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난·단기 임대 증가로 집값 폭등한 유럽, 사상 첫 ‘범유럽 부동산 대책’ 공개
공급난·단기 임대 증가로 집값 폭등한 유럽, 사상 첫 ‘범유럽 부동산 대책’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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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200만 가구 신규주택 공급 보조금 규정 완화·행정 간소화 공급 촉진·단기임대 규제 움직임도

주택 가격 상승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연합(EU)이 범유럽 차원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그동안 회원국 자율에 맡겨졌던 주거 문제가 EU 차원의 공동 과제로 부상한 데는 주요 회원국에서 주거비 부담이 생계와 노동 이동을 제약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짙게 작용했다. 특히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임대료 급등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거세지는 가운데, 에어비앤비(Airbnb) 등 단기 임대 확산이 장기 임대 물량을 잠식하며 공급난과 임대료 상승을 동시에 부추기는 양상이다.
유럽 주택난, 사회·정치적 위기로 부상
16일(이하 현지시간)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유럽 거의 모든 지역에서 주택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알맞은 가격의 주택공급 계획(Affordable Housing Plan)'으로 명명된 방안을 공개했다. 테레사 리베라(Teresa Ribera) EU 부집행위원장은 이번 계획을 소개하는 기자회견에서 "저렴한 주택 공급은 유럽의 가장 긴급한 도전 과제 중 하나"라며 이번 대책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EU 집행위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EU 전역에서 주택 가격은 60% 이상, 임대료는 20% 넘게 급등했다. 이에 따라 근로와 교육 목적의 이동이 제한되고, 가정을 꾸리기 어려워지는 등 각종 부작용이 초래돼 EU 전체의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졌다는 게 EU의 진단이다. EU가 이날 공개한 계획에는 △주택 건설에 속도를 내기 위한 행정 절차 간소화 △주택 부분 투자 촉진 △국가 보조금 규정 완화 등 공급 확대 정책이 담겼다. EU는 주택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연간 200만 가구의 신규 주택 공급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동안 주택 문제는 농업이나 이주, 무역 등의 의제와는 달리 EU가 공식 관장하지 않고 회원국이 자체적으로 도시 계획부터 임대료, 주거 보조금 등의 정책을 펼쳐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집값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으면서 특히 좌파 진영을 중심으로 EU 차원에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압박이 커졌다.
이에 EU 집행위는 '유럽 주택 건설 전략(European Strategy for Housing Construction)'을 통해 주택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를 해소하고, 건설·리모델링 부문의 생산성과 혁신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를 제안했다. 아울러 EU 국가 보조금 규정을 개정해 회원국들이 감당 가능한 주택 뿐만 아니라 사회 주택(Social Housing)에 대해서도 재정 지원을 용이하게 할 예정이다. 회원국 정부,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주택 공급을 제한하는 규정과 절차도 단순화하기로 했다.

살인적인 베를린 주거비
EU 회원국 중 주택 문제로 가장 골머리를 썩고 있는 곳은 독일이다. 독일은 자기 소유의 주택에 사는 사람보다 월세로 사는 사람의 비율이 더 높다. 여기엔 독일 부동산 시장의 특성이 짙게 작용했다. 중간에 월세를 올리지 않는 관습이 오래된 데다, 세입자의 권리가 상당히 강해 입주 후 웬만하면 장기간 거주가 보장된다. 또 집을 사용하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어 대출을 받고 목돈을 들여 집을 사는 것보다 월세로 사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이런 안정성은 공급 절벽 앞에 무너졌다. 독일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주택 시장이 가장 안정된 나라로 꼽혔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7대 도시의 주택가격이 120% 가까이 오르고 임대료가 60%가량 상승하는 등 주택 시장이 불안한 상황이다. 독일 집값 상승을 이끈 건 수익을 우선시하는 대형 부동산 회사들이다. 베를린 전체 주택의 20%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투기 목적으로 월세 올리기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시민들은 집을 아예 '공공 자산'으로 바꾸자며 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한 주택 공공 전환 운동 대변인은 "베를린 임대 주택의 상당 부분은 수익과 성장을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두는 거대 영리 기업이 관리하고 있다. 그 결과 이용 가능한 주택이 부족해지고 임대료가 급등했다"며 "집은 '상품'이 아닌 '인간의 권리'다. 부동산 회사들이 보유한 주택을 공공 소유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지난 2021년에는 공공 자산 변환을 위한 베를린 주민투표가 실시되기도 했다. 주택을 공공이 사들여 소유하자는 데 60% 가까운 주민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현재 베를린 주의회는 주택 공공 소유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논의 중이다.
공급 부족에 따른 임대료 폭등 현상은 중북부 유럽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EU 통계청인 유로스탯(Eurostat)에 따르면 헝가리와 리투아니아의 임대료는 2015년부터 2024년까지 60% 이상 상승했다. 두 나라 모두 같은 기간 주택 가격도 2배 이상 상승했다. 발트해 연안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의 경우 2022년까지 10년 동안 유럽 국가 중 임대료와 주택 가격이 가장 급격하게 상승한 국가로 꼽힌다. 아일랜드는 현지 언론들이 “정신 나간 수준”이라고 비판할 정도다. 최근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경우 침실 1개짜리 아파트 임대료가 고소득 회사원의 급여보다 많다.

단기 임대 증가, 월세·집값 상승 자극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도 임대료를 끌어올린 주범으로 지목된다. 단기 임대 증가가 임대료와 집값 상승을 자극하는 형세다.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진장익 교수 등 연구진이 발표한 ‘공유경제의 부정적 측면 : 에어비앤비와 주택임대료의 관계’ 논문에 따르면 에어비앤비 밀도(에어비앤비 주택)가 1㎢당 100개 늘어날 때 주택임대료는 약 0.4%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임대주택이 에어비앤비 사업으로 전환되면서 공급량이 줄어든 탓에 임대료가 상승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프랑스 경우 8개 도시에서 에어비앤비로 인한 임대료 상승이 확인됐다.
이에 일부 국가에서는 숙박 공유 산업에 대한 규제에 나서기도 한다.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과잉 관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스페인이 대표적이다. 15일(현지시각) 스페인 소비자권리부는 에어비앤비가 허가받지 않은 불법 관광용 숙소를 플랫폼에 노출했다는 이유로 6,410만 유로(약 1,100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했다. 스페인 당국이 소비자 권리 침해와 관련해 부과한 과징금 가운데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이번 조치는 지난 5월 소비자권리부가 에어비앤비 측에 규정 위반을 이유로 6만5,000개에 달하는 숙소 목록을 삭제하라고 명령한 데 이은 후속 처분이다. 스페인 현행법상 관광객을 대상으로 단기 임대 영업을 하려는 숙소는 반드시 지방당국 허가를 받고 고유 등록 번호를 발급받아야 하지만, 당국 조사 결과 에어비앤비 내 6만5,122개 숙소에서 면허번호가 누락되거나 당국 데이터베이스와 일치하지 않는 가짜 번호가 발견됐다. 일부 숙소는 호스트 정보조차 불분명했다. 소비자권리부는 "이러한 불법 숙박 업소들이 소비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합법적인 주거 시장을 교란했다"고 처분 배경을 설명했다.
스페인 부동산업계 통계에 따르면 2014년 평균 553유로(약 80만원) 수준이던 스페인 평균 월세는 2024년 984유로(약 143만원)로 10년 새 78% 가까이 폭등했다. 특히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말라가 등 인기 관광 도시는 상승 폭이 한 해 두 자릿수를 기록할 정도로 상승세를 주도했다. 이는 임대 수익률 격차 때문이다. 에어비앤비에 단기 관광 임대를 해주면 수익이 최대 4배까지 치솟자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내보내고 숙박 공유 시장으로 매물을 돌린 결과다. 공급 부족은 곧장 임대료 폭등으로 이어졌고 주요 도시에서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관광객이 주거 지역까지 밀고 들어오면서, 정작 현지 주민들은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평생을 살아온 터전에서 원주민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