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 “협력의 탈 쓴 압박” 암묵적 견제 오간 美-中 정상회담, 기술 외교로 서로 약점 겨눠
[미·중 정상회담] “협력의 탈 쓴 압박” 암묵적 견제 오간 美-中 정상회담, 기술 외교로 서로 약점 겨눠
입력
수정
"투키디데스 함정 넘자" 시진핑, 美 향해 우회적 경고 자국 CEO들 대동한 트럼프, 기술 패권 강조하며 시장 개방 압박 치열하게 펼쳐진 기술 외교, 실질적 협력 성과는 제한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부터 지속돼 온 미국의 대(對)중국 경제 압박 기조를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미국 역시 자국 핵심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대동해 기술·금융 패권 우위를 과시하는 방식으로 중국에 맞섰다. 양국 간 협력 논의가 아닌 암묵적 압박이 회담의 중심축에 자리한 셈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이 실질적인 양국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사실상 제한적이라고 분석한다.
美 규제 행보 정조준한 시진핑
14일(이하 현지시각) 중국 관영 중국중앙TV(CCTV)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된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세계가 다시 새로운 갈림길에 섰다”면서 “중미 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넘어 대국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수 있느냐, 글로벌 도전에 함께 대응해 세계에 더 많은 안정성을 불어넣을 수 있느냐, 양국 국민의 복지와 인류의 앞날과 운명을 위해 함께 양국 관계의 아름다운 미래를 열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이어 “이것들은 역사적 질문, 세계적 질문, 인민의 질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나와 당신(트럼프 대통령)이 대국 지도자로서 함께 시대의 답안을 써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제사회는 시 주석이 미국과의 회담 자리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용어를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신흥 강국이 기존의 패권국을 위협할 때 기존 강대국이 느끼는 공포와 견제로 인해 결국 양국이 전쟁에 빠지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 국제정치학 개념으로, 미국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이 미·중 관계를 묘사하는 데 사용하며 대중화했다. 실제 양국의 관계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중국에 본격적인 압박을 가한 시점부터 빠르게 악화해 왔다. 지난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 등을 직접적으로 제재했으며, 2,000억 달러(약 299조5,000억원) 규모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소위 '무역 전쟁'을 초래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 법안(IIJA)’ 등을 통해 저가 수출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는 중국을 견제했고, 지난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미국발(發) 관세 갈등이 불거지며 재차 양국 간 무역 전쟁이 발발했다.
전문가들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넘어서야 한다는 시 주석의 발언이 이 같은 미국식 대중 압박 전략을 겨냥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겉으로는 미·중 양국이 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외교적 수사처럼 읽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 내 ‘영원한 이인자’로 고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은 전략적 메시지일 수 있다는 평가다. 트럼프 진영도 이를 단순한 협력 제안이 아닌 중국의 성장과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지 말라는 일종의 요구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자국 기업인 '패권 과시 도구'로
미국 역시 표면상으로는 유화적 태도를 유지했다. 이번 방중 일정에 자국 주요 기업인들을 대거 대동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미국 수행단은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 등 행정부 핵심 인사들과 미국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인들로 구성됐다. 구체적인 인원은 젠슨 황(엔비디아), 일론 머스크(테슬라), 팀 쿡(애플), 스티븐 슈워츠먼(블랙스톤), 래리 핑크(블랙록), 켈리 오트버그(보잉), 브라이언 사이크스(카길), 제인 프레이저(씨티그룹), 래리 컬프(GE 에어로스페이스), 데이비드 솔로몬(골드만삭스), 산제이 메로트라(마이크론), 크리스티아노 아몬(퀄컴) 등 CEO 16인이다. 이들은 단순 수행단의 자격으로 중국에 동행하는 것을 넘어 시 주석과 인민대회당에서 직접 접견하기도 했다.
미국 핵심 기업인들의 대규모 방중은 양국 간 무역 장벽 완화를 시사하는 사건처럼 비친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 같은 미국 측의 행보에는 치밀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수행단에 포함된 CEO들은 대다수가 미국이 세계적 패권을 보유한 산업군에서 영향력을 떨치는 중이다. 특히 인공지능(AI) 칩(엔비디아), 항공기·엔진(보잉·GE), 글로벌 달러 금융(블랙록·골드만삭스·씨티) 등은 아직 중국이 미국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인이 포함된 수행단 구성을 통해 중국 측에 자국의 기술적 우위를 강조한 셈이다.
이러한 행보는 결국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권 회복 요구로도 읽힌다. 중국이 아직 미국 기업의 기술과 자본을 필요로 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시장 개방 및 규제 완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압박이다. 중국은 미국의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희토류 등의 자원을 무기화해 협상 카드로 활용 중이며,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가 본격화한 2022년 이후로는 엔비디아·마이크론 등 미국 기술 기업에 대한 제재를 꾸준히 확대해 왔다. 이에 따라 미국 기업들의 중국 시장 접근은 사실상 제한됐으며,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원자재 조달 비용 부담 및 공급망 불안까지 대폭 가중됐다. 미국 입장에서 이 같은 상황은 단순한 통상 갈등을 넘어 기술 패권을 위협하는 전략적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성과는 리스크 관리 수준에 그쳐
주요 분석 기관들 사이에서는 양국이 전통적 외교의 문법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중이 자국의 핵심 기술·산업 역량을 직접적인 협상 카드로 내세우며 회담이 '기술 외교(첨단 과학 기술을 외교·안보·통상 전략과 결합해 국가 이익을 확보하는 전략)'의 성격을 띠게 됐다는 것이다. 미 싱크탱크 독일마셜펀드(GMF)는 "이번 회담은 경제 정상회담이라기보다 기술 지정학의 연장선이었다”며 "과거 미·중 협상이 관세 인하와 무역 불균형 조정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현재는 AI 반도체·희토류·배터리 공급망·첨단 제조업 통제 자체가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고 짚었다. 또 다른 미 싱크탱크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역시 "이번 회담은 미·중 경쟁의 중심축이 관세와 무역수지에서 반도체·AI·배터리·핵심 광물 등 전략 기술 통제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실질적인 경제 협력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전망도 존재한다. 양국 모두 공개적으로는 협력과 안정 메시지를 내놓았으나, 반도체·AI·공급망 등 핵심 사안을 둘러싼 입장차는 여전히 크다는 시각이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이번 회담에 대해 "낮은 기대치 속 긴장 관리(low expectations amid fears of escalation) 성격이 강하다"고 묘사했다. 양국 모두 갈등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번지는 것은 원치 않지만, 그렇다고 핵심 산업과 기술 패권 경쟁을 중단할 의사 역시 없다는 의미다.
스탠퍼드대 프리먼 스포글리 국제문제연구소(FSI)는 "양국은 전략 경쟁 자체를 멈출 생각이 없으며, 미·중 관계가 회복보다는 ‘관리된 경쟁(managed competition)’ 국면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진단했으나, 이어 "미국은 중국 제조업 공급망과 시장 의존도를 단기간 내 대체하기 어렵고, 중국 또한 첨단 반도체·달러 금융·항공 기술 등에서 미국 의존이 남아 있다"고도 덧붙였다.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실현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 속, 양국이 위험 관리에 집중하는 '디리스킹(De-risking)'으로 정책 우선순위를 수정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