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금리 10% 상한' 주문한 트럼프, 美 금융권 "오히려 저소득층에 독" 강력 반발
'신용카드 금리 10% 상한' 주문한 트럼프, 美 금융권 "오히려 저소득층에 독" 강력 반발
입력
수정
"생활비 부담 완화해라" 트럼프, 신용카드 금리 대폭 인하 요구 美 금융권, 저신용자 신용 공급·카드 혜택 감소 등 부작용 경고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은 법적 대응 가능성 시사하기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금융사에 신용카드 금리 인하를 요구했다. 신용카드 금리를 최대 10%까지 낮춰 국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경감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미국 금융권은 신용카드 금리가 급작스럽게 하락하며 카드사 수익성이 악화할 경우, 신용카드 대출 문턱이 높아지고 저신용 차주들이 고금리 대체 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며 강력한 반발을 이어 가고 있다.
트럼프 "카드사, 국민에 '바가지' 씌워"
14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신용카드 금리를 최대 10%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그는 “미국 국민이 20~30%의 고금리를 부과하는 카드사에 더 이상 ‘바가지’를 쓰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하며 오는 1월 20일까지 이를 따르지 않는 금융사는 “법을 위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국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현재 신용카드는 미국 가계의 주요 신용 수단이자, 주택담보대출, 학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가계 부채 항목이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신용카드 부채 규모는 1조2,300억 달러(약 1,818조3,000억원)를 넘어섰다. 신용카드 금리는 평균 21% 이상이며, 위험도가 높은 차주의 경우 최대 38%까지 치솟는다. 이에 따라 부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가계도 급증하는 추세다. 뉴욕 연방준비은행(FRBNY)에 의하면 지난해 2분기 기준 90일 이상 신용카드 연체율은 12.2%로 2011년 1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뛰어올랐다.
다만 신용카드 금리 상한을 조정하는 데 필요한 명확한 법적 근거는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미국 의회에서는 신용카드 금리 상한과 관련한 입법 시도가 이뤄졌으나, 아직 실제 법제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앞서 무소속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와 공화당의 조시 홀리는 신용카드 금리를 5년간 10%로 제한하는 초당적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원에서도 민주당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과 공화당의 안나 파울리나 루나 의원이 같은 취지의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美 신용카드 금리, '왜' 높은가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방안이 시장 질서를 뒤흔들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신용카드 금리가 높은 수준에 형성된 것은 카드사들이 연체·부실 위험을 금리에 직접 반영하는 수익 구조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결제 대금을 이월해 사용하는 리볼빙 비중이 높고, 신용카드는 무담보 대출 성격이 강해 차주의 신용도에 따라 금리가 크게 달라진다. 카드사들은 이자 수익을 핵심 수익원으로 삼는 대신, 신용 위험이 높은 차주에게도 비교적 폭넓게 신용을 공급해 왔다.
이 같은 시장 구조 속 신용카드 금리를 무작정 인하할 시, 저신용자들을 위한 신용 공급이 경색될 수 있다. 수익성이 악화한 신용카드사들이 저신용자에 대한 카드 발급이나 대출을 대폭 축소할 위험이 커진다는 의미다. 이 경우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대출 문턱이 낮은 사채나 대부업으로 몰려 도리어 더 높은 이자 부담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
금리 상한이 낮아질 경우 ‘고금리-고혜택’ 구조 자체가 흔들리면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카드 혜택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카드사들은 높은 이자 수익과 가맹점 수수료를 재원으로 항공 마일리지, 캐시백, 여행·쇼핑 리워드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왔다. 향후 카드사 수익성이 제한되면 이 같은 혜택 경쟁은 자취를 감추고, 단순 할인이나 연회비 인하 등 소극적 고객 유치 경쟁이 보편화할 가능성이 크다.

현지 금융권 반발 거세
현지 금융권 역시 이 같은 리스크를 근거로 반대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은행협회(ABA), 은행정책연구소, 소비자은행협회 등 5개 주요 금융단체는 9일 공동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금리 상한 정책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10% 상한제는 신용 공급을 줄이고 수백만 가구와 소상공인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며 “오히려 소비자들이 규제가 약하고 더 비싼 대체 금융으로 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도 금리 상한을 10%로 설정할 시 사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강하게 반발했다. 제러미 바넘 JP모건체이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13일 4분기 실적 발표 이후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충분한 근거 없이 우리 사업을 급진적으로 바꾸려는 지침이 내려진다면, 모든 대응 수단이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이는 주주들에 대한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핵심 수익원을 훼손할 수 있는 정부의 행보에 법적 대응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JP모건의 카드 대출 잔액은 2,478억 달러(약 366조3,230억원)에 달한다.
아울러 바넘 CFO는 “해당 조치가 은행의 사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은행과 소비자 모두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만약 그런 일이 현실화한다면 소비자에게도, 경제 전반에도 매우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해당 시나리오에서는 카드 사업을 대대적으로 바꿔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