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무고용 성장” 과세 체계 재편 압력 속, 자본 유출 딜레마 숙제로
“AI가 만든 무고용 성장” 과세 체계 재편 압력 속, 자본 유출 딜레마 숙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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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확산에 따른 노동소득 기반 약화 세수 감소는 자본세 인상으로 해결 과세 강화 통한 재분배 정책 필요성 부각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일자리 감소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소득세를 없애는 방향의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만큼 사람에게는 소득세를 면제해 주고, 자본으로 이익을 본 사람에겐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국경을 초월해 이동하는 자본의 특성상 과세 강화는 곧 자본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과세 체계에 대한 정교한 설계가 요구된다.
오픈AI 투자자, 10만 달러 미만 소득세 면제 주장
5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오픈AI 초기 투자자인 비노드 코슬라(Vinod Khosla) 코슬라벤처스 창업자는 연소득 10만 달러(약 1억5,000만원) 미만 미국인의 소득세를 없앨 것을 제안했다. 코슬라 창업자는 이에 따른 세수 감소는 주식 매매차익 등에 부과되는 자본이득세를 인상함으로써 메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하면 정부의 세수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소득이 낮은 미국인 1억2,500만 명이 연방 소득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연방 소득세는 소득 구간에 따라 누진세율이 최고 37%에 달하지만, 자본이득세의 세율은 1년 이상 장기보유 자산을 매각할 경우 최고 20%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낮다. 코슬라 창업자는 AI가 노동자들로부터 부와 권력을 빼앗는 현상을 가속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세제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가장 큰 우려는 AI가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며 "이는 오는 2028년 대선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실제 AI 기술이 인간의 지적 노동뿐만 아니라 육체적 노동까지 대체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인류는 전례 없는 근본적 질문에 직면했다. 기계가 모든 부를 창출하고 인간의 노동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세상에서 개인의 생존권은 어떻게 보장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다. 이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존속을 결정지을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코슬라 창업자가 자본세 강화를 주장하는 배경에도 이러한 위기감이 투영돼 있다.
현재 전 세계 조세 수입의 상당 부분은 개인의 노동에 매기는 소득세에서 나오는데, AI가 인간을 대신해 생산을 주도하면 정부의 세수는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코슬라 창업자는 지난달 22일 워싱턴 정책 입안자와 실리콘밸리 경영진이 한자리에 모인 ‘힐 앤드 밸리 포럼(Hill & Valley Forum)’에서 "2030년이면 전체 일자리의 80%가 AI가 수행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바뀌고, 그만큼 대체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이 창출하는 부의 속도가 노동 소득의 증가율을 압도하는 현 상황에서, 자본 과세 강화는 무너지는 중산층을 복구하고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유일한 대안이라는 게 그의 논리다.

AI 시대 조세 재편 압력
자본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한 건 코슬라 창업자가 처음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생성형 AI가 소득 불평등과 부의 집중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예상하면서 자본세와 법인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IMF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선진국에서는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 부담이 꾸준히 감소한 반면 노동소득에 대한 부담은 증가했다. 그런 만큼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을 강화해 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이상 감소하지 않도록 과세 기반을 보호하고 부의 불평등 증가를 상쇄한다는 게 IMF의 분석이다. AI로 인한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교육과 사회 지출에 더 많은 투자를 하려면 더 많은 공공 수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국 가디언도 AI 시스템 자체나 그 시스템이 창출하는 초과 이익에 직접 과세하는 자본세를 제안했다. 가디언은 부를 재분배하는 또 다른 혁신적 방안으로 AI 기술에 대한 지분 공유도 꼽았다. 소수의 빅테크 기업이 AI 기술을 독점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모든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를 타파하자는 취지다. 가디언은 AI 개발의 토대가 된 방대한 데이터가 결국 인류 공동의 자산이라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그러면서 오픈AI와 같은 기업들이 초기 공익적 목적에서 영리 기업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경계하며 기업 이익의 일정 부분을 공적 펀드에 출연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배당 형태로 되돌려주는 방식을 구체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국제연합(UN)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도 AI가 소수 국가나 억만장자의 통제 아래 놓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현재 AI 논의는 기계가 인간의 명령에 맞게 작동하는지에 집중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AI와 그 소유자의 목표가 사회 전체와 일치하는지 여부라는 것이다. 경제학자 안톤 코리넥(Anton Korinek)과 리 록우드(Lee Lockwood)도 인간의 노동 소득이 감소하면 자본세가 재정의 핵심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세금을 활용해 노동자를 대체하는 기술보다 노동을 보조하는 기술 개발을 유도하는 방안을 함께 제시했다. 이를 통해 마련된 재원을 전 국민 기본소득의 토대가 돼야 하며 기업이 인간 노동자를 대체해 얻은 비용 절감분 중 일정 비율을 사회적으로 환수해야 한다고도 했다.
조세 정책 변화가 야기하는 자본 이탈
다만 세수 강화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FT가 자산관리업체 래스본스 분석을 인용해 2024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영국 기업 공시 자료를 집계한 결과, 지난 2년간 기업 소유주 약 6,000명이 영국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간 영국으로 이주한 기업 소유주는 3,182명이었으나, 5,940명은 영국을 떠났다. 순유출 규모는 2,758명으로 집계됐다. 영국을 떠난 기업가 가운데 테크 부문 종사자가 가장 많았다. 이들이 가장 많이 향한 국가는 아랍에미리트(UAE)였으며, 스페인과 미국이 뒤를 이었다.
이들이 영국을 떠난 주요 원인은 세율 인상이다. 이 기간 영국에서는 자본소득세를 비롯해 국내 비거주자에 대한 과세 송금주의 폐지 등 부유층에 부담을 주는 세제 개편이 이뤄졌다. 반면 UAE는 개인소득세와 자본이득세는 물론 상속ㆍ증여세도 부과하지 않는 세금 천국이다. 미셸 화이트 래스본스 개인자산팀장은 “기업 소유주와 부유한 기업가 사이에서 국제 이동이 가속했다”며 “더 나은 기회와 유리한 세제 환경, 밝은 장기 성장 전망을 찾아 이주를 고민하는 젊은 기업가가 특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래스본스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 내 백만장자 수는 1만6,500명 순감했으며, 이들이 보유한 투자 가능 자산 규모는 총 918억 달러(약 13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렇듯 AI로 창출된 이윤에 대한 과세 강화는 재정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세율 격차가 확대될수록 자본의 이동 속도 역시 가속된다는 점이 딜레마다. 이에 따라 결국 자본이득세 인상도 세수 확충 수단으로 기능하기보다 세원 이탈을 촉발하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 국제 조세 전문가는 “AI 시대의 과세 문제는 세율의 문제가 아닌 자본 이동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 설계의 문제로 수렴한다”며 “국경을 초월해 이동하는 자본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과세 체계를 재설계하고, 이를 기반으로 복지 시스템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짚었다.