 최고경영자(CEO)도 주요 고객이 한국과 일본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방산업체들이 구매를 서두르지 않으면 다른 기업들의 주문으로 물량이 소진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산 희토류도 가공은 韓·日에 의존
한국 기업들은 미국 현지에서 희토류를 정제하고 영구자석을 생산하는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 5월 미국 리엘리먼트테크놀로지스와 총 2억 달러(약 2,680억원)를 공동 투자해 희토류 분리·정제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2028년 양산을 목표로 연간 3,000톤 규모의 생산체제를 갖춘 뒤 6,000톤까지 확대하고, 영구자석 제조시설도 단계적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고려아연도 올해 1월 미국 알타리소스테크놀로지스와 손잡고 폐영구자석에서 고순도 희토류 산화물을 회수하는 사업에 나섰다. 양사는 미국 내 기존 사업장 부지에 재활용·정제시설을 조성해 2027년 상업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며, 생산한 소재는 한·미 첨단산업 기업에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산 희토류가 한국과 일본으로 향하는 것은 미국이 채굴·정제한 원료를 금속과 자석으로 가공할 공급망을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희토류를 산업용 자석으로 쓰려면 분리·정제한 산화물을 금속으로 바꾸고 합금 제조와 자석 성형 등 후속 공정을 거쳐야 한다. 한국과 일본에는 이 과정에 필요한 생산시설이 가동 중이며, 한국의 경우 충북 청주에 있는 KSM메탈스가 네오디뮴·프라세오디뮴 합금을 생산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채굴·정제시설 확충에 이어 후속 가공설비를 구축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MP머티리얼스는 분리·정제 장비의 공정 조건을 맞추는 데 수년을 들였고, 텍사스 자석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도 지난 7월 기준 첫 고객인 제너럴모터스(GM)의 사용 승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 설비가 실제 납품으로 이어지려면 공정 안정화와 고객사 검증까지 마쳐야 해 미국 내 공급망 구축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표1. 미국·일본·유럽의 희토류 공급망 확충 사례
| 구분 | 대상 기업·생산 거점 | 주요 내용 |
|---|---|---|
| 미국 금융·구매 지원 | 세라베르지·브라질 | DFC 금융 지원 5억6,500만 달러 2027년 말까지 연산 6,400톤 목표(희토류 산화물 환산) 미국 정부기관·민간 출자 특수목적법인, 1단계 생산 물량 전량 15년간 구매 약정 |
| 일본 장기 구매 | 라이너스·호주 채굴·말레이시아 정제 | JARE, 네오디뮴·프라세오디뮴 연간 5,000톤 구매 약정 중희토류 산화물 생산량 75% 일본 산업계 우선 배정 JARE, 중희토류 산화물 전체 생산량 50% 구매 조건 |
| 유럽 자석 생산 | 네오퍼포먼스머티리얼스·에스토니아 | 지난해 9월 영구자석 공장 개소 현지 기존 희토류 분리시설 연계 생산 거점 확보 |
美·우방국 장기 계약으로 물량 확보, 中 희토류 독점 시험대
자국 내 공급망 완성까지 시간이 필요한 미국은 동맹국·우방국의 생산 기반을 활용해 조달 공백을 메우고, 이들 국가의 신규 광산과 가공시설에도 투자하고 있다. 브라질 희토류 생산업체 세라베르지에 대한 지원이 대표적이다. 세라베르지는 미 국제개발금융공사(DFC)로부터 5억6,500만 달러(약 7,560억원)의 금융 지원을 받아 2027년 말까지 연간 생산량을 희토류 산화물 환산 기준 6,400톤으로 늘릴 계획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기관과 민간 자본이 출자한 특수목적법인이 1단계 생산 물량 전부를 15년간 사들이기로 하면서 증설 자금과 장기 판매처를 함께 확보했다.
일본도 해외 생산업체의 물량을 장기간 사들이는 방식으로 미국의 희토류 공급망 확충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 측 계약사인 재팬오스트레일리아레어어스(JARE)는 올해 3월 호주 라이너스와 공급 계약을 갱신해 연간 5,000톤의 네오디뮴·프라세오디뮴 구매를 약정했다. 라이너스가 중희토류 산화물 생산량의 75%를 일본 산업계에 우선 배정하고, JARE는 전체 생산량의 절반을 구매하는 조건도 담겼다. 호주에서 채굴하고 말레이시아에서 정제한 희토류의 장기 판로를 확보해 생산 확대를 지원하는 구조다. 유럽에서는 정제한 희토류를 영구자석으로 가공할 생산시설도 들어서고 있다. 캐나다 네오퍼포먼스머티리얼스는 지난해 9월 에스토니아에 영구자석 공장을 열어 현지의 기존 희토류 분리시설과 연계할 생산 거점을 마련했다.
이처럼 미국과 동맹국들이 대체 생산 거점을 늘려가면서 중국의 수출통제에 대응할 여력도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도 싱크탱크 탁샤실라연구소 연구진은 중국의 저가 공급에 밀려 채산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해외 생산업체들이 수출통제를 계기로 투자 기회를 얻고 있다고 짚었다. 중국 밖에서 희토류 가격이 오르면 신규 광산과 정제시설의 수익성이 개선돼 미국과 동맹국의 공급망 확충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들 국가의 기업들이 생산설비에 자금을 투입하고 대체 공급처를 확보하면 중국이 통제를 완화하더라도 기존 거래로 곧바로 돌아갈 유인은 줄어든다. 각국의 투자가 실제 생산과 납품으로 이어질수록 중국산에 의존하던 수요를 분산하고, 공급 제한에 따른 충격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