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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 기대 꺾인 리플, 스테이블코인 득세에 ‘송금 강자’ 입지 흔들려

IPO 기대 꺾인 리플, 스테이블코인 득세에 ‘송금 강자’ 입지 흔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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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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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롱 사장의 IPO 계획 부인과 고래들의 대량 매도로 XRP 가격 급락
트론 기반 스테이블코인 결제액 242억 달러, 리플 송금 규모 10배 압도
리플도 RLUSD·레일 인수로 태세 전환, XRP 역할 축소 우려 속 투트랙 전략 진행

국제 송금 혁신의 상징이자 기업공개(IPO) 기대주였던 리플(Ripple)이 상장 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경영진은 충분한 자금력을 이유로 들었지만, 시장에서는 국제 송금 시장의 주도권이 이미 USDT 등 스테이블코인으로 넘어가면서 리플의 경쟁력이 약화된 결과로 해석한다. 자체 스테이블코인 RLUSD 출시라는 승부수가 과연 XRP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비상장 유지, 자금 여력 충분”, IPO 계획 선 긋자 꺾인 기대

8일(이하 현지시간) 가상자산 분석 플랫폼 더블록에 따르면 리플은 당분간 IPO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모니카 롱 리플 사장은 6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여전히 비상장 상태를 유지할 계획”이라며 당분간 IPO 계획이 없음을 공식화했다. 그는 “상장이 필요한 이유는 보통 공모시장을 통한 자금 확보와 유동성 때문인데, 우리는 이미 자금적으로 매우 건강한 상태”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리플은 지난해 11월 5억 달러(약 7,000억원) 규모의 세컨더리 거래에서 400억 달러(약 58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현금 흐름에 여유가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리플은 2025년 한 해 동안 히든로드, 레일, 지트레저리, 팔리세이드 등 4건의 기업 인수를 완료하면서 상장 없이도 인수합병(M&A)을 통한 외형 확장이 가능함을 증명하려 했다. 롱 사장은 “리플 전략은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전통 금융이 블록체인, 암호화폐, 스테이블코인, 기타 토큰화 자산을 실제 세계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영진의 공식적인 상장 부인은 시장에 즉각적인 매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암호화폐 시황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리플사가 발행하는 암호화폐 엑스알피(XRP)는 지난 6일 24시간 전보다 2.48% 하락한 2.27달러(약 3,300원)를 기록했다. 이는 폭발적인 랠리를 펼치며 시장의 주목을 받던 기존 흐름과는 대조적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하락을 IPO 무산 소식과 기술적 과열에 따른 차익 실현, 고래 투자자들의 매도라는 삼중고가 겹친 결과로 풀이한다.

특히 과열된 시장 분위기가 되레 부담으로 작용했다. 7일 기준 XRP의 상대강도지수(RSI)는 지난해 12월 이후 가장 높은 89.37까지 치솟으며 극단적인 과매수 신호를 보였다. 이 구간에서 실망 매물이 쏟아지자 4,130만 달러(약 602억원) 규모의 포지션이 청산되며 하방 압력을 가중시켰다. 온체인 데이터상으로도 지난 48시간 동안 고래 투자자들이 약 1억2,300만 XRP를 이동시켰으며, 이 중 약 2,950만 XRP가 코인베이스 등 거래소로 유입된 것으로 파악돼 대형 투자자들의 이탈이 하락폭을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최근 XRP 가격을 지탱하던 수급 호재마저 무력화시킨 결과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시장 분위기는 달랐다. 미국 XRP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로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며 XRP 가격이 주간 27.78% 급등하는 등 상승세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자산운용사 캐너리캐피털의 XRPC ETF는 단독으로 9억1,600만 달러(약 1조3,000억원)의 자산을 운용하고, ETF 전체가 유통량의 약 4.7%를 흡수하며 매수세를 주도했다. 거래소 보유 물량 또한 작년 2월 대비 28.6% 감소한 160억5,000만 개로 줄어들며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을 기대했다. 하지만 롱 사장의 발언으로 IPO라는 핵심 상승 동력이 사라지자, ETF 유입이나 공급 감소 같은 펀더멘털 요인도 위축된 투자 심리를 되돌리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XRP가 1차 지지선인 2.20달러(약 3,200원)를 방어하며 지난 30일간의 상승분을 지켜낼 수 있을지가 향후 시세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리플보다 10배 더 쓰는 트론, 스테이블코인에 내준 국제 송금 주도권

시장에서는 리플이 상장을 서두르지 않는 실질적인 배경으로 송금 시장의 판도가 스테이블코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흐름을 지목한다. iM증권은 지난해 9월 보고서를 통해 리플이 빠르고 저렴한 국제송금 솔루션으로 성장했지만 최근 급성장 중인 스테이블코인이 그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2,700억 달러(약 393조5,000억원) 규모인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98%는 달러 기반이며, 이 중 15%가 해외 송금에 사용되고 있다.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와 가치가 연동돼 변동성 리스크가 적은 반면, XRP는 시장 수급에 따라 가격이 변해 국제송금의 ‘브리지 통화’로서 완전한 적합성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자금 흐름 데이터는 리플의 열세를 여실히 보여준다. 크립토비즈아트(CryptoVizArt) 블록체인 분석 업체 글래스노드(Glassnode) 수석 연구 분석가에 따르면, 90일 단순이동평균 기준 트론(Tron) 기반 스테이블코인(USDT·USDC)의 합산 일일 거래액은 242억 달러(약 35조2,000억원)에 달했다. 반면 같은 기간 XRP 네트워크의 일일 송금 규모는 22억 달러(약 3조2,000억원)에 그쳐 트론이 리플보다 10배 이상의 결제를 처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래스노드는 이를 두고 스테이블코인이 시장의 핵심 유동성 통로가 되면서 각 네트워크 고유 자산(Native Asset)의 전송 활동은 상대적으로 위축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결국 결제와 송금의 주도권이 변동성이 큰 개별 코인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그동안 리플은 기존 스위프트(SWIFT)망 대비 수 초(2~4초) 내 결제와 1% 미만의 저렴한 수수료를 핵심 경쟁력인 ODL(On-Demand Liquidity) 기술의 강점으로 내세워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트론 등 저비용 블록체인 위에서 구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이 리플 못지않은 속도와 비용 효율성을 제공하면서 리플만의 기술적 우위가 희석됐다. 일각에서는 트론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규제 리스크를 지적하기도 했으나, 시장은 이미 효율성을 좇아 스테이블코인을 송금의 표준 레일로 채택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자체 스테이블코인 RLUSD 승부수, '투트랙 전략' 통할까

리플도 시장의 무게중심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했음을 인지하고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2024년 12월 뉴욕금융서비스국(NYDFS)의 승인을 받아 출시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RLUSD가 그 신호탄이다. RLUSD는 달러 예금과 단기 국채 등 투명한 현금성 자산으로 100% 담보된다. 시장은 이를 두고 XRP를 초고속 브리지 통화로, RLUSD를 안정적 가치 저장 수단으로 활용하는 ‘투트랙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8월 스테이블코인 결제 플랫폼 레일(Rail)을 2억 달러(약 2,900억원)에 인수한 것 역시 인프라 확장의 일환이다. 롱 사장이 “전통 금융이 블록체인 자산을 실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연결하겠다”고 강조한 점은 리플의 무게중심이 단순 ‘송금 코인’에서 ‘기업용 금융 인프라’로 옮겨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대해 양현경 iM증권 연구원은 “급성장하는 시장에서 RLUSD 발행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향후 관건은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과 제도권 진입, 그리고 USDT·USDC와의 차별화된 포지셔닝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후발주자인 RLUSD가 시장에 안착하기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이달 초 기준 RLUSD의 시가총액은 13억 달러(약 1조8,900억원)로,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장 점유율은 0.4%대에 불과하다. 경쟁자인 USDC(약 749억 달러·약 109조2,000억원)와 비교하면 체급 차이가 확연하다. 리플이 멀티체인 확장을 시도하며 추격에 나섰지만, 이미 USDT와 USDC가 선점한 견고한 네트워크 효과를 단기간에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업계의 관심은 RLUSD의 성공 여부를 넘어 XRP의 역할 변화에 쏠려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리플 생태계 내 결제 핵심으로 자리 잡을 경우 기존 브리지 통화로서 XRP의 효용성은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리플 레저(XRPL) 시스템상 모든 거래 수수료로 XRP가 소각되는 구조인 만큼, 향후 역할이 ‘국제 송금의 매개체’에서 네트워크를 구동시키는 ‘연료(Gas)’로 재정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리플은 팔라우, 부탄 등 여러 국가와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플랫폼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결국 리플의 미래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구조 변화 속에서 XRP가 단순한 변동성 자산을 넘어 대체 불가능한 유틸리티를 증명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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