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관세 유혹, 산업 정책의 시험대
[딥파이낸셜] 관세 유혹, 산업 정책의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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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에선 작동한 관세, 전 산업으로는 위험 변동성 큰 관세 수입이 흔드는 재정 안정 투자・인재가 먼저 반응하는 정책 신뢰 균열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관세는 산업 정책의 핵심 수단이라기보다는 정책 효과를 미세 조정하는 보완적 장치에 가깝다.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관세와 재정 지원을 병행해 투자 유인을 창출한 사례는 분명한 성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을 전 산업으로 일반화하려는 시도에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관세는 정책 의도와 달리 세수의 변동성을 확대하고 비용 전가를 초래할 수 있으며, 그 파급 효과 또한 산업별로 상이하게 나타난다. 중국과 유럽연합(EU)이 통상 정책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해왔듯, 관세의 문제는 강도의 문제가 아니라 범위의 문제다. 적용 대상을 어디까지 설정하느냐에 따라 산업 경쟁력, 재정 안정성, 그리고 대외 신뢰가 동시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반도체에 국한된 관세 효과
관세 인센티브는 모든 산업에 적용 가능한 일반 해법이 아니라, 조건이 명확한 산업에서만 정책 효과를 낸다. 반도체 산업은 초기 투자 비용이 크고 기술 축적과 설비 구축에 장기간이 소요되며, 미국 내 수요 비중이 높아 정책 신호가 기업의 투자 판단에 직접 반영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관세와 재정 지원이 함께 작동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미국은 2022년 제정된 CHIPS and Science Act(반도체·과학법, 미국의 반도체 생산 유치와 과학기술 투자를 위한 지원 법안)를 통해 총 527억 달러(약 69조원)를 배정했고, 2024년 말까지 미국 상무부(U.S. Department of Commerce)는 330억 달러(약 43조원) 이상을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Intel), 삼성전자는 미국 내 생산 거점을 신설하거나 확장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흐름은 관세가 단독 정책 수단으로 기능한 결과라기보다, 재정 지원과 결합됐을 때만 제한적으로 투자 유인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 2025년 미국으로 유입된 그린필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백악관 공식 발표 기준으로는 크게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운영하는 글로벌 그린필드FDI 추적 데이터베이스(FT fDi Markets)에 따르면, 증가 폭이 제한적이다.
관세 확산이 드러낸 재정 불안정성
이러한 정책 접근을 전 산업으로 확대할 경우, 가장 먼저 문제로 떠오르는 지점은 재정의 안정성이다. 관세 수입은 정책 변화와 교역 구조, 경기 흐름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는 재원으로, 장기 재정 계획의 기반으로 삼기에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연방 관세 수입은 2022년 약 1,080억 달러(약 142조원)에서 2024년 770억 달러(약 101조원)로 감소한 뒤, 2025년 정책 조정 이후 다시 증가했다. 이 과정은 관세 수입이 정책 신호에 즉각 반응하며, 일관된 재정 흐름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처럼 변동성이 큰 재원에 의존할 경우, 교육·보건·연구처럼 중장기 계획과 지속성이 요구되는 공공 부문에서는 예산 운용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고, 이는 정책 전반의 신뢰도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투자 판단에 반영된 정책 리스크
관세 확대는 기업의 비용 구조와 투자 심리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며, 정책 환경에 대한 평가 방식을 바꾼다. 광범위한 관세 인상은 수입 비용을 직접적으로 끌어올리고, 이 부담은 소비자 가격과 공공기관 운영비로 순차적으로 전가된다. 비용 상승이 누적될수록 기업의 투자 계획은 수익성보다 정책 지속 가능성을 먼저 따지게 된다.
이와 관련해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은 2025년 관세 급증이 글로벌 성장률을 낮추고 물가 압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역시 관세 충격이 실질 임금과 투자 수익성을 동시에 압박하며, 기업의 중장기 투자 판단을 위축시킨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관세 강도가 높아질수록 제조업 외국인직접투자(FDI) 프로젝트 수가 감소하는 흐름이 관측됐다. 이러한 과정은 관세가 더 이상 투자 유인으로 작동하지 않고, 정책 리스크로 인식되는 단계로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주: 관세 인상은 낮은 강도에서는 FDI 프로젝트 수를 늘리는 효과가 나타나지만, 강도가 높아질수록 제조업 중심 FDI는 오히려 급감한다.
산업 정책 파급과 교육 영향
관세 정책의 파급 효과는 제조업을 넘어 교육과 연구 현장까지 이어진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수입 연구 장비와 국제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관세 인상 시 조달 비용 증가와 행정 절차 부담이 동시에 커진다. 이러한 변화는 연구 일정 지연과 예산 재조정으로 연결되며, 교육 기관의 운영 부담을 확대한다.
여기에 더해 기업들이 정책 불확실성을 이유로 장기 투자를 보류할 경우, 산학 협력과 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최근 몇 달간 조달 담당자와 기업들이 비용 구조와 파트너 안정성을 재검토하면서, 협력 사업의 범위와 속도가 조정되는 사례가 나타났다. 이 흐름은 통상 정책의 선택이 단순한 무역 수단을 넘어, 인재 양성과 연구 환경 전반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드러낸다.
관세의 위치 재설정
관세는 산업 정책의 출발점이 아닌 정책 범위를 가늠하는 경계선에 가깝다. 반도체처럼 목표와 조건이 분명한 영역에서는 제한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이를 산업 정책의 기본 축으로 삼는 접근은 재정 안정성과 정책 신뢰를 동시에 흔들 수 있다. 관세는 단기적인 압박 수단이 될 수는 있어도, 장기적인 투자 환경을 설계하는 도구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중국과 EU의 통상 경험이 누적적으로 보여주듯, 지속 가능한 산업 정책의 핵심은 예측 가능한 규칙과 안정적인 투자 환경에 있다. 관세의 적용 범위와 역할을 관리하지 못할 경우,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가 먼저 약화되고 그 비용은 산업과 공공 부문 전반으로 확산된다. 결국 산업 경쟁력을 지탱하는 것은 관세의 강도가 아니라, 정책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신뢰를 축적하느냐에 달려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Role of Tariff Incentives in Policy: Emphasizing Strategic Patience over Punitive MeasuresMeasure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