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배터리 의존 끊어낸다" 리튬 투자 가속화하는 美, 韓 배터리 새 기회 얻을까
"中 배터리 의존 끊어낸다" 리튬 투자 가속화하는 美, 韓 배터리 새 기회 얻을까
입력
수정
리튬 생산량 확대에 공들이는 美, 광산에 직접 지분 투자 단행 "방위·첨단 산업 지켜라" 중국산 배터리 공급망 의존 낮추기 위한 복안 현지 ESS 전환 속도 내는 韓 배터리 기업들, 정책 수혜로 판도 바꿀까

미국 정부가 리튬을 국가 안보 핵심 자산으로 규정하며 관련 기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민간 기업의 영역이었던 광산 개발에 직접 지분을 투자하는 등 안정적인 리튬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내는 양상이다. 이는 글로벌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을 선도하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첨단 산업·안보 분야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美, 리튬 지분 투자 확대
11일(이하 현지시각) 글로벌 에너지 분석 매체 오일 프라이스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DOE)는 최근 북미 최대 리튬 매장지인 '태커 패스(Thacker Pass)'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리튬 아메리카스(LAC)의 지분 5%를 직접 인수했다. 단순 자금 지원을 넘어 정부가 직접 사업 주체로 참여해 프로젝트의 성공을 견인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정부는 22억3,000만 달러(약 3조2,800억원) 규모의 대출 보증과 함께 5%의 지분(워런트)을 확보하고, 네바다주 태커 패스 광산에서 연간 4만 톤(t)의 탄산리튬을 생산(2026년 건설 정점 예상)할 예정이다.
미국 전쟁부(DOW)와 캐나다 광물 탐사 기업 트릴로지 메탈스의 계약도 비슷한 형태로 체결됐다. DOW는 지난해 10월 트릴로지 메탈스 주식 약 820만 주를 단위당 2.17달러(약 3,170원) 가격에 매입했으며, 각 단위는 보통주 1주와 10년 만기 워런트(3/4 단위)로 구성됐다. DOW는 트릴로지 메탈스가 알래스카에서 진행 중인 엠블러 접근 프로젝트(엠블러 도로) 완공 후 1센트의 행사 가격으로 보통주 1주를 인수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투자 기업과의 장기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이 같은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사업 초기 워런트를 행사하면 주주로서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지만, 인허가 지연 등 사업 진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도 함께 부담하게 된다. 미국 정부가 워런트 설정 기업의 프로젝트가 성공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소통을 이어가면서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셈이다.
해외 기업·프로젝트에도 자금 투입
이 같은 투자 구조는 한국 고려아연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미국 정부는 고려아연의 미국 현지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 운영 법인 지분을 주당 1센트(약 14원)에 최대 14.5%까지 매입할 수 있는 워런트를 확보하고, 추가로 20%에 대한 조건부 워런트를 설정했다. 이는 제련소 운영 법인의 기업가치가 23조원을 초과할 시 해당 가치에 상응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지분을 인수하는 조항이다. 고려아연 미국 제련소는 테네시주에 건설될 예정이며, 해당 프로젝트에는 약 11조원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미국의 공격적인 리튬 투자 행보는 곳곳에서 두드러지는 추세다. 최근 우크라이나 정부가 국가 전략 자산인 대규모 리튬 매장지 개발권을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자 억만장자인 로널드 S. 로더(Ronald S. Lauder)가 포함된 컨소시엄에 매도하기로 결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로더와 미국 정부가 일부 지분을 가진 에너지 투자사 테크멧(TechMet) 등으로 구성된 해당 컨소시엄은 지난 8일 우크라이나 정부 위원회의 입찰 심사를 통과했다.
거래 대상은 우크라이나 중부 키로보흐라드 지역에 위치한 '도브라(Dobra)' 리튬 광산이다. 도브라 광산에는 리튬 외에도 △니오븀 △주석 △루비듐 △탄탈륨 △세슘 △베릴륨 △텅스텐 △금 등이 매장돼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앞서 발표한 경쟁입찰조건 승인 결의안에 따르면 도브라 광산 지질 탐사에 필요한 최소 투자액은 1,200만 달러(약 176억원)이며, 프로젝트가 산업 생산 단계로 진행될 경우 투자자는 최소 1억6,700만 달러(약 2,300억원)를 추가 투자해야 한다. 이 경우 총투자액은 1억7,900만 달러(약 2,470억원)가 된다.

中 배터리 견제 위한 방책
이처럼 미국이 리튬 확보에 힘을 쏟는 것은 희토류에 이어 배터리 부족 문제가 미국의 약점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배터리는 첨단 기술 경쟁의 최전선으로 꼽히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는 물론, 드론, 레이저 등 첨단 무기를 제조·구동하는 데에도 필수적으로 투입된다. 문제는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 전반에서 선두를 달리는 국가가 미국과 적대 관계에 있는 중국이라는 점이다. 방위 산업 분석 업체인 고비니는 현재 미군의 무기용 배터리와 관련 부품 가운데 약 6,000개가 중국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고 집계했다. NYT는 AI 데이터센터 필수 설비인 ESS(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의 중국산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올해 들어 상황이 뒤집힐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계 배터리 제조사들이 미국의 새로운 정책 기조를 발판 삼아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라인을 ESS용으로 신속히 전환 중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통과된 미국의 ‘원 빅 뷰티풀 빌(One Big Beautiful Bill, OBBBA)’ 법안에는 전기차 구매 인센티브를 축소하고, ESS 제조 및 설치에 대한 세액 공제(ITC) 혜택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올해부터 시행되는 FEOC(Foreign Entity of Concern, 우려 외국 집단) 규정에 따라 중국산 부품이나 광물을 사용한 배터리는 세제 혜택 제공 범위에서 제외된다.
OBBBA에 따라 전기차 구매 인센티브가 대폭 삭감된 후,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기업은 가동률이 떨어진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라인을 ESS용 리튬인산철(LFP) 라인으로 줄줄이 재정비했다. 에너지 공급망 관리 및 기술 컨설팅 기업 인터텍 CEA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미국 내 FEOC 규제를 준수하는 ESS 셀 공급량의 80% 이상을 한국 기업들이 점유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에너지 컨설팅사 우드 매켄지는 2026년 미국 내 ESS 설치 수요는 49기가와트시(GWh) 수준이며, 한국계 제조사들의 전환 물량만으로도 이 수요를 100% 충족하고 약 10%의 잉여 물량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