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 ‘대만 문제’ 발언 수위 높인 시진핑 vs. 말 아낀 트럼프
[미·중 정상회담] ‘대만 문제’ 발언 수위 높인 시진핑 vs. 말 아낀 트럼프
입력
수정
미중 정상 9년 전과 달랐다 習 “대만 잘못 처리땐 중미 충돌” 공개 압박 트럼프 “훌륭한 지도자”, 시진핑 향해 유화 메시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를 거론하며 “잘못 처리하면 양국이 충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미·중 충돌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것은 기존 대만 관련 발언보다 수위가 한층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중국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미·중 관계의 레드라인을 재확인하고, 미국의 대만 무기 판매와 대만 독립 세력 지원 가능성을 강하게 견제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면전서 ‘대만 충돌’ 경고, 이례적 강수
14일(이하 현지시간) 중국 국영 CCTV과 신화통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양국 대표단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정상회담을 가졌다. 무역 전쟁, 이란발 중동 위기, 대만 해협 긴장 등 긴박한 현안들을 놓고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겉으로는 화해 분위기 속에 진행됐지만, 실제로는 대만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팽팽한 긴장감이 선명하게 드러난 자리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중 첫날 시 주석과의 개인적 친분을 부각하며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공개석상에서 시 주석에게 "당신은 훌륭한 지도자(You’re a great leader)"라고 칭찬하며 중국의 통치 방식과 리더십에 대한 존중을 나타냈다. 대선 유세 기간 동안 중국을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고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로 비판했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는 양국 간 협력과 개인적 관계를 강조하며 갈등보다는 관계 개선 분위기 조성에 집중했다.
하지만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는 다른 메시지를 내놨다. 중국이 준비한 성대한 환영 행사 직후부터 그는 대만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며 미중 관계의 명확한 한계를 설정하는 데 집중했다. 시 주석은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회담에서 “대만 문제는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이 문제를 잘 처리하면 양국 관계는 전반적으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지만, 잘못 처리하면 양국은 부딪히거나 충돌할 것이고 중·미 관계는 매우 위험한 지경으로 몰릴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대만 독립’과 ‘대만해협의 평화’는 물과 불처럼 양립할 수 없다”면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것은 중·미 양국의 최대공약수”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대만 독립 세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선 안 된다는 압박으로 해석되는 말이다.
이 발언은 중국 권력의 상징인 인민대회당에서 공개 연설이 시작된 지 불과 몇 분 만에 나왔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대만의 문제가 중국의 핵심 이익임을 천명하며 직접 경고한 것은 과거 발언이나 태도와 비교해도 한층 수위가 높아진 것이다.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이 미국과 경쟁하는 수준을 넘어, 사실상 동등한 패권국으로 인정받기를 요구하는 모습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특히 시 주석에게는 첫 순간부터 대만 문제를 레드라인으로 못 박는 것이 핵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중국은 대만을 별도의 국가로 대우하거나 대만과의 관계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에 경계해 왔다.
시 주석은 또 다른 발언을 통해서도 양국이 대등한 입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회담에서 시 주석은 미중 경쟁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신흥국과 기존 패권국 간 충돌 이론)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경쟁이 충돌로 비화할 경우 "미중 관계 전체가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몇 년간 중국 정부는 이 개념을 적극적으로 인용해 왔다. 시 주석 또한 미국과의 협력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이 용어를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시 주석이 이번 회담에서 대만 문제에 대한 경고를 날린 이후 투키디데스 함정을 언급한 것은 대만이 미중 충돌의 핵심 뇌관이라는 중국 측 인식을 재차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또,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는 시 주석 입장에서 대만 문제에 있어선 한 치도 물러설 뜻이 없음을 명확히 한 것으로도 읽힌다.

中, 美의 대만 무기 판매 두고 “군사 접촉 강력 반대”
중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전부터 대만 문제를 레드라인으로 규정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분명히 해왔다. 미국 주재 중국대사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일 X(옛 트위터)를 통해 언급한 미·중 관계의 ‘4대 레드라인’을 거론하며 △대만 문제 △민주주의·인권 △발전 경로와 정치 체제 △중국의 발전 권리 등은 양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미국에 요구해 온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외교적 수사의 변경이다. 대만해협의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하며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게 현재 미국의 입장인데, 이를 대만 독립에 반대한다는 '선언적 정책(declaratory policy)'으로 바꾸도록 만드는 게 중국의 목표다.
다른 하나는 대만에 무기를 그만 팔거나 판매량을 줄이라는 것이다. 미·대만경제협의회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대만에 사상 최대 규모인 111억 달러(약 15조4,000억원) 상당의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이는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 승인 규모인 84억 달러(약 11조6,000억원)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나아가 미국은 최소 140억 달러(약 19조4,000억원) 규모의 추가 무기 판매 패키지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기 패키지에는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 미사일 기반 방공 시스템, 대드론 장비 등이 포함돼 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반발에도 대만 군사 지원을 유지하라는 의회의 초당적 압박에 직면해 있다. 공화·민주 양당 상원의원 8명은 지난 11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140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대만에 판매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앞서 미 의회는 지난 1월 대만 무기 판매 패키지에 사전 승인을 부여했으나, 무기 인도를 위한 행정부의 최종 작업은 5개월째 중단된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에 관련 문서의 최종 제출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은 백악관이 방중을 앞두고 시 주석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관련 작업을 잠시 중단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앞서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 방중을 몇 시간 앞둔 상황에서 미국과 대만 간 무기 거래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13일 “미국은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단하고,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분리주의 세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란 전쟁 출구 못찾는 트럼프, 대만 무기 판매 양보 대신 習와 빅딜 가능성
이에 화답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방중 전 대만 대상 무기 수출 때 중국과 협의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수십 년간 외교 관행에 아랑곳없이, 이번 회담에서 해당 문제를 거론하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의 대만 무기 수출에 관해 시 주석과 얘기를 나눌 예정이라며 "시 주석은 우리가 그러지 말기를(대만에 무기 판매를 하지 말기를) 바라며, 나는 그 논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4일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 문제를 논의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았지만, 시 주석이 ‘미중 충돌’까지 언급할 정도로 경고 수위를 올린 사실에 비춰 볼 때 실현됐을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 모종의 ‘빅딜’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란 전쟁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 가까운 중국의 협조를 위해 대만 의제에서 일정 부분 양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또한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치 중인 ‘함정(trap)’은 대만”이라고 논평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중국 또한 이란이 봉쇄 중인 원유 수송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자국에 필요한 원유의 40%를 공급받는다며 “시 주석 또한 빠른 종전을 원한다”는 취지로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의 이란산 원유 구매와 대이란 경제 협력이 제재 회피 통로로 기능한다고 보고, 이를 베이징 회담의 주요 압박 의제로 올렸다. 회담 직전 미국 당국은 중국과 연계된 이란 원유 거래를 겨냥한 제재를 발표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이란산 원유 구매 문제를 시 주석에게 제기할 방침을 공개했다. 이 지점에서 대만 문제와 이란 문제가 하나의 거래 구조로 연결될 여지가 생겼다. 미국은 중국에 이란 지원 축소와 호르무즈 해협 안정 관리를 요구하고, 중국은 미국에 대만 무기 판매 조절과 대만 문제의 신중한 처리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베이징 정상회담은 경제 협력 복원보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간 전략적 긴장과 패권 충돌 가능성을 재확인한 자리였다는 평가에 무게가 실린다. 한 국제정치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거래 중심 접근법을 감안하면 대만 무기 판매 문제 등이 협상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은 충분하다”면서도 “대만해협 충돌은 지역 분쟁 차원을 넘어 미국의 패권 유지와 직결된 사안인 만큼, 미국이 전략적 열세를 감수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번 회담에서 주목할 부분은 시 주석이 대만 문제를 둘러싼 중국의 경고 메시지를 예상보다 훨씬 강한 수위로 공개 압박했다는 점”이라며 “트럼프 대통령 역시 회담 분위기와 협상 구도를 고려해 이를 정면으로 충돌시키지 않는 방향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